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4일 월요일
✠ 루카 복음.13,10-17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17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공생관계
몇 년 전 인천 송도에 ‘녹색기후기금(GDF)’사무국이 입주하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세계 다른 지역보다도 지구 온난화가 두 배로 빨리 진행되는 우리나라에
세계 최대 환경기구 본부가 들어온다는 것은 반갑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도 더불어 2009년에 방영된 SBS스페셜
‘온난화의 마지막 페이지’란 다큐멘터리를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온난화로 인해 온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는 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즉 지구의 종말은 인간 스스로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환경에 대한 다큐나 지식은 대부분의 우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의 온도는 약 0.6도 정도가 상승했고,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금 아열대 기후로
변화되고 있으며, 조만간 6-7도가 상승하게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도 사막이 생기게 되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서 해수면 상승으로 많은 지표면이 물에 잠기게 될 것이고,
이대로 계속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게 되면 숲도 더 이상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작용을 하지 않아
오히려 배출하게 되어 온난화는 더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따듯해진 바닷물 때문에 태풍은 갈수록 더욱 강력해진 것들이 올 것이고,
곡식 수확량이 줄어들어 세계가 기아에 허덕이게 될 것이며,
그것 때문에 전쟁도 발생하여 아비규환의 세계가 될 것이고,
따뜻해진 바다에서 솟아나는 메탄 양이 대기 중에 증가함에 따라 대기 온도는 더욱 상승하고,
급기야 이 메탄이 대기 중에서 폭발하게 됨으로써 여기저기서 하늘이 불바다가 되는 모습을 보며
지구는 그렇게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라 신빙성이 있는 내용 같았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 마지막 때가 어떻게 되리라고 설명해 주신
전쟁, 기아, 자연재해 등을 생각해보면 이 시나리오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회당에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린 여인의 허리를 펴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화를 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조금은 경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분에게는 직접 뭐라 못 하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회당에서는 어쨌거나 자신이 책임자라는 뜻이고, 그것 때문에 고위 성직자들에게 징계를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나무랍니다.
자신들은 안식일이라고 해도 묶여 있는 소나 나귀에게 물을 먹이려 풀어서 끌고 가면서,
사탄에게 속박되어 있던 여인을 사탄의 구속에서 풀어주었다고 뭐라 하는 것은 위선이란 뜻입니다.
사실 회당장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회당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생각입니다.
회당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그 다음엔 사람들인데, 만약 회당에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면
회당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맡겨진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에서 수많은 악이 들어옵니다.
하느님도 인간에게 자연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맡기셨습니다.
인간은 그것이 자기 것인 양 지배하고 갈취하고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 자연으로부터 배척을 받아 스스로 자멸할 운명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맡겨주셨다는 것은 그것의 주인이 되라고 그러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맡겨주신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그것과 ‘공생’해야 나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사제로서 한 성당의 많은 신자분들의 목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서 자주 ‘저 분들이 계시지 않으면 나도 있을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 분들 덕분에 나도 성체를 영하게 된다.’라고 생각하고 감사해 하려고 합니다.
양이 없는 목자는 더 이상 목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고
직장에서의 사람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입니다.
남편이 없으면 아내도 될 수 없는 것이고 어머니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사람들은 함께 공존하라고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이고,
자신을 포함한 이 모든 이들의 주인은 오로지 하느님 한 분 뿐이십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당신께 해 준 것이고
이것이 하늘나라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고
그래서 합당하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도
내가 살기 위해 주님께서 맡겨주신 함께 공존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함께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항상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