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드디어 예루살렘 성에 입성(入城)하십니다. 물론 그 전에도 예루살렘에 다녀오신 일이야 있지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절기를 맞이하기 위해 점차 분주해지는 예루살렘 성으로 향해 앞서 가셨습니다(28절). 그리고 감람원(橄欖園, Mount of Olives)이라고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Bethphage)와 베다니(Bethany)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예수님은 제자 두 명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30절). 그러면서 누군가 왜 이 나귀를 풀어 가지고 가려느냐고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고 말씀하십니다(31절). 그리고 제자 두 명이 가보니 예수님 말씀대로 나귀 새끼가 있어서 풀어서 끌고 오려고 하니, 그 나귀의 주인이 왜 나귀를 끌고 가려느냐고 묻습니다(32절, 33절). 그래서 제자들이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자 그대로 나귀 새끼를 내어주었습니다(34절, 35절).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나귀 새끼의 주인과 미리 약속을 해놓고 제자들을 보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마태(마 21:1~11)나 마가(막 11:1~10), 누가가 모두 이 사건을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아마 이 나귀 새끼의 주인은 예수님에 대해 여러 통로를 통해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와서 나귀 새끼를 풀어서 끌고 가려고 했을 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란 마음에 내어드렸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귀 새끼의 주인은 따로 있었지만(33절), 그 주인들은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말에 기꺼이 내어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스가랴 9:9, 10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고, 이것은 메시아로서의 예루살렘 입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타지 않았던 나귀 새끼를 탄 것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목적으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자기의 옷을 길에 펴고(36절),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환호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37절, 38절). 이들의 찬양하는 소리는 메시아의 오심을 노래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38절). 그렇지만 이러한 환호와 찬양은 바리새인들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그렇게 환호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말합니다(39절). 마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매우 못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40절). 예수님께서 이렇게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것과 사람들이 찬양하며 환호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땅에 메시아(그리스도)로 오신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셔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우셨습니다(41절).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메시아를 죽이게 될 것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아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멸망하게 될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슬퍼하신 것입니다. 42절에 말씀하신 평화에 관한 일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랐다면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을 적대하는 어리석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로마의 황제가 되는 로마의 장군 티투스(Titus Flavius Vespasianus)가 AD 70년에 로마 군대를 이끌고 사흘만에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봉쇄하여 결국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43절, 44절). 예루살렘은 구원자가 왔지만, 그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은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45절). 이것을 성전 정화(淨化) 사건, 혹은 성전 청결(淸潔)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그 당시 성전의 뜰에서는 성전세(聖殿稅)를 내기 위해 환전해 주는 이들, 제사의 제물로 드릴 양이나 염소, 비둘기 등을 파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장사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인데, 제사장들의 비호(庇護)를 받는 장사치들이 매대(賣臺)를 펼쳐놓아 매우 번잡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그 매대를 뒤집어 엎으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46절). 이러한 장사치들은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은밀히 결탁하여 그들의 묵인 아래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행동하며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이 눈엣가시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였습니다(47절).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에 어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지켜 보면서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기에 급급했습니다(48절).
예수님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영적으로 눈이 멀어 깨닫지 못하는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이제 곧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준비하시면서, 이러한 영적인 무지(無知)를 한탄하셨습니다. 진짜 믿음은 잃어버리고, 외식적(外飾的)인 종교 행위와 관습에만 매여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너무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며,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기 생각에 매몰(埋沒)되어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진짜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진짜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그러한 진짜 믿음을 찾아가는 복된 여정의 복된 주일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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