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수필의날 고창대회가 <책이 있는 풍경>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종이책과 장소 그 대중친화적 콜라보의 미래> 입니다.
한국수필작가회 제6대 회장을 역임했던 한영자 선생께서 [올해의 수필인] 상을 받으셨습니다.
자료집에 실렸던 <종이책의 미래를 말한다> 를 주제로 한 글을 올립니다.
미래는 아름다운 책으로
류인혜
나무는 종이를 만들고 종이는 책의 재료가 된다. 인류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이 긴 세월을 지나며 창조되고 발전되어 왔다. 더 좋은 삶의 질을 위해서 높은 수준의 생활이 영위되기 위해서 과학은 치밀해지고 문명은 발전한다.
책은 수천 년 전 진흙 서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다음 두루마리 형태를 거쳐 양피지를 접어서 만든 사각형 모양의 책들이 등장했다. 16세기경 종이를 접는 형태가 공식화되어 오늘날의 책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책은 만들기 위한 복잡하던 공정이 이제는 단순해졌다. 책을 읽는 방법도 점점 다양하다.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던 즐거움이 사라지고 인터넷 주문으로 쉽게 집안에서 책을 읽는다. 도서관까지 가지 않더라도 책이 집으로 배달된다. 전자책이 종이책과 나란히 발간된다. 인터넷으로 언제든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휴대전화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앱을 한 달쯤 이용하다가 삭제했다. 종이 냄새를 맡으며 읽는 즐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음 쪽에 어떤 내용이 연결될까, 라는 기대로 종이를 넘기는 잠깐의 여유와 몰두하여 읽다가 책을 덮어 둘 때, 생각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또 손에 담기는 책의 무게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이 발간되자마자 묻힌다. 급한 사람들이 지루한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해도 읽는 일에 무심하다. 글을 써서 책을 만드는 사람조차 독서에는 무관하다. 종이가 되는 나무들만 속절없이 희생한다. 종이책은 무용지물이 될 것인가. 정말 종이책이 없어질 것인가.
권력자들이 잡은 힘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책들도 어이없게 수난을 겪었다. 가장 쉽게 자주 접했던 진시황이 책을 불태운 사건이 있다. 영화 속에서도 책이 불타는 이야기가 나오고 땔감이 부족할 때도 책은 수난을 당했다. 고대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수십만 권의 장서도 침략자에 의해 불태워졌다고 한다.
전쟁 중 산에 숨었던 공비들이 동네로 내려와서 추위를 이기려고 마당에 불을 피웠다. 불길을 세우려고 고서를 던져 넣었다. 어느 선비댁의 수많은 책이 타면서 남은 재가 바람에 밤하늘로 흩어지는 광경을 이야기하던 분이 있었다. 책이 불타면서도 아름다움을 이루어 낸 것이다. 책의 존재는 생각보다 더 큰 무게를 지니고 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대부분 필사로 책이 만들어졌다. 크리스토퍼 드 하멜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는 12권의 필사본이 소개된다. 표지에 ‘눈을 뗄 수 없는 섬세하고 황홀한 삽화, 한 자 한 자 새겨넣은 경이로운 글자의 향연’이라는 소개문장이 있다. 중세에 만들어진 그 책들은 대부분이 성서와 기도서 등이다. 각 권의 필사본이 만들어지게 된 연유와 그 책을 소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 이제는 희귀본으로 소중해진 책을 만난 감동을 소개한다.
저자는 자신이 소개하는 필사본들이 독자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에 역점을 두었다. 필사본에는 활자의 크기를 다양하게 그림처럼 꾸미고 색깔을 넣기도 했다. 삽화를 명화의 수준으로 그리고 표지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그림과 글자, 글자와 글자들이 조화를 이룬 예술품이다.
현대에 발간되는 책들도 긴 세월 동안 다양한 크기와 두께로 끊임없이 독자에게 흥미를 주었다. 시력이 나쁜 사람에게 맞추어 큰 활자로 인쇄한 종류도 나와 커진 책의 크기가 부담스럽기는 했다. 요즘은 작은 책이 유행이다. 종이책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책은 어떤 형태로 진화를 해서든 발간될 것이고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여전히 구별되어 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새로 세워지는 아파트 단지에는 어김없이 도서관이 들어선다. 우리 아파트에도 작은도서관에 아이들이 모여 책을 읽는다. 새로 입주하는 옆의 단지에도 도서관 건물이 문패를 달고 있다.
또 우리에게는 중요한 무기인 한글이 있다. 세종대왕께서 1443년에 창제한 우리글이다. 이 한글이 노력하는 사람들로 인해 아름다운 글씨체로 다듬어지고 있다. 점점 더 다양한 모양의 활자로 종이책이 발간될 가능성이 무한하다. 멋진 디자인으로 책이 만들어지면 중세의 필사본에 뒤지지 않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1964년 유네스코가 발표한 규정에서 ‘서적이란 표지를 빼고서 적어도 49페이지가 되는 부정기 간행물로, 그 나라에서 출판되어 일반적으로 입수되는 것’이라 했다.
지금 문인들의 작품집들은 그 규정보다 몇 배 많은 쪽수로 발간된다. 책을 만드는 작업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겁지 않도록 얇게, 그림이나 사진을 넣어 시각의 즐거움을 주면 지나치다가도 되돌아볼 것이다. 활자를 읽기 좋게 편집하고, 어디에나 들고 다니기 쉽도록 얇고 작은 책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다양한 편집으로 종이책의 미래는 햇살처럼 환하다.
류인혜
1984년 『한국수필』 봄호 수필 「우물」로 추천완료.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작품집: 수필집 『수필이 보인다』, 『나무를 읽는다』 외 8권
수상: 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 제23회 펜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송헌수필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