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먹다 / 조영안
아침 일찍 부지런히 식사를 준비를 한다. 오늘은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즐겁다. 먼저 큰 냄비에다 물을 끓인다. 어머님이 지난밤에 손질해 놓은 고사리, 방풍나물, 숙지나물(쑥부쟁이), 취나물이 바구니에 옹기종기 담겨 있다. 끓는 물에 소금을 한 줌 넣고 취나물을 선두로 차례대로 데친다. 봄나물은 씻을 때가 중요하다고 친정엄마가 늘 일러 주었다. 손으로 쌀 씻듯이 켜켜이 치대면서 거품이 사라질 때까지 씻어서 물에 잠시 담가 놓는다. 고사리는 손으로 만져 무르다 싶을 때 건져 채반에다 말린다. 이렇게 조금씩 모아 두면 명절, 제사를 거쳐 내년 정월 대보름까지 먹는다.
부지런을 피운 덕분에 하나씩 준비가 된다. 이번에는 국을 끓인다. 연한 쑥, 항각구(엉겅퀴) 순이랑, 고사리 발발이(연한 순)를 어머님이 일일이 가려 놓았다. 쌀뜨물에다 된장을 푼다. 쑥과 나물을 넣고 텁텁하게 한소끔 끓인다. 여기다 조갯살이나 보리새우를 넣으면 더 맛있다. 오늘은 냉동고에 있던 석하(굴)로 대신했다. 마지막으로 들깻가루를 풀면 담백하고 고소한 봄나물 국이 완성된다.
식탁 위의 차림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환상적이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한정식 집 못지않다. “맛있겠다. 봄이 한 상 가득하네.” 남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다. ‘여기에 생선구이만 있으면 더 푸짐할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봄을 먹었다. 취나물과 방풍나물 향에 취하고, 나물국과 부추 겉절이가 입맛을 더 돋군다. 봄에 나온 첫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는 말이 실감 난다. 보약을 먹은 듯 달달하다.
주말에는 남편과 농장을 찾았다. 지난해만 해도 어머님이 온종일 일하던 곳이다. 가을걷이를 마무리하면서 농장 일에 완전히 손을 놓으셨다. 직접 가지 못하는 대신 늘 걱정을 안고 산다. ‘밭에 풀이 많이 났을 텐데. 콩을 심어야 하는데, 완두콩은 싹이 났을라나? 쪽파도 빼야(뽑아야) 하는데.’ 그래서 남편이 주말에 일을 시작하자고 약속한 터였다. 얼마 전 지역 매화 축제 기간에 전주에 사는 남동생 부부가 다녀갔다. 차가 밀려서 축제장에는 못 가고, 대신 우리 농장에서 매화를 보고 갔다. 사진도 찍고 둘러보면서 봄의 향기를 대신 즐겼다. 그때 들르고 2주 만에 왔는데 만개한 꽃들은 거의 사라졌다. ‘자연은 순리대로 피고 지면서 자리를 내어주는구나.’ 혼자서 중얼거렸다. 뒤를 이어 활짝 핀 천도복숭아 꽃이 반긴다. 역시 복사꽃은 화려하여 눈부시다. 벚꽃이 필 무렵, 배꽃도 살짝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순백의 자두 꽃에 뒤이어 사과꽃이 핀다.
사실 올해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걱정이다. 수정 해주는 벌이 없어졌다 한다. 따뜻한 날씨에 일찍 꽃을 피웠다가 며칠 전의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주춤거려 모두 피우지도 못했다. 어머님의 걱정처럼 들어서는 입구부터 잡초투성이다. 너도나도 겨울잠에서 깨어났나 보다. 마치 내기라도 하듯 기세등등하다.
변함없이 네 그루의 노송이 당당히 지키고 있다. 본래 다섯 그루였는데, 어느 해 태풍으로 쓰러졌다. 육송(조선 솔)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어린 소나무가 자랐다. 쓰러진 그 자리에다 옮겨 심으며 남편은 아쉬움을 달랜다. 남편이 풀과 씨름하는 동안 나는 채소밭으로 갔다.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겨우내 깊은 잠에 빠졌던 채소가 송송 얼굴을 내밀었다. 엉덩이 방석을 깔고 시작했다. 취나물은 딱 내 손가락 길이만큼이다. 방풍나물은 벌써 키가 훌쩍 자랐다. 꼭지 부분 연한 순만 꺾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른 부분 옆에서 또 새순이 나온다. 항각구(엉겅퀴)는 하늘을 향해 활짝 누워 있다. 봄볕을 받으며 마치 내 세상인 냥 활개를 친다. 겨우내 꽁꽁 언 땅 어디에 숨었다 나왔을까 할 정도로 지천이다. 그런데 잎마다 가시를 품고 있다. ‘나한테 손대지 마.’ 하는 것 같았지만 연한 것만 캤다. 부추는 듬성듬성 자란 수염 같아 한 줄기 한 줄기씩 잘라냈다. 그래도 제법 모였다.
남편은 입구부터 차근차근 잡초를 없애는 중이다. 채소밭 일을 끝내고 엉덩이 방석 위에 앉아 호미로 거들었다. 민들레, 꼬들빼기, 씀바귀, 목거레 등은 마음에 들어 “봄날이라 나왔구나.”라고 인사를 나누면서 뽑았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잡초들이 너무 많다. “너네는 어디서 왔니? 그냥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말았어야지, 이것들아.” 호미로 땅을 치며 말했다. 묵묵히 일하던 남편이 피식 웃는다.
농장은 들판 가운데 있다. 지난해까지는 어머님이 날마다 지켰기에 풀 하나가 없었다. 올라오는 족족 없앴다. “어머니, 잡초들이 욕하겠어요.” 정갈하게 정리된 밭을 보며 미안하고 고마워서 말했다. 그런데 올해는 많아도 너무 많아 큰일이다. 누구는 걱정하는 내게 제초제를 뿌리라고 하지만 용납이 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최소한의 안전한 방법으로 키우려고 한다. 쉬엄쉬엄 주말에는 이 녀석들과 전쟁을 해야겠다. 점점 제 색을 뽐내는 봄 풍경과 마주하면서.
첫댓글 봄나물에 밥상에 펼쳐진 모습을 그리며 글을 읽었습니다. 봄내음이 가득한 글이네요.
지현쌤도 가까운 시장에서라도 봄나물 사다 드셔보세요. 보약은 맞는 것 같아요.
@글향기 네❤
@심지현 일찍 일어나셨네요?
@글향기 안녕히 주무셨어요?
@심지현 조금 다쳤어 뒤척하다 일어나 겨우 댓글 달고 있답니다. 비가 오려나 더 그러네요.
@글향기 비 소식 있나보네요.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얼른 나으세요!
@심지현 춤 쓸 적에 알려드릴게요.
@글향기 혹시 춤 추다가요? 기다리고 있을께요.
저도 이번 주에 시골집에 나무 심고 왔답니다. 그래서인지 더 정겹게 잘 읽었습니다.
그러셨군요. 낼, 모레 비소식이 있어 반갑네요. 저희는 대추나무와 살구나무를 더 심었답니다.
이리 좋은 것 드시니 병 걱정없이 100살은 거뜬히 사시겠어요. 요리 솜씨도 빼어난 듯해서 더욱 부럽네요.
제철음식이 중요하더군요. 요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노력중이랍니다. 경상도에서 시집 와 많이 배웠구요.
풀과 잘 조율하셔서 즐거운 농장 생활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겨낼 수 있으면 참 재미있는 곳입니다.
맞아요. 어쩔 수 없이 공생하며 지내야겠어요. 재미 있는 곳도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재밌게 읽었습니다.
맛있게 먹었고요!
하하, 맛 있게 드셨군요. 봄 향기가 잘 전달되어. 기쁩니다.
맛있는 참기름 냄새가 여기까지 솔솔 풍깁니다.
봄내음 가득한 글이예요.
제철음식이 보약이라 부지런히 먹고 있답니다. 나물 제각기의 향이 있어 새롭기도 하구요.
늘 고맙습니다.
봄내음 가득한 식탁, 너무 부럽습니다. 부지런하시기에 얻을 수 있는 행복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지런.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가끔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 있어요. 선생님도 제철음식 많이드세요.
제가 좋아하는 나물들, 침 꼴깍!
봄나물, 야생화 겨울잠 깨우며 행복한 시간 보내시네요.
밥그릇 들고 그 밥상으로 가고 싶어집니다.
저도 요즘 봄나물 캐러 다녔는데요. 하하. 선생님 나물 앞에서는 깨갱이네요. 맛깔스런 밥상만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