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필법(春秋筆法)
비판적이고 엄정한 역사 서술법春 : 봄 춘 秋 : 가을 추筆 : 붓 필法 : 법 법봄 가을을 아울러 부르는 春秋(춘추)는
물론 어른의 나이를 높여 부른 말이다.
공자(孔子)가 자신의 출생국인 동주(東周)시대
노(魯)나라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편찬한
사서(史書)의 이름이기도 하다.춘추시대(春秋時代, 기원전 770년~403년)란
명칭을 낳은 이 책은 공자가 태어나기
근 200년 전인 노나라 은공(隱公)
원년부터 242년의 기록을 정리했다.유가의 오경(五經)에 드는 '춘추'란 이름은
노나라 역사를 맡은 직책이라는데
공자가 여러 자료를 모으면서
대의명분을 밝혀 기술하는 筆法(원칙)을
지켰기에 사필의 준엄한 원칙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공자의 시대는 춘추시대 말기로
주(周)왕실의 권위를 무시하고 제후국들이
서로 패자(覇者)가 되려 하극상(下剋上)이 잦았다.
이런 혼란상을 보면서 저마다의 직분을
바로잡기 위해 1만 6500여 자의
춘추에 객관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하되 치우친 비판을 삼갔다.
직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과 선악을
엄격히 하는 포폄(褒貶)의 원칙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가려 사용했다.사람을 죽인 사실도 대상이나 명분에 따라
시(弑)와 살(殺)을 가려 기술하는 식이었다.
공자가 춘추에 대해 자부했다는 말이
'사기(史記)'에 나온다.
'후세에 나를 알아줄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고,
나를 욕할 사람이 있어도
역시 춘추 때문일 것이다
춘추삼전(春秋三傳)이란 말이 있다.
춘추의 주석서 중에서 잘 알려진 3종의 책이다.
공자의 춘추가 엄격한 용어 선택에 간략한 내용이라
수많은 학자들이 주석서를 냈는데
좌씨전(左氏傳),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이 그것이다.제(齊)나라의 공양고(公羊高)가 지은 공양전과
노(魯)의 곡량숙(穀梁俶)의 곡량전은
경문의 해석 중심이고,
역시 노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편찬한
좌씨전은 사실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중심으로 했다고 한다.
춘추학(春秋學)이라 할 정도로 이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했다는데 사학적 가치가 높은
좌씨전이 훨씬 더 많이 연구되어 우세를 점했다.춘추의 이런 필법을 가장 잘 지켰다고
공자가 평가한 사람이
동호직필(董狐直筆)의 사관 동호(董狐)였다.
진(晉)의 영공(靈公)이 포악하여 시해됐을 때
재상인 조돈(趙盾)이 막지 않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썼다.
병필직서(秉筆直書)란 말을 남긴
제(齊)나라 태사(太史) 백(伯)등 4형제도
권신 최저(崔杼)의 죄상을 목숨을 걸고 기록했다.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사시로 내세우는 언론사가 많다.
최근 정치권 소식을 보도하는
언론의 정신이 이러한데 더 공정해야 하지만
가끔 편파논란이 일어난다.
승자 중심의 역사는
춘추의 필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옮긴 글-
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