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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자: 2026.04.12 주일 낮 예배
- 설교제목: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 - 모리아 산의 시험
- 성경말씀: 창22:14
-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 살아계신 주 "주하나님 독생자 예수"
279. 인애하신 구세주여 / 301. 지금까지 지내온 것
믿음의 시험과 상급 - 모리아 산의 시험
여호와 이레 창세기 22:14 .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시험은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견딜 수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내 놓으라니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이겠습니까? 무슨 의도일까요?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
모리아 산(Mount Moriah)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장소이자(창 22:2), 훗날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한 곳(역대하 3:1)입니다. '여호와께서 보이신 곳'이라는 뜻을 가지며, 현재 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 일대로 여겨집니다.
- 본문의 배경
아브라함은 그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불렀으니, 오늘날 까지도 ‘여호와의 산에서 그가 보이리라’라고 말한다 .
성경에서 높은 산은 하나님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창22장14절)
고대 근동인들은 하늘과 가장 먼저 맞닿는 곳에 신전을 지었습니다. 평지밖에 없는 경우에는 지구랏과 계단식 피라밋과 인공적인 산을 만들어 신의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의 위치는 모리아 산입니다. 여호와의 산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 통치, 예배의 장소(예루살렘 시온산, 모리아산)를 상징하며, 말일에 모든 민족이 모여들어 여호와의 도를 배우는 순결한 숭배의 처소를 의미합니다.(사 2:2-22)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여호와 이레(Jehovah-jireh)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또는 "여호와께서 보신다"는 뜻의 히브리어로,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 숫양을 번제로 드리며 체험한 하나님 산의 현장이자, 메시야가 다스리는 구원의 산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의 현장인 여호와의 산으로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힘은 예수그리스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이끌려 우리는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게 될 것입니다. - 할렐루야
1. 아브라함의 순종과 고통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선과 악,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상급과 고통을 교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상급과 그에 따른 고통의 역사는 하나님 역사의 시작이자 종말입니다. 오늘 믿음의 아버지이자 순종의 대명사인 아브라함과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엄격하심을 배우는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욥기의 주인공인 욥과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에 대한 고통이 성경 중에 가장 힘든 고통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고통은 지금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순례자의 길은 고통이지만 희망의 시작입니다. 그 고통이 멈추는 곳에 하나님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다서 날마다 기도합니다.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있게하소서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하나님은 시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모든 시험에는 고통이 따름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 주어지는 선악과의 시험을 감당하지 못해서 인류의 역사에 원죄라는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은 노동의 고통 그리고 해산의 고통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주님의 십자가의 수난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불순종에 따른 고통은 결국 자신의 죄에 대한 무게는 자신이 지고 가야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마태복음 16:24
아브라함과 이삭이 산을 올라가는데, 아들은 나무를 메고, 아버지는 불과 칼을 들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흘길을 걸어 가고있었습니다. 그때 아들이 “어린 양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감정을 억누르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친히 어린 양을 마련해 주시리라.” 하고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통스러운 마음 뒤에 따라오는 시련의 결과를 깨닫고 되돌아보니, 아브라함은 자신의 말이 뜻과는 다르게 진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시는 아버지로서의 근엄하심과 사랑과 회초리였습니다. 바라보고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알고있습니까?
그래서 그는 그곳을 자신의 시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지었다. “여호와께서 보시리라.” 또는 “여호와께서 마련해 주시리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외적인 필요는 그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우리가 그것을 얻을 때 복되고, 얻지 못할 때 비참해지는 것은 바로 우리 아버지의 계명에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며, 그 순종을 내 삶의 원천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선물과 그분의 풍성한 창고에서 나오는 모든 공급 중에서, 우리가 필요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이 친히 우리의 번제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헌신은 그가 자신의 외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아끼지 않았기에 확증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께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시도록 아끼지 않으셨기에 확증되었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대속물로 바쳤지만 결코 희생시키지 않았고 주님을 십자가 상에 해를 입었지만 결코 사망의 권세를 물리친 것을 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습ㄴ이다. 현실적으로 십자가의 기적은 하나님의 역사이자 우리의 소망입니다.
2.하나님께서 주시는 조건 -공급의 조건
"여호와의 산에서 그것이 준비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종류의 공급에는 그것이 주어지는 시기와 장소, 그리고 누구에게 주어질지에 대한 특정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외적인 필요를 채워주고, 외적인 약점을 강화시켜 주고, 의무를 다하기에 충분한 힘과 지혜를 주고, 세상 죄를 없애는 하나님의 모든 공급하심이 보관되어 있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지상교회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 만큼 중요합니다. 지상천국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가 살아계신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직분자든 교인이든 모두가 전심전력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새랑해야 하는 지상의 이유입니다. 할렐루야
온 몸과 마음을 다바쳐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과 소망과 삶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 산에 올라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풍족한 공급도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풍요로움 속에서도 고통만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누리고 싶다면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날마다 천국문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집 안에 아무리 많은 재물이 쌓이고 보고가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그 집의 자녀가 아니면 당신은 아무런 몫도, 아무런 배분도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모든 것이 준비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산 주위에는 기근과 죽음의 황량한 광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아버지가 손에 칼을 들고 서 있고, 바로 다음 순간 칼날이 아들의 피로 붉게 물들 때, '아브라함!'이라는 외침이 들려오고, 그때 그는 덤불에 걸린 숫양을 봅니다. 건조하고 햇볕이 잘 드는 남쪽 지방의 집에서부터 길고 고된 여정을 거쳐 험준한 언덕을 넘고 힘겹게 올라왔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고, 아들의 마음속에는 희미한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나 휴식이나 구원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천히 장작을 쌓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징조도 없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아들을 묶어 그 위에 눕혔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마지못해, 하지만 단호하게 칼을 뽑아 들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때서야 무언가가 나타났다. 소망 중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그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후에야 비로소 그분의 손길이 뻗어 나와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절망에 빠지도록 내몰리고, 우리가 '발이 미끄러져요!'라고 외치게 되고, -신32:35
그것을 나 몰라라 하고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머리털 하나하나까지 세시고 눈동자처럼 지켜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순간 발가락이 빙하 위에서 미끄러지는 것처럼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합니다. '주님께서 그녀의 조력자이시며, 바로 그 순간에' 말입니다. 그분께서 지체하시는 것은 우리를 놀리려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필요를 깨닫게 하고 구원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결코 그 전에, 우리가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지 깨달을 때까지, 그리고 결코 너무 늦지 않게, 도우시는 분이 오십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조용하고 꾸준하게 의무의 길을 걷고, 그분의 손길이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묻지 않고 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이 필요를 충족시키는 조건은 마음과 의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명령대로 행했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우리 만나인 모두는 아브라함의 순종과 인내와 고통에 동참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3:6)일 뿐만 아니라 우리 만나인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3. 공급받은 자의 자세
아브라함은 이름 없는 산꼭대기에 자신의 시련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나 순종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통이나 순종이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후세에 전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창세기1~11장의 원역사가 끝나면서 족장사가 시작되는 창12장부터 아므라함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인간에게 축복을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는 아브라함의 시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험만 하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과연 축복의 객체가 될 수 있는가 라고 시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사랑만 주시는 분이 아니고 무조건 시험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들이 돈달라고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그러면 아무 말없이 돈주는 아버지는 자식 잘 못 가르치는 아버지가 됩니다. 어떤 용도로 그 목적이 아버지의 생각과 같을 때, 허락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와 같으십니다. 기도한다고 무조건 들어주시는 아버지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맞을 때, 그 기도는 응답되는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이름은 기념해야 할 의무와 기대해야 할 의무를 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하나님은 직접 대화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공급하시리라.' 아브라함아,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 그의 대답은 '여호와께서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런 논리를 적용한다면 매우 불안정한 논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원은 바닥날 수 있고, 인내심은 바닥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곡식을 저장해 둔 창고로 간다면, 그 안에 있는 모든 곡식은 언젠가 다 먹어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곡식이 자라는 드넓은 평야로 간다면, 우리는 작년처럼 내년에도 풍성한 수확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창고가 아니라, 해마다, 대대로 모든 영혼의 목마름과 육신의 필요와 굶주림을 채워주는 풍성한 축복의 열매가 맺히는 밭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마치 저수지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 '내가 물동이를 들고 우물에 여섯 번 갔으니 일곱 번째에 다시 물을 채울 수 있겠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가서 더 이상 감히 갈 수 없었다'라고 말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물이 아니라 샘으로 가야 한다면, 자주 갈수록 수정처럼 맑고 시원한 물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주께서 여섯 번의 환난에도 나와 함께 하셨으니 일곱 번째 환난에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말은 서로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결론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올바른 결론입니다.
- 맺는 말씀
그러므로 우리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기억의 마법 같은 빛 속에서 빛나는 수많은 봉우리들을 볼 때, 그 모든 봉우리들에 이름을 붙여 우리 앞에 놓인 미지의, 아직 오르지 못한 어려움에 희망의 빛을 비춰주고, 족장 아브라함이 시련과 구원의 산에서 내려오며 말했듯이 '주께서 준비하시리라'라고 말합시다. 자 따라서 한 번 말씀해봅니다. " 주께서 우리 만나인을 위해서 모든 필요와 영생의 면류관을 준비해 주시리라." 주님도 하늘로 올라가실 때, 우리에게 우리의 거처를 준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아멘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신 말씀은 살전 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묵상-이사야 2:2-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 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또 레바논의 높고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과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쥐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