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은근히 게으름을 좀 피워볼까 생각했습니다.
오전 복음생명반 모임이 취소되고, 종일 비 온다는 일기예보에 오후 소공원 전도도 쉬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보와는 달리 천천히 땅이 말라가니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준비합니다.
모든 토요전도팀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여기저기 오염물을 묻히고 십자가 앞에 머리 조아립니다.
더러워졌다고 절대로 내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잘 왔다고,
십자가 보혈로 정결케 하여 주시고
생명수까지 먹여주시니 그 끝없는 사랑에 감격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본문 주해)
본문은 빌립이 주의 사자의 지시대로 광야로 가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침례를 주는 내용이다.
26~28절 :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지시한다. 전도를 하려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야 하지만 가라고 하시니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가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경배하려 왔다가 이사야의 글을 읽으면서 내려가고 있었다.
에디오피아는 여왕이 전통인 나라로서, 이 내시가 어떻게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왔는지는 기록에 없다. 다만 이 사람도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와서 경배를 하고 돌아가면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적힌 두루마리 성경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간다게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애굽의 ‘바로’와 로마의 ‘가이사’와 같이, 에디오피아 왕의 명칭이다.
29~35절 : 성령의 지시로 빌립이 수레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이사야서의 말씀이었다.
본문에 인용된 말씀은 이사야 53:7~8절의 말씀이다.
빌립이 내시에게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느냐고 묻자, 내시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죽음의 자리에 양처럼 끌려가는 이 사람이 선지자 자신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하고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 빌립 집사가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다. 죽음의 자리로 끌려 가는, 고난 받는 이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서 얼마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이라고 증거 한 것이다. 그 십자가의 죽으심은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었음을 증거 한 것이다.
36~38절 :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자 내시가 스스로 세례받기를 원한다.
율법에 의하면 내시는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올 수가 없다. 이방인이라도 개종을 하고 할례를 받으면 유대인에 편입이 되지만, 내시는 할례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23:1)
내시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데 빌립은 분명히 율법을 알면서도 이방인이요 내시인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감히 세례 주는 일까지 집사가 행한 것이다.
그러나 빌립은 지금 성령의 붙들림을 받아서 행하고 있기에 이방인이든, 내시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거기다 세례까지 베푼 것은 주님께서 부르시는 자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사56:3)
이방인이며 고자인 사람이 하나님께 연합이 될 수가 있는 것은 바로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다.
39~40절 :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
그 뒤에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났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여러 성에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다.”(새번역)
(나의 묵상)
사마리아에서 전도했던 빌립을 성령께서 광야로 가게 하셔서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만나게 하신다. 사람이 없는 광야로 가게 하셔서 주님이 예비하신 ‘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내시는 어떻게 구했는지 두루마리로 된 이사야서를 소리 내어 읽고 있었고, 고난받는 종에 대한 질문을 한다.
빌립은 열렬하게 예수님을 증거했다.
예수님을 알게 된 내시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고, 성령께서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니 스스로 세례받기를 원한다.
내시에게 세례(침례) 준 후 성령께서 빌립을 다른 장소로 옮기신다.
내시는 내시대로, 빌립은 빌립대로 기쁨에 차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잘 알게 해 주는 본문이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오늘, 사람 없는 그 넓은 ‘광야’로 빌립을 인도하셔서 ‘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행하심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오늘 마침 토요일이라 소공원에서 전도를 한다.
토요일 소공원은 평일보다 사람이 적다. 그저 술 취해 서로 큰소리치는 남자 어르신들은 있지만, 맨 정신에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이다.
평일이면 보건소 직원들이 연주 소리를 듣고 종종 나오기도 하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한참이나 걸음을 멈추어 연주를 들어주는 사람이 제법 있다. 하지만 토요일 공원은 광야처럼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토요일에 하는 이유는 우리 연주팀에 직장인이 많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만나게 해 주실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해 주실 것이다.
우리들은 겉으로는 연주를 하지만, 내심 빌립처럼 복음으로 준비한다. 성령께서 사람을 이어주시면 그때 내 안에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그래서 광야와 같은 소공원에서 연주하며 전도하고, 또 우리 다른 전도팀들은 그 주변의 시장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이어나간다.
수년 전에 시작한 이 일의 결과, 이 주변 사람들이 다 영지교회를 기억하고 우리 연주일을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내일 교회에 갈 것’이라는 고무적인 말에 우리들은 좋아서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만 거의가 불발탄이다.
지금 당장에 보이는 열매가 없어서 낙심되는 마음도 있지만,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기로 했다.
몇 년 후 우리 교회가 이곳에 깨끗하게 지어지면, 그때는 열매도 따고 이삭도 줍기에 바쁠 것을 기대한다.
그 마음이 되는 것은 우리의 비전이나 열심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사마리아로, 광야로, 아소도로, 가이사랴로 이끌어가실 성령의 역사를 기대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연주 실력만 좋아지는 자들이 아니라, 복음으로 충만한 자들로 준비되어지기를 기도한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묵상 기도)
주님,
바쁜 일과가 겹치면서
비가 오면 하루를 쉬는데....은근히 비 오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 지난 주도 결국 전도 연주를 했고, 오늘도 그런가 봅니다.
틈만 나면 딴 생각을 하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충만 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성실함으로 행하게 하시옵고
그 모든 과정에서 늘 성령의 역사를 봄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오늘도 꼭 만날 영혼을 만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