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닥 희망마저 빼앗나” 농가 격앙
농축산 선물 허용가액 개정 움직임에 기대 컸는데
권익위 제동에 ‘큰 충격’ 농업피해 몰라도 너무 몰라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을 갈망하는 농민의 염원은 안중에도 없는 겁니까. 뒤통수를 맞은 듯 배신감이 듭니다.”
기대를 모았던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이 11월27일 국민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부결되자 농촌현장에서는 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농민들은 “농축수산물의 선물 상한액을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에 기대를 걸었는데 부결돼 충격을 감출 수 없다”며 개정안 재상정 등 신속한 후속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에서 한우를 기르는 박영서씨(71)는 “치솟는 사료값 때문에 현재 많은 소규모 농가들이 축산을 포기할 만큼 사정이 어렵다”며 “이번 권익위의 결정은 농민을 우롱한 처사”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선물 허용가액을 높이거나 아예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 강서구 강동동에서 카네이션을 재배하는 황일규씨(62)는 “김영란법으로 화훼를 포함한 우리 농축산업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는지 권익위 위원들이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밖에서는 중국산 꽃이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안에서는 김영란법으로 소비가 위축돼 농가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황씨는 “이번 시행령 개정 불발로 농가들의 실망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라며 “이른 시일 내에 개정작업에 착수해 내년 설 명절부터는 국내산 농축수산물 선물시장이 활기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경영 압박을 받아 온 지역농협들과 농가에서도 부결 소식에 격앙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남 정남진장흥농협(조합장 강경일)은 명절 선물인 표고버섯 선물세트의 매출이 급감해 심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후 5만원 이하 선물세트를 40여종이나 준비했지만 매출액이 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30% 이상 줄어서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 개정 무산에 심한 배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장흥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김중열씨(65)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소비자들이 값싼 외국산에 몰려 농업·농촌은 생존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며 “시행령 개정안이 무엇 때문에 부결됐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아예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선물 허용가액을 일부 상향 조정하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농축산물을 아예 김영란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호 경북 구미칠곡축협 조합장은 “한우는 선물 허용가액을 10만원으로 인상해도 소비촉진에 한계가 있다”면서 “우선 농축산물 선물 허용가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인상하되, 중장기적으로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