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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구원의 4대 요소/ 에베소서 2:1-10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오늘 주일 예배에 오신 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구원“입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옷이나 맛있는 음식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삶의 질을 높이는 조언도 필요 없습니다. 숨이 멈춰 죽어가는 사람에게 교양 강좌를 늘어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배에서 던져주는 구원의 밧줄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단순한 '교양'이나 '마음의 평안을 얻는 수단' 정도로 착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인간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상태는 조금 아픈 상태가 아닙니다. 이미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시간은 영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골든타임입니다. 구원은 교양 과목이 아닙니다.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영적인 응급 심폐소생술입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거대한 주제는 단연 ‘구원’입니다. 성경을 구원을 위한 책으로 보지 못한다면 성경을 잘못 보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은 제각기 다른 시대와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라는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서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하나님은 곧바로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 계획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구원이 완전히 완성될 때까지 성경의 모든 페이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 편에서 볼 때 교회를 다니는 가장 큰 목적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교회를 다니고도 정작 구원에 관심이 없어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가장 위험하고 불쌍한 상태입니다. 이들은 매주 출석하고 직분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영적인 착각 속에 있습니다. 마치 환자가 병원 로비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병이 나았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치료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먹고 변화되어야 하는데, 교회의 익숙함에 속아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들이 천국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구원받지 못해서입니다. 구원은 그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오늘은 “구원의 4대 요소”를 나누겠습니다. 제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우리 모두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고, 구원을 누리는 것입니다.
1. 구원의 기원
시간이 오래 흘러 훼손되거나 덧칠해져 흉측하게 변해버린 명화들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가치 없는 쓰레기처럼 보이지만, 미술품 복원가들은 특수 적외선 장비를 통해 그 뒤에 숨겨진 거장의 진짜 밑그림과 본래의 가치를 꿰뚫어 봅니다. 복원 작업은 그 숨겨진 원래의 아름다움을 다시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2005년 미국 경매장에 삼류 화가가 대충 덧칠하여 처참하게 변형된 예수님의 초상화가 매물로 나왔습니다.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단돈 1,000달러(약 150만 원)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복원가들이 수년간 덧칠을 벗겨내자, 놀랍게도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친필 원본인 《세상의 구원자》가 드러났습니다. 이 그림은 2017년 뉴욕 경매에서 역사상 최고가인 4억 5천만 달러(약 5,10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인간은 죄로 인해 완전히 일그러지고 훼손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한 걸작품으로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예정하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훼손된 삶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원래 예정되었던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녀의 모습을 복원해 내시는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본문 4-5절을 보겠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를 말씀합니다. 구원의 시작은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과 긍휼에 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창세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입니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로운 동역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를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구속 협약'이라고 합니다. 창세 전 영원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맺으신 영원한 언약입니다. 구원의 시작과 완성은 오직 하나님의 완벽한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가장 먼저 구원의 위대한 마스터플랜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의 계획은 무한하신 사랑과 주권에 기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우주를 만들기 전에 이미 자기 백성을 아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쁘게 선택하며 예정하셨습니다. 이 위대한 설계는 인간의 공로나 자격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주권적인 뜻에서 시작된 완전한 계획이었습니다.
이렇게 설계된 구원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성육신).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과 저주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완전히 치르셨습니다. 또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써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이 객관적인 구원의 사건은 이천 년 전에 단 한 번 일어났습니다. 이제 이 사건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나의 사건'이 됩니다. 성령님은 은혜롭게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허물로 죽었던 영혼을 살리시어 복음을 듣게 하시고, 마음에 회개와 믿음을 선물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보증하시며 우리 영혼에 인을 치시고 끝까지 보존하십니다.
결국 구원의 계획과 성취, 적용의 모든 여정은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의지나 행위가 개입할 틈은 전혀 없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단독적인 주권과 은혜에만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구원은 결코 실패할 수 없으며,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구원을 발전소, 송전탑 그리고 가전제품의 작동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거대한 발전소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집니다. 이 에너지는 굵은 고압선과 송전탑을 거쳐 도심의 변전소까지 안전하게 흘러 들어옵니다. 하지만 내 방에 있는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지 않으면 방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스위치를 켜는 순간 비로소 발전소의 에너지가 내 삶의 공간을 환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발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송전탑을 통해 우리 곁에 도달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완악한 스위치를 올리시는 순간, 비로소 어두웠던 내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켜지게 됩니다.
2. 구원의 필요성
본문 1~3절은 인간의 절망적인 실존을 폭로하며, 구원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말씀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상태를 단순히 조금 아프거나 도덕적 개선이 필요한 상태로 보지 않습니다.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인간의 비참한 실태를 직면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실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선포합니다.
첫째, 영적인 사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1절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영적인 송장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밧줄을 잡을 힘이라도 있지만, 이미 숨진 시체는 스스로 움직이거나 구조 요청을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죄로 인해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했고 이미 죽었습니다. 스스로 선행을 쌓거나 고상한 철학을 추구해도 생명의 능력을 얻지 못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가 곧 죽음이기에, 인간에게는 위로부터 임하는 구원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둘째, 사탄의 장악입니다. 2절은 영적으로 죽은 인간의 비참한 삶을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롭게 살며 트렌드를 선도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 가치관과 유행에 휩쓸려 살아갈 뿐입니다. 불순종의 영과 사탄에게 생각과 마음을 장악당했기에 죄를 지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영원한 파멸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갑니다.
아주 기묘한 기생충이 있습니다. 바로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입니다. 이 기생충은 쥐의 뇌를 장악합니다. 그러면 쥐는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양이 냄새를 맡고 묘한 쾌감을 느낍니다. 결국 감염된 쥐는 고양이 앞으로 스스로 걸어 나갑니다. 쥐는 자신이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기생충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포식자의 입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꼴입니다.
세상 풍조와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인간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개척한다고 믿습니다. 트렌드를 선도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불순종의 영과 사탄에게 생각과 마음을 장악당한 상태입니다. 영원한 파멸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인간은 참으로 비참한 노예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진노의 신분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겉모습이 아닌 존재 자체의 문제입니다. 3절은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간은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죄의 DNA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태생 자체가 진노의 대상이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내면의 욕심과 정욕을 이겨낼 힘도 없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스스로 막을 수도 없기에 인간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구원은 문화생활이 아닙니다. 여유가 생기면 찾아보는 취미가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종교적 수단도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 송장으로 태어났습니다. 사탄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결국 영원한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이었습니다. 구원은 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건짐을 받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생사와 실존의 문제입니다. 벼랑 끝에 매달린 자에게는 밧줄이 필요합니다. 죄의 깊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인류에게 구원은 유일한 살길입니다.
3. 구원의 방법
늪에 빠진 사람은 발버둥을 치면 안 됩니다. 발버둥을 칠수록 몸이 더 깊이 가라앉습니다. 빠져나오려는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스로 위로 잡아당기는 행동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늪에서 살아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몸의 힘을 완전히 빼야 합니다. 그리고 외부의 도움을 기다려야 합니다. 늪 밖에는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 구조자가 던져준 밧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직 외부에서 온 힘만이 사람을 늪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깊은 철학적 깨달음을 얻으려 애쓰며, 선행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자기 머리카락을 붙잡고 늪을 탈출하려는 행동과 똑같습니다. 인간 내부의 노력으로는 죄의 늪을 벗어날 수 없기에, 우리에게는 반드시 늪 밖에 계신 외부의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본문 8~9절은 구원에 필요한 세 가지 명확한 진리를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첫째, 오직 은혜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며, 착한 행동에 대한 대가도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일방적인 선물이자 조건 없이 주어지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본래 로마 가톨릭의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의 연옥에서의 구원을 위하여 로마의 스칼라 산타라는 계단을 무릎으로 피가 나도록 기어오르며 고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계단을 다 오른 후에 정상에서 “이게 정말 사실일까?”라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는 극심한 죄책감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금식, 기도, 고백 등을 철저히 행하며 자신을 혹독하게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죄책감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비텐베르크 성당 탑실에서 로마서 1:17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연구하던 중 눈이 열렸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고행이나 댓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임을 온전히 깨달은 것입니다. 루터의 이 역사적 회심은 인간의 종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오직 은혜로 돌아가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입니다.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은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무서운 형벌을 대신 받으시며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대속적 죽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으며, 예수님은 친히 대속제물이 되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만족시키셨습니다.
성경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밖에서 "스스로 헤엄쳐 나오라"고 훈수 두는 도덕책이 아닙니다. 성경의 구원은 직접 물속으로 뛰어드는 구조 작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바다에 직접 뛰어드셔서 우리를 껴안으시고 육지로 안전하게 걸어 나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구조 작전입니다.
셋째,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공로를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이제 이 공로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은 오직 믿음뿐이며 다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고 마음으로 진심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 인간은 비로소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4. 구원의 결과
에베소서 2장 6~7절은 신자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선포합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구원은 신자의 존재와 삶을 네 가지로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첫째, 신분의 변화입니다. 전에는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 정죄를 받으며 사탄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해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모든 정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둘째, 관계의 회복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과 원수 되어 거대한 죄의 장벽이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그 담이 모두 허물어졌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하는 영적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고대 로마법에 따르면 한 소년이 유력 가문의 양자로 입양되는 순간, 과거의 모든 개인적 채무와 빚은 즉시 100% 소멸되었습니다. 동시에 양아버지가 가진 모든 권력과 재산을 친아들과 똑같이 물려받을 자격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 자녀로 입양되는 순간도 이와 같습니다. 과거 사탄 아래서 지고 있던 모든 죄의 빚은 소멸되었고,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존귀한 신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침대 위에서 주먹을 쥐고 선포해 보십시오. “나는 사탄의 노예가 아니다! 나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오늘도 온 우주 왕이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또한 하루 중 죄를 짓거나 정죄감이 찾아올 때, 로마의 입양법처럼 “내 모든 죄의 빚문서는 십자가에서 100% 소멸되었다”라고 소리 내어 선포하며 마음의 위축을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셋째, 영생과 천국의 소망입니다. 이 땅의 삶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 덕분에 눈물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선물합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하퍼 목사님은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차가운 밤바다에 빠졌습니다. 저체온증으로 사지가 마비되어 가며 죽음이 코앞에 닥친 절망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옆에 떠 밀려가던 한 청년에게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청년이 아니라고 하자, 목사님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외친 뒤 거센 파도 속으로 기쁘게 웃으며 가라앉았습니다. 이 청년은 기적적으로 구조된 후 집회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그분은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열린 천국을 보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분의 천국 소망이 저를 구원으로 이끌었습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죽음조차 두렵지 않은 영원한 천국 소망을 선물합니다.
넷째, 삶의 변화입니다. 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구원을 천국행 티켓을 얻는 것으로만 오해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설계에는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성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개의 방향성이 있습니다.
①감사와 예배의 삶입니다.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내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고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입니다.
②선한 일과 성화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선한 행동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을 통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젊은 시절 음악가, 신학자, 철학자로서 이미 유럽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천재였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가 그 안락한 삶을 유지하며 구원받은 신자로 편안하게 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30세가 되던 해,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다"는 10절의 말씀에 사로잡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가봉의 람바레네 밀림으로 들어가 평생을 소외된 병자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 가는 티켓'을 얻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한 일을 행하도록 신자의 삶의 방향성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③사명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신 이유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이 마주할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정에서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가족들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일터에서는 그리스도를 닮은 정직함과 성실한 성품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이웃에게는 타이타닉호의 존 하퍼 목사님처럼 긴박한 구원의 복음을 삶과 입술로 전하십시오. 구원받은 자의 삶은 오늘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