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시선으로부터,
제목 마지막에 쉼표가 있는 게 특이하다...어떤 평론가는 쉼표 이후의 이야기가 많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시선은 혼혈 자녀들의 엄마이자 손자 손녀들의 할머니인 심시선 작가의 이름이고, 소설은 시선 세상 뜬 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시선의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내자는 큰딸의 제안에 찬성한 식구들의 여행 이야기이다.
매 장마다 심시선 여사의 글이 한두 쪽 실리고 주로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선은 한국어 일어 독일어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여성이다. 책에는 다양한 외국어가 자주 나온다. 그녀의 이름이 ‘시선’이라는 것도 특이하고 흥미롭다.
살아 생전 시선은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다. 큰딸이 제안한 제사는 제사상 음식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시선이 살았던 적이 있는 하와이에서 식구들 각자 가장 좋거나 인상적인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큰딸은 훌라 춤을 배우려 하고 한 손녀는 할머니가 좋아하던 커피를 하와이 커피 중에서 찾아내겠다고 하며, 손자는 서핑 강습을 받는다. 복원 미술을 하는 아들은 미술관을 가고 박물관을 사랑하는 며느리는 관련 책자를 사서 박물관에 가는 식이다. 고고 미술학자인 둘째 딸은 화산 폭발의 흔적을 보고 싶어 호놀룰루에서 비행기를 타고 빅아일랜드로 간다.
내 입장에서는 4년전 겨울에 하와이를 여행했기에 책의 하와이 여러 지역 묘사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국에 살던 시선은 먹고 살기 어려워 어릴 때 하와이에 이민 갔고 거기서 일시 체류하던 ‘마티아스 마우어’라는 독일 유명 화가를 만나 20대에 그를 따라 독일 가서 대학 다니고 화가가 되었다. 그 후 마티아스의 지인이던 요제프 리를 만나 딸 둘, 아들 하나를 낳는다. 요제프 리의 아이를 처음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난 후 폭력적인 성향의 마티아스는 시선에게 유화용 나이프를 집어던져 팔에 상처를 남기고 이후 집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면서 유서를 남긴다. 시선을 사랑했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것에 배신감을 느꼈지만 모든 작품과 재산을 시선에 남긴다면서....
마티아스와 사랑했다는 느낌을 결코 갖지 못했지만 그의 자살과 유서로 한순간 나쁜 마녀가 된 시선은 임신 상태에서 파리 친구인 애방에게 가있다가 요제프와 한국에 돌아와서 아이 셋을 낳았으나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평생 그림에 대한 글을 쓰고 마티아스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글을 쓰거나 인터뷰하여 생계를 유지하며 어느 정도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 된다.
한국 온지 10년 후 요제프는 독일로 돌아갔다. 시선은 두 번째 결혼을 하고 재혼한 남편이 첫 결혼에서 낳은 어린 딸 경아를 자기 딸처럼 키운다.
작가 정세랑의 전공은 역사교육이다. 소설 처음에 가계도가 있어 누가 누구와 몇 번째 결혼을 했고 그 아래 누가 누구 자식인지 이름이 죄다 적혀 있는 게 무슨 역사연대표 같아서 역사 전공자다운 발상이라 소리 내어 웃었다. 책 읽으면서 역사 전공자의 흔적이 계속 나타나는 듯하여 재미있었다. 나도 역사를 좋아하니까 아 여기! 이러면서 공감하였다.
독일에서 대학 공부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 집에서 허드렛일을 죄다 도맡아야 했던 시선을 그린 마티아스의 누드화가 발견되어 하와이에서 지금 전시되고 있다는 내용에는 사망한 동양 할머니의 누드라니 싶어 작가의 대담함이 느껴져 다시 한 번 웃었다.
마지막에 식구들 중 일부는 이 전시회에 가서 젊은 시절 할머니의 누드화를 보게 된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내용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 들과 재수 없어 당하는 피해자들의 마음이 드러난다. 인과 관계가 있는 사건도 있지만 전혀 아닌 사건도 있어 우리 인생을 관통하고 지배하는 우연성은 어찌 보면 역사의 교훈일 수 있다.
앞부분은 재미있게 집중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가슴이 저릿해지는 슬픔 같은 게 느껴졌고 오랜만에 읽은 소설인데,... 좋았다. 예술가로 살다간 어머니요, 할머니의 고집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 나는데,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고 적혀 있다.
작가가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선의 오빠와 가족들이 피난 오기 전 누군가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잘못? 신고되어 한국 경찰에 의해 모두 살해된 것이다. 작가 가족의 슬픈 개인사와도 관련이 있는 기막힌 이야기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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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고 동기카페에서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