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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이 홍사
모니터에 ‘자귀나무’라고 쳐놓고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자귀나무
노트북 모니터의 고유명사 뒤에 커서가 껌뻑거리며 무엇을 달아서 쳐서 넣으라고 성급하게 조르는 것 같다.
창밖의 빗방울은 제법 굵어졌다.
어지간히 더웠는데 이번 비가 지나가면 날씨가 좀 시원해지겠지.
오늘밤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일찍 시작된 셈이다. 중기 임대업을 하다보면 비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효자노릇을 하는 효자비와 일을 그르치는 깽판비, 이렇게 분류하는데 오늘은 효자비다. 같은 비인데도 효자비와 깽판비로 분류되는 것은 비가 시작되는 시간대에 따라서 다르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가 좀 넘었다. 이 시간에 비가 시작되면 작업이 중단되더라도 임대료를 하루치 다 쳐서 받는다. 그러니 효자비다. 그럼 깽판비란 무엇인가? 아침에 날씨가 멀쩡하다가 현장까지 출동하여 일을 시작하려면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하는 비다. 그럴 땐 왕복 기름 값만 날리고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가 열한 시쯤 중단되면 그렇게 약이 오르는 일이 없다.
다행히 비는 효자비로 오고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이런 행위를 두고 자귀나무에 ‘대한’ 단상이라고 해야 할지, 자귀나무에 ‘관한’ 기억이라고 해야 할지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껌뻑거리는 커서 뒤에 자귀나무에 대한 단상이라고 해야 할지, 자귀나무에 관한 기억으로 쳐서 넣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내 관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나조차도 좀 헷갈리는 이유다. ‘대하여’와 ‘관하여’는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의미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꼬집어보는 것과 포괄적으로 안아서 보는 관점의 차이다.
자귀나무!
호명만 해도 푸근해진다.
잎이 아름다워서 꽃 대접 받는 풀이 있다. 난초 등속을 일컫는 말이겠지만, 이 말은 너무 많이 알려져서 식상하다. 하지만 이 말을 인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소한 자귀나무 잎을 수식하는 동안에는.
자귀나무 잎은 조선의 여느 풀과는 달리 이국적인 자태를 품고 있다. 어릴 적 마을에서 유일하게 있는 내 고향집 뒤란의 자귀나무를 보며 나는 이국적인 정취를 느꼈다. 내 이름 앞에는 언제나 자귀나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자귀나무집 둘째!
그게 내 이름보다 동네 누나들 사이에서 불리는 이름이었다. 하여 자귀나무란 말만 들어도 친근감이 더해진다.
언젠가 찾아보니, 콩과식물은 대부분 밤에 수분 증산을 억제하기 위하여 기부基部 물주머니를 수축시켜 잎을 접는다. 자귀나무도 밤이 되면 잎이 두 손바닥이 합장하듯이 착 달라붙어 금슬 좋은 나무라며 부부의 금슬을 따라하라고 신방 입구에 예로부터 심었던, 야합수라고도 불리는 나무다.
그렇다고 자귀나무의 꽃이 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초여름이면 자귀나무 꽃은 평범함을 거부하며 피어난다. 짧은 기간 피는 꽃이라 어느 날 문득 꽃을 보면 아, 하는 소리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도록 여리고 곱게 피는, 꽃 중의 으뜸이다. 짧은 연분홍 실을 부챗살처럼 펼쳐놓고 마치 색조화장 붓을 벌려놓은 것처럼 보이는 자태로 꽃송이마다 멋을 부리는 방법이 다르다. 색깔이나 외모, 향기로 나름대로 매력을 발산하여 벌이나 나비를 꾀어 수정하기 위한 방법이다.
고향집이 수몰지역으로 들어가며 보상금에만 관심을 가져 자귀나무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집 뜰에도 자귀나무가 한그루 있다. 십여 년 전에 구획정리한 불모지에 상가주택을 짓고 마당 언저리에 화단이 생기고 수몰되지 않은 선산先山을 둘러보러 갔다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자귀나무의 여린 묘목이 눈에 띄어서 ‘심봤다’ 하는 심정으로 손으로 가랑잎을 헤치고 흙을 맨손과 나무막대로 긁어서 잔뿌리가 없는 앙상한 묘목 두어 그루를 캐 와서 심었는데 용케도 한그루가 살아 붙었다. 그게 십 년이 넘으니 내 키보다도 크고 무성한 잎을 자랑한다. 자귀나무는 본디 잔뿌리가 없어 이식이 어려운 나무라고 했는데도 워낙 어릴 적에 옮겨와서 살아 붙었지 싶다. 가끔 마당에 내려가면 그 자귀나무 아래 놓아둔 평평한 자연석에 걸터앉아 담배 피우기를 피우며 물속에 가라앉은 고향집을 떠올리곤 한다.
평상처럼 넓적한 자연석은 몇 년 전에 도급공사를 맡은, 삼 공단의 어느 공장 신축 현장에서 지하실 터파기를 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모양과 석질이 눈에 쏙 들어와서 그건 채석장에 버리지 말고 사무실 마당에 고이 옮겨두라고 포클레인 기사에게 일렀다. 돌은 거의 책상 두어 개 합친 것만큼 커서 연약한 동물, 인간의 물리력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어 자귀나무가 있는 화단으로 옮기는데도 작은 포클레인이 동원되었는데 자귀나무와 옆에 있는 석류나무와 썩 잘 어울린다.
우리 집 화단을 보는 사람마다 돌에 대해서 입맛을 다신다. 잘 생겼다, 얼마짜리 돌은 되겠다는 둥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요즘사람들은 희한하게도 모든 사물의 값어치를 금액으로 따진다. 심지어 마당에 놓인 자연석도 그 금액을 묻곤 한다. 그런 질문이 날아오면 그냥 줄 터이니 가져가라고 농을 한다. 그런 자연석은 중장비 차주라는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으니 놓고 즐기는 것이지 그런 자격이 없으면 언감생심인 물건이다. 아무튼, 자귀나무와 썩 잘 어울리는 자연석이다.
자귀나무는 잎과 꽃이 곱고 나무 이름조차도 어감이 매끈하여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닉네임으로 즐겨 쓴다. 내가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에도 자귀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
하나는 들꽃사랑이라는 야생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고 다른 하나는 독서모임인 문학비평 카페다. 자귀나무! 둘 다 여성이긴 한데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자귀나무다. 온라인모임이면 익명성이 두텁겠지만 두 카페 다 가끔씩 오프라인모임을 한다. 들꽃사랑은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 가까운 산으로, 강으로 야생화를 보러 다니고 독서모임은 읽을거리를 온라인으로 정해주고 만나서 독서 토론을 하는 카페다. 들꽃사랑의 자귀나무는 키가 작고 통통한 주부인데 만나면 감당하기 어려운 미소를 언제나 물고 있으며, 독서모임의 자귀나무는 키가 훤칠한 중학교 국어교사인데 비평이 날카롭다. 공교롭게도 두 자귀나무 다 사십 대 초반인데 본명을 부르지 않고 자귀나무라고 불러주니 깔끔하게, 군더더기 없는 자귀나무가 되었다.
어느 자귀나무든, 그 자귀나무로 불리는 여자들을 호명할 때마다 내 어릴 적 고향집의 자귀나무의 형태가 선하게 떠오른다.
어릴 적, 나는 늘 키가 큰 자귀나무를 쳐다보며 자랐다. 그 고향집 자귀나무는 내 유년의 기억에 상당부분 침투해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그 자귀나무는 기억 속에서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깔리게 마련이다. 그 어릴 적에 보았던 고향집의 자귀나무와 지금 우리 집 화단에 서 있는 자귀나무와 가끔씩 혼동이 된다. 수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마당의 자연석에 앉아 자귀나무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어릴 적 자귀나무아래서 여동생의 소꿉놀이를 방해하고 울리던 기억이며 뒷집 소가 담 너머로 목을 길게 빼고 자귀나무 입을 뜯어먹으면 달려가 빗자루로 소 주둥이를 때리던 기억, 자귀나무 잎을 책갈피에 넣어 말리던 기억이 살아난다. 뒷집 소는 자귀나무를 보면 환장을 한다. 자귀나무를 소가 너무 좋아해서 아이들은 ‘소쌀밥나무’ 라고도 불렀다.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불렀지만 이름마저도 고운 자귀나무를 두고 그렇게 촌스럽고 천박하게 부르는 아이들을 은근히 경멸하며 자귀나무의 본래 이름을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귀나무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며 자귀나무와 더불어 자라서인지 인터넷 카페의 자귀나무들을 자귀나무라고 부를 때 거리낌이 없다.
자귀나무!
나만 그런가? 어딘가 모르게 친근감이 배어있다. 그녀들은 나랑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은데 유독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의 벽을 허문 건 순전히 자귀나무님! 이라고 호명하기 때문이다.
야생화 모임의 자귀나무는 그 카페의 총무로서 관리를 하는데 가끔씩 공지사항인 꽃 편지를 이메일로 보내온다. 편지말미에는 무슨 꽃이라도 꼭 야생화 사진이 첨부된다. 그 야생화에 넋이 나가서 무슨 내용의 이메일인지 잊어버릴 때가 가끔 있다. 그 카페 회원들은 거의가 구미와 김천에 연고를 두고 있는 지역 카페다. 어쩌다가 가입한 회원을 보면 멀리 강원도와 제주도에서 어떻게 찾아서 들어오는 회원도 있지만 오프라인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고 야생화 사진을 올려주기도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야생화들이다. 그렇게 정보가 공유되는 가운데 우리 지역회원들은 더 많은 들꽃의 이름과 자태를 알게 된다.
제주도에는 희귀종의 야생화가 많은 모양이다. 이름도 참 순박하다. 그런 사진이 올라올 때면 이름에 대한 유래를 묻거나 감사하다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이름을 모를 뿐이지 이름이 없는 풀은 없다. 제주도의 풀꽃 이름을 보면 참 정감이 가는 순우리말이다. 할르방똥풀, 간나새끼풀. 할망밑씻개, 이런 식인데 다 기억하지 못하겠다.
나도 카페에서 쓰는 닉네임이 있다. 야생화 카페에서는 ‘청솔고목’이고 독서토론 카페에서는 ‘발자크’다. 그런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이 있으면 나도 본명을 재처 두고 청솔고목이나 발자크로 불린다.
빗줄기가 더 요란해졌다.
아무래도 작업나간 중기들이 노가다말로 ‘시마이’를 할 것 같다. 시마이라는 용어는 현장에서 작업을 끝내거나 마친다는 말인데 일본어가 그대로 들어와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토목공사가 들어올 때가 일제강점기였으니 노가다 용어는 거의가 일본어다. 노가다라는 말 자체가 영어와 일본어의 합성어 인데 ‘가다’ 즉 신사, 젠틀맨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도 지금은 용어자체가 한국말로 상당히 바뀌어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조수를 타던 시절에는 노가다 용어를 익히는데 애를 먹었다. 엔진부품뿐만 아니라 정비용 공구도 모두가 일본어가 그대로 건너왔다. 스빠나(스페너), 후레무(프레임), 니뽀루(니플), 링구(오일링), 그랑꾸(크랭크), 작끼(잭), 스데끼(스틱), 뿌락꾸(플러그) 대충, 이런 식으로 모두가 원래는 영어인데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식으로 바뀌어 다시 건너온 말들이다.
어쨌거나, 오늘 비는 효자비이니 신경 쓰이는 건 없다.
비에 신경 쓰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커서가 껌뻑이던 노트북 모니터가 죽었다. 컴컴한 암흑의 바탕으로 변했다. 턱을 괴고 컴컴한 바탕화면을 그대로 응시했다. 인간의 두뇌도 노트북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동안 쓰지 않으면 컴컴하게 변할 것이다. 요즘은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치매라고 하지 않았던가. 치매? 몸서리가 쳐진다. 얼른 턱을 괸 팔을 빼서 마우스를 움직이니 화면이 다시 살아났고 자귀나무도 다시 살아났다.
자귀나무!
그렇게 호명하는 순간 노트북 옆에 놓아둔 휴대폰에서 자귀나무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거 참. 희한하네.
*발자크님! 어디 계세요?
발자크라고 지칭하는 걸 보니 들꽃모임의 자귀나무가 아니라 독서모임의 자귀나무가 분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독서모임의 자귀나무가 보내는 카톡은 처음 받는 것 같다. 그 카톡을 보는 순간, 키가 후리후리한 자귀나무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자귀나무의 꽃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정말이지 고향집 자귀나무 그늘 밑에 앉아있다는 착각을 지극히 평온하게 했다. 새끼손가락으로 꽃향기가 들어간 콧구멍을 한참이나 후비고 휴대폰을 들었다. 비 오는 날 자귀나무의 카톡이라, 심심풀이로는 그만이다.
*지금 사무실에서 자귀나무를 생각하는 중.
더듬더듬 자판을 두드려 카톡을 날렸다. 자귀나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입에 발린 소리 같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타이핑이 어지간히 빠른 자귀나무다.
*발자크님 사무실 앞 사거리 빠리바케트에서 발자크님을 학수고대~
이게 웬 횡재야? 그렇잖아도 궂은 날 무료하던 참인데, 퇴근시간을 넘기면 송 박사나 불러내서 한잔할까 생각하던 참에 반가운 객이 끼어들어 무료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낚아챈 것이다. 그렇다면 덥석 물어야지. 전화를 할까하다가 카톡 답장을 날렸다.
*방가~방가~ 겁나게 빨리 날아서 슝~
답장을 날리고 자귀나무가 적힌 부분을 마우스로 덮어씌우기 해서 지우고 노트북을 종료시켰다. 그리고 창밖을 보았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일층에 달아낸 플라스틱재질의 차양처마를 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사거리의 파리바케트라면 천천히 걸어도 오 분이면 족한 거리다. 책상위의 담배를 챙기고 휴대폰을 챙겨 사무실을 나서는데 또 카톡이 날아왔다.
*오실 때 여분으로 우산 하나 챙겨 오실 것^^*
한껏 찰랑대던 기분이 팍 엎질러졌다. 그럼 그렇지. 이 여편네가 이 부근에 무슨 일로 왔다가 비를 만나자 SOS를 때린 것이다. 이 발자크를 기다린 게 아니라 우산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급할 게 없지.
느긋하게 마음먹고 아래층으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삼층의 집으로 올라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서 걸어놓고 양말을 벗고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현관으로 내려갔다. 현관구석에서 우산을 하나 찾아들고 여분으로 비닐우산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나가다가 비를 맞고 있는 자귀나무를 한참이나 보면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자귀나무는 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연약한 가지가 축 늘어뜨려져 곧 부러질 듯 애처롭게 보였다. 빗줄기가 얼마나 강한지 마당 시멘트바닥에 떨어진 비가 튀어 올라서 금세 종아리가 흥건했다. 반바지를 입고 나서길 잘했다.
큰 도로로 나서서 보니 차들이 속도를 줄여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의 빗줄기라면 시야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사거리에 서서 횡단보도신호를 기다리면서 보니 건너편 파리바케트의 직원인지 터빈을 쓴 젊은 아가씨가 비를 맞으며 가게 앞에 쳐진 차양 천막을 렌치로 돌려서 말고 있었다. 비에 젖은 천막의 무게 때문인지 처녀는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빵 냄새가 구수하게 물씬 풍기는 가게 안은 여종업원 둘뿐이고 자귀나무는 간이탁자 앞에 홀로 앉아 등을 돌리고 책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무슨 책인지 가까이 다가가도 모를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
-학교에 있어야할 선생님께서 이 시간에 여기는 웬일이래?
자귀나무는 화들짝 놀란다. 이렇게 놀랄 일이 뭐 있나?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자귀나무는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했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눈이 유난히 커서 서글서글해 보이는 독신녀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곤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중학교에도 중간고사를 치나? 아이들 잡는구먼. 하여튼, 이 놈의 나라 교육이 애들을 잡는다니까.
-물론 중학교에도 중간고사가 있지만, 나 이번 학기부터 고등학교로 발령받았거든.
내가 반말 비슷하게 해서인지 자귀나무도 말끝을 잘라먹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자. 친근감의 표현 방법이겠지.
-그래요? 어느 학굔데요?
자귀나무가 보라는 듯이 말을 높였다. 학교는 내가 쓰는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신설고등학교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새로 생긴 고등학교가 구획정리하면서 남겨둔 언덕배기의 야산을 닦아 만든 학교인데 남녀 공학이다. 작년인가. 그 학교를 신축하면서 부지 정리와 기초공사를 할 적에 우리 포클레인과 덤프트럭도 들어가서 한동안 일을 했으니 몇 번 가보았다.
-시골중학교에 있다가 왔으니 금의환향한 셈이라 치고, 가까이 왔으니 종종 만나겠네?
이 버릇하고는, 또 반말처럼 말꼬리를 잘라먹었다. 그 말에 자귀나무는 야간 자율학습 감독하느라 시간이 중학교보다 없다며 푸념을 했다.
-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무를 시킨다며?
-선생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애들이 뭐 공장의 생산제품인가요? 죽으나 사나 학교에 붙어있어야지.
자귀나무가 읽다가 탁자에 올려놓은 책은 금년에 받은 한성문학상 수상 작품집이었다. 나도 그 책을 사서 두 번이나 읽었으니 표지를 보아도 궁금한 점이 없다. 날씨가 궂으니 커피는 따뜻한 걸로 마시자는 데 이견이 없었고 내가 직접 카운터로 가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빵이 널린 진열대를 보다가 크림빵 하나와 찹쌀도넛 하나를 집게로 쟁반에 담아 잘라달라고 내밀며 카드도 내밀었다. 터빈을 쓰고 침이 튀지 말라고 턱받이 플라스틱 마스크를 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멤버십 회원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동안 카드를 긁었는데 카드가 먹히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아가씨는 단말기 한 번 더 긁었다.
아차, 어제 분실신고를 한 카드다.
어제는 휴대폰 단말기를 바꾸었다. 휴대폰을 어떻게 만들기에 딱 이 년만 쓰면 단말기가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일 년 단말기 할부 약정이 끝나고 일 년만 더 쓰면 무조건 휴대폰에 문제가 생긴다. 이번에는 배터리가 많이 남아있어도 중간에 저절로 전원이 꺼지는 것이었다. 다시 켜놓고 주머니에 넣어 다니다 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또 꺼져있는 것이었다. 이 년이 되었다는 얘기다. 희한한 일이고 참 정교하고 정확한 기술이다. 다른 이들에게 물어봐도 이 년이면 어디가 이상이 생겨도 생긴단다. 다 그렇단다. 수리를 하려면 새 것으로 바꾸는 것보다 경제적 부담이 더 크다. 그리고 며칠간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내게도 단골로 가는 휴대폰 대리점이 있다. 고등학교 후배가 하는 곳인데 그곳에 가서 단말기를 바꾸었다. 그러면서 헌 휴대폰 케이스에 꽂힌 신분증과 카드를 새로 바꾼 휴대폰 케이스에 다 옮겨서 꽂고 바로 늘 북파출신이라고 하는 군대 동기가 운영하는 중고타이어 대리점에 가서 ‘101세 할아버지의 장작 패는 도끼질’ 동영상을 카톡으로 받아서 놀랍다는 듯이 보며 복숭아를 먹다가 전화를 받았다. 시청 토목계장이었다. 시간이 어떠냐는 그를 만나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밥값을 계산하려니 하려니 카드가 없는 것이었다. 중고타이어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없다는 것이었다. 차에 나가서 한참이나 찾아보았지만 없었고 휴대폰가게 후배에게 전화를 해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묻고 물어서 은행 콜센터로 전화를 해서 카드를 정지를 시켰다. 밥값은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토목계장과 헤어져 돌아오는데 휴대폰가게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청소를 하려고 보니 진열장 밑에 카드가 떨어져있다는 것이었다. 문 닫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라 하고는 그 가게에 들러 카드를 찾았는데 정지된 카드를 해지시킨다는 것을 깜빡 했다.
-자귀나무님! 카드가 안 돼. 좀 살려주세요.
돌아앉아서 또 책에 눈길을 주고 있는 자귀나무에게 소리를 질렀다. 자귀나무가 돌아보고는 휴대폰을 들고 와서 카드를 긁었다. 지갑은 재킷에 넣어두고 휴대폰만 들고 나왔기에 현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와 자귀나무의 도움을 받아 은행 콜센터로 전화를 했다. 카드 잠깐 잊어버렸다가 찾았는데 뭐가 그리 복잡한지. 자귀나무가 내게 주민번호와 카드비밀번호를 묻고 인증번호를 받아서 카드를 살리는 동안 나는 뜨거운 커피를 거의 다 마셨다.
-이젠 됐어요. 카드 좀 조심해서 들고 다니지. 신용카드는 현금이나 마찬가지라구요. 돈이라고 생각하고.......
선생이 아니라고 할까봐 그런지 학생 나무라듯이 나무라며 자귀나무가 카드를 휴대폰 케이스에 야무지게 꽂아서 건네주었다.
-이 책 재미없어. 책값 본전생각 나던데?
한성문학상 작품집을 가리키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요? 백 프로 공감이에요. 오늘 중간고사 감독하면서 대충 읽었는데 내가 잘못 읽었나 하고 다시 보는 중이예요. 문체만 유려하지 서사의 줄기가 너무 가늘어요. 서사도 식상한 주제고. 수상자 자선작도 마찬가지고.
-빤한 주제를 놓고 말만 빙빙 돌리는 것이, 요즘 소설 다 그렇죠?
수상작은 법원에서 이혼서류를 정리하고 나서는 여자 주인공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반대의 입장에 있는 남편과 대학 서클을 같이하며 둘을 중매해 주었던 친구가 화자가 되는 옴니버스의 소설이었다. 명명법에서 호칭만 Kj, Mn, Sx, 하는 식으로 만들어 독자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소설인데, 읽고 난 후감은 그야말로 입맛이 썼다. 처녀 적부터 기르던 강아지를 혼수로 데려간 내용과 그 애완견과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카메라를 같이 유기하는 장면이 아니라면 너무나 빤한 서사였다. 자귀나무는 사회적 이슈가 부재한 세태의 소설이라 그렇다고 했고 나는 요즘 소설의 유형이 그런 식으로 유행처럼 흘러간다고 했다. 잘못된 유행을 따르다가 현대소설의 맥이 끊어질까 두렵다는 말을 자귀나무가 했고 그래도 작가만 사만 명이 넘는 한국에서 참신한 신예작가가 나올 거라는 희망적인 말도 내가 했다.
작금의 시대는 살만하니 문창과가 없는 대학이 없다. 문창과가 없는 대학이라면 그런 대학에서 부설로 하는 문학 아카데미가 있게 마련이다. 문창과는 대학에서 보면 효자과목이다. 강의실과 책상만 있으면 된다. 비싼 실험장비나 기자재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럴듯한 작가를 교수로 임용하면 학생 모집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재단 측에서 보면 정말이지 효자과목이다. 칠십이 다 된 할머니도 문창과에 등록하는 시대니까. 그 나이에 등록을 해도 등단을 목표로 한다. 이 나라에 작가가 얼마나 늘어나려나?
작가 사만 명 시대! 미성년자를 빼고 우리나라 국민 무작위로 육백 명을 찍는다면 그 중의 한 명은 분명히 등단을 했다는 작가다. 작가로 등단시켜주는 문예지 또한 부지기수다. 출판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일본에서 지하철을 타면 구 할이 앉아서 책을 읽는데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면 구 할은 앉아서 휴대폰을 주물럭거린다. 하지만 하루에 쏟아지는 책이 얼마이며 하루에 등단하는 작가 또한 얼마일까? 그 말에 자귀나무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날씨도 궂은데 축축한 얘기는 그만 하죠.
자귀나무가 먼저 말머리를 돌렸다. 아직도 자귀나무의 잔에는 커피가 반이나 남아있고 빵과 찹쌀도넛 여러 조각 남아있었다.
-그건 그렇고, 잎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꽃까지 예쁜 자귀나무가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래유? 나를 만나러 온 건 아닐 테고?
잎은 몸을 말하고 꽃은 자귀나무가 지닌 사유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언젠가 자귀나무에게 일러준 적이 있다. 자귀나무는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물으니 어이없게도 차 때문이라고 했다. 승용차 엔진에서 이상한 잡음이 심해서 부근의 카센터에 맡기고 걸어서 학교로 돌아가다가 비를 만나 파리바케트 천막 밑에 한참이나 서 있다가 내가 생각나서 가게 안으로 들어왔노라고 했다. 차는 내일 오후에 찾기로 했다는 것이다.
-차 고치는 일은 일찌감치 나한테 맡기지 그랬어요? 내가 그쪽 전문가잖아.
자귀나무는 독신녀다. 그런 부탁을 할 남자가 없는 모양이다. 나에게 부탁을 했으면 카센터에 맡기더라도 차의 원리와 구조를 알고 있으니 최소한 바가지는 쓰지 않을 것인데 이미 맡기고 난 뒤라 아쉽다.
-학교에 들어가 봐야하는데, 날씨도 궂고 발자크님을 만났으니 오늘 쨀까요?
학생들은 어떡하고? 물으려다가 입을 닫았다.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했으니 학생들은 하교를 하고 없을 것이다. 기다리는 건 교무실에 남은 잡무뿐일 것이다.
-술을 사 달라는 말같이 들리는데?
-그래요. 갑자기 곰장어구이가 먹고 싶네요.
-곰장어구이?
-그렇다니까요. 이렇게 궂은 날 곰장어구이에 소주 한잔하면 딱이죠. 나 입덧하나 봐요. 호호호.
-입덧? 독신녀가 입덧이라? 혹시.......
-오해는 말고. 계절의 입덧이죠. 철이 바뀔 때마다 이래요.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자귀나무가 재바르게 자르고 답을 내려주었다. 계절의 입덧이라....... 그런가? 말이 된다. 헌데, 곰장어구이를 어디에 잘하더라?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좀 잦아들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비가 왔으니 거래처 현장에서 좀 보자고 비상을 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기들은 이미 다 돌아와서 주기장에 세워두고 기사들은 퇴근을 했을 것이고. 그럼 마음 놓고 낮술을 마셔도 무방하겠다.
-곰장어구이를 어디에 잘하더라?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훑는 순간에도 자귀나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도넛을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자귀나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먹는 것조차도 이국적이고 우아하게 보였다.
아무래도 등기소 앞 먹자골목으로 가야할 것 같다. 그만 일어서자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감자탕에 소주 한잔 하면 어떨까? 꼭 곰장어구이를 자셔야겠어?
그냥 떠보는 그 말인 줄 모르고 자귀나무는 곰장어구이를 고집했다. 곰장어구이로 소주를 마시고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먹으면 그만이라고 덧붙이며 군침을 삼켰다. 정말이지 입덧하는 여자 같이 고집을 부렸지만 밉상은 아니었다.
우리가 일어설 때까지 파리바케트를 찾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 그래도 자리에 앉지 않고, 아니 앉지 못하고 카운터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눈인사를 하고 입구에 세워둔 우산을 들어 자귀나무에게 하나를 건넸다.
비는 많이 잦아들어 덥지도 않고 걷기에 그만이었다. 등기소 앞 먹자골목까지는 천천히 걸으면 십 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지만 지금쯤이면 저녁 장사를 하는 가게들도 다 문을 열었을 것이다.
자귀나무와 나란히 우산을 펼쳐들고 젖은 보도를 걷는데 자귀나무는 곰장어를 먹으면서 절대로 문학에 대한 얘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럼 무슨 얘기를 할까? 내가 되묻자 둘이 앉으면 남을 흉보거나 욕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고 해서 웃었다. 그럼 한 놈 껍데기 벗기겠구만, 내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자귀나무는 어름한 정치인이나 국산차 어느 노조에 대해서 애기하면 껍데기를 벗길 일은 없노라고 대꾸했다. 지난달인가, 9일간의 휴가를 다녀와서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귀족노조라며 남의 일에 내가 왜 이렇게 격분하나 싶을 정도로 격분한 바가 있으며 절대로 국산차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얘기라면 안줏거리가 되겠구먼.
먹자골목으로 가려면 작은 테마공원을 지나야 한다. 테마공원에 다다르니 생각난 게 있다. 나는 자귀나무에게 잠깐 보고 갈 것이 있다며 자귀나무를 공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공원에 설치된 농구 골대 앞에 섰다. 옆에는 작은 나무벤치가 있고 조경을 잘 해놓은 정원 소나무 사이에 자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자귀나무 수형이 약간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자귀나무 가까이 가서 둥치를 살폈다.
-이거 자귀나무잖아요.
-그래 맞아요. 자귀나무.
자귀나무에게 자귀나무가 분명하다면서 하고선 자귀나무에게 자귀나무 가까이 오라고 했다.
-여기 옹이, 흉터가 보이죠? 나무 수형이 약간 불균형이 아닌가요?
-수형이?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그러고 보니 여기 있어야할 가지가 하나 없는 것 같네요.
-정확히 보셨어요. 이게 왜 이렇게 되었냐면.......
재작년인가 지독히 더운 여름이었다. 무슨 일로 그 공원에 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먹자골목에서 누구를 만나 한잔하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지 싶다. 공원으로 가로질러 간다고 공원에 들어섰는데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정식 경기가 아니라 슛만 날리고 있었다. 그걸 구경한다고 벤치에 앉았다. 담배를 물고 둘러보니 자귀나무가 참 참했다. 매끈한 가지에서 잎이 드리워진 게 참 수형이 고운 자태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일어서서 담배를 입에 물고 내 키 높이보다 조금 높은 가지를 철봉삼아 폴짝 뛰어 올라 잡았다. 그 순간 찌익, 잎이 붙은 잔가지가 땅바닥에 닿았다. 가지가 찢어진 것이다. 순간 얼마나 황당하고 미안했던지. 옆 벤치에서 이웃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눈을 흘기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황당해 하다가 꽁초를 버리고 집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틀 후, 일삼아서 공원으로 가 이 자귀나무를 둘러보니 찢어진 가지는 누군가 정리를 하고 둥치에 상흔만 남아있었다. 그 상황을 자귀나무에게 자세히, 구체적으로 들려주었다.
-참! 못 됐다. 저를 거꾸로 세워놓고 제 다리에는 매달리지 마세요. 더 찢어져요.
자귀나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이지 모르고 생각하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풋 하하하........ 그대가 자귀나무죠. 나도 그렇게 쉽게 찢어질 줄은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고 황당하네요.
곰장어집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공원에서 산책길로 질러 나와 대로에 나서자 도로 건너에 보도를 점령한 간판용 에어기둥의 노란색 비닐에 산곰장어라고 큼직하게 쓰여 일렁이고 있었다. 그걸 먼저 발견한 건 자귀나무였다.
-저기 곰장어집이 있네요.
저기로 갈까? 둘은 눈을 마주치고 차가 없는 틈을 타 사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무단 횡단했다. 비는 멎었고 들고 있는 우산이 거추장스레 여겨졌다. 못 보던 집인데 최근에 새로 개업한 집인 모양이다. 가게 앞에서 들어가기 위해 들고 있던 젖은 우산을 터는데 자귀나무가 느닷없이 제동을 걸었다.
-잠깐만!
자귀나무를 돌아보았다. 평소보다 키가 더 크게 느껴졌다.
-우리 족발 먹으러 가요. 갑자기 족발이 당기네요.
-그렇게 곰장어구이를 노래하더니. 정말 입덧하는 거요? 철이 덜든 임산부처럼 왜 이러.......
내가 말을 하는데 자귀나무가 말꼬리를 잘랐다.
-눈치 없기는....... 샌님 같은 선생이 아닌 터프가이와 좀 느긋하게 걷고 싶어서 그래요. 국산차 노조들 참 철없죠. 이런 얘기나 하며 족발 먹으러 가요.
-느긋하게 걷고 싶다? 노가다가 미모의 여선생님과 어울리나?
-전직 공무원이라며?
-아이고, 제대하고 면서기 생활 겨우 이 년 했어요.
자귀나무가 내 팔을 잡더니 느닷없이 팔짱을 끼고 이끌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노가다가 맘에 쏙 들거든.
-나 이 동네에서 익명성이 짙지 못해요. 팔짱이나 좀 풀고........
그 말을 하니 자귀나무가 낀 팔짱에 더 힘을 주었다.
비는 멎었고, 서쪽 하늘을 보니 맑은 하늘가에 빨간 노을이 밀려들고 있었다. 정말 효자비다. 내일 작업에는 되느니 마느니, 신경 쓸 일은 없고, 어디를 가든, 족발을 뜯으며 자귀나무 그늘에서 자귀꽃향기에 푹 취하면 되겠다.
그래 가자! 자귀나무를 매달고 젖은 보도에 힘찬 발길을 내딛었다. 발가락 슬리퍼를 신은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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