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진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서구사회에서는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께서 진주를 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전해주는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딸이 시집가서 흘려야 할 많은 눈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여자가 시집가서 흘려야 할 눈물을 진주로 묘사했까? 그 이유는 진주의 생성과정 때문이다.
진주는 땅에서 캐내는 것이 아니라 바다의 조개에서 생겨진다. 조개의 속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조개는 "나카(Nacre)"라고 하는 물질을 만들어 자기 체내에 들어온 모래알을 싸바르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나카가 많이 덮일수록 진주는 커지고 값도 비싸진다. 그리고 이 나카는 아주 작은 양이 천천히 생성되기 때문에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작은 것은 수개월이 걸리고 큰 것은 몇년이 걸려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조개속에 들어간 모래알이 다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조개속에 모래알이 들어가면 조개에 두가지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하나는 나카를 생산해서 코팅작업을 시작하는 반응과 다른 하나는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는 반응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수개월 내지 수년에 걸친 고생은 안해도 되지만 그 대신 이 모래 때문에 조개는 병들고 많은 경우에 아주 죽어 버린다고 한다.
조개가 당면하는 이 두 개의 선택이라는 것은 자기 몸에 들어온 모래알을 받아들여 진주로 만드느냐 그렇잖으면 자기 몸에 들어온 모래알을 무시하고 서로 피차 망하느냐 하는 선택이다. 이 진리는 조개의 선택일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한다. 진주가 만들어 지는 과정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여러 종류의 모래알이 자주 우리들에게 들어온다. 이 때 어떤 사람은 그것을 하나의 도전으로 건설적으로 받아들여 진주를 만들어 나가는 성도가 있고 다른 하나는 들어온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고 회피하여 차츰 곪아 스스로의 파멸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서구사회의 어머니들이 시집가는 딸에게 주는 진주는 "얼어붙은 눈물" 많은 어려운 일들을 오랫동안 극복하고 이겼다는 뜻을 상징하기 때문에 딸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진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야고보 사도는 세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1. 야고보서 1:2절에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은 뜻밖의 말씀이다. 그러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기뻐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 말씀의 의미는 시련과 고통은 우리를 파멸시키는 조건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고 더 크고 굵게 온전하게 깊은 인간으로 만드는 기회로 시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말고 긍정적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좋게 하시려고 주시는 은혜로 받아 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감사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배척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나카"를 열심히 생산해서 모래알을 싸바르는 투쟁을 계속 감행하라는 것이다.
어떠한 한 교육학자는 자신의 세 자녀로부터 세 가지의 각기 다른 태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기어다닐 때 앞에 장애물이 있을 때 큰 아이는 멈추어 앉아버렸고 둘째 아이는 장애물을 피해서 다른데로 기어갔고 셋째는 장애물을 밀어젖히고 전진하더란다. 그리고 이 교육학자는 여기에서 흥미를 느끼고 또 다른 기어 다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았는데 이들 역시 세 종류의 태도를 달리 나타내더라는 것이다.
첫째 아이는 체념형으로 가장 소극적이며 비생산적이고 이것을 성인의 용어로 말하면 비관론자, 운명론자, 염세주의자, 자학자, 자기연민에 사로잡힌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요, 둘째 아이는 도피형으로 역시 진주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성인 용어로 말하면 냉소주의자, 방관주의자, 책임회피자, 동정과 인정을 받으려 하고 스스로는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는 도망자이다. 셋째 아이가 가장 적극적인데 왜 셋째 아이는 자기 앞의 장애물을 밀어젖히는 태도를 나타내 보였는가? 여기에서 이 교육학자는 동기를 두 가지로 분석해서 말했다.
하나는 무엇이 나의 진로를 가로막아 기분 나쁘다는 감정으로서 투쟁형이고 다른 하나는 "야! 이것 참 재미있는 것이 있다"고 호기심으로 도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아이는 자기 앞에 장애물을 장난감으로 삼고 앞에 놓인 어려움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경우는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신대로 "시련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다.
베드로전서 1:7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와 같이 말했다. "너희가 받는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 더 귀하다"고 말했다. 조개가 모래알을 받아들여 진주를 만들어 내듯이 성도들은 믿음으로 시련을 기쁘게 받아들일 때 황금보다 더 값진 열매를 맺게 된다는 뜻이다.
2. 야고보서 1:3~4절에 어려움에 당면하는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말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무기는 인내다. 그러나 인내는 조개가 진주를 완성시켜 만들어 낼 때까지 꾸준히 참듯이 끝까지 참아야 열매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본문의 말씀은 영역(KJV) 성경에 "Let patience have her perfect work(인내로 하여금 그의 작업을 왕성케 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어려움을 잘 참다가 중간에 포기하면 그 동안의 인내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문학인들은 대체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중에서도 수많은 고통과 싸우면서 "괴테"는 60년간에 걸쳐서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그리고 "괴테"의 전기의 제목은 "고민과 환희"이다. 그의 고민은 인내이며 환희는 진주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과학자 "뉴튼"은 말년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발견한 것 중에 가장 귀중한 것은 인내였다"고 말했다. 즉 인내가 모든 발견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고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이제는 더 가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이젠 더 기다릴 수 없다", "이젠 더 참을 수 없다", "이젠 다 틀렸다"고 생각될 때 꼭 필요한 말씀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은 배에 큰 돛이 짐인가? 또한 작은 새에게 큰 날개가 짐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짐이 아니라 배와 새에게 전진하는 동력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에 동력이 되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5:3~4절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했다.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의 의미는 환난과 고통이 소망으로 전환되는 놀라운 기적은 인내로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8:24~2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라고 말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과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이 간단하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내하는 과정 속에서 소망을 가지게 되고 또한 소망을 품을 때 용기와 투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야고보서 1:4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 "구비하여"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흘로클레로스"라는 말로서 "균형잡힌, 골로루 갖춘" 혹은 "건전한"이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영어로는 "sound"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는 인내가 우리를 균형잡힌 인격자로 만든다는 의미다.
3. 세번째로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에게 오늘 본문이 권면하는 것은 위로부터 받는 거룩한 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야고보서 1:5절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했다.
우리는 어려움에 직면하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때에 기도의 내용은 지혜를 달라고 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혜는 지식이나 기술(테크닉)이 아니라 문제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근원적인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받는 것이다.
즉 믿음의 힘인 것이다.
솔로몬이 이 지혜를 구한 것이다. 열왕기상 3:4~15절에 보면 솔로몬은 꿈속에서 하나님과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구하면 주겠다는 엄청난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허락받았다. 그러나 솔로몬이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지혜를 구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몹시 만족해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며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네가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무력) 구하지 아니하고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주리라"고 말씀했다.
지혜는 환난을 이기는 믿음의 힘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45-46절에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진주로 비유하셨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말씀했다. 그런고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근원적인 능력이 되는 믿음을 간구해야 한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기도에 앞서서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라는 기도가 거룩한 지혜를 간구하는 가장 필요한 기도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도 고통도 나 혼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결해 주셔야 하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
루터는 이런 예를 들어서 말했다. 술 취한 친구를 말에 태워서 집에 보내주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쪽에서 올리면 저쪽으로 떨어지고 저쪽에서 올리면 이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법은 친구 하나가 안장에 함께 앉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생활에 대한 비유다. 인간은 술취한 사람보다 더 불안하다. 하나님과 함께 말을 타고 가는 믿음의 관계에서만이 불안의 해결이 온다는 뜻이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시련에 당면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시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면,
첫째로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둘째로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셋째로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잠언 31:15~17절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말씀하셨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