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유언 열사의 유언(요 14:8-14)
* 지난 주일 요 14-16장은 예수의 유언에 해당한다고 말씀드렸다. 그 유언의 첫 부분에 해당하는 1-7절의 주제는 ‘길’이었다. 의심 많은 제자로 불리는 도마가 "우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대답했다. 오늘 본문은 제자 빌립이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요청한 데 대한 예수의 응답으로 구성된다. 공관복음에서는 존재감이 미비했던 빌립은 요한복음에서 비중 있게 기록된다.
* 빌립은 요한복음 초반부에서 나다나엘을 예수에게 인도했고(1장), 오병이어 기적 때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말했으며(6장), 명절에 예배하러온 그리스인 몇 사람을 안드레를 통해 예수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이를 볼 때 빌립은 매우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사람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성격답게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불사해야 하는 요구이다.("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출 33:20)
* 빌립의 질문은 지식인의 역할과 한계를 보여준다.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그의 요구는 아버지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거나 그런 요구를 할 만큼 배짱이 없던 사람들에 비해서는 분명 용기 있는 행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와 오랫동안 함께 지냈으면서도, 예수의 본질, 즉 예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는 민중운동을 한다면서 민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민중과 괴리되는 삶을 살며 고립된 운동을 하는 지식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 광주항쟁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대다수도 지식인들보다는 기층 민중이었다. 그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었고 잃을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념에 충실했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항쟁 초기와 중기에는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했지만 항쟁 마지막 날 도청에서 희생되거나 체포당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시민이라기보다는 민중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광주시민항쟁이라는 이름보다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각자의 자유)
* 학창 시절 처음 광주를 방문했을 때 항쟁에 참여했던 목사나 신부들로부터 자신은 비겁자라는 고백을 듣곤 했다. 도청 사수 때 도망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 때 남성 제자들이 도망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반면 여성 제자들 다수는 예수의 최후를 근접 거리에서 지켜보았고 무덤까지 찾아가 빈 무덤을 발견한 뒤 부활의 소식을 처음으로 전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물론 도망친 제자들이 다시 희망과 용기를 회복하고 제자의 길을 걸었듯 도청에서 빠져나왔던 지식인들 다수도 민주화운동에 한 몸을 바쳤을 것이다.
* 오늘 본문에서 예수는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한다. 이것이 진짜 역사적 예수의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는 요한공동체 안에서 정리된 예수에 대한 다음과 같은 고백이었을 것이다. 1) 예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 2) 예수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계심. 3)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심. 그리고 그런 고백 위에서 자신들이 유지해야 할 신앙의 모범이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1)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가 하는 일을 할 것. 2) 예수보다 더 큰 일도 할 것.
* 우리는 여기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예수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라는 말씀만을 강조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면 다 응답받는다는 자판기식 믿음을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믿음과 신앙을 혼동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요구는 무시하면서 부활의 영광만을 맛보려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 예수는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공동번역에서는 이 구절의 뒷부분을 "지키게 될 것"이라고 번역한다. 이 구절을 반대로 생각하면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계명은 십일조처럼 항목화되지는 않았지만 요 14-16장에 정리된 최후의 말씀이나 공생애 기간 중 전한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가르침 전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 40년 전 5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역사적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6년 전 4월 또 다른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났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죄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니었지만 이 두 사건은 한국현대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뜨겁게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교회를 여러 차례 방문하신 한상렬 목사님처럼 광주민중항쟁에 직접 참여하고 희생당한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사건에 대해 전해들은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광주민중항쟁은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른 사건이고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역사적 비극은 모두 이 두 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할 수밖에 없다. 지난 월-금 이 두 사건의 의미를 기억하고 계승하자는 의미로 기장 목사들 중심으로 안산에서 광주까지 자전거로 행진하는 행사가 진행됐는데 매우 의미 있는 행사라 참여했다. 원래 일정은 3박4일(수-토) 일정이었을 때는 전구간 행진에 참여하려 했는데 9살 어린이와 초보자들이 참여하는 바람에 4박5일로 변경되어 수-금만 참여했다.
* 어제 오전 평소 애용하던 순천만길을 달리면서 전주-담양 구간을 달리던 순간, 그리고 망월동 묘역에 들어설 때 세월호유가족들이 박수로 맞아주던 순간이 가슴 벅차게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새벽 주일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제가 회장으로 섬기는 순천NCC에서 여순항쟁 기념일을 맞아 여수와 순천의 유적지들을 자전거를 타고 순례하면서 여수와 순천 간 아름다운 해변길을 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아직 의논 전이지만 의미가 있는 일인 만큼 충분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지난 5월 7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을 위한 고백과 증언 국민운동 준비위원회는 정부기관인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본격적인 활동에 즈음해 입장문을 발표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작년 말,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발효된 지 1년 3개월 만에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기관이다. NCCK는 위 위원회로부터 진상규명을 위한 고백과 증언 국민운동 전개 제안을 받고 이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으며 지역NCC들도 적극 참여할 예정이다.
*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의 진상규명 노력들이 피해자들의 증언에만 의지해 온 한계 때문이다. 그래서 핵심쟁점들에 대한 진실이 확인되지 않는 실정이며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기록의 은폐와 조작, 그 뒤에 숨은 가해자들의 침묵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특정되지 않았고, 합리적 의심 수준의 추정은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 증거를 확인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6년 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 두 사건 외에도 권력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역사적 비극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그런 비극이 이 땅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사명일 것이다. 예수의 유언을 통해 그리고 말씀과 가르침을 통해 전해진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의 제자이자 길벗답게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기독교인의 의무이자 올바른 자세이듯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아픔이 재발되지 않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다.
* 5·18기념재단이 창립선언문에서 “5월은 명예가 아니고 멍에이며, 채권도 이권도 아닌 채무이고, 희생이고 봉사입니다. 5월은 광주의 것도 구속자, 부상자, 유가족의 것도 아니고 조국의 것이고 전체 시민과 민족의 것”이라고 밝혔다. 예수가 걸었던 십자가 길도 마찬가지다. 그 길은 멍에이며 채무이며 희생과 봉사가 병행할 때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체력이 저질이라고 전기자전거를 타고 온 85학번 친구가 있었는데 전기자전거도 페달을 밟지 않으면 저절로 전진하지 않는다. 힘이 덜 들 뿐이다.
*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예수의 제자라 자처하는 것과 같다.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의 유언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예수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 했던 일을 해야 하고 심지어 그보다 더 큰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다 스러져간 사람들의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자신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 아니었을까? 부족하지만 그들의 유지를 받들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우리 사회는 지금 이만큼이나마 발전했다고 믿는다.
* 한국개신교회도 지난 100년 이상의 역사 동안 이룩한 외적 성장에만 만족하지 말고 우리의 내면과 신앙의 깊이를 돌아보며 예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닮으려는 예수의 노력이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라는 위대한 선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는 제자들의 결단이 그들을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만들었다. 예수의 죽음부터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세월호참사의 희생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무고한 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 그 소명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만이 인간의 삶과 사회를 하나님나라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5월 영령들이 간직했던 대동세상의 꿈은 예수가 선포했던 하나님나라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길 바란다. 예성강 푸른 물에 물새가 울고, 멸악산 높은 봉에 바람이 불고, 피맺힌 금남로에 오월이 올 때 겨레 위해 민주 위해 쓰러져간 그때 그 자리 그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희생과 죽음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증언하며 그들의 유업을 계숭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