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가 있어 즐거운 여행
정동식
아카시아꽃 향기가 한창이던 5월, 고등학교 반창회 때의 일이다.
우리는 점심 무렵, 안동 예끼 마을에 도착했다. 예끼라는 마을 명칭은 ‘멋과 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마을의 볼거리는 선성현 문화단지 등 여러 군데가 있지만 나는 호수 위를 걷는 선성 수상길(부교)에 관심이 갔다. 안동호의 절경을 보며 물 위를 걸으니 수상길의 중간쯤에 풍금 하나와 의자 그리고 예안초등학교 교가 악보, 마을의 옛 사진 등이 걸려 있었다. 학교가 있던 자리 바로 위에 추억의 소품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이 마을은 우리 친구 중 한 사람인 고 지환의 아내 동필 씨의 모교이기도 하다. 동필 씨는 그 시절의 상념에 잠기며 금방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 부모님 생각이 났을 테고 중학교 동기인 남편도 아른거렸을 것이다. 나도 기숙사에서 바로 옆에 자던 친구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모두의 짠한 추억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음 코스인 도산서원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나는 주저 없이 네비에 도산서원을 찍었다. 한참 가다 보니 네비상 남은 거리는 줄고 있었지만 목표 방향은 아닌 것 같았다. 도산서원으로부터 자꾸 멀어지는 예감이 들었다. 문득 부교 산책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에 진과 모가 나누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5Km 정도 될걸’. 그 얘기가 생각나자 내가 오류를 범했다는 확신이 섰다.
예끼 마을에서 도산서원까지 거리가 5Km라는 말인 것 같았다. 나는 유턴을 했다. 그리고 유사인 갑걸 친구에게 도산 서원 가는 길이 예끼 마을에서 나올 때 우회전인지, 좌회전인지를 물었다. 우회전이란다. 우리는 확실히 반대 방향으로 내달린 게 분명했다. 예끼 마을에서 나올 때 무심코 굴다리 큰길로 나온 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네비는 우회하는 길을 계속 가르쳐 주었다. 평소 여행하기 전에 네이버 지도를 참조하여 소요시간이나 거리 등을 꼼꼼히 따져 보는 편인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사실 안동지역은 우리가 자주 와 본 곳이라 그냥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대상포진으로 인해 상황에 따라 출발 자체를 재고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경황이 없었다. 어쨌든 준비가 부족했다. 유사와 통화 후 우리는 도산서원을 패스하고 다른 곳을 구경한 뒤 안동호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가는 도중 군자마을 안내판이 보였다. 눈에 익지 않은 지명이었지만 남향의 고택들과 잘 가꾸어진 화단이 낯선 두 방문객을 반갑게 품어 주었다. 월요일이라 방문자도 적어 고즈넉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산서원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오늘 군자마을을 보지 않으면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의도치 않은 발걸음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 마을은 지금부터 600 600여 년 전 광산 김 씨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그 후손들로 형성된 마을이다. 당시 이 마을에 들른 한강 정구(寒岡 鄭逑) 선생이 입향조 김효로의 친손과 외손 일곱 형제들을 가리켜 ‘한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감탄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넓은 뜰 오른쪽에 연보랏빛 등꽃이 겸허한 주인처럼 큼지막한 꽃타래를 늘어뜨린 채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등나무 동편으로 눈에 띄는 한옥이 한 채 있었다. 안동 광산 김 씨 탁청정 김유가 중종 때 지은 종택이다. 아쉽게도 조선 후기에 불이 나 다시 고쳐지었단다.. 김유는 전통음식의 조리와 가공법을 기록한 보물 ‘수운잡방’의 저자이기도 하다. 동편 어느 고택 뜰에 주차된 자동차가 보였다. 아마 후손들이 현재도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엄마 품같이 포근한 군자마을을 못내 아쉬워하며 안동호 전망대로 향했다.
도산서원에 합류하지 못한 미안함에 조금 일찍 출발했더니 가장 먼저 도착했다. 전망대 3층에 자리 잡은 베이커리 카페, ‘국가대표 빵선생’은 전국에 입소문이 나, 줄을 서서 빵을 사 갈 만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도 유사의 아내인 현주 교장 선생님이 한턱을 내어 2 시간 가량 달콤한 빵을 맛보며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두 번째 해프닝은 그날 저녁 만찬 후의 일이다. 친구들은 안동소주와 맥주를 곁들이며 기숙사시절 얘기 등으로 지난 강진 모임 이후 6 개월 만의 회포를 풀었다. 얼굴이 발그스름한 친구도 몇 명 있었다. 나는 일일 비주류에 속해 술 먹은 친구들을 숙소까지 태워 갈 임무를 부여받았다. 차를 대기시켰다. 처음엔 진과 모 친구가 탈 듯하더니 다른 차로 가버려서 용식 부부를 태우고 숙소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두 친구가 와서 “이 차 스텔스냐?”라고 느닷없이 물었다. 영문을 몰라 눈을 둥그레 뜨고 쳐다보았더니 왜 라이트를 안 켜고 가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미등이나 라이트를 켜지 않고 야간에 운행한 일이 없었다. 특히 터널에서 라이트를 켜지 않은 차량을 보면, ‘저분들, 참 둔감하시다. 자기 안전을 생각하면 저러지 않을 텐데’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라이트를 안 켜고 운행을 하다니!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옆에 있던 택윤 친구의 아내, 혜숙 씨가 ‘밤에 라이트 안 켜고 가는 저 차 누구 차지, 우리 일행인가?’ 하면서 신고하려고 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친구들은 농담 섞인 타박을 하다가 ‘라이트 오토 기능’ 사용법에 대해 친절히 알려 주었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구태여 라이트를 켜고 끌 필요가 없어 편리하단다. 난 지금까지 수동으로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오토 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고 구태여 그 기능을 사용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여 지하주차장에서 실험을 해봤다. 어두운 상태에서 전조등이 켜졌다. 그리고 시동을 끄고 잠시 후에 자동으로 라이트가 꺼졌다. 이렇게 편리한 오토 기능을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걸. 아직 새 차를 한 번도 타지 않은 증후군일까, 아니면 주인이 어리석어 그런 걸까?
그냥 머쓱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년 2회 만나는 우리 부부 반창회는 항상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남긴다.
이번 모임에서는 본의 아니게 ‘네비 활용과 자동차 오토 기능’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반창회 친구들은 분석적이고 과학적이다. 현명한 그들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인생 멘토이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늘은 두 번이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여 살짝 비틀린 하루를 보냈지만 나를 반추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예쁜 옥에도 티가 있듯이 우리의 여정에도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어서 항상 유익하고 즐겁다.
(2023.5.19)
(2023.6.06 일부 퇴고)
첫댓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는 여행은 힐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