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 10, 25, 수요일, 구름조금, 남한산성,
"수어장대" 입구에 다소곳이 자리한 "향나무" 는.. 2023 년 기준 400 세 되시옵고 ~
"매바위" 뒷편에 새겨진 "서상조"<徐相朝 1830~1905>는 별시 문과에 병과로 합격해 "이조참판" "대사헌" 을 역임했다고 합니다 ~
매바위를 담치기해 어렵사리 넘어오니..?
반대쪽에는 "수어서대"<守禦西臺>암각이 새겨져 있네요..?
오른쪽 나무는,, 국정의 기반을 흔들다 망명객이된 리통이 다녀간 기념식수라고 하며 ~
"무망루"<無忘樓>현판은 "수어장대" 내부에 있던것을 보호각을 새로지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는 거구요 ~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에는 5 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
"수어장대" 는 산성의 서쪽에 있어 본래 "서장대"<西將臺>라 불렸고 1624 년 병자호란 당시 단층 누각에서 "수어청 우영장" 이 ~
서장대에 머물며 군사를 지휘하였고 그후 1751 년 유수 "이기진" 이 복층으로 중건하고 "수어장대" 라는 편액을 달았답니다 ~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1836 년 유수 박기수가 수어장대를 중수 하였는데 그 형인 "박주수" 가 숨을 거두기 한달전 쓴 것이라네요 ~
"수어장대" 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1 호였으나 2021, 12, 27 일 보물로 지정됐답니다,, <명품 소나무죠>~
수어장대 아래 산성길 언덕에 있는 바위글은 "병암"<屛岩>이고 옆의 작은글씨는 "이민하 십세기미서"<李民夏 十歲己未書> ~
큰글씨는 "이인고"<李寅皋> "이인설<李寅卨> "민하"<民夏>이며 수어사 서명응이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
행궁 "재덕당"<在德堂>옆에 있는 "반석"<磐石>은 "병자호란" "누란" 의 위기에서 나라를 "반석" 같이 지켜야 한다는 의미구요..?
행궁 담장을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꺽어지며 바로 왼쪽 계곡으로 진입하는 희미한 길을 따라가다 ~
계곡 바닥으로 내려서면 전면 바위일대에 각자가 밀집돼 있고,, 우측으로 올라가도 바위가 나오는데 ~
전면에 보이는 바위에 "옥천정"<玉泉亭>각자를 새긴 시기가 세정축작<歲丁丑作>이라 했으니,, 1817 년에 해당된다네요..?
"옥천정" 은 광주유수겸 수어사였던 "두실거사 심상규" <1766 ~ 1838>가 이곳에 지은 정자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옥천정을 보고 계곡 바닥으로 내려가 위를 살피다 발견한 "점가교"<漸佳槗> 각자거든요 ~
점점 "점"<漸>에 아름다울 "가"<佳> 다리 "교"<槗>면,, 이곳에 바닥이 보이는 다리나,, 돌다리 형태의 다리가 있었다는 거죠..?
옥천정 왼쪽 바위지대에 암각이 널려있는데,, 서체<書體>가 다양한 걸로 보아 보는이의 감상과 느낌의 흔적이리라,,?
"풍운폭"<風雲瀑> 석구<石仇>라,, 바람에 실려온 운무가 서린 폭포란 의미인지..?
풍운폭 위 "백당생애"<湐堂笙崖>의 "백"<湐>은 무슨 백자인지 안나오고? 집 "당"<堂> 생황 "생"<笙> 낭떠러지 "애"<崖>자 거든요..?
그 옆에 "옥천"<玉泉>의 옥자는 윗쪽이 살짝 마모됐지만 구슬 "옥"<玉> 샘 "천"<泉>이면 구슬같은 물방울이 흩날린다는 것일테죠..?
풍운폭 좌측의 "청계폭"<淸溪瀑>은 맑은 계류가 흐르듯 떨어진다는 뜻인지..?
이 글의 첫줄은 "옥천수석동선" <玉泉洙石動仙> 중략,, 두번째는 "거운전사침"<巨雲全榭沈> 중략,, 끝줄은 ~
"입동천정계세축중하 서상조 제"<立洞天亭溪嵗丑仲夏 徐相朝 題>대사헌을 지낸 "서상조" 가 쓴 글인데 산성에만 암각이 네군데 있거든요..?
여기 바위의 각자는 서체도 각각인데다 바위 상태와 글씨 형체도 온전치 않아 가뜩이나 짧은 식견에 어려움은 두배..?
확신할수 없지만 옥편을 뒤져 찾은 답은 "화현영"<化眩瑩> 까막눈의 비애랄까? 몇시간의 씨름 끝에 겨우 찾긴했는데.. 헐..?
"지운석"<枝雲石> 가지 "지"<枝>에 구름 "운"<雲> 돌 "석"<石>자면,, 구름이 가지처럼 펴진다는 뜻인지..?
"청계동천"<淸溪洞天>은.. 맑은 계곡수의 흐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의미 하겠죠..?
"좌간운O"<坐看雲O> 앉울 "좌"<坐> 볼 "간"<看> 구름 "운"<雲> 끝 글자는 윗쪽이 마모돼서 나중에 판독할랍니더..?
"석애지"<石崖之>는 돌 "석"<石> 낭떠러지 "애"<崖> 갈 "지"<之>로 봤는데? 초서체라 전문지식이 있어야 되는 분야란 생각..?
행궁 옆 재실 가기직전 우측 산자락에 있는 "중은암"<中隱岩>은 초서체로 쓴 명필인데 누군가의 은둔지 였음이죠..?
선조들이 남긴 흔적은 그 시대의 역사인데, 이곳 암각 군락은 방치된채 마모가 진행돼 안타까운 마음이고 해석은 각자의 몫이 됐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