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으로 가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전에는 이날을 장래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첫번째 주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뱀의 꼬임에 넘어가 죄를 범한 탓으로 낙원에서 쫓겨나게 되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교활한 뱀에게 『너와 여인 사이에, 네 족속과 여인의 후손 사이에 원수관계를 맺어 주리니 너는 그의 발 뒤꿈치를 물으려 하다가 도리어 너의 머리를 짓밟힐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인류를 불행으로부터 구원해줄 구세주를 보내주실 것을 선언하셨기에 우리 선조들은 죄악과 고통에 시달릴수록 애타게 구세주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림의 첫 번째 뜻은 바로 그 시기를 뜻합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류 구원
하느님은 진실하시고 성실하신 분이시기에 마침내 당신이 약속하신 구세주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보내주셨고 그 분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구원된 것은 아니고 구원 사업이 완성된 것은 더욱 아닌데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고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도들을 남겨둔 채 승천하셨습니다.
구름 속으로 사라지시는 주님의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천사들이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구세주께서는 이미 오셨다가 승천하셨지만 세상 종말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다시 대림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 먼 곳에서 나를 데리러 곧 오시겠다고 소식이 왔다면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까?
그 분을 맞이하기 위해서 얼마나 세심한 준비를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이 큰 축복이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다고 하는 것은 크나큰 괴로움인 것입니다.
불국사의 석가탑을 조성하러간 남편을 매일 서서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어떤 개는 자기를 키우던 주인이 며칠동안 여행을 갔다 왔더니 그동안 그 개는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앉아서 주인이 떠난곳만 바라다보고 있더라는 애처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산과 같이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는 해양가족들이 많습니다.
어선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늘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아내나 자식이 자기를 대신해서 가족들을 잘 돌보고 살림을 잘 살아주기를 바라며 귀항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에 있는 가족들 역시 남편이나 아버지를 대신해서 성실히 알뜰히 살아가며 남편이나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간혹 남편이나 아버지가 안 계시는 동안 바람을 피우거나 재산을 낭비하거나 큰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뒤탈이 겁이 나서 남편이나 아버지가 귀항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늘 준비하고 있어라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은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고 하십니다.
성 알로이시오께서 소신학생이었을때 일입니다. 교장 신부님께서 쉬는 시간에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만일 내일 이 세상이 끝나고 공심판이 있다면 너는 지금 무엇을 하겠느냐?』고 질문을 하시니까 어떤 학생은 지금 당장 고해성사를 보고 누구와 화해하겠다고 하고, 어떤 학생은 남의 물건을 불법으로 가지고 있던 것을 돌려주고 성체 조배를 하겠다고, 어떤 학생은 미루고 안한 보속을 먼저 하고 부모님을 찾아가겠다고 하는데 알로이시오 신학생에게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으니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이대로 쉬고 있겠다고 대답하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