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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의 비유 경(M7) Vatthūpama 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255-268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의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 비구들이여, 마치 옷감이 더럽고 때가 묻으면
염색공이 그 옷감을 파랗거나 노랗거나 빨갛거나 심홍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그 각각의 염료에 담그더라도 그것은 물이 잘 들지도 않고 그 색깔도 선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옷감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마음이 오염되면 악처(惡處)(*1)가 예상된다.
비구들이여, 마치 옷감이 희고 깨끗하면
염색공이 파랗거나 노랗거나 빨갛거나 심홍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그 각각의 염료에 담글 때 그것은 물이 잘 들고 그 색깔도 선명하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옷감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으면 선처(善處)가 예상된다."
3. "무엇이 마음의 오염원들(*2)인가?
① 욕심과 그릇된 탐욕(abhijjha-visama-lobha)(*3)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② 악의(byāpāda)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③ 분노(kodha)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④ 적의(upanāha)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⑤ 모욕(makkh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⑥ 얕봄(paḷās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⑦ 질투(issā)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⑧ 인색(macchariy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⑨ 속임(māy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⑩ 사기(sāṭheyya)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⑪ 완고함(thambh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⑫ 뻔뻔스러움(sārambha)이 마음 오염원이다.
⑬ 자만(mān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⑭ 거만(atimān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⑮ 허영(mad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37]
⑯ 방일(pamāda)이 마음의 오염원이다."(*4)
4. "비구들이여, 비구는
'욕심과 그릇된 탐욕(*5)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욕심과 그릇된 탐욕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6)
'악의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분노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적의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모욕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얕봄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질투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인색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속임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사기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완고함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뻔뻔스러움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자만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거만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허영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방일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방일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5. "비구가 '욕심과 그릇된 탐욕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욕심과 그릇된 탐욕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리고,
'악의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
- 중략 -
'방일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방일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릴 때,
그는 부처님께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淸淨信]을 지닌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부처님[佛]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6. “그는 법에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닌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7. “그는 승가에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닌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바르게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참되게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합당하게 도를 닦으니
곧 네 쌍의 인간들이요[四雙] 여덟 단계에 있는[八輩]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 받아 마땅하고 선사 받아 마땅하고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8. "그가 [각각의 오염원을 완전히 남김없이 버릴 수 있는]
그 각각의 도로써(*7) [그 오염원을] 포기하고, 토해내고,
풀어주고, 버리고, 완전히 놓아버릴 때
'나는 부처님께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녔다.'라고 생각하면서
결과에서 영감을 얻고 원인에서 영감을 얻으며(*8)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있다. 희열이 있는 자는 몸이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하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9)
9. "'나는 법에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녔다.'라고 생각하면서
결과에서 영감을 얻고 원인에서 영감을 얻으며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있다. 희열이 있는 자는 몸이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하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10. “'나는 승가에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녔다.'라고 생각하면서
결과에서 영감을 얻고 원인에서 영감을 얻으며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있다. 희열이 있는 자는 몸이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하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11. "이제 그는 '나는 [각각의 오염원을 완전히 남김없이 버릴 수 있는] 그 각각의 도로써
[그 오염원을] 포기하고, 토해내고, 풀어주고, 버리고, 완전히 놓아버렸다.'라고 반조하면서
결과에서 영감을 얻고 원인에서 영감을 얻으며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있다. 희열이 있는 자는 몸이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하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1) ‘악처는 duggati를 옮긴 것이고, 아래의 ’선처‘는 sugati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선처는 26가지 천상세계이고 악처는 네 가지이다.”(Sn.ⅱ470)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악처는 삼악도라 하며 지옥, 축생, 아귀의 셋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석서에서 보듯이 상좌부에서는 아수라를 악도 혹은 악처에 넣어서 사악도로 나타난다.
(*2) 여기서 ‘오염원’은 upakilesa를 옮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염원으로 옮기는 단어에는 kilesa, upakliesa, saṅkilesa 세 가지가 니까야에 나타나는데,
kilesa가 대표적인 것이다.
주석서는 “성가시게 하고 억누른다, 들볶는다는 뜻에서 오염원이라 한다.”(DhsA.42)라고 설명하고 있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DhsA.50)에서 kilesa는 saṅkilesa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듯이
일반적으로 이 셋은 동의어로 취급한다.
본경에서는 무엇에 의해서 마음이 오염되는지를 보이시면서
탐욕을 위시한 모든 오염원들을 upakilesa라고 표현하고 있다.
(*3) ‘욕심과 그릇된 탐욕’은 abhijjha-visama-lobh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의 재산에 대한 열정과 욕망(chanda-rāga)은 그릇된 탐욕이다.
혹은 자기의 것이건 다른 이의 것이건 소유하고 있거나 얻은 것에 대한 열정과 욕망은 ‘욕심’이고,
다른 이의 아내 등 소유하기에 부적절한 것과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열정과 욕망은 ‘그릇된 탐욕’이다.
그러나 바로 그 탐욕(lobha)이 욕심을 부린다는 뜻에서는 ‘욕심이고,
그릇되다는 뜻에서는 ’그릇됨‘이기 때문에 단어만 다를 뿐 뜻을 같다.
그는 이 욕심과 그릇된 탐욕을 일으켜 마음을 더럽히고 빛나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의 오염원(cittassa upakilesa)’이라 한다.”(MA.ⅰ.169)
(*4) 이 16가지 오염원들은 본서 「법의 상속자 경」(M3)의 §§8~15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단 두 번째 오염원인 본 경의 악의 대신에 거기서는 성냄(dosa)으로 나타나는 것이 다르다.
(*5) “그렇다면 왜 세존께서는 이런 오염원들을 보이시면서 ‘탐욕(lobha)’을 첫 번째로 언급하셨는가?
탐욕이 가장 먼저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에게는 그들이 어디에 태어나든지 간에,
정거천의 재생까지도 가장 먼저 존재에 대한 갈구의 형태로 탐욕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각자에게 적합한 조건에 따라 다른 오염원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16가지 마음의 오염원들만이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이아니라
모든 오염원들도 다 해당된다고 알아야 한다.”(MA.ⅰ.170)
(*6) 여기서 ‘버린다(pajahati)’는 것은
성스러운 도(ariya-magga)로써 근절에 의한 버림으로 버린다는 뜻이다.
오염원들을 버리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욕심과 그릇된 탐욕, 완고함, 뻔뻔스러움, 거만, 자만, 허영의 여섯은 아라한도로써 버린다.
② 악의, 분노, 적의, 방일의 넷은 불환도로써 버린다.
③ 모욕, 얕봄, 질투, 인색, 속임, 사기의 여섯은 예류도로써 버린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이 오염원들을 예류도로써 버리건 혹은 나머지 도로써 버리건,
여기서는 오직 불환도(anāgāmi-magga)에 의한 버림과 관련하여
욕심과 부당한 탐욕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고 말문을 여셨다고 알아야 한다.“(MA.ⅰ.171)
(*7) ‘그 각각의 도로써’는 yathodhi를 주석서를 참조하여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변방에 머무는 도둑의 위험을 진정시키고서 그것을 반조하면서 대도시에 머무는 왕처럼,
이 불환자에게 ‘나에게 이런 오염원들과 이런 오염원들은 제거되었다.’라고
자기의 오염원들을 버린 것을 반조하면서 크나큰 기쁨이 일어난다.
세존께서 그것을 보이시면서 ‘yathodhi kho panassa(그가 그 각각의 도로써)’라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여기서 ‘yathodhi’는 yo yo odhi(각각의 도)의 합성어이다. 이 뜻은 다음과 같다.
이 불환자인 비구가 각각의 오염원을 완전히 남김없이 버릴 수 있는 그 각각의 도로써
그 오염원을 포기하고, 토해내고, 풀어주고, 버리고, 완전히 놓아버린다.
즉 예류도로써 모욕, 얕봄, 질투, 인색 등을 완전히 남김없이 버리고,
불환도로써는 악의 적의 등을 완전히 남김없이 버린다.
그는 이렇게 오염원들의 버림을 반조하면서 기쁨을 얻는다.
또한 그보다 더한 ‘삼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구족했다.’라고 생각하면서
영감을 얻는다는 뜻이다.”(MA.ⅰ.172~173)
(*8) ‘결과에서 영감을 얻고 원인에서 영감을 얻으며’는
atthavedaṃlabhati dhammavedaṃ labhati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목표(attha)에서 영감(veda)을 얻고, 법(dhamma)에서 영감(veda)을 얻는다.’로 직역할 수 있다.
그런데 역자가 이렇게 의역을 한 것은 『위방가』(분별론)에서
“원인(hetu)에 대한 지혜가 법무애(法無碍)이다.
원인의 결과(hetu-phala)에 대한 지혜가 의무애(義無碍)이다.”(vbh.293)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attha-veda를 ‘결과에 대한 영감’으로, dhamma-veda를 원인에 대한 영감으로 옮겼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부처님 등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만이 존중받을만하기 때문에 attha(목표)라 한다.
다가가야 한다는 말이다.
유지하고 붙들기 때문에 dhamma(법)라 한다.
이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를 악처에 떨어지는 것에서 붙들어 준다는 뜻이다.
veda(영감)는 ‘책(gantha), 지혜(ñāṇa), 기쁨(somanassa)’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기쁨이라는 뜻이다. 즉 목표에서 기쁨을 얻고, 법에서 기쁨을 얻는다는 말이다.
혹은 attha-veda는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반조하면서 일어난 기쁨과 또 기쁨으로 가득 찬 지혜를 말하고,
dhamma-veda는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의 원인인 각각의 도를 통한 오염원들의 버림을 반조하면서 일어난
기쁨과 또 기쁨으로 가득 찬 지혜를 말한다.”(MA.ⅰ.173~174)
(*9) “환희(pāmujja)는 얕은 희열(taruṇa-pīti)이고,
희열은 만족의 형태로 나타나는 강한 희열(balava-pīti)이다.
몸(kāya)은 정신의 무더기(nāma-kāya)를 뜻하고,
마음이 삼매에 든다는 것은 아라한과의 삼매로 삼매에 든다는 뜻이다.”(AA.ⅲ.230)
한편 복주서는 “정신의 무더기가 경안할 때 물질의 무더기(rūpa-kāya)도 반드시 경안하기 때문에
정신의 무더기가 경안하다고 설했다.”(AAT.ⅲ.10)고 덧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