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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는 예쁘다] 05
S#1. 지하철역 구내 (밤)
4회 엔딩 씬 연결.
열차가 멈춰 서 있고,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드는 중이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역무원 두어 사람이 달려온다.
선로에 쓰러져있는 인순과 취객.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인순. 주위를 둘러보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곁에 쓰러져있는 취객을 살핀다.
인순 : 괜찮으세요? 많이 다치셨어요?
다리를 심하게 다친 취객, 아픈 표정으로 신음한다.
달려오는 역무원.
역무원 : 괜찮아요, 아가씨?!!
인순 : 저는 괜찮아요! 이 분부터 도와주세요!!
취객을 부축하는 인순.
선로로 뛰어내리는 역무원들. 웅성거리며 구경하는 행인들...
S#2. 지하철역 앞 (밤)
늦은 시간의 한적한 밤길.
엠뷸런스 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구급차가 달려온다.
구급차에서 내리는 구급요원들, 들것을 들고 역사 쪽으로 내려간다.
S#3. 역 구내 (밤)
플랫폼 위로 끌어올려진 취객, 아프다고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다.
구급요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오면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들것에 실리는 취객.
신속한 걸음으로 들것을 옮기는 사람들.
저만치 바닥에 주저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인순.
사람들 몇몇이, 인순을 가리키며 뭐라뭐라 자기들끼리 쑥덕거린다.
쑥스러워진 인순. 얼굴이 벌개진다.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
S#4. 지하철역 앞 (밤)
밤거리. 인적도 뜸한 늦은 시간이다.
역에서 총총 나오는 인순. 땀에 흠뻑 젖은 얼굴과 이마를 손등으로 훔친다.
멀리 구급차에 실리고 있는 취객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그 광경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그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S#5. 보도국 사무실 (다음 날 낮)
책상 앞에 앉아있는 상우. 뚫어져라 휴대폰을 내려다 보며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전화를 건다.
상우 : 안녕하세요, 이선생님... 저 유상웁니다.
S#6. 커피숖 (낮)
들어오는 선영.
한쪽에 앉아있다가 선영을 발견하고 일어나는 상우. 정중하게 인사한다.
마주 앉는 두사람.
잠시 긴장한 표정으로 있던 상우.
상우 : ...죄송합니다.
선영 : (담담히) 뭐가요.
상우 : 어제 제가 했던 말... 많이 불쾌하셨죠?
선영 : (짐짓 모른 척) 무슨 말? 아아... 나 성질 고약하다구 그랬던 거 말이에요?
상우 : (얼굴 벌개졌다)
선영 : (좀 삐딱한) 괜찮아요. 나 까다롭구 별난 거,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닌가?
상우 : ...아닙니다. 제멋대로 떠들었어요. 죄송합니다.
선영 : 그것 때문에 보자고 했어요? 유기자, 생각보다 한가한 모양이네?
상우 : ... 저어, 인순이... 말인데요. 주제 넘는다구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대신 해명하고 싶습니다.
고의로 속이려 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말씀 드리기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이해해주세요. 정직하고 성실한 친굽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선영 : (물끄러미 보다가) 혹시 인순이한테 연락 없어요?
상우 : 연락요? 연락이 안되나요?
선영 : (씁쓸히)
상우 : (표정 굳는다) 혹시 벌써... 해고가 된 겁니까.
선영 : (가만히 보다가) ... 어차피 알려질 일이니까 다 말할께요. 인순이 내 딸이에요.
상우 : 예??
선영 : 나 인순이 엄마라구요. 진작 밝히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상우 : (멍해진다)
선영 : (눈시울 붉어지다가) 유기자, 내가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상우 : (보면)
선영 : 인순이...살인 전과 있는 거 말인데요...어디에두 발설하지 말아줘요. 비밀로 해줘요.
상우 : 예에... (얼떨떨)
선영 : 그리구... (애써 담담하려 하며) 혹시 인순이한테 연락 오면 나한테 좀 알려 줄래요?
핸드폰두 꺼져있구... 어디로 갔는지 통 찾을 수가 없네요... (글썽하며 한숨) 나쁜 기집애.
상우 : (아직 모든 게 얼떨떨한데)
S#7. 인순의 고향 동네 (낮)
서울 근교의 소도시 작은 마을.
동네버스가 한 대 와서 멈추면 차에서 내리는 인순이.
S#8. 마을 길 (낮)
짐가방 메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인순. 주위를 둘러본다.
개발이 덜 된 소도시의 변두리. 논과 밭, 그리고 집들이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뭉클한 마음으로 둘러보는 인순.
S#9. 고향 옛집 앞 (낮)
할머니의 분식집 앞. 먼지 켜켜이 쌓인 창문 앞에 인순이가 서 있다.
깨지고 바랜 창문 안으로 이런저런 박스와 지저분한 짐들이 잔뜩 쌓여있다.
흉물스러운 폐가가 되었다.
우두커니 선 채로 건물을 바라보는 인순. 어느 순간, 눈 앞의 풍경이 회상으로 바뀐다.
S#10. 회상 (어린시절 낮) -93,94년도
인순이 중학교 시절, 활기찬 분식집으로 화면이 바뀐다.
할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쪄내고 있다.
곁에서 거들고 있는 인순.
인순 : 할머니, 내가 커서 돈두 많이 벌고 유명한 사람이 되면요,
할머니 고생 안 시키고요, 자가용도 사드리고, 맨날맨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요, 좋은 구경도 많이 시켜드릴께요.
비행기 타고 외국 구경도 시켜드릴께요...
할머니 : 아이고, 우리 이쁜 인순이... 말만 들어두 고맙다.
인순 : (환히 웃는다) 정말이에요! 쪼끔만요! 십년만 기다리세요!
할머니 : 오냐, 알았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선)
S#11. 분식집 앞 (현재 낮)
폐허가 된 분식집 앞.
눈물 글썽 어린 채 가만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인순이. 짐가방을 든 채 넋을 잃고 그대로 서 있다.
반쯤 떨어져나간 창문 위로 바람이 휑하니 분다.
인순 : 할머니... 죄송해요.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
손등으로 눈시울을 슥 훔친다.
꿋꿋한 표정으로 입술을 꾹 깨무는 인순.
S#12. 경준 학교 앞 (오후)
학생들 사이에 섞여 퇴근하는 교사들. 경준 모습이 보인다.
저만치 짐가방을 든 채구석에 숨어있다가 슬며시 나오는 인순.
이윽고 인순을 발견한 경준. 동료 교사들과 인사하고 인순에게 다가간다.
경준 :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인순 : (시선 떨군다) 안녕하셨어요?
경준 : (인순의 짐가방을 슥 훑어보다가) 안녕 못하다면?
인순 : (짐짓 씩 웃는다) 집에 갔더니 은석이 오늘 야외학습 갔다 그러드라구요. 많이 늦나봐요?
경준 : (마뜩찮게 본다)
인순 : (애교) 배 고프시죠? 제가 맛있는 거 해드릴려구 장두 봐왔거든요? (쇼핑 봉투 들어보인다)
경준 : 집... 나왔냐?
인순 : 예? 어후, 아니에요. (가방 뒤로 감추며) 그냥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죠.
경준 : (착잡한데)
S#13. 보도국 사무실 (오후)
들어오며 휴대폰 거는 상우.. 박인순 누른다. 역시...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음성이 나온다.
진태과 기자1, 한쪽에 서서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잡담하고 있다.
노트북 속의 동영상. 화면이 어두워 인물의 움직임만 실루엣으로 희미하게 보인다.
힐끔 보다가 자리로 가는 상우.
다가오는 진태.
상우 : 뭔데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진태 : 지하철녀.
상우 : 지하철녀? 그게 뭔데? (알겠다는 듯 한숨) 야동 좀 작작 봐라.
진태 : 짜식, 누굴 맨날 야동만 보는 놈으루 알어... (웃고) 어떤 여자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했나 봐.
목숨 걸구 뛰어들어서 사람을 사사삭 구해 놓구는 귀신같이 사라져버렸대.
상우 : (뜨악하게 보다가) 무슨 무협지 같은 소릴 하냐.
진태 : 그러게... (히히 웃고) 야, 근데 그걸 누가 휴대폰으루 찍어서 동영상을 올렸어, 인터넷에...
상우 : (혀 찬다) 이름 참 잘두 만든다. 지하철녀, 목도리녀, 개똥녀.
진태 : 흐흐, 그러게 말이다... (기지개 켠다)
상우 : (관심 없다는 듯 곁에 놓인 신문 스크랩을 들추는 척)
진태 : 어이, 유상우... 인순씬 잘 있어? 언제 울 집사람이랑 같이 술 한 잔 하자.
마누라가 영국 유학 껀으루 자문을 좀 구하고 싶대.
상우 : (창백) ...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 바뻐.
진태 : 바쁘긴 뭐가 바뻐? 이 자식은 인순씨 얘기만 나옴 왜 일케 민감해?
무심한 척 외면하고 신문 스크랩을 읽는 척 하는 상우. 그러나 맘은 괴롭다.
S#14. 상우의 회상
- 3회 15씬 공연장 로비에서, 코디네이터에요...라고 소개하던 선영과 맞아요, 하며 웃던 인순이.
- 4회 17씬 방송국로비에서, 고맙다. 영국 유학 시켜줘서...! 라고 말하던 인순이.
- 4회 17씬 방송국로비에서, 상우의 말을 다 들어버린 선영을 당황스럽게 쫓아가던 인순이.
- 4회 29씬 경준학교 교정에서, 내가 보기엔 자네가 사감이 있는 거 같은데? 왜 내 귀엔 비겁하게 들리지? 라고 말하던 경준.
S#15. 승용차 안 (오후)
퇴근 길. 운전하는 상우.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휴대폰 들어 다시 인순에게 전화 걸어본다. 전원이 꺼져있습니다, 안내음성이 나온다.
휴대폰 던지고 다시 운전한다. 막막하게 앞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아파온다.
저만치 건널목 앞에 서 있는 여자. 꼭 인순이처럼 보인다.
급히 차선을 바꿔 그쪽으로 차를 모는 상우. 차를 세우고 뛰어내린다.
반가움으로 미어지는 마음, 달려가 와락 돌려세운다. 그러나 물론... 인순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멀리서 경적 울리는 차량들.
당황하는 상우. 인사하고 허둥지둥 다시 차로 달려가는데...
S#16. 선영집 외경 (오후)
해질녘. 하프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S#17. 거실 (오후)
창가에 넋을 놓고 앉아있는 선영. 속상하고 맘이 불편하다.
점점 커지는 하프 소리.
거슬리기 시작하는 선영. 이윽고 돌아본다.
선영 : 좀 조용히 해줄래? (고함 친다) 조용히 해, 정아야!!
S#18. 정아방 (오후)
하프를 켜던 정아. 선영의 목소리에 잠시 연주를 멈춘다.
그러나 잠시 후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켜기 시작한다.
온 집안에 울려퍼지는 하프 소리.
선영(E) : 정아야! 정아, 엄마 목소리 안 들려?!!
무시하고 그대로 꿋꿋이 하프를 켜는 정아.
선영(E) : (고래고래 고함) 정아야!!
S#19. 경준 학교 교정 (오후)
멈춰서는 상우의 승용차.
차에서 내리는 상우. 잠시 교무실 쪽을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안으로 들어가는데,
저만치서 나오는 미진. 상우를 보더니 반갑게 뛰어온다.
미진 : 어머, 이게 누구세요?
상우 : 안녕하세요? 서경준 선생님 계십니까.
미진 : 글쎄요... (교무실 쪽 돌아보며) 퇴근을 하셨나... (같이 안으로 걸어가며) 근데 무슨 일루...
상우 : 누굴 좀 찾... (쑥스럽게) 아닙니다, 그냥요... 지난 번에 하다만 얘기가 있어서요... 저녁이나 대접할까 하구.
미진 : 혹시요... 우리 서경준 선생님요, 방송 출연 하시나요?
상우 : 예? 어어... 그랬으면 했는데.. 사양하시던걸요.
미진 : (한숨)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리 서선생님... 진짜 너무 겸손하세요. 너무 겸손 하시구 너무나 훌륭하세요.
남들은 방송 출연 못해서 탈인데...
상우 : 예에...
미진 : 선생님 덕분에 새사람 된 애들 정말 많아요. 월급 털어서 가난한 애들 등록금 다 내주시죠,
가출한 애들 어떡하든 설득해서 돌아오게 하시죠...
상우 : 훌륭하시네요.
미진 : 네, 성자가 따로 없으세요. 이 시대의 진정한 선생님...
상우 : 그런데 이혼은 왜 하셨나요?
미진 : 예?? 어머... 그거야... 전 부인한테 문제가 있으셨다 그러드라구요.
상우 : (떨떠름하게 듣다가) 글쎄요, 이혼이 누구 한사람만 문제가 있어서 하는 걸까요.
미진 : (뜨악하게 본다)
상우 : (당황스레 웃고) 아닙니다. 그냥 해본 말입니다, 하하.
안에서 나오는 남자 교사1.
미진 : (반갑게) 정선생님! 서경준 선생님 퇴근하셨어요?
교사1 : 아까 옛날 제자가 찾아와서 같이 나가시던데요?
미진 : (굳어진다) 옛날 제자요? (생각하다) 혹시... 인순이요?
교사1 : 인순이요?
상우 : (멈칫)
미진 : 아, 왜 머리 짧고 얼굴이...못되게... 범죄형으루 생긴... 젊은 여자애 말인가요?
교사1 : (얼떨떨) 어어...머리는 짧긴 짧은데...
미진 : 어머, 맞나 봐... (기분 나쁘다) 걔 또 왔어요?
상우 : (기분이 묘해진다)
미진 : (부아나서 혼잣말) 허, 이상한 기집애야, 진짜... (돌아보며 다시 상냥하게) 어떡하죠? 선생님 벌써 퇴근하셨나본데요.
상우 : 예에...
표정이 떨떠름해지는 상우. 그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렇다...이상한 기집애다... 박인순!!!
S#20. 경준집 거실 (오후)
인순과 경준 마주 앉아있다.
고개 숙인 채 바닥에 괜히 낙서하는 척 하는 인순.
무심한 표정으로 손톱을 깎고 있는 경준.
둘 사이에 잠시 적막이 흐르다가...
인순 : 고향에요, 옛날 살던 동네에... 갔다 왔어요. 어후, 진짜 하나두 안 변한 거 있죠.
몇 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두 안 변했어요. 학교랑...길이랑...다 그대론데... 우리 가게만 없어졌드라구요...
다 허물어져 가는데... 옆집에서 글쎄...창고루 쓰고 있는 거 있죠. 속상했어요.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는 인순.
경준 : (알면서 넌지시) ...거긴 왜 갔는데?
인순 : 그냥요.. 생각나서. (목이 멘다)
경준 : 집에서 전화 왔드라. 너 찾는 전화.
인순 : (놀라) 예?
경준 : 핸드폰두 꺼놓구... 어디루 사라졌다면서,
인순 : (OL) 엄마가요? 엄마가 전화하셨어요?
경준 : 네 고모 통해서 전화번호 아셨다면서... 전화 하셨드라.
인순 : (믿어지지 않는다) 그럴 리가요. 에이, 엄마가 그럴 분이 아니에요.
경준 : 왜?
인순 : (찔리는) 예? ..그건...그러니까...
경준 : 엄마하구 싸웠냐.
인순 : (잠시 시선 내리고 생각하다가) 선생님...
경준 : 왜.
인순 : (결심 어리는) 저... 알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요?
경준 : 허,
인순 : 선생님께 여자로... 제가 하나두 여자로 보이지 않나요?
만약에... 한 삼십프로 쯤 여자로 보인다면... 칠십프로는...제가 노력으로 개척해나갈 수 있어요.
경준 : (맘이 찡하다)
인순 : 선생님이 아무리 부인하셔두... 삼십프로는 있다는 거 알아요. 저두 알건 안 다구요... (눈물 그렁그렁 한다)
저... 다시 엄마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어젯밤 내내 선생님 생각만 났어요. 선생님 제발 절 좀 이쁘게 봐주세요.
경준 : (뭉클하다) 짜식아... 너 이뻐.
인순 : 이쁘긴 뭐가 이뻐요. 거짓말 마세요.
경준 : (웃다가 담담하게) 나는... 내 아내를.. 은석이 엄마를 아프게 했어.
밖에서 좋은 선생, 좋은 사람이란 소릴 듣기 위해, 곁에 있는 내 가족을 아프게 했어.
은석이 엄마 떠난 건 순전히 내 탓이야. 은석이 태어나던 날두... 가출한 제자 녀석 찾으러 다닌다구,
집에 들어오지두 않았다. 그런 주제에 언제나 나만 옳은 줄 알았어. 그게 훌륭한 인생인 줄 알았어.
인순 : (본다)
경준 : 애 엄마 떠난 뒤에야 깨달았어. 내가 그 여잘 얼마나 괴롭혔는지. 내가 얼마나 나만 생각하고 살았는지...
인순 : ...아직... 그 분을 못 잊으신다는 말씀인가요.
경준 : (알 듯 모를 듯한 미소)
인순 : (확 어두워진다)
경준 : 사람은 어리석어서... 대개, 떠난 뒤에야 소중한 걸 알게 되지. 후회할 땐 이미 돌이킬 수가 없어.
인순 : ...
경준 : 엄마한테 돌아가. 사정이야 어쨌든... 서로에게 소중한 인연 아니냐.
인순 : (삐딱하게) 저... 그 분한테 소중하지 않아요.
경준 : 니가 그 분을 소중하게 여기면 되잖아.
인순 : (억울한 듯 본다) ... 맨날 성인군자 같은 말씀만 하시네요. 좋으시겠어요, 훌륭하셔서...!
경준 : 그래, 이 녀석아... 훌륭해서 좋다, 좋아... 어쩔래?
인순 : (서운하다...눈물 글썽한다)
S#21. 경준 집 앞길 - 놀이터 (저녁)
아파트 입구 공터.
차에서 내리는 상우. 가만히 건물로 다가가며 간간이 불 켜진 집집의 창문들을 바라본다.
착잡해진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지?
돌아가자, 표정이 비감해지면서 괜히 한 바퀴 빙 돈다.
터덜터덜 걷고 있는 상우. 놀이터 쪽으로 걸어온다. 뒤쪽으로 보이는 경준아파트 건물.
다시 멈춰선 채 건물을 지긋이 올려다보며 복잡한 기분이 된다.
그 순간, 저만치 유치원 차가 와서 멈춘다.
차에서 내리는 은석. 친구들과 선생님과 바이바이 인사하고 달려온다.
문득 상우와 눈이 마주친다.
당황하는 상우. 얼굴을 얼른 손으로 가리고 가는데...
은석 : 안녕하세요.
상우 : (들켰군) 어? 어어... 응석이구나.
은석 : 은석인데요.
상우 : 아, 맞아. 은석이... 너 왜 이렇게 늦게 퇴근... (한숨) 왜 이렇게 늦게 오냐? 유치원 어린이가!
은석 : 오늘 현장학습 갔다왔거든요. 동물원에요.
상우 : 어어... 그래? 그럼... 들어가라.
은석 : 우리집에 오셨어요?
상우 : 어? 어어, (얼버무리고) 아참 근데... 뭐 좀 물어보자. 인순이 누나 말이야... (머뭇하다가) 니네 집에 자주 오냐?
은석 : 예. 맨날 맨날 와요.
상우 : (굳는다) 그래?
은석 : 누나가 동화책도 읽어주고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맛있는 것도 해놓고요...
상우 : (기분 확 나빠진다) 누나 니네 집에서 잠두 자고 가냐?
은석 : (당연하다는 듯) 예에.
상우 : 허... (확 굳어있다) 은석아... 거짓말쟁이는 벌 받는 거 알지? (무서운 표정 짓는다) 무서운 아저씨가 와서 잡아간다!
정말루 누나 정말 니네 집에서 자구 간 적 있어?
은석 : (움찔 눈치보며) 예. 맨날맨날 자고 가는데요?
그 순간, 아파트 쪽에서 잰 걸음으로 달려나오는 인순.
인순 : 은석아, 잘 갔다 왔어?
은석 : (와락 반갑다) 누나!!! (달려가 안긴다)
당황하는 상우. 어쩔 줄 모른다.
은석을 끌어안던 인순. 마침내 상우를 봤다.
인순 : (의외다) 상우야? ... 니가 여기 웬일이야?!
상우 : 어어...저기...선생님...섭외...방송... (버벅거린다. 한숨 깊이 내쉰 후... 정리하고 진지한 척 둘러댄다)
...선생님 뵈러 왔어. 출연 요청 할려구.
인순 : 그래? 선생님이 무슨 출연...?
상우 : 그런 게 있어. 넌 몰라두 돼!! (그나저나 벌컥 화가 치민다) 근데...너...어떻게 된 거야?
인순 : 뭐가?
상우 : (버럭 고함 친다) 휴대폰은 액세서리루 들구 다니냐? 왜 전원을 꺼놨어?
그리구... 사람 그렇게 우롱해두 돼? 니네 어머니라구 왜 말을 안 했어?
인순 : (당황하는)
상우 : 내가 뭐가 돼? 내 입장이 도대체 뭐가 되냐구?
인순 : ...미안하다. 그게...그렇게 됐어. 그리구 휴대폰은...잃어버렸어. 어젯밤에.
상우 : (할 말이 없다. 이게 아니다...그러나 에잇, 나도 모르겠다) ...핑계 대지 마!
인순 : (움찔 놀라는)
은석 : (역시 움찔 겁에 질려서 바라보고 있다)
상우 : 니가 청소년이야? 니가 몇 살인데 가출을 해? 집에서 걱정하실 거 아냐!
인순 : (조금씩 냉정을 찾는다. 얘가 왜이러나.. 점점 뜨악하게 바라본다)
상우 : (이러는 자신이 당황스럽지만) 비상연락처 대봐. 여기 말구! (휴대폰 꺼낸다)
인순 : 비상 연락처?
상우 : 어딜 가면 간다구 말을 해얄 거 아냐!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시겠어!!
인순 : (어처구니 없다) 너... 왜 이러니. 뭐 잘못 먹었니?
상우 : 내가 뭘!
인순 : (고함 버럭) 니가 뭔데? 니가 왜 나한테 화를 내는데?
상우 : (멈칫)
인순 : 왜 번번이 나타나서 내 입장 곤란하게 만들구! 왜 번번이 제대로 사과두 안 하구!!
그런 주제에 왜 화까지 내는 건데? 어?
상우 : ...
인순 :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웃겨 너...! 난 니가 이렇게 후지게 자랐을 줄 몰랐어!!
상우 : (얼굴 벌개진다) 뭐라구?
인순 : 걱정 마. 니 말대루 나, 청소년 아니구! 내가 가출을 하든, 우리집에서 걱정을 하든, 니가 상관할 일 아니야!
너 가만 보니까 되게 오지랖이다? 틈만 나면 간섭하구... 잘난 척하구... 가르치구...
그거 아주 나쁜 습관인 거 알어?
할말이 없어지는 상우. 조마조마 지켜보는 은석.
그 순간, 안에서 나오는 경준.
은석 : 아빠!!
헉하고 놀라는 상우. 허둥지둥 돌아선다.
상우를 발견한 경준. 반갑고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오는데..
그 순간, 부랴부랴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출발 시키는 상우.
인순 : (어이없다) 야, 유상우! (쫓아가며) 선생님한테 용건 있다면서!!!
그대로 부리나케 차를 몰고 가버리는 상우.
어처구니 없는 인순.
경준에게 바짝 매달리는 은석.
은석 : 아빠... (두려운 듯 소근거리는) 디게 무서운 아저씨에요.
경준 :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얼떨떨한데)
인순 : (멀어지는 상우 차를 보며 씩씩거리는) ...이상한 자식이야, 진짜!!
S#22. 거리 (저녁-밤)
거칠게 차를 몰고 가는 상우. 도대체 이게 뭔가! 이게 무슨 망신이고 수모인가! 도대체 내가 왜이러고 있는 건가!!
무참하고 억울하고 화가 난다. 괜히 빵빵 클랙션을 울린다.
S#23. 선영집 선영방 (밤)
어두운 실내. 뒤척이며 누워있는 선영.
노크하고 들어오는 파출부.
파출부 : 사모님... 따님 왔는데요.
선영 : (멈칫) 누구...요?
파출부 : 인순씨 왔어요.
선영 : (놀라서 일어나는)
S#24. 선영집 거실 (밤)
짐가방 들고 서 있는 인순. 용기를 내자, 용기를 내야 돼! 선영 방 문을 지긋이 바라본다.
인순 : (N 비장한 어조로) 선생님이 가라고 해서 돌아온 게 아니에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돌아온 건 더더욱 아니에요!
내가 다시 돌아온 건...
그 순간, 방에서 나오는 선영.
흠칫 표정이 굳는 인순.
선영 : (기운 없이) 왔니.
인순 : ...(짐짓 비장한 시선으로)
긴장 흐른다.
S#25. 선영집 거실 (시간 경과/밤)
소파에 마주 앉아있는 인순과 선영.
비장한 각오로 선영을 바라보던 인순. 이윽고 결연히... 오버스러울만치 비장한 표정으로 준비해온 멘트를 날린다.
인순 : 엄마가 혹시 나가라두 해두, 나 인제 절대 안 나갈 거에요. 생각해봤는데...나가면 나만 손해에요! 나만 억울해요!
나요, 엄마한테 못 받은 거 다 받아 낼 거에요! 당당하게 다 받아낼 거에요! 그래서 돌아왔어요.
선영 : (가만히 바라본다)
인순 : 못해준 거 다 해준다고 하셨잖아요. 학교도 시켜주시고요... 코디네이터, 좋아요! 할테니까 월급도 주세요.
제가 일한 댓가는 정당하게 받아낼 거에요!
선영 : (물끄러미 보다가) 그래, 그렇게 할께... 그렇게 하자... 미안하다.
인순 : (멈칫 의외다) ...아, 그게, 저어... (슬몃) 너무 미안하실 건 없고요,
선영 : (와락 감정이 북받친다) 미안해, 인순아.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어.
인순 : (당황하는데) ...
선영 : 그치만 너두 날 좀 이해해주면 안될까? 아무두 내 맘을 몰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니? 내가 얼마나,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아무도 모를 거야.
그런데 모두가 나만 나쁘다는 거야...
인순 : ...(벙찐다)
선영 : 억울해. 억울해서, 하루에두 열두 번 씩 죽고만 싶어. 살아있다는 게 치욕이야.
너까지 나한테 이러지 마. 너까지 이러면 난 정말 죽어버릴지두 몰라...
인순 : ...(맘이 약해진다) 엄마...
선영 : (흐느낀다) 제발... 제발 너라두 날 좀 이해해주면 안되겠니.
인순 : 이해... 못하겠다는 게 아니고요...
선영 : (휴지로 눈물 닦고 애틋하게 바라본다) 그래, 저녁은 먹었니?
인순 : (그 눈길에 맘이 뭉클해진다) 네. 먹었어요... (미어진다) 사실은요, 저요...
엄마, 저도 엄마가 미워서 이러는 건 아니구요... (글썽하는) 그러니까, 엄마가... 엄마가 조금만 더 나한테... 관심을,
선영 : (말을 자르며) 그럼 올라가서 쉬어... (머리 짚으며 일어난다) 나두 좀 쉬어야겠구나.
인순 : (당황스레 엉거주춤 바라본다)
선영 : 내일 보자... 잘 자라.
한없이 다정한 어조로... 자기 말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선영.
얼떨떨 바라보는 인순. 방금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한 건가? 엄마가 나에게 용서를 구한 건가, 아닌 건가? 헷갈리고 복잡하다.
무안한 얼굴로 방금 닫힌 선영 방을 바라보고 있다.
인순 : (N) 우리 모녀는 분명히 눈물겨운 대화를 했다. 그리고 엄마는 분명히... 미안하다고 하셨다...
S#26. 이층 계단 입구 (밤)
가방 들고 계단을 터덜터덜 올라오는 인순. 허탈하다.
인순 : (N) 그런데...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억울한 건가! 도대체 뭐가 이런가? 나는 왜 늘... 이 모양인 건가!!
그때, 방에서 나오는 정아. 놀라움과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정아 : (환해지며) 언니!!
인순 : (너무 반가워하니까 되려 당황) ...어? 어어...
정아 : 언제 왔어요? (가방 내려다보며) ... 다시 들어온 거에요?
인순 : 어어... (쑥스럽게 가방 감추려는)
정아 : (흥분) 잘왔어요! 잘 들어왔어요, 언니.
인순 : (얼떨떨 보다가) ...정말이지?
정아 : 예?
인순 : 정말루 내가 그렇게 반가워? 정말이야?
정아 : 그럼요.
인순 : 저기... 한 번만 다시 물어봐두 돼? 내가 정말 그렇게 반가운 사람이야?
정아 : 그럼요.
인순 : (어쩔 줄 모르며) 왜?
정아 : (쑥스럽게) 그냥요. (와락 손을 잡는다) 그냥 보고 싶었어요, 언니.
인순 : (뭉클하는) 에이... 거짓말! 내가 뭐가...
(자기도 모르게 목이 멘다) 에이... 얘는 참! 이러믄 내가 감동하잖아!! (글썽거리다가 환하게 웃는다)
S#27. 골목- 공터 (새벽)
후미진 골목. 건장한 남자 세사람이 누군가를 쫓고 있다.
인적 드문 야적장 근처.
미친 듯 도망치고 있는 근수. 뭔가에 걸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거리를 좁히며 쫓아오는 남자들.
그러나 막다른 건물에 다다르는 근수.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다.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다가 근처에 떨어진 돌을 하나 주워든다. 휘두르며 저항하지만... 세사람 앞에 역부족이다.
이윽고 얻어터지기 시작하는 근수. 거칠게 맞받아치지만 꼼짝없이 코너에 몰려 터진다.
피투성이가 되어가다가 마침내 바닥에 쓰러진다.
대장인 듯한 남자1. 나머지 두 남자에게 그만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남자1 : (신발로 근수 몸을 지긋이 누른 채) 짜식, 겁대가리가 없어... 도망가면 못 찾을 줄 알았냐?
근수 : ...(신음하는)
남자1 : (발로 차버리며) 마지막 기회야! 무조건 한 달 안에 갚아. 앞으루 한 달이야!
그 때까지 못 갚으면 넌 짜샤, 세상 다시는 못 볼 줄 알어.
근수 : ...
남자1 : 어디루 토낄 생각 하지마. 튀어봤자 우리 손바닥 안이니까.
한 번만 더 튀면 그날이 니 제삿날이야. 그 땐 돈이구 나발이구 다 필요 없어. 썅!
침을 탁 뱉는다. 눈짓 주고 받더니 가버리는 그들.
이윽고 혼자 남는 근수.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있다가 간신히 눈을 뜨면 밤하늘이 아슴프레 보인다.
얼굴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슥 닦는다. 의식이 가물가물하다.
S#28. 인순이네 분식집 앞 (회상)
이른 새벽. 어린 근수(11세)가 분식집 앞에 쓰러져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셔츠와 새집머리, 얼굴도 때로 얼룩져있다.
가게 문을 열러 나오던 할머니, 흠칫 놀라 들여다본다. 죽었나, 가만히 다가가 살핀다.
할머니 : 얘야....
뒤에서 다가오던 인순이, 흠칫 다가와 살펴본다.
할머니 : (흔들어 깨우는) 이 녀석아, 정신 차려봐라...
가까스로 눈을 뜨는 어린 근수. 휘둥그레져서 들여다보던 인순과 눈이 마주친다.
S#29. 분식집 안 (회상)
허겁지겁 밥을 먹는 어린 근수.
그 앞에 딱한 듯 바라보며 마주 앉은 할머니.
할머니 : 에고 불쌍해라...배가 많이 고팠나보다...많이 먹어라... (반찬 챙겨주는)
근수 : (정신없이 먹는다)
할머니 : 집이 어디냐?
근수 : (대꾸 없이 밥만 먹는다)
할머니 : 부모님은... 안 계시냐?
무심히 끄덕하는 근수. 다시 밥을 꾸역거리며 먹는다.
물주전자를 들고오는 중학생 인순이. 컵에 물을 따라주며.
인순 : (작게) 나쁜 형들 밑에서 앵벌이 하다 도망쳤대요.
할머니 : 앵벌이가 뭐냐.
인순 : 에이, 그런 게 있어요, 할머니... (작게) 구걸하는 거요. 역 앞에서요.
근수 : ...(들은 척 않고 그대로 먹기만 하는)
할머니 : (글썽하며) 에고...어린 것이...불쌍도 해라... (눈시울 닦는다)
인순 : (할머니에게 귓속말) 고아원에다 연락해볼까요?
할머니 : (안쓰럽게 한참 근수를 바라보다가) 아가...너...우리집서 같이 살래?
인순 : (놀라) 할머니.
할머니 : 누나랑 이 할미랑 같이 살래?
근수 : (잠시 멈칫 바라보다가 다시 묵묵히 밥만 먹는다. 대꾸 없다) ...
인순 : (안쓰럽게 바라본다) ...
어느 순간, 인순과 눈이 마주치는 근수.
머쓱하게 씩 웃어주는 인순.
차갑게 얼른 외면해버리는 근수. 얼굴 빨개지는 인순.
S#30. 학교 인근 공터 (회상)
몇 년 후.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얻어터지고 있는 여고생 인순.
멀리 나무 뒤에 숨어서 숨죽이고 지켜보는 어린 근수. 땟국물을 벗고 나름 깨끗해졌다.
두려운 시선으로 인순을 지켜보는 근수.
S#31. 공터 (현재-새벽)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는 근수.
그 모든 기억들이 꿈처럼 두서없이, 아득하게, 의식의 수면 아래로 스쳐지나간다.
힘겹게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뜨는 근수.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하늘을 바라보는데... 눈가에 눈물이 어려있다.
S#32. 상우집 거실 (낮)
화면 속에서 리포팅하고 있는 상우.
흐뭇한 표정으로 티브이를 보고 있는 명숙.
S#33. 뉴스 화면 (낮)
국립극장 앞에 서서 마이크 들고 리포트 중인 상우.
상우 : 모국을 떠나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발레를 사랑했던 로이 앤더슨 관장,
그의 마지막 고별 인사가 수많은 발레 후학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케이비엔 유상우였습니다.
S#34. 상우집 거실 (낮)
화면이 진행자 재은으로 넘어온다. 문화산책의 한 코너다.
재은 : 네, 유상우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감동적인 고별인사군요.
성곽이나 궁궐 등 문화재로만 여기던 곳들이 공연장으로 탈바꿈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야외라는 점 때문에 관객들의 접근성도 좋아 호응이 높다고 하는데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인 수원화성으로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만히 재은을 바라보는 명숙.
이층에서 내려오는 상우. 현관 쪽으로 가는데,
명숙 : (따라가며) 아침 좀 먹구 가지.
상우 : 나가서 먹을께요. 아버진요?
명숙 : 요새 일에 재미 붙이셨다 그랬잖아. 새벽같이 출근하셨다.
상우 : 예에..
명숙 : 잠깐만 상우야... (눈으로 화면 쪽 가리키며) 저 아나운서 말이야.
상우 : (티브이 쪽 흘깃 보는) ...재은이요?
명숙 : 맞다, 한재은 아나운서! 전에 우리집에 몇 번 전화했던 그 아가씨 맞지?
상우 : 네,
명숙 : 어뜨케 좀 안되겠니. 호호, 볼수록 탐나는 며느리감이야... 차암 인상이 좋구나...
부모님 뭐하시니? 학교는 어디 나왔어?
상우 : (확 거슬린다) 학교,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명숙 : (멈칫 무안)
상우 : (쌩하니 나가버린다) 늦었어요, 저 출근 해요!
명숙 : (서운하다) 아유...무뚝뚝하긴...녀석.
S#35. 상우 보도국 사무실 (낮)
켜놓은 티브이 화면 속으로 휴대폰 촬영 동영상이 흐르고 있다.
어떤 여자가 지하철에서 뛰어내려 날렵하게 사람을 구하면...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이 들어오는 그 모습.
그러나 화면이 어둡고 시야가 어두워 그녀의 모습은 형체로만 부윰하게 잡혀있다.
반복되는 동영상. 그 위로 아나운서 멘트가 깔리고 있다.
아나운서 : 휴대폰으로 찍은 한편의 동영상이 네티즌의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목숨 걸고 취객을 구한 뒤 사라져버린 의로운 그녀가 누군인지, 아직 그 주인공의 신상은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이름하여 지하철녀! 그녀의 선행을 담은 이 동영상은 조회수 일 위를 기록할 만큼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리포트 작성에 몰두 중인 상우.
다가오는 진태.
진태 : 이야... 저게 드디어 뉴스까지 나오는구나. (상우 찌르며) 봤어, 봤어? 저거야.
상우 : 관심 없어.
진태 : 넌 임마, 기자가 저런 시사성 넘치는 아이템에 관심이 없음 어떡하냐.
상우 : 저런 선정적인 뉴스! 혐오스러워, 나는.
진태 : 저게 뭐가 선정적이야? 훈훈하구만.
상우 : 됐어. 많이 감동해라.
진태 : 아참, 인순씨 뭐래? 시간 언제 난대?
상우 : (확 거슬리는 표정) ...인순이가 누구냐.
진태 : 뭐?
들어오는 재은. 방긋 웃으며 상우 앞으로 다가온다.
재은 : 선배!!
진태 : 너는 아나운서가 왜 자꾸 문화부를 기웃거려? 먼 사연 있냐?
재은 : (당황) 일이 있어서 온 거에요. 생사람 잡지 마세요.
상우 : (가만히 재은을 바라본다. 그래, 마음을 잡자. 마음 잡아야 한다)
재은 : 유선배, 요새 일이 힘드시나보다. 얼굴이 안 좋으세요.
상우 : (결심한다) 재은아,
재은 : 네?
상우 : 주말에 우리... 영화나 보러 갈래?
재은 : 정말요? (감동) 어머, 왠일이에요? 난 선배 맨날 바쁜 줄 알았어요.
상우 : 내가 언제.
재은 :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좋아요! 너무 좋아요! 제가 맛있는 저녁 살께요.
상우 : (과장스레) 무슨 소리야? 내가 사야지, 이런 미인하구 저녁을 먹는데!
진태 : (떨떠름하게 보는)
상우 : (짐짓 거만하게 씩 웃는다)
S#36. 병국의 회사 인테리어 전시장 (낮)
이런저런 인테리어 용품과 자재들이 전시되어있다.
직원과 함께 작업복 차림으로 도어제품을 체크하는 병국.
직원 : 이건 어떨까요, 사장님. 알루미늄 소재 도언데요. 유럽에서는 요새 이게 최고 인기라 그러거든요?
우리나라두 점점 반응이 오는 거 같아요..
병국 : (만져보고 두드려보며) 괜찮네... 인기 있을만 한데? (시계 본다)
직원 : 그렇죠? 소재 뿐 아니라 디자인두 굉장히 모던해서요...
병국 : (다시 시계 본다)
직원 : 사장님 뭐... 바쁜 일 있으세요?
병국 : 어어... 잠깐만... 이따 다시 얘기 하자구...
허둥지둥 나가는 병국.
S#37. 병국 집무실 (낮)
황급히 들어오는 병국. 부랴부랴 라디오를 켠다.
재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재은(E) : 공연 소식입니다. 오늘도 연극배우 이선영씨께서 자리해주셨습니다.
환해지는 병국 표정.
선영(E) : 안녕하세요?
재은(E) :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어떤 재밌는 공연을 소개해주실까 기대됩니다.
선영(E) : 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에요.
재은(E) : 어머, 유명한 작품이군요.
선영(E) : 그렇죠? 너무 유명한 작품이죠. 제 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처음 이 공연을 봤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밤새 잠못 이루고 뒤척였던 기억이 나요.
라디오에 바짝 귀기울이고 있는 병국. 좋아서 미소를 벙긋벙긋 짓고 있다.
S#38. 휴대폰 대리점 (낮)
선영과 인순, 점원 앞에 나란히 서 있다.
긴장하고 있는 인순.
선영 : 이게 제일 인기 있는 거에요?
점원 : 예, 그게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제품입니다.
선영 : 그럼 이걸루 할까? (인순을 돌아본다)
인순 : (머쓱) 아, 아무거나...
선영 : (다정하게) 아무거나가 어딨어. (미소 지으며) 이거보다 비싼 건 없어요?
점원 : 아, 있습니다. (다른 것 꺼내주며) 저어... (망설이며) 배우시죠?
선영 : (멈칫 보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아, 네.
점원 : (환해진다) 영광입니다. 우리 매장을 찾아주셔요.
선영 : (으쓱하며) 별 말씀을요. 인순아, 이것두 한 번 봐봐. 어떤게 나으니?
인순 : (얼어있다) 예에... 아무 거나...저는 다 좋아요, (머쓱 웃는다)
선영 : 애두 참... 골라보라니까? (다정하게) 어떤 게 좋아?
S#39. 백화점 명품관 의류 매장 (낮)
옷 골라서 인순에게 대 보이는 선영.
쑥스럽고 난감해 어쩔 줄 모르는 인순.
선영 : 이거 한 번 입어봐... 아냐, 이게 좋겠다...
이것저것 대보고 들어보는 선영. 정성스럽고 진지하게 고르고 있다.
어색한 표정으로 가만히 선영을 바라보는 인순.
인순 : (N) 엄마는 확실히 변했다... 미안하다고 했던 말은 그러니까, 진심이었던 거다! 심지어 엄마는...
선영(E) : 제 딸이에요!!
S#40. 까페 (낮)
여성잡지사 여기자1, 2(메모와 녹음기 준비)와 마주 앉아있는 선영, 그리고 인순.
선영 : 제 딸이라구요. 결혼 전에 얻은 딸이에요.
갑작스런 공개에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는 인순.
놀라서 마주보는 여기자들.
선영 : (아픔으로 가득한 표정) 진작 밝히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질 않았어요.
오늘 이렇게 기자님들 앞에서 속시원하게 고백하게 돼서 얼마나 후련한지 모르겠어요.
인순 : (얼굴 벌개져서)
선영 : 제가 뭐 여성잡지를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요. 기사라는 게 그렇잖아요. 진심이 왜곡될 때두 많고..
그래서 공개하는 걸 미뤄왔어요. 인순아, 인사드려.
인순 : (어쩔 줄 모르고 머쓱 목례)
기자1 : 아유, 미인이시네요.
선영 : 우리 딸 이쁘죠? (애틋하게 인순을 보는)
기자2 : (조심스레) 그럼 그동안 죽 못 만나셨...
선영 : (얼른) 네, 어릴 때 즈이 아빠 따라 이탈리아에 건너가서, 거기서 자랐어요. 거기서 대학까지 나오구요.
인순 : (휘둥그레진다) !!!!!
선영 : (인순 머리 쓰다듬어준다) 최근에 귀국해서 제 코디 일 거들어주고 있어요. 디자인 전공 했거든요.
기자1 : 엄마랑 다시 만나서 좋으시겠어요.
인순 : (떨구는) ...예에...
선영 : (글썽하며) 엄마두 없이 이렇게 이쁘게 자랐네요... 내가 죄가 많아요.
인순, 식은땀 흐른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S#41. 까페 앞 거리 (낮)
나란히 나오는 선영과 인순. 승용차 쪽으로 걸어가며.
인순 : 엄마,
선영 : (보면)
인순 : 딸이라구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선영 : (쓸쓸히) 고맙긴... 진작 밝혔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인순 : 엄마 그런데요, 제가 무슨 이탈리아...
선영 : (OL) 가만 있어. 엄마 하라는대로 해. 넌 아직 몰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아니? 있는 그대로 밝히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인순 : ...
선영 : 사람 죽여서 감방 갔다 왔고, 고등학교두 감옥에서 검정고시루 마쳤다구,
있는 그대로 다 말해야 되겠어? 바보같이! 그걸 원해?
인순 : (말문 막힌다) 그렇지만...
선영 : 그렇지만은 무슨 그렇지만!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거야. 엄마 시키는대로 해. 괜찮아.
저만치 선영을 알아보는 몇몇 사람들.
그들을 향해 방긋 웃어보이는 선영.
점점 기분이 서늘해지는 인순.
S#42. 인순집 앞길 (낮)
집안에서 하프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집 근처 적당한 곳에 기대어 서서 인순을 기다리고 있는 근수. 고개 푹 숙인 채 무심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장 봐서 들어오던 파출부. 수상한 남자다 싶어 유심히 본다.
눈 마주치면 경계하는 표정으로 물러서는 파출부.
파출부 : 누구...세요?
근수 : (머쓱 웃고 목례)
파출부 : (다가오며) 누구신데요?
근수 : ...
S#43. 동 정원 (낮)
근수와 들어오는 파출부.
여전히 집 안 가득 울려퍼지고 있는 하프 소리.
정원 한 켠의 파라솔 아래로 안내하는 파출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파출부 :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근수 : (목례 한다)
안으로 총총 들어가는 파출부.
이층 창가에 보이는 정아 모습. 가만히 시선을 들어 정아를 바라보는 근수.
문득 시선이 마주치는 두 사람.
흠칫 놀라서 하프를 멈추는 정아. 심드렁히 외면해버리는 근수.
S#44. 동 거실 (낮)
들어오는 파출부.
이층에서 내려오는 정아.
정아 : 저 사람 어떻게 된 거에요?
파출부 : 인순씨 동생이라면서 무작정 만나겠다 그래서요...좀 수상하기두 하고...
(바깥 살피며 작게) 인순씨한테 전화해볼려구요.
정아 : (몸을 숨기며 창밖을 기웃기웃 살피는데)
S#45. 선영집 앞길 (시간 경과. 낮)
선영의 차가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인순과 선영.
옷가방, 화장품 가방을 당연한 듯이 인순에게 떠안기는 선영.
양쪽에 가방을 들고 앞장 서서 급히 들어가는 인순.
S#46. 동 정원 (낮)
파라솔 아래 몸을 길게 뉘이고 있는 근수.
부리나케 계단을 올라와 정원으로 달려오는 인순. 유심히 이목구비 살펴보다가...
인순 : ....근수니?
근수 : (일어난다)
인순 : 근수 맞지??
근수 : (조금 떨리는 시선. 그러나 태연히 씩 웃는다) 오랜만이야, 누나.
인순 : (와락 다가가 붙잡고) 너... 살아있었구나!!
뒤이어 들어오던 선영. 뭐지? 하고 유심히 바라본다.
시선 느끼고 돌아보는 인순.
선영 : (경계) ...누구니?
인순 : (당황) 어어... 엄마, 어릴 때 우리집에서 같이 살았던 동생이에요. 인사드려, 근수야. 우리 엄마...
목례하는 근수.
행색이 맘에 안드는 선영. 대번에 표정이 안 좋다.
선영 : 무슨 사인진 모르겠는데... 난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마. 나중에 보자.
들어가버린다. 무안한 인순.
상황을 빠르게 캐치하는 근수.
인순 : 하하, 엄마가 오늘 인터뷰두 있고, 사람두 여럿 만나시구, 그래서 많이 피곤하시거든....
(다시 바라보며 기특한 듯) 너...진짜 다 컸구나. 어른 다 됐구나.
근수 : ...찬밥이구나, 누나.
인순 : 어?
근수 : 아냐. (집 올려다보며) 동네가... 좀 나가겠는데?
인순 : 어? 뭐가? 나가긴 어딜 나가?
근수 : (피식 웃는)
그 순간, 안에서 슬그머니 나오는 정아.
근수 : (깍듯이 목례) 또 만났네요.
정아 : (흠칫 놀라는)
근수 : 음악 감상 잘 했습니다.
정아 : (여전히 살짝 경계하는 표정으로 목례)
인순 : ...두사람, 아는 사이야? 벌써?
근수 : 나가자. 여긴 영 불편해서 못 있겠네. 음악두 영 내 취향이 아니구...
앞장 서서 나가버린다.
당황하는 인순. 얼굴 빨개져서 서 있는 정아.
S#47. 근처 식당 (낮)
마주 앉아있는 근수와 인순. 설렁탕 먹는 두사람.
배고팠는지 맛있게 먹고 있는 근수. 물끄러미 바라보는 인순.
근수 : (문득 시선 들어) 뭘 그렇게 봐?
인순 : (웃는다) 인제 보니까 키만 컸지, 하나두 안 변했구나, 우리 근수.
근수 : 허,
인순 : (자세히 보다) 얼굴이 왜그래? 다쳤니?
근수 : (앞머리로 얻어맞은 상처 가린다) 다치긴,
인순 : (걱정)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근수 : 뭐, 시시하게 살았지 뭐.
인순 : ...(글썽) 미안하다.
근수 : (피식) 뭐가.
인순 : 나 때문에...
근수 : 됐어. 누나 때문 아니야. 어차피 누나 집에 오래 있을 생각 없었어. 할머니 잔소리두 듣기 싫었구...
인순 : 돌아가시면서두 니 걱정 하셨대.
근수 : 누나 걱정을 해야지, 내 걱정을 왜 해?
인순 : (머쓱 할 말 없다.. 무안하다) ... 그러게.
근수 : 돈이나 좀 꿔주라.
인순 : (당황하다가) 돈... 필요해? 얼마? (지갑 꺼내며) 나 지금 오만원 정도 있는데... 마침 딱 아까 은행 갔다 왔거든.
(만원권 꺼내며) 얼마면 돼?
근수 : 허, 지금 사람 놀리나?
인순 : (얼떨떨) 왜? 더 필요해?
근수 : (보다가) 됐어. 찬밥한테 돈 빌리러 온 내가 돌았지.
인순 : (무안) 찬밥 아니야.
근수 : 딱 보니까 찬밥인데 뭐.. 보나마나 빵에 갔다 왔다구 인간 취급 안하는 거 같은데...
(피식) 인상 드럽드라, 니네 엄마...
인순 : (굳는다) 말 함부로 하지 마. 알지두 못하면서!
근수 : 흠.
인순 : 너... 나 어떻게 찾았어? 울집은 어떻게 알았구?
근수 : (물을 마신다) 조만간 다시 연락할께. 취직자리나 좀 알아봐 줘.
인순 : 취직?
근수 : 마당에 풀을 뽑든가, 지붕을 고치든가, 뭐든지 할테니까 일자리 좀 알아봐 주라. 그 정돈 해줄 수 있지?
인순 : (당황스럽다) 어어...
무표정하게 외면하고 묵묵히 밥을 먹는 근수.
S#48. 오디션 장소 (다른날 낮)
감독 앞에 서 있는 정아. 대본을 읽는다. 물론 여전히 책을 읽는다.
발랄한 캐릭터를 맡은 듯 하다.
정아 : 우씨, 너 자꾸 이럴래? 확 깨물어버린다!!
민망한 표정이 되는 감독.
정아 : 어머, 이게 뭐야? 내 선물이야? 뭐야, 뭐야,
감독 : 됐어요. 수고했어요. 그만 읽어두 되겠네요.
시선 떨구고 긴장하는 정아.
감독 : (딱하다는 듯 미소) 김정아씨... 왜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정아 : ...(식은땀 흘리며 그대로 서 있다)
인순 : (N)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S#49. 백화점 지하 커피숖 (낮)
한쪽에 서서 통화 중인 인순. 곁에 쇼핑 봉투를 가득 안고 있다.
인순 : (N) 모든 것이 원래대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인순 : 금방 가지구 들어갈께요, 엄마... (시계 본다) 알았어요. 그때까지 갈 수 있어요.
(쩔쩔맨다) 예, 지금 출발할께요! 걱정 마세요, 엄마.
인순 : (N) 도대체 왜이렇게 되고 만 거지?
한숨 쉬며 전화 끊는 인순.
저만치 반갑게 달려와 마주 앉는 미화.
미화 : 인순아!
인순 : 미화야!!
미화 : (아래 위 살피며) 우와... 너 디게 멋쟁이 됐다아!
인순 : (머쓱해지며 쭈삣거린다)
미화 : 디게 비싼 거 같은데? (만져보고 살피며) 동생 옷 빌려입었냐?
인순 : 에이... 아냐. 엄마가 사주셨어.
미화 : (빈정) 기집애, 진짜 팔자 폈구나! 어머나, 이거 뭐야, 휴대폰두 새 거네?
인순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빼앗아 이것저것 기능을 살펴본다.
인순 : 야, 고장 나! 인 줘! (장난스럽게 도로 가져가려는)
미화 : (새침하게 던지며) 더럽다, 더러워. 인제 완전 딴나라 사람 다 됐다 이거지?
인순 : 어휴, 뭘 그래. (살피며) 근데 괜찮아, 극복했어?
미화 : 뭘? 아아, 그 자식? (피식) 극복은 무슨... 남자 한 두 번 사귀냐.
괜찮아, 지가 아쉽지 내가 아쉽냐... 성공해서 나중에 꼭 아쉬운 맘 들게 할 거야.
인순 : 좋았어. 잘 생각했다.
미화 : 에효... 내 팔자에 성공은 먼 성공. 죽었던 부모가 살아올리두 없구.
인순 : (피식)
미화 : (괜히 쇼핑봉투보며) 그게 뭐야?
인순 : 어어, 엄마 옷... 빌린 거야.
미화 : 어쭈, 제법 코디네이터 티가 나는데?
인순 : (쑥스럽다) 야, 이런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드라. 장난 아냐. 심부름만 하는 데두 정신 하나두 없어.
미화 : 아참,아참, 근수라구 알어? 장근수?
인순 : (멈칫) 근수가 너 찾아왔었어?
미화 : 어, 교도소루 수소문 해서 어찌어찌 나한테까지 찾아왔드라구. 니 연락처 찾아서 온 사방을 다 헤맨 거 같드라.
인순 :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렇구나...
미화 : 만났어? 누군데?
인순 : 어어.. 동생.
미화 : 동생? 야, 걔 캡 잘생겼드라?
인순 : (시계 본다) 근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나 지금 가봐야 돼. 엄마가 급히 찾으셔서...
미화 : 야, 차라두 한 잔 마시구 가야 될 거 아냐!
인순 : 미안! 담에 보자. 담에 내가 월급 받으면 크게 한 턱 낼께! 진짜 미안!
손짓하고 달려가는 인순.
허탈한 미화.
미화 : 기집애, 완전 시녀네, 시녀! 허,
S#50. 방송국 로비 (낮)
쇼핑 봉투 들고 뛰어 들어오는 인순. 전화 통화 중이다.
인순 : 여기 입구에요. 금방 올라갈께요.
선영(E) : 인제 오면 어떡하니?
인순 : (땀 닦으며) 죄송해요, 차가 막혀서...
선영(E) : 됐어. 녹화 다른 날루 미뤄졌어.
인순 : 어, 그래요?
선영(E) : 로비에서 좀 기다려. 엄마 누구랑 얘기 좀 하구 내려갈께.
인순 : 네...
전화 끊는다. 허탈하다.
S#51. 방송국 커피숍 (낮)
소정과 마주 앉아있는 선영.
선영 : 요즘 방송국 피디들 왜 그러니? 옛날엔 안 그랬어.
스케쥴 맘대루 바꾸구 사람을 오라가라, 그래놓구 미안하단 말두 한 마디 없다?
소정 : 바쁘구 정신 없어서 그렇지 뭐.
선영 : 겨우 예능 프로그램에 패널루 출연하면서 몇 번을 왔다 갔다.. 이게 뭐니.
소정 : 큰 딸은 잘 있어?
선영 : (찌푸리는) 어어... 잘 있지 뭐. 아참, (금방 화색 돌며) 이거 볼래?
소정 : 뭔데?
선영 : (백에서 편지 꺼내며) 팬레턴데... 호호, 너무 웃기는 아저씬 거 있지.
소정 : (편지 받아서 읽는다)
선영 : 무슨, 건축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인가 봐.
근데, 내 연극을 글쎄 여섯 번이나 봤대지 뭐니. 대사를 줄줄 써 놨어.
소정 : 아유, 대단한 사람이구나. (읽으며) 선영씨의 연기를 처음 접한 순간, 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선영 : 호호, 너무 유치해. 나이든 영감탱이가 표현이 너무 낯간지러운 거 있지.
소정 : 얘, 너는 너 좋다는 팬을 영감탱이라 그러니.
선영 : 아유,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지 뭐. 디게 귀여운 아저씨 같애.
글쎄, 인테리어 새로 할거면 연락하라는데... 거의 뭐 공짜루 해주기라구 할 태세야.
소정 : (웃고) 좋겠다.
선영 : 좋긴 뭐가 좋아.
소정 : 좋지, 그럼.
선영 : 이선영... 한물 갔어. 인젠 이런 늙은 사람들한테나 박수 받구... (한숨)
조만간 경로잔치나 불려다니는 거 아닌지 몰라.
소정 : 또, 또, 함부로 말한다, 또.
선영 : (쓸쓸히) 너야 남편 돈 잘 벌어다 주고 모아논 재산두 넉넉하니까 먼 걱정이 있겠니...
난 지금 마이너스야. 하루하루 통장 잔고 주는 거 보면 피가 말라, 피가...! 거기다 입까지 하나 늘었잖아!!
S#52. 방송국 로비 (낮)
한쪽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인순. 물끄러미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경준(E) : 니가 그 분을 소중히 여기면 되잖아!
인순 : (시계 보면서 혼잣말)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
전화벨 울린다. 흠칫 놀라 전화 받는 인순.
선영(E) : 너 어디니.
인순 : 여기.. 로빈데요.
선영(E) : 거기서 뭐해?
인순 :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셔서...
선영(E) : 아유, 넌 애가 왜그렇게 덜 떨어졌니? 여태 거기 있음 어떻게? 도대체 몇 시간이야? 알아서 집에 가든가 해야지!
인순 : (벙찌는)
선영(E) : 알았어, 지금 내려갈께. 주차장에 가 있어.
인순 : ...네.
전화 끊는 인순.
인순 : (한숨 쉬고 혼잣말) 참... 어렵네요, 선생님... (입술 꾹 깨물고) 어렵습니다!
S#53. 지하 주차장 근처 (낮)
무거운 쇼핑 봉투를 주렁주렁 들고 지하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 인순.
순간, 저쪽에서 나란히 걸어오는 상우와 재은.
인순을 발견하고 당황하는 상우. 역시 눈 마주치면 조금 어색한 인순.
재은 : 어머, 이게 누구세요? 인순씨,
인순 : 아,예에..
재은 : 얘기 들었어요. 이선영 선생님 따님이시라면서요?
인순 : 예? 아아, 예.
상우 : (무심한 척 외면)
재은 : 어휴, 진작 말씀을 해주시지. 제가 실례할 뻔 했잖아요.
인순 : 아니에요, 실례는요, 하하.
재은 : 어머니하구 같이 오셨어요?
인순 : 네.
재은 : 옷 가지구 오셨구나아... (쇼핑봉투 내려다보며) 녹화 있어요?
상우 : (시계 본다) 재은아, 늦겠다.
재은 : 네? 어...네. (둘의 사이를 얼른 살피다가 짐짓 떠보는) 저희 오늘 북유럽 독립 영화 축제 보러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상우 : (일부러 퉁명스럽게) 쟤 그런 거 몰라. 독립 영화 같은 거 관심두 없구, 잘 모를 거야.
인순 : (멈칫)
재은 : (의외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에이...왜그러세요? ... 같이 가세요.
인순 : 아뇨, 저는...
상우 : 가자, 재은아... (짐짓 씩 웃고) 인순아, 갈께. 또 보자.
인순 : 어...
상우, 쌩하고 앞서 가버린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쫓아가는 재은.
허, 기가 막히는 인순. 기분 점점 더 나쁘다. 뭐 저런 자식이 있나?
S#54. 상우 차 안 (낮-저녁)
차에 나란히 타고 있는 상우와 재은.
운전하는 상우, 표정이 몹시 우울하다.
재은 : (신이 나서 팜플렛 펼치고) 아호넨 감독, 이 사람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이 사람 영화 중에, 자작나무 숲을 불태워라, 라는게 있는데요... 하하, 제목이 조금 거칠죠?
상우 : (씩 웃는) 그러네.
재은 : 제목하군 달리 무척 섬세한 영화에요. 선배 안 보셨음 내가 빌려드릴께요.
마지막 장면에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요. 차별 받는 이민자들의 삶을 그 영화보다 잘 그린 영화가 없을 거에요...
정복자 펠레는 보셨어요?
상우 : (안 듣고 있다)
재은 : 선배,
상우 : (점점 우울해지고 있다)
재은 : (살피는) 몸이 안 좋으세요?
상우 : 아냐.
라디오를 켜는 상우. 음악이 흘러나온다. 인순이의 노래다.
재은 : (흥얼흥얼 듣다가) 인순이 노래죠, 이 노래?
상우 : (흠칫) 어? 그래?
얼른 후다닥 라디오를 꺼버리는 상우.
휘둥그레져서 보는 재은.
상우 : 노래가... 별루네. 시끄럽냐. (머쓱 웃다가 다시 기분이 울적해지는데)
S#55. 주차장 (낮-저녁)
먼지 자욱한 주차장 한 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인순. 차들이 오갈 때 마다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한다.
쇼핑봉투를 주렁주렁 안고 우두커니 서 있는 인순.
인순 : (다시 분하다) 이상한 자식!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고 분하다.
S#56. 방송국 커피숍
소정과 마주 앉아있는 선영.
저만치 들어오는 중년남자 한 사람.
선영 : (반갑다고 손 흔들며) 어머, 최감독님!!
남자 : 아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선영 : (자리 권하며) 앉으세요, 앉으세요. 이게 얼마만이에요.
남자 : 이선생은 하나두 안 늙으셨네.
선영 : 안 늙긴요. 농담두 잘 하셔... 여기 주문 받으세요!!
소정 : 얘, 너 내려가봐야되는 거 아니니.
선영 : 괜찮아. (다정하게) 최감독님, 저번 작품 참 잘봤어요.
오랜만에, 그야말로 진심이 있는, 제대로 된 작품을 본 거 같아요.
남자 : 아유, 감사합니다.
선영 : (손 흔들며) 여기 주문 좀 받으세요!!
S#57. 주차장
기다려도 기다려도 선영이 안 온다.
다리 아파서 한쪽 구석에 주저앉는 인순. 시계 내려다 본다. 한숨이 나온다.
가방을 열어 이리저리 찾더니 가게에서 산 빵을 하나 꺼낸다. 봉지 열고 우물우물 먹기 시작한다.
저쪽에서 드디어 나타나는 선영. 기운이 하나도 없다.
얼른 일어나는 인순. 다가간다.
말없이 피곤한 듯 기분 나쁜 듯 차문을 여는 선영. 운전석에 앉는다.
조용히 눈치 보며 곁에 앉는 인순.
선영 : (깊은 한숨) 꼴보기 싫어.
인순 : (움찔)
선영 : 유치한 드라마 만드는 주제에 재기는 엄청 잰다.. 치켜주니까 세계 명작인 줄 알아요.
인순 : (안도... 얼른 빵을 가방에 쑤셔넣고 안전벨트 맨다)
선영 : (힐끔 돌아본다) 너 뭐... 먹니?
인순 : (꿀떡 삼키고) 예? 아,아닌데요.
선영 : 이런 데서 먹으면 먼지 들어가! 안 좋아.
인순 : 예.
선영 : (푸념) 운전기사 하나 없구... 신세가 이게 뭐냐. (돌아본다) 너 면허 없어?
인순 : ...없는데요.
선영 : 면허두 안 따구 여태 뭐했니?
차 출발 시킨다.
무심하려 애쓰는 인순.
S#58. 집으로 가는 거리 (저녁)
차 몰고 가는 선영. 조수석에 앉아있는 인순.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 선영. 표정이 점점 분노로 차오른다.
신호 대기로 멈춰 서자, 마침내 울컥 히스테리가 치민다.
선영 : 다 죽여버리고 싶어!!!
인순 : (흠칫 놀라)
선영 : 내가 숨겨논 딸이 있다는 데두... 고작 두 명한테 연락이 왔어. 그것두 순 싸구려 잡지!
인순 : (기막힌다)
선영 : 예전 같으면 이러진 않았을 거야. 정말 자존심 상해. 내가 왜 이렇게 된거니.
물끄러미 선영을 바라보는 인순.
선영 : (룸미러 당겨 얼굴을 들여다 본다) 주름 좀 봐. 갑자기 왜이렇게 늙었지?
인순 : 엄마 안 늙었어요. 나이보다 훨 젊어보여요.
선영 : (한숨) 늙었어. 너무 밉다.
인순 : 엄마 예뻐요.
선영 : 밉다면 미운 거야.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확 신경질) 걔는 뭐하는 애니?
인순 : 예?
선영 : 그날 그 깡패 같은 머스매 말이야! 그런 애랑 어울리지 마. 넌 인제 이선영의 딸이야. 품위를 지켜.
차가 다시 출발한다.
한숨이 포옥 나오는 인순.
인순 : (N) 인간은 변할 수 없는 건가? 내가 도대체 이 분에게 뭘 기대하고 있는 거지? 뭘 바라고 다시 돌아온 거지?
도저히...더 이상은...참을 수가...
점점 분한 표정으로 변해가는 인순.
선영 : 표정이 왜그래? 뭐 불만 있니?
인순 : (흠칫) 예? (주눅) 불만... 없는데요.
선영 : 웃어! 자꾸 웃어야 이뻐지구 젊어지지.
흥얼흥얼 콧노래로 처량한 멜로디를 부르는 선영.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인순. 시선을 스르르 떨구고 만다.
S#59. 인순의 교도소 감방 안 (회상/새벽)
어두운 실내. 높은 창문으로 한 줄기 새벽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구석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수감자 시절의 인순(수감번호3982)...
방바닥에 잠든 동료 수감자 몇몇의 모습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자다 깬 인순, 부스스 일어나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올려다 본다.
인순 : (N) 교도소에 있을 때는... 오로지 여기만 나가면, 여기만 나가면 좋겠다고 매일같이 기도 했었다.
여기만 나가면 뭐든지 하겠어요, 여기만 나가면 뭐든지 감사하겠습니다...
S#60. 어린 인순 고등학교 앞 공터 (회상. 낮-1회에 나왔던 화면/낮)
여고생 인순, 친구들에게 얻어 맞고 있다.
인순 : (N) 다른 애들처럼 나에게도 엄마만 있다면...
엄마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S#61. 선영집 앞길 (현재. 비오는 밤)
비가 쏟아진다.
차에서 먼저 뛰어내리는 인순. 우산을 받쳐들고 선영 쪽 차문을 열어준다.
여왕처럼 도도하게 인순의 에스코트를 받는 선영.
얼른 선영을 안으로 모셔다놓고 다시 뛰어나오는 인순. 차에서 쇼핑봉투들을 꺼내 비에 안 젖게 소중히 안고 안으로 들어간다.
인순 : (N) 엄마만 살아있으면 무조건 감사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지금... 감사하지 않는다. 교도소도 나왔고, 엄마도 살아있지만... 감사하지 못한다.
감사?? ... 죽어두 못하겠다! 인생은... 그리고 나는... 도대체 왜 늘 ... 이 모양인 건가?
S#62. 고모집 방안 (비오는 밤)
티브이에서 뉴스 화면이 나오고 있다. 지하철녀 동영상이다.
화면을 보고 있는 옥선.
곁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있는 고모부. 술병이 방안에 나뒹굴고 있다.
맞아서 퍼렇게 된 얼굴을 계란으로 문지르고 있다.
남자 기자(E) : 술에 취해 발을 헛디딘 취객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 의로운 여성이 누구인지,
아직 그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인정이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에 한줄기 빛과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코웃음 치는 옥선. 화면을 돌려버린다. 미운 듯 고모부를 힐끔 보고,
옥선 : 죽게 냅두지 뭐하러 살려? 술 마시는 인간들은 다 죽어두 싸!!
S#63. 방송국 앞 포장마차 (비오는 밤)
밖에 비가 들이친다.
홀로 앉아 소주를 마시는 상우.
들어오는 진태. 한쪽에 앉아있는 상우를 발견했다. 이미 좀 취했다.
진태 : (와서 앉으며) 이 시간에 웬일이야? 재은이랑 데이트 하는 거 아녔어?
상우 : 한 잔 해라.
소주잔 권한다. 잔 받는 진태.
상우 : 진태야...
진태 : 왜.
상우 : 내가 미칠 거 같애.
진태 : 너 원래 그리 정상은 아냐.
상우 : 내가... 아무래두 걔를... 사랑하는 거 같애.
진태 : (멈칫)
상우 : 근데 이게 도무지 나한테 납득이 안돼요. 내가 미치겠어.
진태 : 뭐가 복잡해? 축하할 일이네. 재은이... 너 땜에 고민 많이 했었어.
잘 생각했다. 걔가 쪼끔 싸가지는 없지만... 뒤끝두 없구, 알구보면 괜찮아.
상우 : ...
진태 : 이거저거 재면 만족할만한 상대가 어딨겠냐. 너는 임마, 욕심이 너무 과해.
그 정도면 일등 신부감이야. 걔 눈독 들이는 후배들 많다?
상우 : ...(깊은 한숨)
진태 : 아참, 인순씨한테는 얘기 했어? 디자인 스쿨?
상우 : 아줌마.. 여기 얼마에요.
진태 : 허,
상우 : 나 들어가볼께. (계산한다) 일할 게 남았어.
주인에게 돈 건네고 나가버리는 상우.
어이없는 진태.
진태 : 야! 유상우!
이미 가버렸다.
당근 하나 와작 씹어먹으며 분노하는 진태.
진태 : 하여간... 인간이 저래! 지 밖에 몰라요. 저런 놈들 땜에 지구온난화가 해결이 안돼요!!
S#64. 보도국 사무실 (밤)
비 맞고 들어오는 상우.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닦는다.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는다.
모두가 퇴근한 늦은 시간의 사무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상우. 인터넷이 자동 연결 된다.
인기검색어에 지하철녀. 화제의 동영상에도 지하철녀라고 표제어가 떠 있다.
상우 : 지겹다, 지하철녀.
화면 바꿔 기사검색을 누른다. 거기에도 지하철녀 사진이 올라있다.
째려보는 상우.
상우 : 지하철녀... 고만 좀 떠들어라.
동영상이 저절로 플레이 된다. 어두운 화면 속 여자가 휙 뛰어내려 사람을 구하는 문제의 그 장면이다.
문득 유심히 보는 상우. 다시 한번 플레이 한다.
자세히 들여다 본다. 한숨이 나온다.
상우 : 아, 어딜가나 너로 보이는구나. 내가 미치긴 미쳤나보다.
들어오는 재식.
재식 : 아직 퇴근 안 했어?
상우 : 들어갈 겁니다.
재식 : (들여다보며) 지하철녀, 밝혀졌대매? 인제 금방 사회부 민부장이 흥분했드라구.
상우 : (심드렁) 그래요?
재식 : (자리로 가며) 이름이 디게 촌스럽든데? 무슨 홍인순이래나, 박인순? 김인순?
아무튼 현장에 휴대폰을 떨어뜨리구 가서 확인했대.
상우 : (흠칫)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재식 : 왜?
상우 : 인순이요?
재식 : (혀 차며) 가수 인순이 말구... 너 술 마셨냐?
상우 : (멍하다가) 내가... 미친 게 틀림 없어요.
재식 : 뭐?
동영상을 지긋이, 뚫어져라 째려보는 상우.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가만히 플레이버튼을 누른다.
S#65. 휴대폰 동영상
계속, 여러 번 리플레이 되는 휴대폰 동영상.
날렵하게 뛰어내려 초인적 힘으로 취객을 밀치는 그녀. 간발의 차이로 달려오는 지하철.
선로에 쓰러지는 두사람.
인순 : (N) 할머니는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도, 우연한 것은 없다고...
태어난 것도,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니까 마주쳐오는 운명을 당황하지 말라고...!
선로에 쓰러진 그녀가 마침내... 어두운 흑백화면 속에서 점점 커다랗게 컬러로 확대되며... 클로즈업 되기 시작한다.
그녀는... 분명 인순이다!!!
S#66. 보도국 사무실 (밤)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상우. 표정이 서서히 얼어붙는다.
상우 : 지하철녀...!! (기가 막힌다) 너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