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나의 피난처'의 저자 코리텐붐 여사의 간증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쓴 코리텐붐 여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코리텐붐 여사 집에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가족들이 모두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부모님과 언니는 그 가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서 수용소에서 죽었지만 코리텐붐 여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후 코리텐붐 여사는 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코리텐붐 여사가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 큰 상처를 입고 있다.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 코리텐붐 여사는 “하나님께서 가라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그렇지만 독일에만은 못갑니다. 하나님, 그곳만은 빼주십시오. 독일사람이 우리 부모님도 죽이고 언니도 죽였습니다. 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당한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 독일 사람에게 가서 내가 복음을 증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랑하는 딸아 내가 나를 저주하고 욕하고 등진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진 것을 기억하라. 네가 내 딸이면 독일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 그 말씀을 듣고 코리텐붐 여사는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주님께 나오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서자 많은 사람들이 악수를 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허름한 외투를 입은 한 남자가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여사는 심장이 멎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자기에게 무시무시한 고통을 가한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 감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는 한겨울 이른 새벽에 여자 포로들을 나체로 바깥에 서있게 하고 먹을 것도 주지 않고 갖은 횡포를 다해 괴롭힌 장본인이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 손에 여사의 사촌언니 벳시가 강간당하고 견디지 못하여 끝내 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 강제수용소에서 있었던 악몽같은 괴로운 기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치는데 앞에 있는 바로 그 남자가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전쟁당시 수많은 여자 포로들을 죽였기 때문에 여사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코리텐붐 여사는 꿈에도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할 수가 없어서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하늘에서 진노의 벼락이 내려 이 사람을 때리기 전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도저히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저를 좀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못 박고 죽이고 침 뱉으며 채찍으로 때리고 조롱하며 가시관을 씌워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내가 용서했지 않느냐? 너도 용서해 주어라’'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못합니다’라고 여사가 기도하자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서 여사의 손이 나가서 그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무거운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인 당신이 전쟁 때 우리 독일 사람이 저지른 죄를 용서하고 복음을 전해 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 주님 앞에 나왔으니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 순간 갑자기 하늘문이 열리고 주님의 사랑이 여사에게 넘치게 임했습니다. 순식간에 미움과 원한이 눈녹듯이 다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코리텐붐 여사는 그리스도의 큰 사랑으로 그 사람을 용서해 주었고 그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코리텐붐 여사는 그때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쓰라린 원한의 상처가 치료를 받고 그 이후로 온 세계에 다니면서 용서와 사랑을 힘있게 전할 수가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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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 텐 붐은 네덜란드의 할렘(Haarlem)에서 그녀의 아버지, 언니와 함께 시계 가게를 하면서 살았다.
그녀의 집안은 그 가게를 100년째 운영해오고 있었으며, 그 지역 사회에서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그녀의 가족은 독일에서 유태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마음이 아팠지만, 너무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후 네덜란드가 독일에게 점령당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분의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집은 하나님의 백성을 언제나 환영한다”는 말로써 그들의 결심을 표현했다.
그러나 유태인들을 숨겨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지하 운동 조직은 건물 안전검사 요원을 코리의 집으로 보냈다. 그 안전검사 요원은 사실 유럽에서 유명한 건축가들 중의 한 사람으로, 코리의 침실의 일부를 ‘비밀의 방’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녀의 집을 찾은 것이었다. 그는 위장을 위해 가짜 벽을 세워 골방을 만든 후 미닫이문을 달았다. 이렇게 해서 ‘비밀의 방’이 준비되었다.
그녀의 가족은 유태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7명의 유태인들이 늘 거주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잠깐 동안 머물곤 했다. 그들은 코리의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독일군 병사들이 유태인 색출을 위해 찾아올 때마다 그들은 그 방에 숨어서 위기를 넘기곤 했다. 독일군 군인들이 보기에 그 집은 초로(初老)의 시계수리업자와 그의 딸 두 명이 사는 평범한 집으로 보였다.
그러나 결국 코리와 그녀의 아버지, 언니는 (아마도 누군가의 제보에 의하여) 체포된 후 유태인 수용소로 보내졌다. 다행히 그녀의 집에 숨어 있던 유태인들은 그 ‘비밀의 방’에 있었기 때문에 체포되지 않았다. 코리와 그녀의 언니는 아버지와 떨어져 독일의 중심부에 만들어진 ‘라벤스브뤼크’라는 여성집단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었고 하루 11시간씩 노동을 해야 했다. 그것도 추위와 더위, 벌레들, 오물, 모욕, 구타에 시달리며 몇 시간씩 서서 일해야 했다.
언젠가 한 번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언니가 작업 도중 쓰러졌다. 독일군이 다가와 채찍을 내리쳤다. 코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때 언니는 단지 “코리! 나를 쳐다보지 마. 오직 예수님만 바라봐”라고 소리쳤다.
한편 독일군은 죄수들이 너무 피곤하고 낙심하여 예배를 드릴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탓인지 막사에서 그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했다. 코리는 고통당하는 수용소 내 여자들을 모아 성경을 읽어주었다. 그들이 네덜란드 말로 성경을 읽으면 중간에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 나라 말로 통역을 해주었다. 그들의 이런 수고 때문에 막사의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코리의 언니는 수용소에서 숨을 거두게 되고 사무 착오 때문에 코리는 결국 석방되었다. 그녀가 석방된 지 1주일이 못 되어 그녀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모두 처형되었다.
코리의 가족이 보여준 큰 용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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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에 의해 옥고를 치루며 많은 고난을 받았던 코리 텐붐 여사의 간증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줍니다.
그녀는 처참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굶주림과 독일 병사들의 만행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열악한 감방의 환경은 벌레도 살아남기 힘든 생지옥 그대로였습니다.
매일 밤 감방에 벼룩이 득실거려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죄수들의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해는 벼룩이 더욱 기승을 부려 죄수는 물론 간수들조차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지독한 독일병사들의 출입이 뚝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매일 밤 코리는 벼룩들과 사투를 벌이다가 절망에 지쳐 잠에 들곤 했습니다.
나치 독일이 망하고 코리는 그 지독한 감옥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벌레를 유난히 싫어했던 그녀는 그 날의 고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옥고를 치루었던 그녀의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벼룩을 풍성케 하심으로 잔혹한 독일 병사들의 접근을 차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코리와 그녀의 언니는 절망에 빠져 있었던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희망의 꽃을 피웠습니다.
두 자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로 감옥 안에는 구원의 감격이 충만했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벼룩 때문이었습니다.
코리는 그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벼룩은 독일 병사의 접근을 막아 우리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은혜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바울은 질병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심한 안질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절반을 썼지만 그가 직접 기술한 것이 아니라 대필자를 세웠습니다.
안질이 심해서 제대로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불편해서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바울에게 질병이 없었다면 교만했을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의 한계에 갇혀 살았을 터인데,
질병으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불편하고 괴로운 올무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고백하기를(고후12:9~10),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우리의 삶 속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은혜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