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국가입니다. 중국 등지에서도 압축성장을 보였다고 하지만 한국만큼 그 속도나 국민들의 정신속에 끼친 영향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빨리 빨리로 대변되는 그 압축성장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은 전세계인들을 경악하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한국의 급성장에 대단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주역이었습니다. 전쟁후 태어나 어머니 치마를 잡고 동사무소앞에서 식량배급을 기다렸던 베이비부머들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를 대거 진학합니다. 중동건설붐을 타고 재벌그룹의 회사에 웬만하면 취직도 가능했습니다. 비록 당시 독재정권속에 힘든 과정도 겪었지만 경제 성장의 태풍을 타고 전세계로 진출해 한국의 경제 성장에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 베이버 부머시대가 낳은 자녀들이 지금의 20대 30대 40대입니다. 직장에 취직한지 얼마 있지 않아 마이카 시대에 돌입했고 각 가정에서는 자동차도 한 대씩 구비했습니다. 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에 심취하게 됩니다. 성공을 하면,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야 무시해도 된다는 요상한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공부 잘해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멋진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는 공식이 철저하게 베이비부머세대에게 각인이 됩니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인성을 먼저 찾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좋아야 한다는 그 일반적 교육방식에서 상당히 멀리 나간 것입니다. 성적이 좋으면 성격과 행동에 문제가 있어도 눈감아 주는 그런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바로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폐해중의 폐해입니다. 과정을 망각해 버린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1988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고 2002년 월드컵도 개최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서울 올림픽 직전에 가장 강력하게 준비한 것이 바로 음식점 청결과 화장실 문화였습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을 초청해놓고 더러운 것을 보여주기 싫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한때 지저분한 곳의 하나로 여겨졌던 한국의 음식점 화장실이 정말 몰라볼 정도로 청결해졌습니다. 월드컵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외국인에게 바가지 요금을 씌우던 악던 택시기사들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월드컵때 한국을 찾은 외국선수들과 외국 관광객들은 한국의 유무형적인 발전상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은 경제적인 수준뿐 아니라 생활적인 수준도 압축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유럽나라들이 수백년동안을 거치며 이룬 그 과정을 한국은 불과 40~50년만에 달성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은 2020년대에 들어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선진국 진입은 아니였습니다. 압축성장의 여파로 그 후유증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과정을 무시한 결과 지상주의의 폐단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극한 경쟁속에 한국인의 고유한 인품을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냥 세계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함축시킨 그런 인간형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손해보는 짓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대표적입니다.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부동산 투기가 대표적입니다. 빚을 지더라도 어떻해서라도 타인보다 먼저 근사한 내집을 마련하겠다는 경쟁이 전국적으로 불을 뿜었습니다. 그 후유증이 바로 가계부채 세계 1위국의 자리입니다.
극한 이기주의의 후유증은 바로 초저출산으로 연결됩니다.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오케이다라는 그들의 부모 즉 베이비부머들의 교육에 영향을 받아 더욱 더 성적지상주의에 외모지상주의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과정이라는 것을 무시하니 성과가 나지 않는 것에는 아예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조그만 패배에도 좌절해 버리는 풍조까지 낳게 됩니다. 양극화는 사회 곳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는 물론이고 능력 양극화 그리고 성공과 패배의 양극화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맙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뒤지면 아예 사회적 낙오자로 스스로 판단해 버립니다. 한때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들의 부모들의 시각에서는 정말 한심해 보입니다. 부모와 자녀들의 갈등은 심화됩니다. 부모와의 갈등을 이기지 못한 부류들은 집을 나가려 합니다. 스스로 벌어 이룬 1인가구가 아니라 부모의 할 수없는 도움으로 만들어진 1인가구가 즐비해집니다. 그런 분위기속에 결혼과 출산은 그야말로 강건너 불이요 다른 나라 이야기입니다. 부모들도 이제 자녀들에게 그다지 기대도 하지도 않습니다. 초저출산이 심화되는 이유중에 하나입니다.
요즘 세대 갈등이 한국이 가진 갈등중에 가장 심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갈등의 심화에는 한국의 역대 정권들의 과오도 큰 몫을 합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정권이 이룬 일들을 모두 부정하고 새로 바꾸려고 드는 그런 풍조가 사회에 깊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미래를 생각해 보는 비젼은 우리 사회에서 찾기 어렵게 됩니다. 비젼을 주려 노력한 정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이 갈등이라는 괴물로 사회를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세대갈등, 남녀 갈등, 빈부갈등, 보혁갈등 등 갈등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특히 사회적 대합의를 이뤄야 하는 연금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왜 젊은 세대가 늙은 세대를 실질적으로 부양해야 하느냐입니다. 자신들은 뼈 빠지게 일해 연금을 부어도 그 돈은 결국 노인들의 부양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들이 연금을 받을 때는 한국이 존재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왜 그런 무의미적인 일을 해야 하느냐고 젊은 층은 소리를 높힙니다. 불과 10년전쯤만해도 부모들이 가진 돈을 자식에게 증여해서 나름 자식들이 여유로운 미래 설계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모들이 돈을 꽉 움켜쥐고 있어 자식들이 실질적인 빈곤층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젊은층이 노년층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지금 20대 30대는 베이비부머들이 윤택했을 때 낳은 자녀들입니다. 아마도 한국의 역사상 가장 부유하게 자란 세대가 지금의 20대 30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막상 사회에 진출하고 나니 그들의 생활을 갈수록 빈곤해집니다. 부모들의 재산 축적은 이제 가능성이 없고 줄어만 듭니다. 자녀들은 대기업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능숙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할 경우 중소기업이나 건설현장 등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밀리고 맙니다. 좀비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고용해 겨우겨우 살아가는데 한국인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월급을 주고 고용할 리가 없습니다. 중 소규모 요식업체들의 경우도 극심한 운영난 때문에 직원들을 고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소기업과 중소 영업점에서도 밀려난 한국 젊은이들이 갈 곳은 편의점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제 거의 없습니다. 세대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의 미래가 암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도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할 지 암담한 모습입니다. 여기가 구멍이 나서 메우면 반대쪽에서 구멍이 나는 형국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순리대로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 문제점이 생기면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방안을 강구했습니다. 대성당을 짓는데도 수백년이 걸렸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한국과는 전혀 달랐다는 말입니다. 한국은 그런 과정을 갖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깨어보니 급성장했고 국민들은 그 성과에 빨려들어갔습니다. 언제 한국이 이런 풍요를 이룰 수 있을까 라는 대만족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다보니 과정을 무시했습니다. 그런 패착이 지금의 힘듬을 자초한 것입니다. 물론 압축성장이 없었다면 한국이 이런 선진국대열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인가라는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때 조금이라도 과정이라는 것에도 눈을 돌렸다면 지금 이처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모르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압축성장의 단 열매에 심취하다보니 주변 병해충이나 부작용에 대비하는 준비를 하지 못한 부작용을 지금 우리는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부작용이 각종 갈등속에 뒤섞이다보니 더욱 해결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는 지도 모릅니다.
2024년 10월 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