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읍니다.
시상(詩想)노트
이 시는 1960년대 쓰여진 ‘의자’(椅子)라는 시의 연작중의 하나입니다. 10편의 ‘의자’시를 썼습니다.
이 ‘의자’는 우리들이 늘상 쓰는 현실적인 의자, 실용하고 있는 의자가 아니라 시간의 의자, 역사의 의자, 존재의 의자를 말하는 겁니다.
이 시는 국정교과서 고3용 국어책에 실려 있었던 작품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시입니다.
이곳에 있는 ‘의자’라는 시는 소위 말하는 세대교체를 그 테마로 한 작품입니다.
역사 속에 흐르고 있는 생존의 교체, 인간의 교체, 그것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역사는 실로 사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인간교체의 현상을 그려본 겁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우리들은 이렇게 새로운 어린 세대에게 항상 꿈을 이어주며 사라져 가는 겁니다. 꿈을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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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시는 나의 과거의 시집 속에서 손이 가는 대로 뽑은 100편의 시에다가 그 시에 얼킨 나의 인생 경험과 시적 경험을 적어서 써내린 일종의 나의 인생과 나의 시의 자전적 편모라고 하겠습니다.
100편의 시는 출판사측의 요청이었습니다.
나의 시는 독자 여러분들이 이미 읽어서 아시다시피 해설이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만큼 나는 여러 독자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시 작업을 내 인생처럼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철학인 순수고독(純粹孤獨)과 순수허무(純粹虛無)에 있어서는 그 깊이에 있어서 다소 설명이 필요할지는 모릅니다.
요컨대 누구나 삶이 원천적으로 고독하다는 것이 나의 순수고독의 개념이며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 나의 순수허무의 개념입니다. 나는 이 고독과 허무를 열심히 살아왔을 뿐입니다. 인생처럼.
1992년 5월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편운재片雲齋에서 조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