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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미국 황석훈 왕생기
나의 남편 황석훈(黃錫勳)은 미국 볼티모어시 대만향우회 회장을 지냈다. 그의 왕생 과정은 참으로 수승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은 그야말로 ‘불가사의’라는 네 글자로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남편은 불교 서적도 많이 읽지 않았고, 염불한 기간도 길지 않았으며, 채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귀의할 겨를도 없이 왕생하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많은 친구들이 이를 읽는 사람들이 모두 환희심을 내고 서방극락세계 왕생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할 수 있도록 그 경과를 글로 써 달라고 권하였다.
황석훈은 1934년 타이완 가오슝현 쯔관향(梓官鄕)에서 태어났다. 1961년 국립타이완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으며, 1966년에는 미국 볼티모어 의학센터의 초청을 받아 지역의료보건센터 설립을 맡게 되었다. 그 센터는 빈민가에 자리 잡고 있어 마약 거래와 살인, 강도 같은 사건이 거의 매일같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황석훈은 그 센터를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전국 지역의료보건센터의 모범 사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비행 청소년들을 바른길로 이끌었다.
황석훈은 평소 매우 건강하고 정력이 왕성하였다. 그러나 1991년 10월 흉부 X선 촬영 결과, 폐에 지름 2cm 정도의 종양이 발견되었고, 검사 결과 선암성 폐암으로 확진되었다. 이 폐암은 치료가 매우 어려워, 보통 발견된 뒤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3~6개월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수술을 시작하고 보니 암세포가 이미 흉강의 다른 부위까지 퍼져 있었다. 의사는 결국 왼쪽 폐 전체를 절제하고 갈비뼈 두 대도 함께 제거하기로 결정하였다. 왼쪽 폐와 갈비뼈 두 대를 절제한 뒤에는 호흡과 말하기는 물론, 일상적인 움직임까지 모두 처음부터 다시 적응해야 했고, 수술 부위의 통증도 계속되었다.
이어서 항암화학요법을 받았는데, 항암제의 독성이 매우 강하여 부작용도 심했다. 장이 칼로 에이는 듯이 아팠고 구토도 몹시 심해 음식을 전혀 먹고 싶지 않았으며, 온몸의 기력이 완전히 빠져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원래 삶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했던 그도 몇 차례나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겠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1992년 봄, 황석훈은 병세로 인해 부득이 예정보다 일찍 퇴직해야 했다. 그가 퇴직을 발표하자 각지에서 감사 편지가 빗발치듯 쏟아졌으며, 그 가운데에는 메릴랜드주 주지사가 수여한 표창장도 있었다. 또한 볼티모어 시장은 3월 12일을 ‘황석훈 의사의 날’로 선포하였다.
1993년 10월에는 암세포가 뇌와 척수까지 전이되었다. 의사들은 뇌 영상 사진을 보고는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암세포가 뇌 표면 전체를 뒤덮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넓게 퍼져 있어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 정도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그의 머리에 작은 구멍을 뚫어 가느다란 관을 삽입한 뒤, 그 관을 통해 항암제를 주입하였다. 그러나 서너 차례 시행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어 결국 치료를 중단하였다.
1993년 성탄절을 전후하여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의사는 뇌에 최대 용량의 방사선을 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의사는 우리에게 솔직히 말했다.
“방사선 치료로도 기껏해야 2~6개월 정도만 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다시 악화되면 더 이상 방사선 치료를 할 방법이 없습니다.”
척추 종양 때문에 황석훈은 두 다리로 걷지도, 서지도 못하게 되었고, 이어 대소변도 마음대로 가릴 수 없게 되었다. 이쯤 되자 서양의학으로는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마친 터라, 이후로는 집에서 요양하며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황석훈은 불치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여기에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까지 겪으면서 갖은 고통을 견뎌야 했으니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면 우리도 함께 울었고, 그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도 함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가 고통받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칼로 에이는 듯 아팠다.
우리는 볼티모어에서 30여 년을 살면서 미국인과 중국인을 비롯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들이 황석훈의 병세를 알고는 모두 우리를 도와주려 하였고, 정신적으로도 큰 격려를 보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교 서적과 삶과 죽음을 다룬 책들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가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읽은 책은 『불설아미타경』이었다. 그 무렵에는 이미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어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었고, 뇌 기능도 조금씩 저하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밤이 되면 간호사들은 그가 때때로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정상인처럼 정신을 집중하여 책을 읽는 것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미타경』을 펼치면 페이지마다 작은 아미타불이 가득하다.”
1993년 12월, 우리는 서방삼성상(西方三聖像) 한 폭과 도자기로 만든 아미타불상 한 존을 받았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정해 부처님께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뒤이어 황염조(黃念祖) 거사의 『심성록(心聲錄)』을 읽고서야 비로소 아미타불 명호를 염하는 공덕과 정토법문의 수승함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더욱 많이 염불해야 한다고 늘 스스로를 일깨웠으며, 염불할 시간이 없을 때에는 염불기라도 많이 들으려고 하였다.
나는 자주 그에게 『무량수경』을 읽어 주었다. '칠보지의 연꽃에서 화생한다(七寶池蓮花化生)'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서방극락세계에 가게 되면 꼭 우리에게 알려 주세요. 그래야 우리도 안심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왕생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반드시 당신들에게 알려 줄게. 걱정하지 마!”
1994년 9월, 그의 몸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자주 혼미한 상태로 깊이 잠들곤 하였다. 그가 잠이 들면 우리는 곁에 앉아 염불하였고, 미국인 간호사도 일이 없을 때면 침대 곁에 앉아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황석훈은 왕생하시기 12일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고, 물조차 삼키지 못하였다. 그는 미리 서면으로 자신의 뜻을 남겨 두었는데, 더 이상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면 인위적인 방법으로 영양을 공급하지 말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인위적인 처치도 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10월 10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는 잠들어 있었고 나는 곁에 앉아 염불하고 있었다. 나는 아미타불께 그가 임종할 때 아무런 장애 없이 평온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반드시 그를 맞이하여 서방극락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약 30분 뒤 그가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하였다.
“꿈에서 아미타불을 뵈었다. 부처님께서 나에게 ‘나는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는 이번 생에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많은 선행을 하였으며, 지금도 많은 보살과 사람들이 너를 위해 부처님께 예배하고 염불하며 회향하고 있다. 때가 되면 내가 반드시 너를 맞이하러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매우 안심한 모습이었고, 자신감도 넘쳐 보였다. 더 이상 극락세계에 가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았다. 나 또한 대자대비하신 아미타불께서 반드시 그를 맞이하러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에 매우 감사하였다.
마지막 열흘 동안 그는 특별한 고통 없이 지냈다. 마지막 사흘은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의식은 또렷하였다. 우리는 그의 귓가에서 염불하며 그도 마음속으로 함께 염불하도록 하였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와 함께 염불하고 있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시 물었다.
“아미타불께서 오셨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10월 14일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각, 내가 그의 몸을 안마해 주다가 손발이 차갑게 식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호흡이 매우 미약한 것도 느껴졌다. 머리를 안마해 주던 중 그의 머리가 앞으로 푹 숙여지더니 그대로 왕생하였다.
나와 아들은 황석훈의 귓가에서 서둘러 큰 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며, 그도 마음속으로 우리를 따라 염불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그의 정수리가 매우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
약 30분 뒤 나는 밖으로 나가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예배하며, 불보살님들께서 그를 접인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저녁 8시쯤, 나는 눈을 감고 염불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선명한 광채를 띠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광명이 나타나 황석훈이 누워 있는 침대를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아주 강한 흡인력이 나를 바깥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감히 눈을 뜨지도 못했고 다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일심으로 염불만 하였다.
비록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그 광경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불광은 연분홍색과 연보라색, 황금색, 연한 푸른색을 띠고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많고 가장 눈부신 것은 흰빛이었다. 그 광명은 마치 최고급 다이아몬드가 내는 광채와 같았다. 불광 전체는 극도로 정교하게 짜인 한 폭의 무늬를 이루고 있었고, 빛과 색채가 서로 어우러지고 뒤섞이며 천변만화하고 있었다.
우리는 염불을 계속하여 토요일 새벽 2시 30분쯤까지 하였다. (그때 방 안에는 일곱, 여덟 명이 조념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염불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아주 큰 흰 연꽃 한 송이가 나타났다. 이어 황석훈의 황금빛 몸이 나타났다. 나는 그의 상반신만 볼 수 있었다. 그는 앉아 있었으며, 이목구비가 매우 또렷하게 보였는데, 서른 살 무렵의 모습처럼 훨씬 젊어 보였고, 단정하고 장엄하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 마치 불상을 보는 듯하였다.
이미 1994년 1월 16일, 그의 예순 번째 생일이 되던 날 낮잠을 자는 동안 그는 서방극락세계를 꿈에서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온 세상이 모두 빛이었다. 나무도 빛을 내고, 땅도 빛을 내며, 하늘 역시 온통 빛이었다.”
또 그는 말하였다.
“그곳은 한 번 보기만 해도 사람으로 하여금 환희심을 일으키게 하였으며, 또한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그해 3월 무렵에는 아미타불을 꿈에서 뵈었다. 아미타불께서는 그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죽는 마지막 순간은 깊은 잠에 드는 것과 같아서 조금도 고통이 없다고 하셨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말기 암 환자들이 임종에 이를 때 극심한 고통을 겪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다. 대자대비하신 아미타불께서는 그의 이러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주셨다.
처음에는 우리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던 중 그는 다시 꿈에서 아미타불을 뵈었는데, 아미타불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이제 올 준비가 되었느냐?”
그는 “아직은 결심이 서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꿈에서 아미타불을 뵈었지만, 번번이 확실한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9월 초 어느 날, 그는 꿈에서 아미타불께서 자신을 위해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 주시는 것을 보았다. 다음 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젯밤 그 환영회는 정말 너무 훌륭했어. 그 많은 불보살님들, 그리고 연꽃들이 모두 너무나 아름다웠어.”
아미타불께서는 약 오백 분의 불보살님들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서방극락세계는 정말 너무나 수승한 곳이야. 나는 반드시 그곳에 갈 거야.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겠어.”
그 환영회를 꿈에서 본 뒤부터 그는 서방삼성께서 액자 속에서 걸어 나와 자신의 앞에 나타나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수많은 보살님들이 아미타불의 뒤를 따르는 모습도 자주 보았다. 또한 내가 막내아들과 함께 염불할 때면 우리 머리 위에 광륜이 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았다.
1993년 11월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된 것이 발견된 뒤, 의사들은 모두 그가 기껏해야 두세 달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으나 그는 거의 1년을 더 살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일은 참으로 불가사의하여 오직 ‘기적’이라는 두 글자로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불보살님들께서 우리를 가피해 주셨던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황석훈은 오히려 우리를 제도하러 온 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이 병을 앓지 않았다면 나와 아들들은 불법을 접할 기회도, 이처럼 열정적이고 사심 없이 우리를 도와준 많은 불교 벗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분들은 모두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보내 주신 선지식들이었다. 나는 대자대비하신 아미타불과 우리를 진심으로 도와주신 모든 제상선인(諸上善人)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시취아(施翠娥), 『미불혜신(美佛慧訊)』 제37호)
생각건대:
경전도 많이 읽지 못했고 염불한 세월도 짧았으며
채식도 하지 않았고 귀의도 하지 않았네
그러나 명호에는 위없는 공덕이 갖추어져 있어
부처님의 접인을 받아 신기한 일들이 나타났네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경』을 독송하니
그 경전 속에서 부처님 한 분 한 분을 뵈었네
처음 꿈에는 극락의 장엄한 국토를 보았고
땅과 허공이 온통 광명으로 가득하였네
두 번째 꿈에서는 아미타불께서 친히 위로하시며
죽음은 깊은 잠과 같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네
세 번째 꿈에서는 아미타불께서 거듭 물으시기를
“이제 올 준비가 되었느냐?” 하셨네
네 번째 꿈에서는 아미타불께서 큰 환영회를 여시고
오백 분의 보살님들과 함께 맞아 주셨네
이때부터 굳은 신심이 일어나
진심으로 왕생을 원하며 세속에 더는 미련 두지 않았네
늘 아미타불과 여러 성중을 뵈었고
또 염불하는 이들의 몸에서 광명이 나는 것도 보았네
다섯 번째 꿈에서는 아미타불께서 친히 약속하시기를
“네가 여러 선행을 닦았으니 반드시 맞이하러 오겠다.” 하셨네
접인하러 오신 불광은 천만 가지 빛깔을 띠어
지극히 미묘하여 말로 다할 수 없었고
빛과 색이 서로 어우러져 더욱 선명하였으며
천변만화하여 헤아릴 수조차 없었네
다시 청정한 큰 흰 연꽃이 나타났고
수행자의 몸은 황금빛이었네
젊고 단정하며 더없이 수승하여
부처님의 장엄한 모습과도 구별하기 어려웠네
이와 같은 온갖 희유한 일들은
모두 아미타불의 불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네
널리 바라노니 이를 보고 듣는 모든 이가 환희심을 내어
반드시 왕생함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첫댓글 일향전칭(一向專稱)일향전념(一向專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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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念佛真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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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미타불 명호를 믿고 염불한 황석훈 박사는 임종 전 여러 차례 극락과 아미타불의 접인 예고를 체험하였고, 마침내 불가사의한 상서 속에서 평안히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
너무나 수승한 왕생기 찬탄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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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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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일향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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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세상 가는 길은 온갖 병과
고통이 극심합니다. 이겨내고
염불하는 연우님들 극락왕생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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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
“『아미타경』을 펼치면 페이지마다 작은 아미타불이 가득하다.”
어리석은 범부 아미타경을
소중히 다루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그 환영회를 꿈에서 본 뒤부터 그는 서방삼성께서 액자 속에서 걸어 나와 자신의 앞에 나타나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수많은 보살님들이 아미타불의 뒤를 따르는 모습도 자주 보았다. 또한 내가 막내아들과 함께 염불할 때면 우리 머리 위에 광륜이 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았다. 너무 아름다워 그려보았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합장
제가 처음 아미타경을
접하고 너무나 환희심나서 대안심을 얻고 집중하게된 그때가 생각이 나는군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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