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세례
세례는 죽은 자라는 표현이다. 세례를 받는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죄인으로서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세례(침례)를 받는 것이다. 구약시대 죄인은 희생제물을 성전에 가져와서 죄를 동물에게 전가하고,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살을 불에 태웠다. 물세례는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과 같은 의식이다. 불세례는 살을 제단에서 태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불세례는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렇게 죽었어야 할 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물셰례와 불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가 세례를 받을 때 이것들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이게 마음의 할례인 것이다.
할례는 구약시대 포피를 베므로서 죽은 자라는 것을 나타내며 언약백성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언약은 계약을 맺는데, 언약을 맺었다고 언약백성이 되었다는 확증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구십구세때 나타나셔서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개명해주셨다. 그리고 할례를 명하셨다. 그리고 태어난지 팔일이 되면 할례를 하도록 명하셨다. 그리고 사래에게도 사라라고 하며, 아들을 주고,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세기 17장 17절에서『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믿음의 확증은 100세가 되어서야 이루어진다. 99세와 100세 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로마서 4장 2절에서『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아브라함이 99세때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기의 의에 해당한다고 말을 한다. 할례가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서 4장 9-10절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믿음으로 의를 얻은 것은 할례때문이 아니라 믿음때문이라는 것이다.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자기로 부터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 부터인가?
할례(세례)를 받는 것은 부르심을 받아 언약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지만, 믿음의 확증은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다. 로마서 4장 18-22절『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고 믿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고 믿는 자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셨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인간의 생각에서는 과거의 죄에 대해서만 이렇게 되고 앞으로 짓는 세상죄에 대해서는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용서를 받아야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와 사망의 법으로 적용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육적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언약하신 말씀을 믿지 않으므로 성령모독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할례는 구약의 율법에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유아세례도 구약의 율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할례를 받았다고 다 언약백성이 확증된 것은 아니다.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지만, 언약백성이 되지 못한 것이다. 형식적 세례를 받았어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어 죽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는 언약백성으로 확증받지 못한다. 따라서 유아세례는 언약백성으로서 확증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2:11-12의 말씀을 통해 아주 명확하게 잘 말해준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는데, 옥문이 열려있는 것을 간수가 보고 그들이 도망간줄로 생각하고 자결하려고 했다. 이에 바울이 멈추도록 하고 자신은 도망가지 않았다고 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간수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두려워 떨며 바울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6장 30-34절에서『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바울이 전한 주의 말씀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이었을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모든 가족이 바울이 전한 말을 믿고 다 세례를 받은 것이다. 바울이 전한 말을 믿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 계약체결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말을 믿더라도 그 말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완전한 믿음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베드로의 예처럼 누구나 사람은 육적 연약성으로 인해서 자신이 믿는 믿음이 변할 수 있다. 이것은 자기가 믿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3-25절에서 말한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믿음을 선물로 주신다.
구원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유아가 세례받기 전에 죽었다면, 구원받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인간이 함부러 말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다만 구원은 형식적 세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부활됨을 믿는 믿음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을 바탕으로 하는 유아세례는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가족 중에 구원받은 자도 있고, 가족 중에 구원받지 못한 자도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불화가 생가는 가정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구원받으므로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