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린도전서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는 독일계의 프랑스 의사 · 사상가 · 신학자 · 음악가로 선교사로서
암흑의 대륙에 가서 그 평생을 헌신했던 대단한 신앙의 실천가였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한 아이와 싸움을 하게 되었고, 아이를 눕혀 놓고 때렸는데, 깔린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너같이 일주일에 한번 만이라도 고기를 먹으면 너에게 지지 않았을꺼야."
이 말에 슈바이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고기를 먹고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가난한 아이를 도와주기는 커녕 때려서 싸움에 이기다니.. 그런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는 그 사건 이후 평생 고기를 안 먹었다고 합니다.🌱
[로마서 14: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고기를 먹고 안먹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수 있지만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를
실족시킨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고린도 도시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해상 교통과 무역 중심지였고,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각 나라와 민족의 우상들이 총집결한 현란한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시장에서 팔고 있는 고기는 모두 각종 이교 신전에서 제물로 바쳤던 것들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사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내에 있던 영지주의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자유방임주의자들이었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먹었습니다.
[고린도전서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우상을 무시하는 자들은 우상은 원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린도전서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고린도 교인들 중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신전에 들어가서도 먹었습니다.
신전에 들어가서 먹으면 어떻고, 제단 앞에서 먹으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주장에 대해 신앙 지식보다 형제 사랑을 강조하며 우상의 집에서 앉아 먹는 것을 피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고린도전서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우상의 집에서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주장은, 하나님과 믿음에 관해 '지식'의 입장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들은 이들의 행동을 보고 우상과 타협해도 된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약한 형제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신앙 지식으로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시키지 말고 그를 형제로 여겨 오해할
상황을 만들지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는가, 교회에 유익이 되는가를 따져야지 내가 옳으냐,
네가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 신앙의 최고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연약한 양심을 가진 성도를 상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 앞에서 좌를 짓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전서 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이처럼 지식적으로는 죄의 문제와 무관하다 할지라도 공동체 안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 행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내 생각만이 전부이며, 내 말이 바른 진리라고 주장하면 누군가를 실족시킬수 있습니다.
“네가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책의 저자이신 최요나 선교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숨을 쉬고 싶다.
마스크를 내리고 창조주가 선물로 주신 ‘공기’을 내쉬고 싶다.
머물 집이 없어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뜨거운 한 여름 폭염도 견딜 수 있지만...
재정의 후원이 중단되고, 후원자가 떨어져 나가는 현실도 이해가 되지만...
난세에 영웅이 되려는 수많은 이기적인 집단들의 모습을 보며 ‘한숨’이 나온다.
불쌍한 민초들과 분별력 없이 좌충우돌하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만이 전부이며, 바른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숨쉬는 ‘숨’이 오히려 ‘한숨’이 되기도 한다.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는가?”
“왜 주장하고 싶은 논리가 없겠는가?”
“왜 억울한 면이 없겠는가?”
기독교인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 그리고 선교사의 신분으로 나도 외치고 싶고, 반박하고 싶고,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나의 주장을 펼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6개월 넘게 마스크를 쓰면서 개인적으로 경험한 ‘영적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역자로 수많은 말을 내뱉으며 살았다.
한 입으로 찬송도 하였지만, 또 한 입으로 저주도 한 내 입술을 보게 되었다.
마스크로 내 입과 코를 가리고 숨을 쉬는 것조차 답답하였지만, 그 동안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떻게 찬송을 하고 또 누구를 저주하며 살았는지 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마스크’을 끼고 있는 내 입술을 보며 내가 얼마나 ‘부정한 자’로 살아왔는지
하루 하루 배우게 된다.
언젠가 마스크를 벗고 편하게 숨을 쉴 때가 된다면, 나는 좀 더 성숙하고 성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으리라...
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나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사랑의 마음으로 주위에 있는 형제를 품게 하소서.
신앙의 기준을 지식에 두지 않고 사랑에 둔 후에 그것이 형제들에게 덕이 되는가 교회에 유익함이 되는가를
살피게하소서.
지식에 기초한 자유보다, 연약한 형제를 위한 배려와 사랑으로 형제들을 귀히 여기고,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게 하소서.
코로나 사태를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묵상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
성숙하고 믿음의 본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고 있는 이때에, 모든 치유와 진정한 회복이 오직 하나님께로만 오는 것을 깨달아 하나님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열방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