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동요 이야기
섬집 아기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로 시작하는 <섬집 아기>는 한인현(韓寅鉉·1921~1969) 작사, 이흥렬(李興烈·1909~1981) 작곡의 동요다. 바장조, 6/8박자, 두도막형식, 2절 가사의 곡이다. 이 동요는 7·5조의 음수율을 지닌 정형시다.
1950년에 작사와 작곡이 이뤄졌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호젓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띠기도 하는 이 동요는 외딴 섬, 그리고 외딴집의 아기와 어머니에 이어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 노래에서는 무엇보다 '다 못 찬 굴 바구니'의 구절에서 강한 감동을 받는다. 또한 이 구절에서 어머니가 아기를 염려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반복되는 리듬과 읊조리는 듯한 선율이 가사의 잔잔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서정적인 동요곡이다. 주요 3화음만을 사용한 화성진행으로 단순한 리듬과 화성으로 이뤄진 곡이다. 느리고 서정적인 가락이 구슬픈 느낌을 주기에, 감성이 풍부한 어린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다 엄마 생각이 북받쳐 울 수도 있다.
섬집아기의 작사·작곡 경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로 알려지고 있다.
첫째는, 한인현이 6.25때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왔다가 해변을 산책하던 중에 해변가의 집을 들어갔는데, 집에는 아기만 곤히 자고 있었고 아이 어머니가 낯선 사람이 집에 온 걸 보고 놀라서 굴바구니를 던져두고 모래톱을 뛰어오는 광경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가사를 썼다고 한다. 2절 마지막 대목은 이 상황을 보여주는 가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이흥렬이 곡을 붙여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한인현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함남 원산 갈마반도 (葛麻半島)와 호도반도(虎島半島), 영흥만(永興灣)의 흰 모래 자갈과 푸른 소나무, 그리고 루씨(누씨)여학교, 고색창연한 원산학사, 서양인의 하얀색 별장 등 이미지가 어우러져 완성되었다.
섬집아기가 1946년 발간된 동시집 ’민들레‘에 수록되었고, 1950년 ’소학생‘ 4월호에 수록되었다, 작곡은 원산이 고향으로 당시 일본동경음대를 졸업하고 한인현의 모교이던 원산광명학교에 재직 중이던 이흥렬(1909~1980)에게 의뢰하였고, 이흥렬은 한인현의 시를 받은 즉시 노래를 붙여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다.
위의 두 가지 작사·작곡 경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작사와 작곡에 관련된 사연을 알아보려 해도, 확실한 증거 자료가 없고 현재 생존해 있는 자식들도 확실히 알고 있지 못하여 확증을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
한인현은 함남 원산 출생으로, 광명보통학교와 함흥사범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를 졸업했다. 1923년 무렵 어린이지 ’아이생활‘ 에 동요를 발표함으로써 동요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서울은석초등학교 교장, 한국글짓기 지도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동요 동시집인 <민들레>, <푸른 교실>이 있다.
이흥렬은 함남 원산 출생으로,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두 분의 누이도 일찍 죽어 형님과 함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손에 의해 자라게 되었다.
이흥렬의 술회에 의하면 자신이 음악을 하게 된 이유 중에는,
첫째는, 고향 원산의 자연 풍광이 아름다워 ‘한국의 나폴리’라 불렸는가 하면 항구에는 세계 각국의 군함들이 들어와 해군군악대들이 시가 행진을 하며 멋진 군악을 연주,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져 들 수 있었고,
둘째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종교적 가정 교육을 받아 교회의 종소리와 선교사가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가 음악의 씨를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 후 졸업한 뒤 1931년 귀국하여 원산에 있는 모교인 광명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산술시간의 노래>·<체조시간의 노래>·<창가시간의 노래> 등을 작곡하여 다 함께 부르게 하고, <점심시간의 노래> 까지 작곡하여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나는 학교수업을 했다. 그리하여 어린이들의 학습태도가 명랑해지고 학업성적도 좋아져서 학교 교장은 이흥렬의 학습방법을 전교생에게 적용되도록 하였다.
1933년경 상경하여 경성보육학교에서 홍난파(洪蘭坡)와 함께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동요작곡에 힘썼다. 이 시절에 이은상(李殷相)의 춘하추동의 자연을 그려낸 동요극 <꽃동산> 중 20여곡을 작곡하였고, 1937년에 같은 제명으로 출간하였다.
그 뒤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고려대학교 강사,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봉직하며 대학장까지 역임하였다. 예술원 회원, 한국작곡가협회 회장 등의 중직을 역임하였다. 1934년 <이흥렬 작곡집>을 출간하였고, 그 뒤 많은 가곡을 작곡하였는데, 그 중에는 유명한 작품이 많다. 그가 작곡한 곡이 400곡에 이른다.
음악 관련 다수의 책을 발간하였고, 교향시 <동(東)과 서(西)>, 피아노삼중주·실내악곡 등을 있다.
이흥렬 작곡의 동요로는, <꽃동산·‘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 <무궁화새로 피네·‘거룩한 배달의 아들이 사는…’>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새해의 노래·‘온 겨레 정성 덩이 해 돼 오르니…’>와 <국군의 날 노래·‘삼천리 이 강산에 핏줄을 받은…’>를 작곡하였다.
가곡과 동요 등을 400곡 작곡하였고, 가곡집을 3권 출간하였다.
성인(成人)으로서 섬집 아기를 노래 부른 사람은, 성악가 소프라노 신영옥(申英玉)과 가수로는 박인희(朴麟姬), 이선희, 정동하가 있고, 악기 연주자로는 대금산조(大笒散調) 예능보유자(藝能保有者)인 이생강(李生剛)의 대금과 가수 김광석(金光石)의 기타 이중주가 있다. 그리고 비올리스트(violist)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의 비올라 연주가 있다.
특히 오닐의 섬집 아기 연주에는 마음 아픈 가족사(家族史)가 있다.
오닐의 어머니는 어릴 때 뇌손상(腦損傷)으로 정신지체장애자가 되었으며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됐고, 1958년에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용재 오닐의 양조부모는 장애자이며 미혼모인 어머니를 대신해 용재 오닐을 양육하였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손자를 잘 뒷받침하였고, 특히 양 할머니는 손자의 음악 공부를 위해 10년 동안 매일 왕복 200km를 운전하기도 하였다. 용재 오닐은 줄리아드 음악원(The Juilliard School)에서 비올리스트로서는 최초의 전액 장학금과 ‘아티스트 디플로마상(Artist Diploma Prize)’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 클래식계 최고의 권위 있는 상인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the Avery Fisher Career Grant·1992)’을 수상하였다. 양 외조부모가 10년 전에 모두 돌아가시고, 지난 해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리면서 오닐은 “홀로 세상과 맞서야 한다는 공포심에 몸을 떨었다”고 한다. 용재 오닐은 엄마와 할머니를 생각하며 섬집 아기를 자주 연주한다.
이흥렬의 아들 이영조(李永朝.1943~ )는 <섬집아기 환상곡·《Sumjip Agie(Island Lullaby) Fantasy》>을 작곡하였다.
첫댓글 지금도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불후의 명곡이지요. 어쩐지 가슴이 아리면서 ...
그렇습니다. 어린이들과 자주 불렀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요즘은 시니어합.중창을 하면서 가끔 무대에서 부를 때도 있습니다. 소프라노 신영옥이 부르는 것을 들으며 신기한 생각이 들었는데,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를 듣고 가정사를 알게 되면서 가슴이 아리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