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3. 2일 엄 상익 변호사가 올린 글로, 진솔한 삶의 의미를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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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직업 장교로 있었던 바람에 나는 제대를 하고 나서야 뒤늦게 사법연수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고시를 같이 붙은 사람 중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나 추미애 전 법무장관도 있다.
나는 늦깎이 연수생이 된 것이다. 우리 반을 담당한 교수는 전형적인 잘나가는 법관이라고 할까 그런 타입의 사람인 것 같았다. 사법고시에 일찍 합격을 하고 동기판사 중에서도 선두주자였다. 법원장 승진이 눈앞에 있다고 했다.
그가 첫날 교실에 들어오더니 나 같은 사람들 몇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드신 연수원생들은 지금부터 지방의 적당한 도시를 찾아 법률사무소를 할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을 겁니다. 판사라는 게 제때 합격을 하고 알맞게 궤도에 올라야 종착역까지 갈 수 있는 겁니다.”
그의 뇌리에는 대법관을 목표로 하는 판사의 길만 입력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일종의 ‘판사 지상주의’라고 할까. 나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반에는 젊고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인재들이 많았다. 검사가 되고 민정수석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장동 사건에서 ‘50억 클럽’의 멤버가 된 분도 같은 반이었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전당대회에서 1위를 달리는 분도 같은 반이었다.
교실의 내 앞에는 특이한 인상을 주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지방에 가서 변호사를 하라는 내 나이 또래인데도 공부에 결사적이었다
모두들 경주마처럼 경쟁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재판 실무를 공부한다는 게 싫었다. 나는 이미 군사법원에서 판사를 해보았다. 피고인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그에게 형을 선고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총구 앞에서 벌벌 떠는 존재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느낌이라고 할까.
검사 직무대리로 몇 달간 검찰청 일을 해 봤다. 기분 좋은 아침에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온 피의자와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우중충한 생활이었다. 사람에게 딸려온 사건기록을 보면 삼류통속소설보다 못한 내용이 거친 형사의 문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연수원을 졸업하고 같은 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람에 날리는 씨가 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십년쯤 지난 후 내 앞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내 또래의 모범생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대형로펌에서 특허 분야를 담당한다고 했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뭔가 성스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싱긋이 웃으면서 내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로펌에서도 치열하게 일했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항상 리시버를 끼고 영어를 공부하고 살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퇴근할 때였어. 핸들 잡은 손이 뻑뻑해 지는 거야.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신문을 드는데도 평소보다 팔이 무거웠어. 집사람이 창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일어나 창문에 다가섰는데 팔이 올라가지 않는 거야. 다리도 뻣뻣해지고. 어어~ 하고 외마디 소리를 치고 쓰러졌지. 앰블런스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어. 나는 입까지 온몸이 마비됐지.”
여유있는 가정의 외아들로 그는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명문 중고교와 서울법대를 나왔다. 고시에 합격하고 어려움 없이 가정을 꾸려 온 사람이었다. 그는 갑자기 자기에게 덮친 농도 짙은 암흑에 당혹했을 것이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의사들은 내가 식물인간이 되어 전혀 의식이 없는 걸로 알더라구. 정신이 물같이 맑은 상태에서 내가 다 듣고 있는데도 말이야. 의사들이 집사람한테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정말 진단을 내리기 힘든 희귀한 병이라고 하더라구. 전신의 말초신경이 파괴됐다고 그래. 신경세포가 설사 재생된다고 하더라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거야. 기관지에서 가래가 끓는데도 간호사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
갑자기 닥친 그런 환난 앞에서 인간은 어떨까.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기가 막혔지. 고통이나 불행도 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실감이 나지 않았어. 그러면서도 산다는 게 별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열심히 애쓰고 살았는데 다 헛되고 부질없는 거였구나 하는 회의가 들었지. 어느 날 저녁 내가 있는 중환자실 병상 옆에서 아내가 기도를 하는 거야. 울컥 화가 치밀었지. 하나님에게 따졌지. 열심히 노력한 댓가가 이거냐고. 남들은 멀쩡한데 나만 왜 이렇게 하시냐고.”
죽음이나 절망 앞에서 인간은 먼저 그 사실을 부인하고 분노한다고 한다. 그의 말이 잠시 멈췄다가 싱긋이 웃으면서 이어졌다.
“그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을 달랬지. 절 죽게 하시면 손해라고. 이만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흔하지 않은 걸 아시지 않느냐고. 그러니 제발 살려달라고 마음으로 싹싹 빌었어.
그래도 아무 응답도 없더라구. 그래서 자세를 바꿨어. 나 같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한번 믿게 해 보시라고. 내가 믿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증거가 되지 않겠느냐고. 저런 사람도 믿는 걸 보니까 뭐가 있기는 있네 하고 말이지. 그렇게 하나님한테 간절히 매달리고 3주가 흘렀을 때 였어. 갑자기 발가락이 간지러운 거야. 마비가 풀리기 시작한 거지. 일주일 후에는 양치질도 가능했어. 몸이 거뜬하게 정상으로 돌아왔지. 난 새로 태어난 거야. 이제는 순간순간 행동까지도 하나님한테 물어봐. 일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도 없어졌어. 나 같은 이기주의자가 아픈 사람을 찾아가 기도해 주기도 한다니까. 이제야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를 알게 됐어.”
바람에 날려가는 씨였던 우리는 각자 자기가 떨어져야 할 밭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잎을 냈다. 세상에 뿌리를 내린 사람도 있고 하늘과 연결된 사람도 있다. 동해 바닷가에서 살아보니까 사법연수원 시절 담당 교수님의 말대로 처음부터 이곳에 와서 뿌리를 내렸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