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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과 암기력
우리나라 교육은 주입식이다. 이해력과 암기력, 그리고 문제풀이 능력에 대부분의 성적이 달려있다.
사고력, 창의력, 관찰력 이런 능력들은 상대적으로 성적에 반영이 잘 되질 않는다.
때문에 강조해왔다. 사고력, 창의력, 관찰력...
그러나 그렇다고, 암기력이 필요없다는 건 아니다. 이건 마치 이것과 유사하다.
남성중심 사회를 바꿔보고자 여성의 권리를 강조하는 것, 그것은 여성중심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양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는 거... 이제 암기력은 필요없는 세상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가 않다. 여전히 암기력은 중요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해야만 한다.
심지어 창의력과 사고력도, 암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창의력은 무의식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런데 무의식이란 게 초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이미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던 지식들을 충돌시켜 만드는 것... 그것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경험한 것들을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있다면 어떨까?
작곡가인데... 그동안 들어온 수많은 노래들을 쉽게 잊어먹어왔다면 어떨까?
그러고도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을까? 요리사인데 그동안 먹어본 수많은 음식들을 쉽게 잊어먹어왔다면
어떨까? 창의력이 발휘되려면, 기억력이 중요하다.
사고력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생각을 할 때, 암산으로 한다. 종이에 써 가며 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암기력이 부족하면, 생각의 재료만 부족해지는 게 아니다.
생각의 용량도 부족해진다. 더 큰 부피의 생각을 해내기 힘들다.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도 사실 암기력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앞에 나왔던 내용을 기억해야 뒤에 나온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방 금방 까먹는다면?
쉽게 맥락을 놓치고 말 것이다.
암기력은 미래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한 번 보고 외우는 능력'이다.
보통 우리가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고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달달 암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그건 학교에서 필요한 능력일뿐, 일상에서 사회에서 대부분 우리는 한 번만 보고 외워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주입식 시험 공부하듯이 달달 외우고 있을 수 없다. 결국 암기력에 있어 타겟으로 삼아야 할 것은 '한 번
보고 더욱 강렬히 외우는 능력'이다. 사실 이 능력이 있으면, 반복해서 외우는 것도 잘하게 될 것이다.
한 번 보고 외운다니... 여기서 외운다는 말은 영원히 기억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 순간 강렬히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외울 것이 언어로 된 것이라면, 감각으로 외운다는 게 아니다.
눈앞에 글자가 아른거린다? 혹은 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있다?
그것에 의존하여 기억해내는 건 외운게 아니다. 언어라면 응당 의미를 통해 기억을 해내야 한다.
그게 외운 거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한 번 보고 외우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간단하다. 테스트하는 것이다. 내가 방금 읽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안 보고 설명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면, 분명 내 눈에 스치고 지나간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억해내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긴다.
혹은 다르게 기억하는 부분들이 생긴다.
예를 들어
'전세계 사람들이 더 자주 운동하며 저지방 저당분 자연식품을 찾고 있었다.'
이 문장을 읽고 내가 기억한 건지를 테스트해본다고 해보자.
이 때
'전세계 사람들이 보다 많이 운동하며 저지방 저당분 식사를 찾고 있었다.'
라고 떠올릴 수 있다. 그러면 잘못 기억한 것이다. 표현이 달라도 의미가 같으면 외운 거지만, 의미가
다르면 외운게 아니다. '더 자주'와 '보다 많이'는 의미가 다르다.
'보다 많이'라고 기억을 한 것은... 기억했다가 망각한 게 아니라, 애초에 잘못 읽고, 잘못 기억한 것이다.
리딩 정확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연식품'을 '식사'로 기억한 것은... 저지방 저당분이라는 단어에 주목한 나머지, 자연식품이란 말을
놓치고 읽은 것이다.
이 역시 애초에 자연식품은 기억한 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시각이나 청각은 기억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한 번 보고 외운다는 것은 의미를 외우는 것이지, 그 글자의 감각을 외우는게
아니다. 망막과 달팽이관에 의존하지 말고, 떠올려야 한다.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을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그렇지가 않다.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중요한 부분만 이렇게 하면 된다.
그리고 가끔 시험삼아 해보고 싶을 때만 하면 된다. 방금 읽은 내용을 안 보고 설명해보는 것이다.
기억이 안나면, 망각한 게 아니라, 애초에 기억한 적이 없는 거라 생각해야 한다.
언어만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언어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방금 눈 앞에 스치고 지나간 어떤 아이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를 기억해내는 것은 한 번
보고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하다보면 점점 더 잘 하게 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보기만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나는지 테스트해보는 것에 있다. 보기만 하고 지나가면 당연히 실력은 늘지 않는다.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어떤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낮동안 보았던 새들의 모습을 그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자주 하다
보면 점점 새를 한 번만 보고 외워버리는 능력이 좋아질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동이 반복되다보면, 새를 볼 때에 더욱 유심히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한 번만 보고 바로 외우려 애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관찰력과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새를 외우는 능력이 좋아지면, 새와 관련된 창의력이 좋아질 것이다.
창의의 재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며, 또한 새와 관련된 생각을 하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를 무언가를 해낼 수 있게 되면, 그것은 창의력이 이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의식이 그걸 이용하기 쉬운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한 번만 보고 외우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거라면, '한 번만 듣고 외우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음식이라면, '한 번만 맛보고 외우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맛을 외운다는 건 그런 거다.
그 맛을 상상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후각이나 촉각도 마찬가지다.
상상으로 떠올릴 수 있는지, 그것이 외웠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이며, 테스트하는 방법이다.
운동이나 춤이라면 직접 따라 움직여볼 수도 있겠고, 그러기 곤란한 상황이면 상상만으로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때에도 마찬가지로, 상상할 수 없으면 애초에 기억한 적이 없는 것이라 간주해야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와 관련하여 사고력과 창의력을 높이려면, 그걸 한 번 보고 외우는 훈련이 필요
하다. 방금 지나간 장면을 얼마나 잘 기억해낼 수 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사고력과 창의력은 암기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한 번만 보고 외우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 능력은 기억나는지 곧바로 테스트해봄으로써 할 수 있다. 스스로 설명해보거나 또는 상상해보는 것이
그 테스트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곧바로 테스트를 하면, 즉각적인 피드백이 일어난다.
한참이 지나 피드백을 주는 것과 달리, 즉각적인 피드백은 무의식을 설득한다.
무의식을 설득하면,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들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집중력은 의지만으로 되는 일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보고 곧바로 테스트해보는 일이 잦아지면, 자연히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어떻게 봐야 기억이 잘 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는 무의식적인 부분까지 포함한다.
안개 속 다양한 시도
중고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보면, 뒤에 해설이 나와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그 해설을 보곤 한다.
정확히 정답을 방하여 어떤 시행착오도 없이 곧바로 향한다. 수학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이 해설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이 해설에 의존적이다. 수학 문제집의 해설과 유사하게, 강의 해설도 마찬가지이다.
강의에서 문제를 풀어주는 경우도, 수학 문제집 해설과 유사하다. 시행착도 따위는 없다.
다양한 시도 따위는 없다. 이미 길을 알고 있는자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애써 공부를 했더니... 다음에 또 틀린다. 조금만 바뀌어도 풀지를 못한다.
물론 더 어려운 문제는 손을 못 댄다. 그래서 또 해설을 보게 된다. 그러면 또 틀린다.
수학 실력은 이미 잘 닦아놓은 길을 수동적으로 쫓아가는 것에 의해서는 잘 늘지를 않는다. 정말 실력이 느는
때는... 스스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수많은 실패를 해보는 때이다. 무수한 시행착오가 쌓여 실력이 는다.
이는 수학만이 아니다. 머리쓰는 퀴즈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문제적 남자란 프로그램에 나온 뇌풀기 문제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이미 이런 류의 문제를 풀 때, 해보았던 다양한 시도 중에 reverse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숫자를 보면, 밝은데는 어둡게, 어두운데는 밝게, 반전시켜보는 시도를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reverse가 답이 아니었을 것이다. 즉 그때는 그 시도가 실패였지만, 그 시도가 이번에는 정답을 바로
맞출 수 있게 해준 것이다.
[ ] x 3 = [ ] 이라는 형태를 보자마자, 3이 reverse에 의해 1이 되는 직관이 바로 생겼을 것이다.
수학을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문제집 해설을 잘 보지 않는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스스로 방법을 만들어
내어 그렇게 푼다. 해설보다 더욱 빠르게 푼다. 다양한 방법으로 푸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도전한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때, 실력이 크게 늘어난다.
그 주된 이유는... 정답을 맞췄기 때문이 아니다.
그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온갖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실패이지만, 훗날
성공의 열쇠가 될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수학이나 퀴즈뿐만이 아니다. 책도 그러하다.
누군가가 책을 쓸 때에는 실패한 과정 따위는 적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정갈하게 다듬어서,
마치 이미 길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정답으로 시작해서 정답으로 끝난다. 시행착오 따윈 없다.
다양한 시도 따윈 없다. 이미 길을 알고 있고 그 길만 가면 되는 거다. 책에 시행착오 따윈 적지 않는다.
그러면 그 책을 읽는 사람은... 마치 수학 문제집의 해설을 그냥 읽은 사람과 유사해진다.
뭐... 당연한 거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연구해낼 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다.
이런저런 가정들을 해보고 그 가정들에서 모순을 발견해내고, 그래서 또 다른 가정을 하고 사고를 하고...
실수를 하고... 또다른 시도를 해보고... 그렇게 해서 알아낸 것이지,
그런 것 없이 문제집 해설처럼 곧바로 열매를 딴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특히 주입식 능력만으로 족한게 아니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더욱 그러하다. 남의 뒤만 쫓아다니면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학자나, 기업가나, 예술가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세상 온갖 것들은 다양한 시도는 감추고, 오로지 정답만 정갈하게 표현한다. 책뿐만이 아니다.
영화관에서도 잘라낸 수많은 필름들... 뜯겨진 수많은 원고들...은 관객에게 보여지지 않는다.
세상 일이란게... 모두 창의적인 것이 필요한 건 아니다. 기계적인 일에도 가치가 큰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그런 일들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기계적인 일은... 가치가 작은 일이거나... 혹은 법이 보호를 해주는 가치가 큰 일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기계적인 걸로 충분하다면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시도를 안해도 괜찮을 수 있다.
시행착오없이 정답만 숙달하는 걸로 기계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게 아니라면... 기계가 아닌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면, 해야할 것이 있다.
무언가로부터 또는 누군가로부터 어떤 가치있는 것을 배울 때에, 안개 속에 숨겨진 다양한 시도들을 떠올려
봐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그 시도들을 스스로 관찰해보는 것...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세상 일이란게 참 복잡하다. 온갖 변수들이 있고, 온갖 원인들이 얽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일일이 그걸 다 예측하고 분석하고 선택하기 힘들다.
복잡한 세상... 어떻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로 강력히 추천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가치관이다.
무언가의 가치를 높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복잡한 개별 상황들에 있어, 그 가치관에 따라 선택들을
하게 될 것이다. 정말 그것이 가치있는 것이라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확률을 크게 높일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가치관이 필요한가?
내 생각은 그렇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다양한 시도'이다.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것...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지금 다르게 시도해본 것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장담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의 인지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성과 시도를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결과가
예측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시도를 할 때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그게 가치관의 힘이다. 일일이 분석하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에서도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열정을 일으켜 계속하여 행동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가치
관의 힘이다.
권위주의 문화에 주입식 교육에... 우리나라는 창의성을 발휘하기에 좋은 가치관 환경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창조적인 인간, 창조적인 세상을 위한 가치관을 딱 세 개만 뽑아보라면...
자율성, 다양성, 연결성이다.
그리고 그 다양성 중 하나는 시도의 다양성이다.
다양한 시도는 대부분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잊혀지기 쉽고, 주목받기 어렵고, 무시되기 쉽다.
때문에 적극적으로 찾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그걸 스스로 격려해
줘야 한다.
다양성을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은... 타인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실력을 키울 때, 그걸 격려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이고 주입식의 획일적인 사람은... 대뜸 비난을 하기 쉽다.
그건 정답이 아니라며 비난을 하기 쉽다.
그런 사람 곁에서는 실력을 키우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이야기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과 친해지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들과 연결되면, 서로 다양성을 더욱 더 키울
수 있고, 감정적인 힘도 서로 많이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과 창의성 : 특수효과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종종 특수하게 처리된 영상을 보게 된다.
이런 영상에는 사람들이 흔히 알지 못하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그건 바로... 상상력이다.
이런 특수효과는 상상력을 키우는데 기여할 수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 영상들에서 본 특수효과를 내가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상상할 때,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특수효과란 것을 영상으로 만드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많은 자본과 인력 그리고 아이디어로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영상을 따라 만들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상상속에서는 가능하다. 그런 특수효과를 상상속에서 사용해보는 것은 손쉽게 아주 짧은 시간에도
해볼 수 있다.
물론 상상이란 게 메모리가 적어서 해상도가 낮긴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특수효과란 컴퓨터 영상처리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잘라붙인 필름이나 빨리 돌린 필름도 포함한다.
비현실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현실적인 것을 다르게 보여주는 것도 포함한다.
예를들어 밤하늘의 별을 본다고 해보자. 흔히 그걸 카메라 영상으로 촬영하여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필름을
빠르게 감는다. 그러면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별들이 회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촬영한 것을 몇 초 동안의 빠른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것, 현실을 다르게 보여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내가 상상을 할 때에 이용해본다는 것이다.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다고 해보자. "우리는 초파리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이때 이렇게 상상할 수 있다. 먼저 초파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초파리의 특정 세포를 고른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 그러하듯 zoom-in 한다. 그 세포를 줌인하여 즉 확대한다. 그리고 세포핵 안으로
들어가서 유전자를 고른다. 그리고 이에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이 상상을 하는데 2초 정도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을 하면, 기억이 더 잘 된다.
그리고 동적 이미지를 통해 연결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머릿속에 다른 무언가가 활성화될 확률도 높아
진다. 이를테면 세포를 고르려는 그 순간에, 생식세포인지 체세포인지를 떠올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독서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실수들을 하곤 한다. 실수를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뿔싸 가슴이 내려앉거나,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이러한 감정은 그 실수가 일어난 맥락을 상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흐릿한 사진 한장으로 떠올리고 마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기에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때문에 실수는 반복된다. 실수의 본질은 흐릿한 사진 한장이 아니다. 그 사진은 죄책감을 기억하는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실수를 고치는데에는 효과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실수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영상이 필요하다. 실수의 맥락을 영상으로 돌려보는 것이다.
그 영상 당연히 상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때에도 특수효과를 이용할 수 있다.
예를들어 컵을 깨는 등, 순식간에 일어난 실수는 상상을 할 때 필름을 천천히 돌려야 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실수의 맥락이 만들어졌다면 빨리 돌려서 전체에 대한 통찰을 하는 게 중요하다. 특
정 장면에서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면 줌인할 수 있고, 숲을 못봤기에 생긴 실수라면 줌아웃을 할 수 있다.
독서와 실수... 이번에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재료들을 머릿속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 창의성은 무의식의 힘에 크게 의존하
므로, 무의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화하여 넣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창의성은 재료만 많이 넣는다고 되는 개 아니다. 실제로 만들어보는 것를 많이 해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직접 만들어보는 것을 쉽게 할 수 없다.
내가 광고를 만든다? 내가 자동차를 만든다. 글쎄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설령 그걸 한다해도 많이 만들어볼 수는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상상속에서 만들어보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한 번 만들어보는 것도 어려운 경우에도 상상에서는 수백 수천
번을 만들 수 있다.
내 앞에 어떤 버스가 지나간다. 이때 담쟁이 식물로 버스 외벽을 덮은 뒤 온갖 화사한 꽃들을 심어 피우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1~2초면 충분할 것이다. 실제로 하는 게 아니라 상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재료를 수집한 것이 아니다. 이건 만들어본 것이다. 상상속에서 디자인해본 것이다.
창의성은 그런 디자인 경험들을 수없이 해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시간이 매우 적게 걸리기 때문에 많이 할 수 있다.
방금 본 광고를 보고, 그 광고를 만드는 팀장이 나라면 이걸 어떻게 바꿔 디자인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속에서 만들어서 플레이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이 역시 상상속에서는 쉽게 할 수 있으며,
광고 디자인 경험이 1회 늘어난 것이 된다.
어느 맑은 날 밤에 별을 보고 있다. 이때 꼭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별들을 회전시킬 필요는 없다.
상상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회전축이 갑자기 바뀌어서 내가 콕 집은 저 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모습
일까, 그 동적 이미지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는 지구를 디자인해본 셈이다.
이러한 상상들을 할 때에 도구가 되는 것이 바로 영화 등에서 보여주는 CG를 비롯한 특수효과이다.
아파트 10층에 산다고 해보자. 베란다에 차가 주차되어 있다. 드론이다! 드론이 자가용이 된 시대에 도로는
어떻게 디자인하면 좋을까? 공중도로와 지상도로 상상으로 디자인해볼 수 있다.
영화에서 본 장면을 그 상상의 재료로 활용해도 좋다. 소음 문제랄지, 유동인구랄지, 건물의 가격 문제랄지
이런 미래적이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그 상상속에서 고민해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것은 침수림이다. 아마존의 물이 불어나 숲이 물에 잠겨버렸다.
이때 물고기는 마치 드론과 유사하다. 지상의 세계였던 숲이 공중의 세계로 변한 것이다.
잡스런 공상과 실용적인 상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 생각에 이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다양성이다.
매번 상상이 비슷비슷하면 그건 별 효과가 없다. 창의성과 상상력은 획일적인 양에 비례하는 개 아니라,
다양성의 양에 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상상들이 잔뜩인 이유는 뭔가 응어리진 감정 때문일 수
있다. 질릴 법도 한데 또 그러는 것은 무언가 이에 기름을 계속 붓는 외부적인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이란 건 초능력이 아니다. 없던게 갑자기 뚝 떨어지는게 아니다. 이것도 다른 능력과 마찬가지로 많이
해봐야 실력이 느는 것이다. 그저 보기만 한 창의성보다, 스스로 디자인해본 창의성이 실력을 키우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영화를 보는 사람은 많지만,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은 이유 중
하나이다.
그저 보기만 하는 걸론 부족하다. 스스로 디자인해봐야 한다. 그런 경험이 무수히 쌓여야 높은 창의성이
생길 수 있다. 현실에서는 제약이 많아 해보기 힘들지라도, 상상속에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영화 등에서 보여주는 특수효과이다. 내 상상에 줌인도 하고 배속으로도 돌려보고,
CG처리도 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들은 상상의 다양성을 높여줄 것이다.
이건 단지 재미로만 하는 게 아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는 몰라도, 그것들은 내 지적재산이 되어 창의성을
높여줄 것이다.
자유로운 창의, 그러나 이것만은...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될 거야. 창의적이려면, 자유로워야 해. 내가 관심가는 것, 자유롭게 할 거야!
좋다. 창의성은 자율성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자유로운 거... 뭐 좋다. 그러나 다만 이것만은 필요하다.
그건 바로...
난이도이다. 무엇을 하든 좋으나, 항상 난이도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 쉽게 쉽게 하고 마는 식이 계속
되는 것... 그것만큼은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어려운 것에 계속하여 도전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난이도를 올리든지 그건 자유다. 새로운 시도를 하든... 속도를 높이든... 정교함을 높이든...
완성도를 높이든... 고의로 핸디캡을 주든... 새로운 도구를 익히든... 기초실력을 완벽히 하든... 거친 환경에
뛰어들든...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꺼이 어려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한계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것을 회피하고, 쉬운 것... 하던 것만을 택하는 건 자유가 아니다.
창의성을 위해 자율성이 필요하다지만, 그런 회피성 자유까지 허락되는 건 아니다.
회피성 자유는 실력이 늘지 않게 만들고, 열정이 식게 만든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머물게 될 것이다.
원래 창의성의 영역이란 것이 이도저도 아닌 사람에게 가혹하다.
생산성의 영역에서는 이도저도 아니어도, 왠만큼은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창의성의 영역에서는 이도저도
아니면,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어려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어려운 것을 즐겨야 한다. 나아가 어려운 것에 중독되어야 한다.
창의사색 : 다양성의 연못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중
보어가 다시 말을 받았다.
" ~ 당신은 공자의 격언이라는 실러의 시를 알고 있으며, 특히 내가 그 가운데서 '충만만이 명석에 통할
수 있으며, 심연 속에 바로 진리가 숨어 있다.'는 구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충만'이란 경험의 충만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어떤 현상을 말할 때
사용하는 여러 종류의 다른 개념들의 충만도 뜻하고 있습니다.
양자이론의 형식적인 법칙과 관찰된 현상들 사이의 특이한 관계에 대하여 항상 여러 종류의 개념을 사용
하여 반복해서 논하고, 그것을 모든 측면에서 고찰하고, 그래서 외견상의 내부 모순을 인지하게 될 때 비로소
양자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전제가 되는 사고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빈치노트
'충만만이 명석에 통할 수 있으며, 심연 속에 바로 진리가 숨어 있다.'
인상깊은 말이다. .
이 말은 이렇게 바꿔볼 수 있을듯 하다.
'다양성의 충만만이 명석에 통할 수 있으며, 심연의 질서 사이에 바로 진리가 숨어 있다.'
다 똑같은 것만 잔뜩 넣는다고 충만인가?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획일성은 1 + 1 = 1 이다.
다양성은 1 + 1 = 3 이다. 획일성의 충만이 아니라 다양성의 충만이어야 한다.
"어떤 현상을 말할 때 사용하는 여러 종류의 다른 개념들의 충만도 뜻하고 있습니다."
보어의 이 말은 다양성을 뜻한다. 개념도 이론도 다양성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
그것들이 모두 무질서하게 있어도 그 속에 진리가 숨어 있을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보어가 말했듯
경험뿐 아니라 개념의 충만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경험이란 것조차도 어떤 식으로든 이론을 내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서를 뜻하는 여러 단어가 있다. 일반화, 추상화, 본질, 패턴, 범주화, 체계화, 조직화, 조화, 패러다임,
무모순, 정합성 등이다. 심연은 질서를 필요로 한다. 다양한 질서를 필요로 한다.
충만한 경험이 관찰과 사색을 통해 질서가 되고, 다양한 질서는 경험을 더욱 충만하게 만든다.
다양한 질서 사이에 숨겨진 진리가 있다. 그 진리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고, 그 새로운 질서와 기존의
질서 사이에 숨겨진 또다른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학자만 찾는 것일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연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사회의 연못을
이룬다. 각자의 연못은 각자가 채우는 것이고, 사회의 연못은 우리 모두가 함께 채우는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은 스스로 무언가를 새롭게 더할 수 있다. 연결을 통해 사회의 연못을 충만하게 한다.
다양하게 만들고, 풍요롭게 만든다. 그러나 주입된 개인은 아무 것도 더할 수 없다. 사회의 연못을 사용할뿐,
기여하지 못한다. 획일성과 주입식은 연못을 궁핍하게 만든다. 다양성과 자율성은 연못을 풍요롭게 만든다.
누구나 관찰을 통해 연못을 충만하게 하고, 누구나 사색을 통해 연못에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누구나 통찰을 통해 그 충만한 연못의 질서 사이 무언가를 새롭게 보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실천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바로... 메모이다. 새로운 무언가가 눈 또는 머리를 스쳐가면 곧바로
메모를 하는 것, 이는 다양성의 연못을 만드는 매우 강력한 방법이다.
빈치노트
'다양성의 충만만이 명석에 통할 수 있으며, 심연의 질서 사이에 바로 진리가 숨어 있다.'
규칙을 이해하는 특별한 방법
보통의 경우 어떤 복잡한 규칙이 있으면, 그걸 논리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러나 복잡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규칙을 가지고 상상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상상속에서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논리로는 이해를
못했어도, 직관의 힘을 빌려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그 규칙을 잘 기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직접 해보면서 규칙을 익히는 것도 좋지만, 여건상 그러지 못하는 경우에는 상상속에서 가상의 조건을
두고 해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직관은 감정, 습관, 응용, 창의와의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는 또 다른 장점도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상상력이 부족하다. 상상력을 따로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그런 것 가르치지 않는다. 상상이란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언어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아서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개척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미래에는 기술개발에 힘입어, 인간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들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있다. 증강현실을 이용한 게임
이다.
증강현실은 교육의 수단으로서 가치도 크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수많은 것들은 이런 특성이 있다.
무언가를 가지고 만든 것, 그것은 무언가를 다시 자극한다는 특성이다.
원인이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을 자극하는 것이다.
증강현실을 만드려면,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 증강현실은 다시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규칙을 증강현실로써 보여주는 것도 나오게 될 것이다. 기술개발에 힘입어
다양한 규칙들이 상상력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다양성과 확률의 시간
확률의 시간
중고등학교 때 배운 확률은 대부분 시간이란 관념이 없었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확률이나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낼 때의 확률에 있어서 시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문제들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건강, 안전, 보험 이런 것은 다치게 될 확률이 중요
한데, 시간과 관련있다. 주식도 시간이 중요한 확률이다.
어떤 연예인이 뜰 수 있는지도 시간에 관한 확률이다.
확률에 있어 시간은 기회라 할 수 있다. 기회가 한 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여러 번 주어질 수
있다. 지진이 날 기회? 시간에 따라 주어진다. 그러니 지진이 날 확률에 있어 시간은 중요하다.
일상에서 우리가 확률을 일일이 계산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확률에 대한 직관을 갖는 게 좋다.
직관은 짧은 시간 안에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데, 사람들은 일상에서 대부분 이 확률적인 감... 직관을
가지고 판단한다. 따라서 직관의 정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시간에 관한 확률 직관을 높이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간단한 경우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직관으로 판단할 때는
대강만 맞으면 된다. 빠른 속도로 가까운 값을 떠올리면 된다.
자... 1초마다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1%라고 해보자.
1분안에 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45%이다.
10분안에 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99.8%이다.
1초에 1%이면,
1분에 45%,
10분에는 99.8%가 된다.
그러니 시간과 기회가 확률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적은 확률이라도 기회가 많으면, 결국 높은 확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한 대표적인 책이 있다.
<블랙스완>이다.
블랙스완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견한 책인데, 나는 그 본질이 확률과 기회라는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블랙스완은 아주 적은 확률을 의미한다. 심지어 경험상으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을 수도
있다. 흰 백조만 알던 때에, 검은 백조를 만날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험에 의해 축적된 100%는 실은 100%가 아니다. 구슬이 든 어느 주머니에서 1만 번을
꺼냈더니 모두 흰 구슬이더라! 그래도 주머니에서 또 꺼냈을 때 흰 구슬의 확률은 100%가 아니다.
이제까지 부동산 거품이 터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더라도, 거품 터질 확률이 0%인 건 아니다.
이렇게 블랙스완... 낮은 확률도 시간과 기회를 만나면 높은 확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나타났을 때에는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60년 동안 핵전쟁이 단 한 번도 안 일어났어도, 국제 정세의 변화로 1일안에 핵전쟁이 터질 확률이 단 1%만
생겨도, 60일이면 45%에 이르게 될 것이다.
블랙스완은 매우 낮은 확률로 나타난다.
그리고 막대한 피해를 준다. 이와 반대로 막대한 이익을 줄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은 강남스타일의 성공 이유를 싸이 내부에서 찾곤 한다. 그러나 이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확률로 생각
해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시간에 따른 확률은 아니다. 시간은 아니지만, 기회인 것은 맞다. 유투브라는 막대한 이익을
줄 수 있는 채널과 연결되어, 우리나라에서 많은 음악이 쏟아져 나오면, 그것이 곧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있다. '많은 음악'이다. 많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그건 다양성을 의미한다. 획일화된 음악은 아무리 많이 나오더라도 하나일뿐이다. 다양한 음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는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가, 그 점이 블랙스완에 있어 중요하다.
다양성의 확률
시간이 기회를 늘려주어 1%를 45%로 99.8%로 늘려주었듯, 다양성도 기회를 늘려주어 그와 같이 확률을
높여줄 수 있다.
획일성은 1%가 600번이면, 여전히 1%일 뿐이지만, 다양성은 1%가 600번이면, 99.8%까지 치솟을 수 있다.
나는 아이디어도 이와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아이디어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대단한 것일
확률은 매우 낮더라도, 그것이 다양하게 축적이 되면 확률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개인이 아이디어를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하면서 축적하는 경우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말을 많이 했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느냐도 아니다.
중요한 건 다양성이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온 것들의 다양성,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가.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획일적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그 실질은 하나에 불과하다.
유사하다면 어떨까? 유사해도 다양성에 기여하기는 한다. 아주 조금 기여한다.
비유사할 수록, 이질적일 수록 다양성에 더 크게 기여하는 법이다.
요즘 한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외국인 중에 시카고대학 출신의 미국인 타일러씨가 있다.
(어색하니 이하 타일러라 해보겠다.)
내 생각은 그렇다. 타일러처럼 머리가 좋은 한국인이 있다고 해보자. 그러나 타일러와 그 한국인은 출신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때문에 그 똑똑힌 한국인보다 타일러씨가 한국인들이 모인 토론에 참여했을 때 다양성이 훨씬 더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가치관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
다양성은 가치관이다. 창조와 풍요의 원천이 되는 가치관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다양성이면 다 좋은 것인가? 경험한 것에 비추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치관을 유전자에 비유하자면, 다양성이란 유전자를 가진 생물이 허약한 경우도 있다.
왜 그런걸까?
또 다른 유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란 유전자는 두 개의 다른 유전자와 협력할 때,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자율성과 연결성이다. 다양성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율성과 연결성
우선 자율성. 싸이로 돌아가보자. 싸이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똘끼이다.
남들따라 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과감히 하겠다는 것. 그것을 똘끼라 해석할 수 있다.
그건 곧 자율성을 의미한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성이 풍부해지려면 필요한 것, 그것은 각자의 자율성
이다. 자율성이 높은 사람이 들어와야 다양성에 더욱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연결성. 연결성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물리적인 연결일 수도, 법적인 연결일 수도 있다.
예를들어 콜럼버스로 인해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가 열린 것은 물리적인 연결이다.
예를들어 자유무역을 하게 된 것은 법적인 연결이다.
그리고 심리적인 연결이 있다. 심리적인 연결에 있어 중요한 하나는 소통이다.
다양성인데도 불구하고 허약한 것은 이 소통의 문제 때문일 수 있다.
다양성이란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특히 이런 경향이 큰데, 다양성 즉 다르다는 것이 적대감을 일으
키는 것이다. 그 결과 소통을 비롯한 심리적인 연결이 좌절되는 경우... 바로 그것이 다양성이 흥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연결되지 못한 다양성은 진정한 다양성이 아니다. 그건 물리적인 연결, 법적인 연결,
심리적인 연결 모두 마찬가지다.
캔버스의 다양성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보자. 다양한 물감을 가지고 있다. 그 물감들은 캔버스를 통해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예술적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캔버스에는 오로지 하나의 물감만을 써야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다양한 물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연결되지 못할 것이다. 캔버스에는 다양성이 결여되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다양성이라 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다양성은 연결성, 자율성과 한 세트로 봐야 한다. 그래야 그곳에서 창조도 나오고 풍요도 나오고...
블랙스완도 나오는 법이다.
타일러가 한국인들의 토론에 다양성의 기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타일러는 한국말을 매우 잘하기 때문이다.
즉 다양성뿐만 아니라 연결성도 갖고 있기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다면,
결국 캔버스에 쓰이지 못한 물감처럼 진정한 다양성을 공급해주지 못할 것이다.
다양성과 연결성은 인간이라는 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심장, 간, 폐, 콩팥 등 인체에 다양한 장기가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핏줄이 막혀버리면, 무용지물 아니던가. 연결성이 결여된 다양성은 진정한 다양성이 아닌
것이다,
다양한 정치인들이 국회에 모여 토론을 하더라도? 연결되지 못하면 다양성은 없는 것이다.
입을 막거나 귀를 닫는다면,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것과 다를바 없이, 연결이 차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대로 발언하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치를 보거나 외부적인 압력에 의해 말하고
행동하면 자율성이 결여된 것이니 이 역시 진정한 다양성은 공급해주지 못할 것이다.
이는 국회뿐만이 아니다. 다양성, 자율성, 연결성의 반대되는 말은 획일성, 강제성, 폐쇄성, 권위주의,
주입식 교육 이런 것들이다.
이는 국회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기업에서도 가정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유는 가치관이란 유전자는 담장을 넘는 데 매우 능숙하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연결성의 조화
탐사로봇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날려보냈다. 이 로봇은 수십 년을 날아가 어느 행성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 행성을 지배하는 외계 생명체를 만나게 되었다.
로봇에는 카메라가 있었는데, 행성의 모래바람에 고장이 났다.
이 카메라는 고장이 나기 전, 생명체의 모습을 담은 두 장의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그 듣도보도 못한 생명체의 실체를 보다 잘 알기 위해서는 그 두 장의 사진이 같은 곳에서 같은 방향
으로 찍은 사진이면 곤란할 것이다. 즉 다른 각도에서 찍은 두 장이어야 실체를 보다 잘 알 수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외계인이 지구에 탐사로봇을 보냈는데, 돼지 궁둥이만 두 장 찍었다면 곤란할 것이다.
두 장을 찍는다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찍어야 전체로서 가치가 더욱 커진다.
한 각도에서 찍은 두 장의 사진은 사실 한 장의 값어치에 불과하다. 이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다양성은 획일성보다 우월하다!
사람의 두 눈도 이와 유사하다. 만약 두 눈이 서로 붙어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사람은 원근감을 느끼는 데
어려움이 클 것이다. 사실상 눈이 하나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눈이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있기에, 시선의 각도가 다양해지고 그로인해 가치가 커진 것이다.
이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카메라를 지지하는 삼각대가 있다고 해보자.
이 삼각대의 세 다리를 거의 똑같은 위치에 세운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삼각대는 쉽게 쓰러지고 말 것이다.
어느 정도 간격이 있기에 안정성을 갖출 수 있다. 다리 위치의 다양성이 안정성이란 가치를 높인 것이다.
헌데 여기서 이런 물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다리를 더욱 넓게 벌리면 어떠한가?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연결성이다. 삼각대의 다리를 너무 벌리면 주저 앉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잡아 뜯으면 세 다리가 연결되지 못한다. 연결되지 못하면 다양성의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다양성이란 연결성으로 인해 가치가 발휘되는 법이다. 두 눈을 우리 두뇌가 통합해서 인지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연결성이다. 두 장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두 장을 모두 갖고 있기에 그 다양성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어떤 팀이 있는데 사람들 각자 고유의 재능이 있다.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이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소통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다면, 다양성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민자 문제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 다양한 경험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 좋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연결성을 해치는 거라면 좋다고 보기 곤란하다. 다양성의 가치는 연결되어야 진정 발휘
되는 법이다. 이건 마치 뱁새가 걷는 것과 비슷하다. 보폭을 늘리는 것... 뭐 좋다. 그러나 다리가 찢어지면
곤란한 것 아니겠는가.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우호적인 가치관을 갖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연결성이 강화될 수 있고,
그래야 더욱 다양성을 포용할 힘이 생긴다. 뱁새가 황새가 되기 위해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필요한 것
이다.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은 그런 의미에서 가치가 크다 할 수 있다.
외국인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이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외국인으로인해 우리 사회가 더욱 이로워진다는 인식이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다양성이다.
내 생각은 한류 문화의 효과도 이런 부분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연결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다른 문화, 한국 문화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이 생기게 한다.
한 세트로 생각하는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있다.
다양성, 자율성, 연결성이다.
이 세 가지 가치관은 여러 루트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한 세트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다양성은 연결성이 뒷받침되어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헌데 이런 것도 있다.
다양성이 연결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고려시대 개성상인이라 해보자.
중국의 물품과 고려의 물품이 완전히 동일하다면, 교역을 하고자 하는 동기는 매우 약해질 것이다.
중국의 물건과 고려의 물건이 다르다면, 그러면 이 두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 활발히 배를 타고 오가게 될
것이다. 다양성을 연결함으로써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인은 자신이 중국에서 보고 들은 것을 고려에 이야기해준다. 간 김에 서책도 가져올 수 있다.
그 상인은 중국인들에게 고려인에 대한 인식을 만들기도 한다. 이로인해 정신적으로도 연결성이 강화되고,
이로인해 고려의 다양성은 더욱 높아진다.
중국뿐 아니라 아랍에 간다고 해보자. 그러면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요즘 임진왜란 1592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점에서 서술한 이야기도 방송되었는데,
네덜란드 상인과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고, 그걸로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군자금을 댈 수 있었다 말한다.
일본과 유럽의 교역... 그런게 바로 다양성과 연결성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일본과 유럽은 다르다.
그러나 다르기만 한 걸로는 힘이 발휘되지 못한다. 다르기 때문에 교역의 동기부여가 생기고, 교역을 통해
연결되어 다양성이 힘을 발휘한다. 일본과 네덜란드의 물건이 다를바 없었다면, 그 먼 곳에서 위험을 무릅
쓰고 일본까지 올 이유도 없고, 조총 기술을 전해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다양성과 연결성, 둘 다 있어야만 한다. 만약에 다양성을 늘리는 것이 연결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난
다면 어떨까. 연결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다양성을 줄이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중용이 답일 것이다. 그 중간 어딘가에 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다양성과 연결성이 조화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간은 어떤 부분은 비슷하고, 어떤 부분은 많이 달라서, 전체적으로 중간인 것도 포함한다.
최근 창업가 출신의 어느 정치인의 강연을 본 적이 있다. 그분은 창업을 하려면 팀이 필요하고, 팀은 능력이
다양하고, 성격이 다양한 게 좋으나, 가치관은 같아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같은 가치관이 연결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부분적인 다양성,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중용인 조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직관의 연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두 눈을 사용한다. 각각의 눈에는 각기 다른 뇌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양뇌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때, 두 가지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하나는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직관이다.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을 탐구할 때, 이론과 실재를 모두 살펴야 한다.
이는 물리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물리를 배운다고 하면, 이론적 지식을 떠올리기 쉽다.
공식을 외우고 숫자를 대입해 문제를 푸는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는 한 쪽 눈에 불과하다.
그건 언어이지, 직관이 아니다. 그건 이론이지 실제가 아니다. 두 눈으로 보아야 진정한 이해에 다다를 수
있다.
헌데 이런 게 있다. 우리의 직관력이란 게, 흔히 생각하는 고정관념과 달리, 피드백이 단순해야 그 능력을
키우기가 좋다. 아무리 복잡해도 일단 머릿속에 넣어주면 알아서 분석해준다? 그런 초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직관력은 단순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헌데 우리가 물리를 배운다고 해보자. 역학을 배운다. 물체의 움직임과 힘, 가속도, 에너지... 뭐 이런 걸
배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현실에서 물리 현상은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두 가지 원인이 있으니, 하나는 중력이요,
다른 하나는 공기 저항이다.
우리가 물리를 배울 때의 초기 조건과는 다른 환경이다. 사람은 중력과 공기가 있는 곳에서 거의 모든 피드
백을 받으며 직관력을 발달시켜왔다. 그래서 무중력의 진공 상태의 순수한 물리적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떠올리는데 어려움이 있다.
중고등학교 물리 수업시간에는 교실을 무중력의 진공 상태로 만들면 좋으려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그 대신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게 있다.
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공기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진공에 대한 경험도 없다.
그래서 진공과 공기를 구별하기 힘들다.
그러나 공기와 물은 구별할 수 있다. 특히 수영을 배웠다면, 물의 저항에 대한 직관적 경험이 풍부할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물 속에서의 물리적 움직임을 떠올릴 수 있다. 물 속에서는 공기 속에서보다 저항이 심하며,
중력이 덜 느껴진다. 이러한 차이점을 이용하여 무중력의 진공 상태의 물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
을 받을 수 있다.
수치로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이런 거다.
진공, 즉 0에 대한 직관은 없다.
공기, 즉 -1에 대한 직관이 대부분이다.
물, 즉 -2에 대한 직관은 좀 있다.
그러면 -1과 -2를 통해 0에 대한 직관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1과 -2의 차이를 0과 -1의 차이로 이해하기 위한 연산을 해야 하는데, 이건 계산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상상으로 해야 한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을 통해 두 개의 직관을 연산하여 새로운 직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물리만이 아니다. 세상 어떤 것에도 직관을 상상력을 통해 연산하여 새로운 직관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리가 있다. 요리에는 각종 식재료와 양념들이 들어가고, 온도나 수분 같은 요소들도 중요하다.
즉 요리는 복잡하다. 보통 사람이 그저 먹고 맛있는지를 평가하는 건 단순할 지 몰라도, 요리를 깊이 이해
하기 위해서는 그 세세한 것들을 알아야 하는데 너무 많은 요소들이 얽혀 있다보니, 피드백이 복잡하다.
그래서 쓰는 방법이 있다. 식재료 하나하나를 먹어보는 것이다. 오이면 오이, 두부면 두부, 소금이면 소금...
개개의 식재료의 맛을 주의깊게 살피고, 이 단순한 피드백을 통해 직관력을 축적하는 것이다.
여러 식재료를 가지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요리는 복잡하지만, 개개의 식재료는 단순하다.
단순한 직관을 축적하고, 이를 상상력을 통해 연산하면 요리에 대한 직관력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운동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말에는 이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기본기를 훈련하는
것은 단순하다. 단순한 피드백을 통해 기본이 되는 기술을 정확하게 섬세하게 혹은 강력하게 만들어나간다.
기본기들을 축적하면 이에 따라 직관들이 만들어진다. 그 시각적인 직관들, 운동감각적인 직관들이 만들어
진다. 그러면 그걸 가지고 연산하여 보다 복잡한 운동을 잘해낼 수 있게 된다.
축구 경기하는데 계산기 들고 뛰어야 하는 건 아니다. 직관의 연산, 이건 상상력으로 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자동으로 연산해주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의식적인 노력을 하면 이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물리, 요리, 축구만 그런 건가? 춤도 마찬가지요, 그림도 마찬가지요,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발명이나 협상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단순한 피드백을 통해, 기초가 되는 것들에 대한 직관을 축적해야 한다.
그런 직관들을 연산해서 복잡한 것을 더욱 능숙하게 해내는데 필요한 새로운 직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무언가를 능숙하게 잘 해내는 효과만 있는 게 아니라, 중요한 또 다른 효과가 있다.
그건 바로... 창의력이다.
기초적인 직관들을 축적하고, 이를 연산할 수 있게 되면, 창의력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원래 인간의 두뇌가 이렇게 작동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맨 땅에서 창의력이 나오는 게
아니다. 도구와 재료가 있어야 한다. 그 도구와 재료 중 상당수는 직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직관은 단순한 피드백을 통해 기초적인 것들부터 차곡차곡 누적시켜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그걸 연산하면 된다.
직관을 연산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인 것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은 바로... 비유이다.
비유란 것이 원래 직관의 연산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그래서 그에 대한 직관은 이미 많이 있는 것에
비유를 하면, 그 직관들을 새로운 생각이나 표현에 이용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직관의 연산을 해야한다.
비유뿐 아니라 어떤 것이든 좋다. 직관의 연산을 많이 해보는 것, 그것이 무언가를 숙달하거나 무언가를
창조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직관의 연산 능력은 탈영역적인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음악을 통해 얻은 직관의 연산력이 물리적인 상상력과
창의성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음악은 가볍게 듣기에는 단순하다. 그냥 듣고 좋은지 안 좋은지 그런 기분만 느끼면 된다.
그러나 주의깊게 들으려 한다거나, 혹은 직접 연주해야 한다면 복잡하다. 이를 해내려면 기초적인 직관이
축적되어야 하며, 그 직관들은 연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음악이 직관의 연산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가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요리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리거나 주의깊게 감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직관의 연산력은 탈영역적인 부분이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로부터 직관의 연산력을 키우는 것은 이런 효과도 있다.
그건 바로... 직관의 재료이다. 특정 분야에서 만들어진 직관이 탈영역적으로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직관을
연산하는데 재료로 쓰일 수 있다.
이 때 재료를 영감이라 말하기도 한다. 눈으로 보고 얻은 시각적인 직관이 음악의 영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 두뇌는 호텔처럼 방마다 딱딱 문으로 닫혀 폐쇄적인 그런 공간이 아니다.
우리 두뇌는 네트워크이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 두뇌는 경영학, 경제학, 인문학, 공학, 물리학,
생물학... 이런 식으로 방 이름이 붙어 문으로 개폐하는 그런 구조가 아니란 것이다.
본디 두뇌는 탈영역적이다.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다만 범주화라는 특성도 함께 갖고 있는데,
이질적인 범주가 서로 연결되어 어떤 연산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이 친구가 되거나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듯 말이다.
직관의 연산을 학교에서 가르쳐주진 않는다. 직장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이건 스스로 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자연히 이뤄지는 부분도 있지만, 직관을 이해하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더욱 잘 해낼 수 있다.
야구도 그렇지 않던가. 공을 그냥 던져도 어느 정도 던질 수 있지만, 야구를 배우고 의식적으로 투구폼을
가다듬으면 더욱 잘 던질 수 있게 되는데, 직관의 연산이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단순한 피드백을 통해 기초적인 직관을 축적해보자. 질좋은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는 관찰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비유든 음악이든 요리든 그림이든... 직관의 연산을 풍부히 해볼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직접 만들어보거나 주의깊게 감상해보자. 직관의 연산은 탈영역적인 특성이 있어, 다른 분야에
있어서의 창의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직관의 연산은 탈영역적인 특성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특정 분야에서만 그게
잘 되는 것 같고, 나머지 분야에서는 영 잘 안 되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잘하고 싶은 분야를 잘하는 분야에 비유하면 된다. 나는 음식에 대해서는 직관력이 뛰어난 것
같다면... 책 읽는 것은 요리를 맛보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잘 알 거나 잘 하는 분야는 비유로서 가치가 크다.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예전 K팝스타를 보면 YG 양현석 씨가 노래를 음식에 비유하여 심사평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심사평뿐 아니라 평소에도 어떤 노래가 잘 될지를 판단하거나,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사용해왔을 거라 생각한다. 음식과 노래는 감각이 얽히고 감정이 얽혀 어떤 통합된 느낌을 만들
어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에 이러한 비유가 효용성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잘 알고 있는 분야의 직관을 비유를 통해 잘 알고 싶은 분야에 이용하는 방법, 이는 활용 가치가 상당히
크다.
난 요즘 인간의 일상적인 혼합 감정을 요리에 비유해보곤 한다.
내가 느끼기엔 도덕 감정도 요리와 상당히 유사한듯 하다. 이를 테면 비린 맛에 비유할 수 있다.
자기 자랑에는 비린 맛이 난다. 요리에는 비린 맛을 잡을 여러 방법이 있다.
향신료를 뿌려 비린 맛을 잡는다고 해보자. 이건 마치... 나 이런 좋은 일이 있으니 한 턱 쏠게! 하면서
타인을 즐겁게 하며, 또는 이롭게 하며, 자기 자랑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남에게 베풀면서 자랑하는 것이기에 비린 맛을 잡아줄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