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전세계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꿈의 제전인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이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나가게 되다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더구나 4형제가 같이 가다니. 울 회원님들의 진심어린 격려를 가슴에 듬뿍 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마라톤 투어 공식업체인 여행춘추 직원의 가이드에 따라 비행기에 탑승한 우리 일행 190여 명은 도꾜와 시카고에서 갈아타고 무려 19시간 이상 걸려 보스톤 로간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보스톤은 우리의 경주 같은 유서깊은 도시이고 하바드, MIT공대, 웨슬리 여대(우리의 이화여대 같음) 등 세계 최고의 대학을 비롯하여 36개의 대학들이 몰려 있는 우리의 강남 8학군 같은 교육 도시이다. 집세며 물가, 교통난이 뉴욕보다 더하다고 하는, 미국의 자존심 같은 도시였다. 여기에 우리의 호프 신마적 나으리가 이민간다니 그의 탁월한 선택이 부럽기만 하다. 이번 보스톤 마라톤에 한국인 참가자는 공식적으로 142명이었다. 이 숫자는 미국, 캐나다에 이어 3번째이며, 영국,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나는, 집을 떠난 지 무려 24시간 만에 보스턴 쉐라톤 호텔에 도착해 여행사 직원이 주는 신경 안정제 두 알을 받아들고 여장을 풀었다. 시차 적응도 못하고 예민한 탓인지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서도 밤이 새도록 잠못 이루고 뒤척이다 새벽 3시가 넘어서 2시간 정도 깜빡 잠이 들었고, 이틀째도 2시간, 대회 전날에는 겨우 3시간 정도 잠을 잔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현상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사실 보스톤 코스는 언덕이 많다 하나 우리가 연습하는 삼하리 외곽 코스보다 쉬워 기록이 잘 나올 것 같은데도 못뛰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시차 적응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세계 랭킹 1위 109회 보스톤 마라톤 출발지인 홉킨톤으로 출발했다. 홉킨톤은 위치로 보면 우리의 구파발 같은 곳이며, 여기서 출발하여 보스톤의 최고 중심지에 피니시 라인이 있다. 구파발에서 출발, 시내를 거쳐 강남의 최고 번화가인 삼성역 부근이 골인점이 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미 고속도로에서부터 진입로는 전면 통제가 되어, 공식 차량 표시가 없는 차량은 전면 진입 불가다. 조그만 마을 전체가 행사장이며 어디에도 차량은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외부에서 참가자들을 실어나르는 노란 스쿨버스가 도착하여 선수들이 내리고 나면,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참가자 물품 보관 차량이 되어 지정 장소에 주차를 한다. 도로는 2차선으로 폭이 좁다. 이 도로도 도로변은 응원객들을 위한 장소로 펜스에 의해 구분되어 있었다. 선수들 출발 대기 장소는 1,000명 단위로 구획이 되어 자원 봉사자에게 배번 확인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질서정연하고, 2km나 됨직한 선수들의 긴 줄이 찬란한 햇살 아래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12시 출발이다. 휠체어 출발에 이어 여자 엘리트, 남자 엘리트 선수의 출발 준비가 이어졌다. 나는 나의 출발지로 들어가 조용히 출발을 기다렸다. 미국 국가가 울려퍼지고 참가자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날씨는 해맑고 기온은 섭씨 24도 정도이나 습도가 적어 나에게는 아주 쾌적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출발의 총성이 울렸다. 귀를 찌르는 함성과 함께 차례차례 출발을 했고, 8천 번대인 나는 9천 번대인 합정동 동생과 1만9천 번대인 막내를 한인교회 앞에서 기다렸다. 무려 25분이나 기다려 3형제가 역사적인 레이스에 들어갔다. 우리는 시차 적응이 잘 안되어 3시간 59분 안에 셋이서 손잡고 골인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자마자 약 9km 정도 내리막이 이어졌다. 도로가 2차선으로 좁은 데다 길가에 가득 찬 시민들의 함성과 응원소리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에게 보내는 엄청난 함성처럼 귀를 울린다. 이런 함성이 골인 지점까지 단 한시도 끊어진 적이 없었으니, 주로에 선수들만 가득한 우리의 현실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조금 가자 우렁찬 밴드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엄청나게 큰 가정용 오디오를 밖에다 설치해 놓고 신나는 행진곡을 틀어주고 있었으며, 애들이고 어른이고 다들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주로 주변에는 대부분 주택이 들어서 있어 집 앞에서부터 도로변까지 각양각색의 응원을 펼치고 있었다. 이건 마라톤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길 안에 달리게 해놓고, 각국 마라톤 매니아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즐기는 전시민의 축제랄까, 하여튼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 도로에는 사진사가 없다. 한국 같으면 출발에서부터 도로 한가운데서 사진 촬영을 하느라 주자들이 포즈를 취하기 바쁜데. 그런데 얼마를 갔을까, 하늘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크래인을 이용, 주자들이 달리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공중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하는 모습으로 지나갔다. 28개의 언덕이 있는 보스턴 마라톤. 무더운 날 26km부터 32km까지 이어지는 상심의 언덕(heart break hill)을 생각하며 우리 3형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때로는 나란히 기분 좋은 페이스로 무리없이 달렸다. 나는 달리는 도중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교민이나 유학생이 있으면 팔을 번쩍 들어올려 답례를 해주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 파이팅!!” 을 외쳐대는 것이었다. 우리 교민은 6만 여명, 외국인들도 “코리아”를, 드물게 “대한민국”을 외친다. 무지 반가웠다. 한국의 위상이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들었다. 여기 사람들은 응원하는 피켓에 “GO James!" 와 같이 go를 이름 앞에 붙였고 run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보스턴 시민의 열광적인 응원은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른다. 밴드를 동원한 응원에서부터 조용한 응원까지 70여만 중 50만 명 이상이 응원한다니. 수도 호스로 물을 뿌려주거나 분무기, 어린이 물총 부대도 있다. 쭈쭈바나 바나나, 수박, 오렌지 같은 것을 먹기 편하게 잘라서 들고 서 있는 어린이, 물, 주스, 바세린이나 파워젤을 들고 서 있거나 포도, 비스킷, 빵, 사탕, ...... 등 길거리에 없는 게 없었다. 달리다 하나씩 집어가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가능한 나는 하이파이브도 하고, 군데군데 음식도 집어먹고 달렸다. 내가 받아먹은 것만 일곱 가지나 되었다. 그러니 주최측에서 초코파이나 바나나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20km 지점을 지나 2km 이상 줄지어 서서 벌이는 웨슬리 여대생들의 폭발적이고 강렬한 응원은 그날의 백미를 장식한다. “kiss me" 란 피켓이 곳곳에 눈에 띈다. 금발의 풍만한 육체에서 내뿜는 강렬한 육감과 건강미, 발랄한 여대생들의 괴성에 넋을 잃지 않을 남정네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이 나이에 언제 다시 세계 제일의 명문 여대생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손이 아프도록 하이파이브를 해댔다. 환각 상태란 바로 이런 상태가 아닐까. 누군가 ‘코리아 화이팅!’을 외친다. 갑자기 주변이 순식간에 함성으로 바뀌고, 뒤이어 한국 유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의 응원과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는 다이나믹한 액션이 뒤따른다. 감동적이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나도 맘 같아서는 키스라도 한 번 하고 갈까 하다가 동생들이 있으니 그냥 지나간다. 많은 여성 주자들이 삼각팬티 차림에, 가슴이 덜렁거리는 조그만 브라만 걸치고 달린다. 거리에는 아주 뚱뚱한 사람이 많더니, 주로에는 모두 몸매가 그만이다. 기록이 엄격히 제한되는 풀코스인데도 여성이 50%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는 풀코스 여성 주자가 10%도 채 안되는데. 25km 즈음, 한 명의 주자가 길가에 주저앉아 있다 그런데 경찰관, 자원 봉사자, 의료진 이렇게 3명이 한 조가 되어, 경찰은 달리는 주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통제를 하고, 자원 봉사자는 열심히 옆에서 돕고 있다. 정말 부러운 광경이다. 참가자 2만천 여 명에 자원 봉사자 5천여 명(참가자 4명당 1명), 의료진 2천여 명(참가자 10명당 1명) 도로에 깔린 붉은 옷을 입은 자원 봉사자, 중요 코스마다 설치된 응급 구호 텐트, 1마일마다 좌우 교대로 설치되어 물과 게토레이를 주는 급수대, 완벽한 대회 운영. 참으로 부럽기만 한 세계 최강 미국의 저력을 느끼는 순간이다. 35km 지점에서 합정동 동생이 쥐가 날 것 같다며 힘들어한다. 중병을 겪고도 1~2년 전에는 정말 좋았었는데. 잠 못 잔 데다 연습 부족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막내동생은 연이은 기업 인수와 정상화 작업에 눈코뜰새없이 바쁜 와중에도 몸이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어 가벼워 보인다. 약간 앞서 리드하던 나는 두 동생 뒤로 가서 달렸다. 자연 페이스가 약간 늦추어졌다. 국내 신문에서 대서특필했는데, 기필코 완주는 해야지 하는 마음이 우리 형제들의 같은 마음이었다. 그럭저럭 40km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갈수록 인파도 응원의 함성도 커지고 있었다. 힘이 남아돈 나는 엔돌핀이 폭포처럼 흘러나오는 듯했다. 연도에 보이는 어린애는 하나도 빠짐없이 하이파이브를 해주었고, 교포들의 외침에는 두 주먹을 하늘 높이 내지르고 점프하여 답례해 주었다. 그야말로 완전히 환각 상태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남은 건물을 돌아가니 골인 지점이 아득하게 보인다. 이미 시간은 3시간 5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보스턴의 가장 핵심 중심부, 골인 지점에는 마치 경기장처럼 좌우로 스탠드를 만들어 길가에 응원하는 사람들이 빽빽하다.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즐겁다. 이게 보스턴 마라톤이구나. 우리 3형제는 두 팔을 만세 부르듯 높이 들고, 손에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으면서 골인하였다. 4시간 6초. 정말 즐겁게 달렸다.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감동이었고 꿈의 레이스였다. 골인 후 체온이 내려갈까봐 커다란 비닐 윗도리 같은 것을 건네준다. 한 4, 50m를 가니 길 좌, 우로 구두를 닦듯이 길게 늘어앉은 자원 봉사자들은, 주자들이 의자에 앉아 발을 올려놓으면 끈을 풀고 칩을 빼고 다시 끈을 묶고 완주 메달을 목에 걸어준다. 길게 늘어진 테이블 위에는 물, 캔음료, 빵, 바나나 등 먹을것이 무진장이다. 비닐 봉지에 맘껏 담아간다. 조금 가니까 형님이 장미 세 송이를 사가지고 소중하게 들고 서 계신다. 환하게 웃으시면서.... 자랑스런 동생들에게 장미 한 송이씩을 건네주시면서.... 완주를 축하한다고 하시면서.... 평소 그러는 분이 전혀 아니신데.... 코끝이 찡하게 저려오는 우리 형제애. 형님의 눈에도 나도 내 두 동생들의 눈에도 이슬이 내비쳤다. 처음 막내가 “셋째형님의 뇌졸중 완쾌 기념으로 보스톤에 가서 한 번 신나게 뜁시다.” 던 것이 현실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한 우리 4형제간의 우애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
첫댓글 즐거이 다녀오심을 기꺼이 축하드립니다. 모든 회원님들이 다 한번씩 다녀올 수 있다면 오죽 좋을련지요? 환각상태의 연속이셨다니 그 정경이 눈에 선합니다. 4형제의 아름다운 보스톤 출전기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아빠! 우리 아빠! 정말 감동적입니다. 저도 눈물이 나네요. 매년 해외 원정 마라톤을 한 번씩 다녀오시면 어떨까요? 마라톤이 열리는 도시마다 아빠의 자취를 남기시는 거지요. 아빠, 화이팅입니다!
그 먼곳까지 가셔서 형제분들과 함께 정말 즐거운 달림이 되셔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4시간 동안의 달림 보스턴마라톤의 감동을 회장님 글을 뵈니 눈에 선하고 마치 제가 뛰는듯한 착각도 듭니다..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회장님의 보스턴 완주를 축하드립니다.보스턴의 마라톤 문화가 부럽습니다.하지만 회장님과 형제분들의 우애와 가족의 사랑이 더 부럽습니다.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회장님 완주를 축하드리우며 형제간에 우애는 부러울뿐입니다
회장님~ 즐거운 마라톤 여행 무사히 다녀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형제분들간에 늘 건강과 우애를 다지는 모습은 저희들이 본받아야 할 길이지요. .....아쉬운 것은 "kiss me"란 팻말을 무시하고, 마구 달리신 거~~ ^ ^*
가슴이 마구 울려옵니다. 감동적인 글. 형제분들의 우애를 다시 확인한 멋진 모습이 눈에 아롱거립니다. 그러나 저러나 고거이 이쁜 아가씨에게 뽀뽀라도 하시지 그랬습니까. 아이구 아쉬워
회장님의 줄거웠던 보스톤후기 감동깊게 잘보고 갑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회장님의 보스턴 완주를 축하하며, 보스턴대회가 세계적인 대회가 될 수 밖에없는 이유가있네요. 우리나라에서 하는 국제적인 대회도 축제적인 분위기가 되었으면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형제간의 우애는 더 할 수 없이 부럽네요.
다시한번 보스턴 정벌을 축하드리며, 형제애가 물씬 넘치는 완주기 감동적입니다.늘 변함없이 즐건달 하시길 바랍니다. 글구 어제 초대된 저녘파-티에 참석치못해 죄송스러웠슴니다
항상 본보기가 되어 주시는 회장님~~ 보스톤까지 가셔서 좋은 모습을 또한번 보여 주시고, 화목한 가정까지~~~ 우리 멋지신 회장님 완주 축하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멀리까지 가셔서 훌륭히 완주하시니,, 제게도 기쁨이 옵니다,,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