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5일 수요일
비행운
김미순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非幸運) 을 읽었다. 한편 한편 모두 속상하고 막막한 삶이, 읽는 나에게 처참한 느낌을 주었다. 끝으로 갈수록 볼행하게 전개될 것 같은 불안감을 갖고 읽었다. 현실에서 안주할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이들이 펼쳐가는 일상이 참으로 아프고 내일을 꿈꾸지 못하는 암담함이 나를 끝내 눈물짓게 한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의 택시 기사 용대는 어려서부터 주위의 홀대를 받았고, 하는 일마다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비행운(非幸運)의 인물로 형상화된다. 그나마 자신의 생에서 가장 해운의 시기로 기억될 명화와의 만남은 너무나 안타깝게도 짧기만 했다. 서른일곱에 만난 조선족 여성 명화는 그와 결혼하여 함께 행복을 일구어나가는 듯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위암 진단을 받아 투병하다 이내 생에서 육신을 거두어 간다. 둘은 함께 '기회의 땅' 으로 여겨지는 중국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 했다. 용대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다. 용대가 기초 중국어를 익히기도 전에 그러니까 함께 탈 비행기 근처에도 가기도 전에, '비행운 (飛行雲)의 꿈' 은 추락하고 만다.
여기서 그가 마지막까지 웅얼대는 중국어 회화 대사가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 "여기서 멉니까?" 라는 것은 재삼 눈길을 끈다. 어려서부터 행운이 따라주지 않던 용대는 아직 지상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비행운의 인물인 것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얼마나 먼지 알지 못하기에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니까, 그것은 단순한 중국어 회화가 아니라, 매우 간절한 실존적 소망의 질문에 속한다.
<벌레들> 의 주인공은 전세금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제개발 지구로 전세를 얻어 들어간다. 이제까지 살던 집 중에서 가장 넓고 환한 집이어서 더욱 행복할 수 있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아랫쪽 제건축 구역에서 베어낸 오래된 나무에서 기어 나오는 무수한 벌레들의 침입으로 그녀는 무척 곤혹스러워 한다. 벌레와의 전쟁으로 허둥대던 순간 수납장 위의 반지 케이스에 담겨 있던 결혼 반지가 창밖 절벽 아래 공사장으로 떨어진다. 당황한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하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직접 만삭의 몸으로 절벽 아래 공사장으로 내려가서 반지를 찾으려 하지만 그만 양수가 터져 아무도 도와 줄 이 없는 공사장 돌무덤 위에서 고립 상태로 출산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싼 전세를 얻은 것은 얼마간 행운이었지만, 그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비행운의 연쇄를 부르는 행운이었던 셈이다.
자연 상태에서 고립이 절정에 이른작품이 <물속 골리앗> 이다. 20년 전부터 살아운 아파트의 담보 대출을 다 갚았을 즈음 재건축을 위한 철거 명령이 내려진다. 그때 느닷없이 진짜 주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와중에 아버지는 40마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하여 사망한다. 사건은 실족사로 처리되었지만, 이 사고는 썩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다른 주민들은 모두 이주를 마치고, 갈 곳 없는 주인공네만 홀로 남겨졌다. 예정대로 단전, 단수 조치가 취해진다. 그리고 엄청난 큰물이 진다. 길이 끊기고 학교도 갈 수 없다. 아파트 소유권을 빼앗긴 사회경제적 인재(人災)로 고립되었던 주인공네는 설상가상 홍수라는 수재(水災) 로 고립이 가중된다. 고립을 가중시키는 자연에 대해 사춘기 소년이 느끼는 감각은 회의도 반성도 없는 무책임한 자연성 앞에서 어린 주인공은 속절없이 타자화 되고 만다. 피동성의 수인이 된 채 몽상의 판타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당뇨를 알던 어머니가 약이 다 떨어져 그만 절멸하고 만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는데, 얼마 안되어 이제 어머니의 죽음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고립된 상황에서, 어린 주인공이 홀로 두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어쨌든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막막하기 그지 없다. "사람들이 우릴 잊은 게 이릴까?" 불안의 늪은 깊어만 간다. 할 수 없이 나무 문짝으로 간이배를 만들고 어머니 시신을 거기에 때워 탈출을 시도한다. 물 위에서 허기를 때우려고 먹을 거리와 사투를 벌이다가 그만 어머니의 시신을 놓치고 만다. 얼마 후 다시 정자나무 뿌리에 단단히 묶인 채 부유하는 어머니 시신을 발견하지만 인양에 실패한다. 날이 저물자 무시무시한 어둠 속에서 물 위로 솟아 있는 타워크레인에 매달리게 된다. 살려달라는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나는 우주의 고아처럼 어둠 속에서 홀로 버려져 있었다" 고립감의 절정에서 아득한 광장 공포,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 앉아있는 환각을 본다. 앞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고립의 절정에서 그럼에도 그는 "누군가 올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고공의 칼바람을 견딘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아파트 앞의 고목과 물속 철골 나무다.
태풍에 몸을 맡긴 채 쉴 새멊이 흔들리는 고목, 나무는 대낮에도 거은 실루엣을 드리우며 서 있었다. 이국의 신처럼 여러 개의 팔을 뻗은 채, 두눈을 감고 ㆍㆍㆍ그것은 동쪽으로 누웠다 서쪽으로 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포식자를 피하는 물고기떼처럼 쏴아아 움직였다. ~~ 고목은 장마 내 몸을 틀었다. 끌려가는 건지 버티려는 건지 모를 몸짓이었다. 뿌리가 있는 것은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순응과 저항사이의 미묘한 춤을 췄다. 그것은 백년 전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물에 잠겨 크기를 가늘하기 어려웠지만 가로로 뻗은 커다란 철골의 길이로 보아 대부분 골리앗코레인이 틀림없었다. ~~ 자연재해와 인재를 중점적으로 경험하면서 살아남는 문제의식을 환기한다. .
<서른> 이 살아남는다는 운멍적 과제와 맞씨름하는 또다른 모습을 확인한다. 대학을 재수하면서 간다.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네명이 함께 생활하는 고시촌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강수인, 여섯번의 이사와 손에 꼽기도 모자랄 만큼 많은 아르바이트, 급기야 다단계에 몸담다 겨우 빠져나왔을 때 벌써 서른이 되어있었다. 구인과 해고를 반복하면서 이전에도 채무자, 지금도 채무자, 라고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이밖에도 <큐티클> , <너의 여름은 머떠니>. <하루의 축>, <호텔 나약 따> 에서도 비행운(非幸運) 에 점철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 사이의 속절없는 거리에서, 작가 김애란은 우리 사회의 의심장한 서사 단츠믈 마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그물을 짠다. 비행운 (飛行雲) 구름 그림자에 가려진 비행운 (非幸運) 의 속사연을 웅숭깊게 펼친다.
* '김영하' 나 '김훈' , '김형수'에 못지 않게 내가 관심있게 주목한 작가가 김애란이다. 다음에도 김애란의 나머지 소설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