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문학평론가 권영민 교수의 산문집을 읽었습니다. 《너와 나 사이의 시》라는 책 제목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가 문학 연구가이기 전에 순수한 애독자로서 시를 아끼고 좋아하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문학콘서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문화의 창조력은 언어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언어의 꽃이 시입니다. 거칠어진 말을 다듬으면서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시에 있습니다.”
권 교수는 자신이 시집을 늘 곁에 두고 읽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권하고 아내에게도 가려 뽑은 시 낭송을 권한다고 했습니다. 미국 대학에 초빙교수로 나갈 때는 아끼며 읽던 시집을 100여 권이나 짐 속에 챙겨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물론 학생들에게도 시집을 권하고, 종강 때는 한 달에 시집 한 권 읽기를 숙제로 내준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가 좋아서 흥이 날 때도 기분이 언짢을 때도 이 시를 웅얼거리는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권 교수는 이 시를 “한 번 읊고 보면 마음속 깊이 물결처럼 평화가 스며든다”고 말했습니다.
권 교수의 이 고백을 읽고, 몇 줄 안 되는 짧은 서정시 한 편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런 힘이 있다는 것에 놀라며 시 암송의 힘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문학이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식과 교양뿐 아니라 감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하며 시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는 그것을 애써 찾아 읽는 사람에게만 충만한 기쁨을 주며 자기 자신의 삶을 보다 높은 존재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초월의 힘을 발휘한다. 시적 생활이라는 것은 시를 통해 정서의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가끔 즐기는 ‘카페 독서법’을 소개했습니다. 집 안에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울 때 책 한 권 들고 동네 큰길가의 시원한 카페를 찾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구석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책을 펴 들면 두어 시간 보내는 것은 일이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카페에 와서 수다에 열중인 아줌마들에게도 때로는 시집 한 권 들고 앉아 여유롭게 한여름의 독서에 동참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권 교수는 시를 어렵게 여기는 우리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줍니다. “시는 자꾸 읽어야만 가까워진답니다. 처음부터 무엇을 알아내려고 고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꾸 읽어 나가다 보면 시의 구절들을 저절로 욀 수 있고, 욀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저절로 그 뜻이 마음속에서 살아나지요.”
이번 장에서 추천하는 암송 시는 김달진 시인의 〈여름밤〉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방에 조용히 앉아 마음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시인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닮고 싶어집니다.
여름밤/ 김달진
긴 여름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앉아
바람을 방에 안아 들고
녹음을 불러들이고
머리 위헤 한 조각 구름 떠 있는
저 불암산마저 맞아들인다
암 송 사 랑/ 장석주(시인)
읽고 쓰라. 그리고 외워라. 그러면 문장이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사뭇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교양이라고 부르는 미덕의 첫걸음이다. < ‘흔들릴 때마다 시를 외웠다,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행복한 시 암송(문길섭, 비전과리더십, 2016)’에서 옮겨 적음. (2019.12.12. 화룡이) >
첫댓글 어제 문학창작강의반 수업 때 한 학생이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낭독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핑도는 감동이 밀려와 낭독이 끝나자 "아"하고 저절로 입에서 탄성이 나왔습니다. 마음속 깊이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습니다.
시 낭독을 듣는 것만으로도 탄성과 감동의 물결이 이는데, 실제로 본인이 낭송을 하면서 음미해 보면 또 다른 환희의 모습을 만나지 않겠는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