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낚시꾼
긴 이야기를 마친 도치씨는 눈을 떴다.
사타구니 앞에 쪼그리고 앉은 5번 낚시꾼의 머리통을 내려다봤다.
5번 낚시꾼은 쪼그리고 앉은 채 머리를 벤치에 처박고 있었다.
“내말이 거짓말 같지? 허지만 진짜야! 손톱의 때만큼도 거짓은 없어! 완전 팩트야!”
“...............”
“경매사들에게 맞아 죽을 뻔 했지만 좋은 일도 있었어. 그 후, 얼마 안 돼 말레이시아 해양환경부로부터 감사장을 받았거든. 그 감사장이 시바 가야부모님을 설득하는데 큰 도움이 됐지. 이슬람은 타종교에 편견을 가지지 않지만, 결혼은 엄격하잖아? 더군다나 국제결혼이니까.”
“........”
“야, 양아치! 듣고 있어?”
도치씨는 손을 더듬어 5번 낚시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양아치!”
“........”
“내말을 안 믿군! 의심 많은 내게 믿으려면 수평선처럼 믿으라고 아시발님도 말했는데, 자네는 친구해놓고 내 실화를 못 믿어?”
“........”
도치씨는 옆으로 돌아누워 5번 낚시꾼을 다시 쳐다봤다.
“자는 거야?”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건드렸지만 5번 낚시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리를 반쯤 일으키고 5번 낚시꾼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술 삭는 냄새가 진동했다.
도치씨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소리가 나도록 5번 낚시꾼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뭐 이런 놈이 있냐? 이야기하라 해놓고 처자빠져 자?”
5번 낚시꾼의 코고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화가 난 도치씨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기절직전의 5번 낚시꾼을 들쳐 업고 아파트상가의 호프집으로 달리던 생각을 했다
“나가 나으 병은 잘 아는디.”
5번 낚시꾼의 이 한마디 때문에 소주병을 9병이나 비웠고,
“나가 살면 얼매나 살겄소?”
이 푸념 때문에 블랙파이어렛과 아시발의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술에 곯아떨어진 5번 낚시꾼을 보자 왈칵 부아가 치밀었다.
뒤통수를 한방 갈겨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벤치에서 일어선 도치씨는 연탄불 위의 오징어처럼 기지개를 켰다.
기지개를 켜던 도치씨가 화들짝 놀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5번 낚시꾼의 엉덩이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양아치 너 꼼수부리는 거 아니지? 내 이야기 못 들은 척 하는 거 아니지?”
5번 낚시꾼이 머리의 방향을 틀고 잠꼬대를 했다.
“음냐, 음냐. 딱 한잔만 으응? 야, 딱 한잔만....음냐.”
신경과의사처럼 5번 낚시꾼의 콧구멍에 풀잎을 넣었다. 재채기를 하면서도 5번 낚시꾼은 콧구멍에 들어온 풀잎을 눈치 채지 못했다.
확실히 5번 낚시꾼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도치씨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마터면 아시발로부터 받은 능력을 잃을 뻔했던 위기감에 도치씨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낚시꾼의 사악함 때문에 절벽제비를 멸종시킬 수도 있어 미끼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으려던 아시발을 생각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술김에 아시발의 이야기를 5번 낚시꾼이 다 들었다면 분명히 아시발의 저주가 내려졌을 것이고, 자신의 낚시능력은 아시발이 다시 거두어 가버렸을 것이다.
도치씨는 5번 낚시꾼이 술에 취해 잠든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제비고기미끼를 제조하는 레시피를 지켰다고 생각하자 5번 낚시꾼이 한없이 고마웠다.
만약 5번 낚시꾼이 도치씨의 주량을 미리 알았더라면 술로 도치씨를 공략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사할 정도로 계략에 능한 5번 낚시꾼의 술책에 걸려들어 아시발이 전해 준 능력을 잃었다면 어찌 됐을까?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도치씨는 5번 낚시꾼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문득, 아시발의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빙그레 웃던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도치씨는 5번 낚시꾼이 깔고 앉은 깨진 도자기를 소리 나지 않게 치웠다.
5번 낚시꾼의 사타구니에 꽂혀 있는 술병을 조심스럽게 뽑으며 도치씨는 블랙파이어렛과 사투를 벌릴 때 받았던 사타구니 통증이 되살아나 머리를 흔들었다.
돌이며 생각하면 그 통증을 견뎠다는 것이 기적 같았다.
5번 낚시꾼이 몸을 뒤챘다.
“어이! 양아치!”
두 번이나 불렀지만 5번 낚시꾼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온 몸이 꿉꿉했다.
술을 방금 깼을 때보다 으스스했다.
5번 낚시꾼도 추워 보였다.
건너편 재할용수거함이 눈에 띄었다.
재활용수거함은 열쇠가 채어져 있어 5번 낚시꾼에게 도움 될 만한 의류를 꺼낼 수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마땅한 것을 찾았다.
재활용수거함 옆의 골판지박스를 발견했다.
가장 튼실해 보이는 것을 2장 가져왔다.
5번 낚시꾼의 체형에 맞게 골판지박스를 뜯어 벤치 틈에 끼웠다.
얼핏 보기에 노숙자의 잠자리 같아 보였지만 5번 낚시꾼이 한기를 막기엔 충분해 보였다.
벤치에 등을 기댔다.
머리가 몹시 아팠다.
갈증과 함께 입안도 깔깔했다.
1004호를 올려다봤다.
거실과 안방 모두 방금 불이 켜졌다.
시바 가야가 돌아 온 모양이었다.
골판지박스를 조금 열고 도치씨는 5번 낚시꾼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여하튼 아시발님과 약속을 지키게 해줘서 고맙네. 자네가 깰 때까지 같이 있어 주고 싶지만, 가야가 요즘 입덧이 너무 심해 항상 내가 옆에 있어줘야 하는 걸 어쩌겠나?”
도치씨는 5번 낚시꾼을 덮고 있는 골판지박스를 한 번 더 꼼꼼히 챙겨주고 벤치를 떠났다.
가을 냄새를 묻힌 밤바람이 슬쩍 불었다.
바람은 습기에 젖어 있었지만 골판지박스는 끄떡없었다.
가로등 불빛에 골판지의 인쇄글자가 선명했다.
취급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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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 낚시 잘보았슴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네 산아래님
다음 기회엔 더 재미난 소설로 뵙겠습니다. 편안한 밤되십시오
환상적이내요
낚시 소설 즐감했슴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열어가세요
고맙습니다. 편한밤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