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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1일,
자유인이 된 날이다.
눈, 비, 바람을 막아주던 우산이 벗겨진다.
그 속에서 보호받던 안온함이 부서지는 당혹감,
한 때 그렇게도 기다리던 시간앞에 서는 기분이 묘하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푸르고 높다.
옆지기, 아들래미와 여행을 떠난다.
삼척, 동해 바다가 있는 곳이다.
늘 염두에 두던 해파랑길이 지나는 지역이라
옥계 IC를 빠져나와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해파랑길 34코스를 역으로 거슬러가는 길이다.
옥계IC를 빠져나오니
봄은 벌써 마늘 파란싹을 열심히 키워놓았다.
벚나무에도 활짝 꽃을 피웠다.
아직 눈을 틔우는 모습만 보고 있던터라
따뜻한 지역임을 실감한다.
스마트폰 지도 해파랑길 34코스를 검색해두었던터라
출발지를 찾아 옥계 하나로마트를 찾아간다.
강릉옥계시장이 위치하고 있는데
장날도, 주말도 아니니 한산하기가 여늬 곳과 다르지 않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35코스,
하지만 나는 남쪽으로 34코스를 거스른다.
옥계면소재지를 지나는 주수천이 흐르고
천을 건너는 현내교가 보인다.
여름 한낮 멱을 감거나,
친한 사람들과 천렵을 하고 싶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제방을 따라 걸어간다.
지도가 건너라고 안내하는 천남교가 보이고
그 너머 고가는 차량용이 아닌
인근 한라시멘트에서 운용하는 컨베이어벨트다.
두릅이 수일내로 먹기좋게 싹을 틔우겠다.
오랫만에 짙푸른 물마루를 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조금 더 참아야한다.
아직은 내륙으로 제법 들어와있다.
그래도 한적한 농촌 풍경이 나타나니
한껏 들떴던 기분이 다소나마 차분해진다.
붉고 노란 해파랑길 리본이 전봇대에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듯 한들거린다.
지난 겨울 긴 휴지기가 지겨웠던
논과 밭도 봄물이 오르고 있다.
길은 여러곳으로 갈라지지만
우려보다는 정확하게 현위치와 방향을 찾아갈수 있도록
스마트폰은 안내해준다.
흙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트랙을 보고 가는데
트럭이 길을 막아 옆으로 돌아간다.
제 일에 충실하다 하겠지만
늘 위협적인 개짖는 소리는 성가시고 부아난다.
그 소리에 나오셨는지 아주머니 한 분이
그쪽으로 가면 안된다고 불러세운다.
되돌아오니 그쪽으로는 길이 없단다.
지도가 그 쪽으로 안내한다고 하니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묵호쪽으로 간다하니
그럼 그쪽 오솔길로 가면 된단다.
아마 대부분의 뚜벅이들이
순방향으로 걷다보니 이런 해프닝도 있구나, 싶다.
야산 허리를 따라 난 오솔길로 접어든다.
비로소 뚜벅이가 된 편안함이 찾아온다.
고개마루를 넘는다.
고개마루를 넘어서니 해파랑길 안내도와
'여기부터 동해시 구간'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중간에 '해물금길'이라는 별칭이 있다.
해물금길의 ‘해’는 동해의 일출로
동해시를 상징하는 앰블럼이자 세상을 여는 광명이다.
‘물금’은 광활한 동해바닷물과 금, 즉 선의 순우리말로
끝없이 펼쳐진 동해의 수평선을 의미하며
항구와 아름다운 해변을 보유한 물의 도시임을 상징한다.
즉 해물금은 해 뜨는 수평선의 순우리말 표현으로
일출의 명소인 동해시의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함축한다.
특히 해물금길은 해파랑길과 녹색경관길 중
동해시 구간의 길에 대한 별칭이다.
동해시 제일 북단 망상동 에서 최남단과 추암동을 잇는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남북연장 24.4㎞ 구간을 말한다.
<출처 : http://kwtimes.co.kr/n_news/news/view.html?no=17640>
동해시 구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산길을 따라간다.
산허리를 도는 곳에 남양홍씨 세천비가 보인다.
세천비는 선산입구 등 근처에 세워 문중의 선산임을 나타내며
문중이나 선조들의 치적을 기록하여 남기는 비석을 말한다.
출발하고 다른 곳에서 보지 못했던
크고작은 바위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해파랑길 뚜벅이들을 위한 쉼터,
잘자란 소나무 너머로 쉼터가 보인다.
망상해변방향으로 간다.
다시 마을길을 지난다.
봄이 되며 바빠서일까?
대문 아래 고개 내밀고 개짖는 소리만 정적을 깰 뿐
마을을 몇 개 지나도 거의 인적이 없다.
또 만나는 고갯마루,
다시 인적없는 마을을 지난다.
열린 대문안으로 가정집으로 보이는 곳에
'삼척김씨 열녀문'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내용을 읽어본다.
선혁의 딸이며 김윤수의 처로서 심곡에 살았다.
20세에 남편이 위독할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였으나 구하지 못하였다.
이에 같이 죽으려고 문을 잠그고 명주수건으로 목을 메었으나
식구들이 발견하고 살렸다.
다음에 묘앞에서 통곡하고 나뭇가지에 목을 메었으나
초동들이 풀었다.
다음 해 대상날 가족들이 잠든사이에
남편의 상막에 목을 메어 죽었다.
철종 때 나라에서 특이한 행적이라 하여
열녀문을 내렸다.
심곡약천마을에 다다랐다.
심곡약천마을은 조선 조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선생이 약 일 년 정도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이곳에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우지진다’라는
유명한 시조를 지으었다고 알려져있다.
'약천사' 사당 앞에 시조비가 세워져있다.
시조비가 있는 사당 옆에
'약천'이라는 샘이 있다.
마을소개를 보면
'특이한 것은 샘물의 이름도
남구만선생의 호와 같은 약천(藥泉)인 것입니다.
물론 선생이 우리 마을에 오기 전부터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연하게도 마을의 샘물과 남구만 선생의 호가 같아서
약천 샘물은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소개하고있다.
사당 맞은 편 길 건너
'약천정자'가 있다.
약천마을을 벗어나는 언덕받이에
비각이 서있다.
'김응위효자각'이다 .
삼척 김씨 김응위는
평소 효성이 지극하고 이웃과도 우애가 좋았다,
모친이 병석에 눕자
매일 저녁부터 새벽 이슬이 내릴때까지 쾌유를 빌었다.
부친이 병석에 눕자
깊은 산속을 헤매어 좋은 약초를 구해 다려드렸다.
그래도 차도가 없자 눈물을 흘리며 치성을 드렸더니
한마리 학이 금붕어와 죽순을 물어다 주기에
부친께 드려 병을 회복시켰다 한다.
지금의 비각은 고종이 명하여
성암선생이 비문을 쓰게하고 효자각을 세웠다.
포장도로가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고갯마루를 넘는다.
그렇게 굽이를 몇 번 돌아
언덕위에 올라서니
산너머 동해바다 물마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모습을 숨긴 바다를 찾아 걸음을 재촉한다.
벌써 만개한 벚꽃 사이로
짙푸른 동해바다가 수직으로 뻗어있다.
오른쪽이 걸어온 길이고,
정면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동해고속도록 지나는 고가 교각이 보이고
교각 아래 통로를 지나고
동해대로 고가 교각 아래를 지난다.
다시 영동선 철도 교각을 지난다.
걸어갈 방향, 해안도로에 벚꽃 가로수가 펼쳐진다.
망상해수욕장이 있는 망상해변이다.
바닷바람이 몰고 온 파도가 다소 높다.
부질없는 어리석은 끈기,
수 억년 담금질에 원하는 모양을 만들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미완인듯 밀려왔다 밀려간다.
철 이른 바닷가 모래사장에
곧 스러질 흔적을 남긴다.
시계탑 빨간색이 우체통을 연상시킨다.
모래사장 뒷편 보도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야트막한 펜스 너머로 '망상역'이 보인다.
영동선 망상역은 1961년 운영을 시작했으나
2014년 7월 11일 부로 운영하지 않는다.
약 1킬로미터 북측,
'망상해수욕장역'이 운행을 재개했으나
피서철에만 임시 정차하는 수준이다.
대진항 인근에 위치한 '대진루', 정자다.
바닷가 마을 어달동에서는
육지성황을 모시는 서낭제와 바다성황을 모시는 해성제를 지낸다.
해성제를 지내는 '해성당'에 금줄을 쳐놓았다.
해안도로로 몰아치는 파도가
테트라포드를 만났다.
그래도 쉼없이 부딪고 부딪혀 깍아낸다.
밀려오는 파도에 부딪는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다소 그 기세를 꺽는다.
어달해변 모래사장에 밀려든 해조류가
전장에 시신처럼 서글프다.
바다 위 낮게 이동하는 새 무리가 보인다.
대진항을 벗어날 무렵
'동트는 동해'조형물이 세워져있다.
34코스 종착지인 묵호항에 다다른다.
조금 못미친 곳 해안도로 옆 바다쪽에
장방형으로 우뚝 솟은 바위가 있다
까마귀가 바위에 새끼를 쳤다하여
‘까막바위’라고 부른다.
서울 남대문에서 정동방향에 있다 한다.
까막바위를 조망하기 좋은 곳
바다쪽으로 낸 전망대에 문어조형물이 있다.
이 문어상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중엽 인품이 온화하고 덕망이 있으며
주민들로부터 한 몸에 존경을 받는 호장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앞바다에 배 두 척이 나타나서 마을을 급습하였다.
호장은 이들과 맞서 용감히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침입자들이 약탈한 재물과 호장을 배에 싣고 돌아가려 하자
주민들이 달려들어 호장을 구하려 하였지만, 이 또한 역부족이었다.
호장이 노하여 침입자들을 크게 꾸짖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천둥번개가 치며 광풍이 심하게 일어
호장이 탄 배가 뒤집혀모두 죽고 말았다.
남은 한 척의 배가 달아나려 하자 갑자기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
그 배를 뒤집어 침입자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 때 나타난 큰문어가
호장이 죽어 변신한 혼이라고 전해진다.
그 후부터 마을에 평온이 찾아왔고
지금도 착한 행동을 한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면 복을 받게 되고,
죄를 지은 사람이지나가면 그 죄를 뉘우치게 해 준다고 전한다.
산 위로 등대가 우뚝 솟아있다.
묵호등대다.
급경사지 산 위 높은 곳에
집들이 바다를 전망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다.
목책계단이 비스듬이 오르막을 올라간다.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 걷다보니
갈림길에 신경쓸 필요없이 주변 경관을 구경한다.
묵호등대 아래 다다라 지도를 확인하니
해파랑길 코스가 묵호등대 방향으로 돌아가고있다.
지도에 표시된 코스대로 돌아가기보다는
적당한 곳에서 계단을 찾아 오르기로한다.
묵호등대를 찾아 올라가는 길이다.
바닥에 '등대오름길', 바람의 언덕 가는 길',
방향 이정표가 쓰여있다.
오르는 길이 아기자기 예쁘게 꾸며졌다.
시화와 벽화, 풍차, 바람개비 등 갖가지 소품들이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왔던 이들의 애환을
추억으로 되살려 볼거리를 제공한다.
2013년 방영된 드라마 '상속자들' 촬영지로
주인공인 은상이 어머니와 도망쳐 나와 살았던 곳이다.
바람의 언덕에 닿는다.
망망대해로 고기잡이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는
어부의 아내가 아기를 업고있다.
조금 더 큰 아이는 치마폭에 꼭 움켜쥐고
멍멍이도 먼 바다를 보고있다.
야외 데크위에서 보는 사방 조망이 시원하다.
묵호등대로 향한다.
해양문화공간 소공원쪽 입구 보도에
서핑을 즐기는 타일을 깔아놓았다.
모닥불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등대의 역할과는 차이가 있지만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빛이나, 망망대해 길잡이를 하는 빛이나
꼭 필요한 빛이다.
벽면에 최남선의 '해에게사 소년에게'를
타일로 장식해 놓았다.
파노라마로 바다전망 전경을 담았다.
사진으로 사람 눈을 완벽히 표현할수 없다는
한계를 다시 한 번 느낀다.
묵호등대 소공원에 설치된 '영화의 고향' 기념비다.
1968년 방영되어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지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2003년 5월 세웠다.
묵호등대는 1963년 6월 8일 처음 점등했다.
높이는 12미터 높이로
바로 아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소공원을 조성하였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등대에 오를수 있다.
좁은 공간에 효율적으로 오르기 위해
나선형으로 설치된 계단을 오른다.
하지만 야외전망대로 올라가는 출입구는 닫혀있다.
유리창 안에서 보는 전망은
언제나 이물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그 껄끄러움이 다소 사라져 그나마 다행이다.
묵호항이다.
평일에다가
조업나갔던 어선이 돌아온지 한참 지나서일까?
닫힌 곳도 많고 찾는 이들도 별로 없다.
오늘 여정을 마무리한다.
마치 축복처럼
최근 일기에 비하면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
오랫만에 눈에 담은 바다가
심란한 마음을 틔워준다.
앞으로 많은 날
이렇게 건강하게 걷고, 보고, 느끼고,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수 있기를 빌어본다.
지도상 확인한 거리가 18.8킬로미터다.
도상거리가 20.79킬로미터,
묵묵히 트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근 볼만한 곳, 관심지들이 있으면 둘러보다 보니
거리가 다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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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과 사진을 따라 저도 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