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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푸른환경연합 경북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영허일월륜
- 큰 지도자 ... “ 내가 미안하구만! ” - 우리나라 역사 중 큰 지도자라면 박 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뺄 수가 없고, 큰 기업가라면 정 주영(鄭 周永) 전 현대그룹회장을 뺄 수가 없다. 지난 1960년대 후반 경부(京釜) 고속도로 건설 때 ... 두 지도자 사이에 있었던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逸話)중 하나 -. 당시 박 대통령은 주위의 정치 지도자, 일부 대학 교수들 까지 반대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만난(萬難)을 물리치고 강력히 추진하고 있었고, 마침 현대건설 주인인 정 주영이라는 걸출한 건설인을 만나 가장 싼 비용으로 최단 시일에 건설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불철주야로 진력(盡力)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침실 머리맡에 건설 상황판을 걸어 놓고 수시로 전화하거나, 찦차 , 헬기로 현장에 나타나 ‘체크’ 했으며, 정 사장은 공사 현장에 간이 텐트, 침대를 놓고 여차하면 그곳에서 작업화를 신은 채 잤고, 심지어 6일 동안 양말을 갈아 신지 못할 때도 있었다. 잠은 오가는 찦차 에서 잠시 자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공기(工期)를 단축해야 건설비를 한 푼이라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여차하면 청와대에 정 사장을 불러 식사하면서 고속도로 건설 진척 상황을 물었고, 나라 경제도 논의했다. 그 만큼 두 지도자는 친숙했고, 자주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 청와대에 정 사장이 또 불려가 박 대통령과 만났는데 ... 두 사람만 청와대 응접실에서 대화를 했다. 박 대통령이 정 사장에게 긴히 할 말을 하고 있는 데 ... 그런데 ... 정 주영 사장이 그만 졸았다. ‘ 정확히 2 ~ 3분 잤다고 했다. ‘ 아니? 대통령이 꼭 필요하니 정 사장을 집무실로 호출했을 것이고, 일국의 국가 원수가 긴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 잠시나마 꾸벅~꾸벅~졸다니 ... ? 당시의 청와대 응접실 탁자는 아주 조그만 했다는 데 대통령의 지시는 뒷전으로 하고, 바로 면전에서 졸거나 잠을 자다니 ... 당시의 박 대통령은 그 위엄과 엄격함이 군인 출신이라 소위 ‘카리스마’ 가 범상하지 않았다 하는데 ... 훗날 정 주영 회장의 회고담 ... “ ⌈각하,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 뭐 어쩔 줄을 모르겠어. 대통령이 기가 막혔을 거야. 하던 얘기도 중단 하셨을 거고 ... 웬만한 사람이면 내가 졸고 있을 때 휑 ~ 자리를 떴거나, 아주 언짢게 질책했을 거야. 내가 황송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데 ... 자리에 그대로 계셨던 박 대통령은 내 손을 꼬 ~ 옥 잡으시더니 이러시는 거야. ‘ 정 사장, 내가 미안하구만 ~!’ 참 대단한 분이야. 내가 그때를 잊지 못하겠어. “ 그 후 정 사장은 대통령의 이 말을 자주 써 먹었다 한다.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피로해서 앉아졸고 있는 직원들을 더러 보는 데, 순시 하다가 ‘깨우지 말라!’ 해 놓고, 한 바퀴 다 돌고 와서도 계속 졸고 있으면 그 때는 발로 ‘툭 ~ ’ 차며 깨웠다. 그 직원이 기절초풍하고 벌떡 ~ 일어서면 정 사장은 ... “ 내가 미안 하구만 ~! ” 했다. 정 사장이 말했다. ‘ 나도 그때 대통령의 그 말에 감동을 크게 받았는데 ... 그 친구들도 감격했을 거 아니야? 허 허 ... “ 고(故) 정 주영 회장 ... 그는 1915년생이고, 박 대통령은 1917년 생 ... 그 고속도로가 1968년 2월에 착공, 1970년 7월에 완공 됐으니 이 두 분은 각각 우리나이 55세쯤, 53세쯤에 이렇게 국가를 위해 헌신 하신 것이다. 정 회장의 저서 ‘ 이 땅에 태어나서’ ( 1998년 간)를 보면 고(故) 박 대통령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해 놓은 글이 보인다. “ ... 비록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는 약점을 가진 지도자이긴 하지만, 나는 박 정희 대통령의 국가 발전에 대한 열정적인 소신, 그리고 그 총명함과 철저한 실행력을 존경하고 흠모한다! “ 두 분은 이 나라를 세계 최빈국에서 일약 중진국으로 끌어 올린, 주인공들이라고 생각한다. 두 분의 명복(冥福)을 새삼 빌어마지 않는다. **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
누구를 위한 보냄이었던가?
대한민국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 5개월간 미국의 요청에 의해
살았는가 ? 죽었는가 ?
민간인은 언제나 희생의 몫
적지를 향한 폭격
어느 가족의 보금자리였을까 ?
승리를 한들 모두가 죽고 파괴된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리오 ?
전투 중 놓쳐버린 전우를 찾기 위해 다시 돌아갔지만,
[이 글은 웹상에 있는 글들을 모아서 재 편집 했습니다 원문글을 쓰신 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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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 오십시요.
즐감하고 갑니다.
휴 정말 귀한 자료 임니다.
감하고 감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