조선 좌찬성, 무령부원군(武靈府元君)
유자광(柳子光)
본관 영광 류씨
출생 1439년(세종 21년 전라북도 남원)
신분사회 벽을 넘어선 우월한 처세 학자들은 조선시대 간신을 열거할 때 임사홍, 김자점과 함께 유자광을 거론한다.
조선 시대의 3대 간신(奸臣)
임사홍 (任士洪)
任(맡길 임)
士(선비 사)
洪(넓을 홍)
김자점 (金自點)
金(쇠 금)
自(스스로 자)
點(점 점)
유자광(柳子光)
이 중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인물은 단연 유자광이다. 역사나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는 유자광의 이미지는 모사꾼, 간신, 음모론자 등 한마디로 부정적인 평판이 대부분이다.
그가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의 인물이 된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남이 장군을 역모로 모함해 죽였고, 무오사화를 일으켜 당시 조정에 진출해 세력을 모으고 있던 젊은 유학자 집단인 사림파의 씨를 말린 장본인이라는 기록 때문이다.
한덕수 韓悳洙
고향도 전북으로 유자광과 동일
출생 1949년 6월 18일[음력]
전라북도 전주부 진북동
(現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본관 청주 한씨
진보와 보수 정권을 넘나든 이력: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거쳐 보수 정부인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무총리를 맡는 등 정권의 이념과 관계없이 승승장구한 행보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12·3 비상계엄 가담 논란:
윤석열 정부에서 국무총리 및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며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에 적극 가담하거나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2026년 1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징역 23년을 선고받으며 '기회주의적 행보가 불행한 결과를 불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선택적 기억과 책임 회피:
재판 과정에서 비상계엄 상황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등 선택적 증언을 하여 비판을 받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그가 정파와 관계없이 요직을 맡은 것은 기술 관료(Technocrat)로서의 역량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위와 같이 12·3 비상계엄 사건 이후 '기회주의적 면모'를 지적하는 여론이 강해진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