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2일 오늘로서 9월 20일 한글속기 국가시험이
꼭 100일 남았습니다.
큰 목적을 위해 100일 기도로 정성을 다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 속기 수강생들도 100일 기도 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꼭 합격한다'는 굳은 믿음으로 열심히 공부 해주기 바랍니다.
일단 속기 공부를 시작했다면 국가 자격증을 따놓고 취업 걱정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어렵게 속기 1급 국가자격증을 땄는데, 취직이 빨리 되지 않아서
걱정과 후회를 하는 사람이 많다니 한평생 속기를 가르쳐온 사람
으로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속기사란 직업을 지금도 대단히 희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산이 세번이나 변한 30여년간 속기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좋은 때도 있었고, 또 어려운 때도 참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수강생이 100명이 넘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한달
전체 수강생이 5명도 안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속기를 천직으로 삼고 묵묵히 지내왔습니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신문기자를 하느냐 못하느냐 기로에 있을때
속기학원을 본격적으로 시작 했는데, 10여년간은 속기를 배우는 사람도
적었지만 자격증을 따도 그때는 법원에도 뽑지를 안해서 취업이 거의
안되었습니다.
그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고' 속기사 귀한신 몸 되었다'고
스포츠신문 1면 톱으로 보도될 정도로 속기사가 부족해서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까지 지방의 시 군 구의회 대부분은
속기사가 아닌 공무원이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후 10년후에 수필속기 시험이 없어지고 1998년부터 컴퓨터속기
국가시험을 봐서 2000년부터 컴퓨터속기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필속기 공무원을 집에 보낼 수 없어 아직까지 전국의 대부분
의회에는 수필속기사가 형식적으로 컴퓨터속기 키보드를 잠시 배워서
활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국의 수많은 수필속기사 출신 의회 공무원들의 정년이 많이 남지
않아서 머지않아 또한번 '속기사가 귀하신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원은 모르겠지만 대구학원은 광고를 안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배우러 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개로, 우연히 카페를 통해 속기를 알고
배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 대학원을 나와도 취직이 잘 안됩니다. 우리 아들과 딸도 마찬가지로
여러 직장을 가져보았지만 결국은 컴퓨터속기를 공부해서 취업을 했습니다.
장남은 녹취사무소에서, 장녀는 시의회에서, 차녀는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금년에도 장남의 군대 선배 애인 朴양도 배워서 1급을 따서 대학에,
장녀의 대학원 후배 李양과, 차녀의 대학동기생 成양도 각각 2급자격증
을 따서 올 3월 대구법원에 취업을 했습니다.
지금 정말 취업이 잘 안됩니다. 속기사 뿐만 아니라 다른 직종 모두가 취업이 잘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속기사들의 취업문제를 카스속기협회나 학원장들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구지역에는 현재 1~2급을 따서 공무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10명도 안되지만
앞으로 카스속기사가 많이 놀고 있다면, 대구에도 자막방송을 실시하여 우선 취업을
시키는 방법과 카스속기합동녹취사무소를 운영하는 등 속기사 일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