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행진/김병호
저 고양이는 단 두 개의 표정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위협할 때와 짐짓 무시할 때의 표정인데
길고 뻣뻣한 수염의 각도만으로
신박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담벼락을 등지고 울음 없이 버티는 저 자세는 어느새 폐허를 건너온 연대(連帶)이고
표정 하나 없이 살다, 다 잃고 돌아온 나의 오늘 밤은 표류에 가깝고
여리고 홀연한 대치, 시커먼 벚나무를 사이에 둔 눈빛만 환하다
오늘이, 꺾어 신은 운동화 뒤축 같은 부끄러움이라면
빙하에 묻힌 시신의 표정 같은 안부라면
내일은 저 벚나무 그루터기쯤이 되겠다
메마른 발자국 가득한 들판을 떠돌며
뿔도 없이 수염 하나로 어둠과 싸우는 저 투지를
죽은 자리만 떠돌아, 죽어서도 떼어낼 수 없는 저 울음을
나의 전생이라 하면 안될까
새들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담벼락을 가린 나무들 사이로
하품을 하며 돌아서는 고양이가 말한다
그럼, 같이 갈래?
죽음을 데려갔다가 놓쳐버린, 숲 속으로 행진
검고 축축한 발자국들이 얼어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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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광주 출생.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졸업.
* 2003년 〈문화일보〉신춘문예에 시 당선.
* 시집『달 안을 걷다』『밤새 이상을 읽다』『백핸드 발리』.
* 현재 협성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첫댓글 흐르는 곡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 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