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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한응 목사의 설교나눔 원문보기 글쓴이: 아모스박목사
(우)32414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학교길19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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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9.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부 활 주 일】
본 문 : 마태복음 10:1-4, 27:57-61
제 목 :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
찬 양 : 160, 161, 162, 165.
할렐루야!!
오늘 우리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 믿는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새벽에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난 마리아처럼 주님을 만나는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이 부활절은 우리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온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과 기쁨을 주신 날입니다. 만약에 우리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온 인류는 흑암과 절망과 죄악과 무질서와 혼돈과 폭력의 세계에서 헤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이 부활의 아침에 부활하셨기에 온 세상에는 소망의 태양이 뜨게 되고 여명의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을 받은지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절이야말로 모든 인류가 교파를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해서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하는 날입니다.
다 같이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찬161장> 부 활 찬 송
할렐루야 우리예수 부활승천 하셨네
세상사람 찬양하니 천사화답 하도다
구주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구주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사실 이 부활절은 성탄절보다 더욱 성대하게 더 기쁘게 지켜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신령과 진정으로,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의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기쁨과 축복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모든 운동경기는 정해진 규정과 룰이 있습니다. 이 규정과 룰에 맞춰 경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축구는 골키퍼를 합쳐서 모두 열 한 명이 경기를 합니다. 열두 번째 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스탠드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들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과 같은 마음 같은 정신으로 응원을 할 때 관중들을 열두 번째 선수라는 이름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또 농구 경기에서는 식스맨이란 말이 있습니다. 코트에 들어가 뛰는 선수는 5명인데 벤치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가 적재적소에 교체 멤버로 투입이 되어 활약하는 선수를 식스맨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10: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열두 명이지 열 세 명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식적인 제자는 분명 열두 명입니다. 그러나 그 열두 명 외에도 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눅10: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70명을 뽑아서 전도하러 보내시기도 하였습니다.
(눅10:1-3)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이 70명을 성경학자들은 전도인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 중에 세 명만을 데리고 간 곳이 세 번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한군데가 예수님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찬란한 모습으로 변화되셨던 변화산이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그 딸을 살리려고 갈 때에 세 명의 제자를 대동하셨고, 또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 가실 때에도 세 명의 제자만을 대동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런 내용에서 무엇을 알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12명을 분석하여 보면 대충 네 그룹으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함께 어디든지 동행한 베드로, 요한, 야고보 같은 제자가 있고
둘째, 나중에 복음서를 기록하고 크게 활약한 마태와 같은 제자가 있고
셋째, 제자의 이름은 있는데 아무런 업적이 없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넷째,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를 배반하고 판 제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라고 해서 다 제자가 아닙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다 교인이 아닙니다.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해서 다 은혜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27:5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하여 장사 지냈는데 성경에는 이를 가리켜 예수님의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어떤 사람은 그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수에 들었어도 별 볼일 없이 일생을 보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들지도 못하였어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지 못한 큰일을 하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열두 명의 반열에 들지는 못하였어도 열두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때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보다 더 큰 일도 했으며 열두 제자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해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열두 명의 자리에 들었다고 해서 다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제자 열두 명의 반열에 들지 못하였어도 그 제자들보다 더 큰 일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입니다. 그렇게 믿으시고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그럼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여 천추에 길이 빛나는 사람들의 행적을 찾아보면서 이 시간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한 한 여인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막14:3-9)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후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병자를 고치시기도 하시다가 날이 저물면 베다니 마을의 나사로의 집에 가서 쉬셨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베다니 마을에서 전에 문둥병을 앓던 시몬이란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문둥병 고침을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발적인 사건이 발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시는 길에는 항상 우발적인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실 때에도 열 두 해를 혈루병을 앓는 여인이 와서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사건이 일어나서 지체가 되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는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가셔서 죽은 딸을 살리셔서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날도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는데 한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드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제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 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고 그 여인을 칭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풍속에는 사람이 죽어 장사를 지내려면 시체에 향유를 발라 악취를 없애고 또 몰약을 발라 쉽게 부패하지 않게 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모두가 귓전으로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드림으로 해서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칭찬하시고 축복하시기를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고 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실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구레네 사람 시몬을 생각합니다.(막15:21-)
마가복음 15:21절 이하를 보면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으로 갔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이 말씀으로 설교를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실 때 쓰러지면 로마 군병들의 채찍이 예수님의 몸을 사정없이 내려칩니다. 그래도 올라가지 못하시니까 마침 구경하러 따라오던 시몬이란 힘깨나 쓸 만한 사람을 강제로 붙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기로 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져야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 십자가를 대신 지기로 한다면 예수님께 와서 병 고친 사람이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져야 하고, 예수님께 와서 떡 얻어먹은 사람들이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십자가를 져야 할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구경꾼들만이 뒤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시몬이 붙잡혀 십자가를 졌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루살렘에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왔다가 큰 구경거리 났다고 구경을 하다가 그만 재수 없게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하고 나니까 그것이 축복이 된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의 가족과 후손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롬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말씀의 루포가 바로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진 다음 그의 아내가 예수를 믿고 바울을 크게 도와서 바울이 선교를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AD312년 기독교를 인정하고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역대의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와 무슨 철천지 원수진 일이 있는지 기독교라면 공연히 이를 갈고 기독교를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황제로 즉위하자 기독교를 인정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바로 이 콘스탄틴 황제가 골고다 길에서 재수 없게 붙들려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의 12대 손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십자가 지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믿음은 어떠하였습니까? 정말로 주님의 십자가를 졌습니까? 내 마음에 들면 충성하는 척 하고 외식과 허영과 교만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 바로서야 합니다. 진실 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은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 하나님이 찾으시고 부르시는 부름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 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3.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란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마27:57,눅23;50-53)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비참하게 운명하신 후에 모였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던 몇몇 여인들과 로마 군병 몇 명만이 십자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면서 운명하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가서 당돌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믿음입니까?
눅23:5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아리마대 요셉은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빌라도는 누구도 죽일 수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서슬이 시퍼런 권력을 가진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입니다. 그런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사형 집행을 당한 시체는 장사를 지낼 수 없고 독수리와 짐승들이 밥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골고다에는 해골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뒤에 40여년의 세월이 지나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제는 늙어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생시에 하신 말씀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고 하신 말씀을 믿고 기다리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마태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로마의 박해에 언제 죽을지 몰라 예수님의 행적을 글로써 남기기로 하고 복음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복음서를 기록할 때 이 부분에서 지난날의 비겁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장사지낸 요셉을 일컬어 “그도 예수의 제자라” 고 칭찬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자신 보다 훨씬 낫다는 그런 뜻도 있습니다.
4.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을 생각해야 합니다.(막16:1-3, 눅24:10)
성경에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던 몇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등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눈물과 애통과 근심으로 보내고 이튿날 날이 밝아오기 전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세 여인들은 자신들이 사랑하고 존경해온 예수님이 그렇게 허무하게 십자가상에서 죽고 또 무덤에 장사된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지나길 기다려 무덤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다하지 못했던 일들이 후회도 되고 부지중에 당한 일이라서 예수님의 몸에 향유나 몰약도 발라드리지 못하였기에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 드릴 계획으로 이른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육중한 돌문이었습니다. 돌문이 무덤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낙심천만하여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문을 굴려 주리요’ 하면서 근심하고 있을 때 그들의 근심과 마음을 알아주듯이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고 수직하던 군병들은 혼비백산이 되었고 돌문이 열려졌습니다. 할렐루야!!
그 여인들의 소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굴려 주리요” 라는 말은 부활절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만의 근심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들 앞에는 가로막고 있는 돌문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낙심과 근심과 좌절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의 돌문 때문에 근심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질의 염려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출세의 염려 때문에, 돌문 앞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던 날 새벽에 무덤 문이 열려진 것처럼 여러분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들이 아무리 육중한 돌문이라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믿음 앞에는 분명히 열려 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였고
(마21:2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5. 예수님의 복음을 온 이방에 전한 사도 바울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행9:1-16)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진멸 하는데 앞장선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에 전통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사울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을 받고 바울로 변화한 사울은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3년간을 수련하고 예루살렘의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은 유대인으로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 선교에 앞장을 서서 이스라엘 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나아가서 유럽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만약 바울이 없었다면 그 큰 사명을 누가 감당하였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에 전파된 복음은 후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1884년 드디어 우리 한국에까지 전하여 지게 되었고 그 중에 나와 여러분들도 구원받게 된 줄로 믿습니다.<아 멘!>
우리가 신약 성경을 보면 27권 중에서 바울의 기록한 성경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1장에서부터 12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13장부터 28장까지는 사도 바울의 이방 선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또 자신의 사도성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였습니다.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 이라고 자신에 대하여 자신 있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즉 제자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6.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인은 모든 사람이 칭송하기를 여 제자라고 하였습니다(행9:36-43)
(행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욥바라고 하는 곳에 다비다라고도 하고 도르가라고도 하는 한 여인이 홀로 살면서 그는 삯바느질을 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여인이 죽었는데 사람들은 룻다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에게 전하여 빨리 오도록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와서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죽었던 여인이 살아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오늘 주목해야 할 것은 죽었던 그 여인이 살아났다는 것 보다 그 다비다라는 여인에게 여 제자라는 대명사가 붙어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다비다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 생존 시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따르면서 주님을 사랑하던 여자로써 한 때는 70인의 전도 대열에 끼어서 전도를 하기도 한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장사되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가난한 중에서도 옷을 지어 사람들에게 구제 사업을 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또 여 제자라는 칭송을 받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반열에 든다는 것은 분명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축복으로 누리지 못하고 가룟유다 같은 사람은 직분을 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옥의 음부로 들어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제자에 이름만 있지 아무런 활동이 기록이 없는 제자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충성한다는 것 또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 못지않은 축복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집사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속장이 아니면 어떻고 권사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장로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비록 그런 직분이 없어도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가 되어서 천추에 길이 빛나는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한 무명의 여인은 그의 행적이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그 여인을 칭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 같이 찬송가 323장 3절을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아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외람된 말씀이오나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