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가사문학관 탐방 & 가사시 낭송 경연대회
2019년 11월 9일, 담양 가사문학관에서 개최되는 가사 시낭송 경연대회를 참석하기 위해서, 행사 전날인 11월 8일 오전 10시경 천안에서 일행 5명이 승용차편으로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기왕가는 길에 한창 절정에 다다른 정읍 내장산 단풍 구경을 하면서 가기로 하여, 내장산 단풍고갯길을 타고 넘어 백양사쪽으로 넘어가다, 백양사 인근 식당에서 추어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담양으로 향했다.
우선 담양에 도착하여 행사장 인근에 있는 식영정과 서하당을 들려본후, 곧바로 행사장인 가사문학관을 답사하고, 주변에 있는 환벽당과 소쇄원을 돌아보는 관광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후 숙소를 어느곳으로 할까 궁리하다 가까운 인근에 화순 온천이 있다기에 그곳까지 갔었지만,우리 주머니 사정과는 여건이 맞질않아 다시 방향을 되돌려 창평으로 나오게 되었고....
다행이 창평에는 적당한 숙소와 옛날 창평국밥집이라는 유명한 식당이 있어 그곳에서 저녁식사와 더불어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 식사 역시 창평국밥집에서 일찍 할수 있어 너무 좋았고,접수 시간도 여유가 있어 주변 호반산장인근에서 무등산과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는가 하면,별도로 내려온 유연경 학생 부녀를 만나 어제 돌아본 식영정을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또한 시낭송 접수를 하는동안, 홀로 어제 미쳐 재대로 구경을 못다한 취가정과 인근 사찰등을 답사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시낭송 대회는 학생부 28명, 일반부 23명이 접수하여 오전중으로 예선대회를 치루고,주최측에서 제공하는 김밥으로 점심식사시간을 가진후,오후 1시 반부터 본선 경연에 들어갔다.
본선에 참여한 낭송가들은 전원 수상의 기회가 부여되었는데,장려상과 특별상은 일반 20만원,학생 10만원의 상금이 주어졌고,우수상(일반 50만원,학생 29만원),최우상(일반 100만원,학생 70만원),대상(150만원)등의 수상자가 배출되었다.
이날 영예의 대상 수상자는 10번 출연자 최 도순 낭송가가 차지했고,학생부 최우수상엔 천안에서 동행했던 유 연경(여중 2년생)학생이 영광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낭송대회를 마치고, 귀가길은 남원을 경유하여 전주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오다보니, 천안 도착은 밤 10시에 이르렀다.

출발에 앞서 천안에서.....

내장산 단풍고갯길을 넘으며.....


단풍 고갯길을 지나서도 가로수 단풍길은 여전히 곱기만 하다.

담양 식영정에 도착하여....
담양에 들어서면 하늘 높이 쭉쭉 뻗어 솟아있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이 인상적이다.
천안에서 정읍 내장산 단풍 고갯길을 넘어, 백양사 입구를 지나 담양에 이르기까지, 가을 단풍이 한창 무르익어 아름다운 풍광들이 미색을 뽐내고 있었지만, 주마간산격으로 지나쳐 온 것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순창 복흥 방면의 길을 타고 강천산도 구경하고, 추월산과 담양호를 돌아볼수 있었더라면 한층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담양에는 죽녹원과 관방제림,병풍산,한제골,용흥사계곡등 가볼만한 곳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금번 기회에 다 돌아 보려한다면 그건 너무 지나친 욕심 아니겠는가 싶다.


식영정을 오르는 계단 길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적막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식영정(息影亭)과 서하당(棲霞堂)이 있는 별뫼(星山)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식영정은 담양의 창계천가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로 조선 중기 호남가단의 한 맥을 이루는 식영정가단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였다. 정철은 이곳에서 가사와 단가, 한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성산별곡(星山別曲)〉은 정철이 김성원을 흠모하여 지은 가사로 국문학사에 길이 남는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식영정은 송강문학의 산실로 우리나라 고전문학의 기틀이 마련된 곳이기도 하다. 창계천 주변에는 식영정을 비롯하여 서하당, 부용당, 환벽당, 취가정 등 많은 정자가 있고, 이웃에는 별서정원으로 유명한 소쇄원이 자리하고 있다.
식영정은 1560년(명종 15) 서하당 김성원(金成遠)이 자신의 스승이자 장인이었던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정자다. 김성원이 쓴 시문집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에는 “공이 36세 되던 해인 1560년, 창평의 성산에 식영정과 서하당을 지었다(庚申公三十六歲 築棲霞堂于昌平之星山)”고 기록되어 있다.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정자로 우뚝 솟아 있는 노송과 한여름 붉은 꽃의 무리로 온통 뒤덮인 배롱나무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서하당 앞에서....



하천을 중심하고 담양군과 광주시의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시 문학관 입구


담양 가사문학관





환벽당 언덕의 송림 오솔길

환벽당에 이르러....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沙村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정자로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계류가 흐르며 계곡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으며, 특히 이곳은 무등산을 비롯한 원효계곡의 줄기를 따라 자연 풍광이 수려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명승지였다.
환벽당 북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증암천 너머에는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이 있으며 환벽당 아래에는 송강과 사촌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 쌍송(雙松)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면앙정 송순은 서하당 김성원이 식영정을 건립하고 3년이 지난 뒤 1563년 식영정의 시를 차운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의 정자라고 하면서,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가리켜 한 동(증암천)안에 세 명승 즉, 一洞之三勝이라 말한다.
환벽당은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환벽당이 위치한 곳은 무등산 북능의 능선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지맥 중의 하나이며, 사촌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충효마을 남쪽 200m지점에 있다. 또한 광주와 담양을 경계로 흐르는 증암천(별칭 :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 주변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이 있으며, 이 마을들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俛x仰亭),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개 정자가 소재해 있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이 드나들던 곳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문과 가사를 지으며 풍류 문화의 극치를 이룬 조선시대 사림문화의 중심으로서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의 초기모습은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시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 1653~1722)의 『南遊日記』를 통해 그 당시의 원림의 식물상과 조경수종을 짐작할 수 있고, 김성원(1525~1597)의 “서하당유고“ 에 ”성산계류탁열도”등의 그림이 남아있어 인문적 가치가 있다.
환벽당 관련 시·문은 당대의 일류 문인들로서 임억령, 기대승, 송순, 김인후, 소세양, 정철, 백광훈, 고경명, 권필도, 정홍명, 목장흠, 이은상, 이하곤, 이명한, 김창흡, 조상건, 양경지, 정민하, 서봉령 등 시인묵객의 시가가 전해져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


아름 다운 하천



소쇄원에 이르러.....




소쇄원(瀟灑園)은 조선시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스승인 조광조의 유배되는 것을 보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를 담아 조성한 곳으로,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로 꼽는 곳이다.
힌편, 양산보(梁山甫)의 호가 소쇄옹(瀟灑翁)이었기에 원(園)의 이름을 소쇄원이라 한 것이라고도 한다.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가 은사 조광조(趙光祖)가 남곤(南袞) 등의 훈구파에게 몰려 전라남도 화순 능주로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에 숨어살면서 계곡을 중심으로 조영한 원림(園林)이다.
양산보(梁山甫)의 은둔생활(隱遁生活) 기간 중인 1520년부터 1557년 사이에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소쇄원의 ‘소쇄’는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양산보는 이러한 명칭을 붙인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소쇄옹(瀟灑翁)이라 하였다.
소쇄원의 조성사상을 보면 주자(朱子)가 중국(中國) 숭안현(崇安縣) 무이산(武夷山)계곡의 경승지인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현실(現實)을 도피하여 은둔하는 행동양식이 깔려 있다.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80년쯤 전에 중수하여 현재 2동이 남아 있다.
한편, 소쇄원에는 김인후(金麟厚)가 1548년(명종 3)에 지은 오언절구(五言絶句)의 48영(詠) 시(詩)가 남아 있다.
그리고 고경명(高敬命) 이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광주목사(光州牧使) 임훈(林薰)과 함께 광주 무등산(無等山)을 유락(遊樂)하면서 4월 23일소쇄원에 들려서 보았던 계원(溪園)의 사실적 묘사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남아 있다.
소쇄원은 무등산의 북쪽 기슭에 있는 광주호의 상류에 위치하여 무등산을 정남쪽에 대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까치봉과 장원봉(壯元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동서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또, 뒷산과 까치봉 사이의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산기슭에 터를 잡은 소쇄원의 바로 앞에는 증암천이 동서방향으로 흘러 광주호에 들어가고 있다.
정원의 평면적인 모습은 계류를 중심축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이며, 흙으로 새 메움을 한 기와지붕의 직선적인 흙돌담이 외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계곡의 굴곡진 경사면들을 계단상으로 처리한 노단식 정원의 일종이지만, 구성면에서는 비대칭적인 산수원림(山水園林)이다.



















저수지 건너편엔 무등산이 바라 보이고....


시낭송 연습에 마지막 점검을....





유 연경 학생을 만나고.....



이곳이 무등산권 유네스코 지질 공원인가 보다.

역시나 하천이 아름다웠고....


새로 신축중인 달마사

또 다른 암자



취가정
취가정은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과 권필의 애끓는 사연이 녹아있고, 많은 선비들이 시문을 남기는 인문학적 배경과,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과 함께 경관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가사 시 낭송대회 사회자

학생부 예선




전시관을 둘러보며.....










일반부 예선











심사위원장 예선 결과 발표

일반부 본선 대회






심사의 변

특별상 수상자

장려상 수상자

우수상 수상자

최우수상

대상 수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