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 ‘되는 되로’/위선으로 가려져 있는 인간의 참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진실된 삶의 길을 제시

[시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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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 ‘되는 되로’(새로읽는 고전:67)

세익스피어 ‘되는 되로’(새로읽는 고전:67)

◎힘있는 자들의 위선­ 부도덕성 벗기기
남을 비판하고 단죄하기에 앞서 내속엔 과연 그러한 죄가 없는가
관용의 실천과 법치주의의 한계…
지도층의 반성없인 좋은사회 요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복음 7장은 이렇게 시작된다.이어서 마태복음은 타인의 허물을 찾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보고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라는 내용의 교훈을 전달한다.셰익스피어는 이 마태복음 7장 서두에서 이 극의 제목 ‘되는 되로(Measure for Measure)’를 따왔을 뿐만 아니라 극의 기본 골격,즉 다른 사람을 벌주기 위해 만든 잣대에 자신이 벌을 받는,부도덕한 통치자에 관한 이야기의 틀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 극의 무대는 법정이나 교회가 아니라 호색과 간음 등 성적 문제가 산재해 있는 자유분방한 도시 빈이다.교외에 즐비하게 늘어선 창녀촌은 난봉꾼들의 혼외정사를 부추기고,이같은 방탕한 분위기 속에서 청춘남녀들도 덩달아 혼전관계를 맺고 사생아를 낳는 걸 예사로 여긴다.

이 가운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클라우디오와 줄리엣 커플이다.이들은 약혼식만 하고 정식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었으며 줄리엣은 임신까지 했다.평시의 빈에서라면 클라우디오와 줄리엣 커플의 혼전 임신은 관습상 아무런 죄가 될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이 두사람에게 혹독한 벌이 내려진다.혼전 임신이라는 죄목으로 클라우디오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며 임신한 줄리엣은 투옥된다.금욕적인 생활과 모범적인 처신으로 주변의 신망을 얻고 있던 젊은 귀족 안젤로가 빈센치오 공작으로부터 통치권을 잠시 위임받고 나서 간음과 혼외 임신에 대하여 사형이라는 가혹한 법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엄격한 법제정은 성적으로 문란해진 빈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안젤로의 통치 의사를 반영한다.그러나 약혼을 했으며,서로 사랑하는 클라우디오와 줄리엣이 혼전 성관계와 임신때문에 벌을 받아야만 하는가.클라우디오의 행위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표현으로 인정될 수 있지 않을까.과연 법은 어디까지 인간의 삶을 통제해야 되는가.

오빠 클라우디오 구명운동에 나선 수녀 지망생 이사벨라와 대리 통치자 안젤로의 면담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토론의 장이 된다.안젤로는 클라우디오를 처벌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공명정대한 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클라우디오에 대해 내려진 사형선고를 철회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일이며,클라우디오에 대한 처벌은 앞으로 간음과 같은 부도덕한 성행위를 근절시킬 것이기 때문에 전체 사회에 자비를 베푸는 일이라고 주장한다.한편 이사벨라는 마태복음 7장 1∼5절에 구현된 기독교 정신에 입각,안젤로에게 클라우디오와 같은 입장이 되어 인간 클라우디오를 이해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

즉 안젤로에게 클라우디오를 단죄하기에 앞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혹시 자신이 비판하는 그 죄가 자신에게는 없는지,그리고 있다면 오빠 클라우디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한다.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클라우디오를 두고 통치자 안젤로와 누이동생 이사벨라는 서로 법과 자비의 우월성을 따지며 팽팽히 맞선다.통치자에게는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서의 법이 중요하게 여겨지고,수녀 지망생 이사벨라에겐 자비정신의 실천이 법적 절차에 앞선다.

그러나 이사벨라와의 첫 면담 후 안젤로는 철저한 법정신의 신봉자가 더이상 아니게 된다.정의와 법을 부르짖었던 안젤로는 이사벨라의 호소에 감명받고 급기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거기에서 뜻밖에도 이사벨라에 대한 자신의 억제할 수 없는 욕정을 발견한다.이에 안젤로는 이사벨라의 주장대로 그 역시 클라우디오와 같은 죄인임을 깨닫고 클라우디오를 사면하기로 결심한다.그러나 이사벨라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한 안젤로는 이사벨라에게 오빠의 사면을 위해 정조를 바칠 것을 요구한다.이렇게 해서 공명정대한 법치주의자로 자처하던 안젤로가 스스로 자신이 세운 법의 위반자가 되고 만다.이러한 안젤로의 행동은 개인적으론 위선을,사회적 차원에서는 통치자로서의 부도덕성을 드러낸다.

한편 오빠의 생명보다 자신의 정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사벨라는 자신이 안젤로에게 정조를 잃고 마느니 차라리 오빠 클라우디오가 사형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어떻게 하면 이사벨라가 안젤로에게 정조를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오빠를 구할 수 있을까.이것이 이 극 후반부의 핵심 문제가 되며,이 문제는 수도사로 가장한 빈센치오 공작이 벌이는 일련의 조작과 술수에 의해 희극적으로 해결된다.

공작은 법정에서 부도덕한 안젤로의 위선을 낱낱이 고발하여 그를 법에 따라 단죄하지만 곧 자비의 정신에 따라 그를 사면시키고 한때 파혼했던 마리아나와의 합법적인 결혼을 강제로 명한다.

문제극으로서 이 극이 지닌 특별한 희극적 결말구조 때문에 안젤로는 만인 앞에서 모욕을 당하기는 해도 용서받는다.

안젤로는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동서고금의 역사에는 실제 수많은 안젤로가 등장한다.최근 우리의 주변을 보라.법을 만든 ‘의원님’들이 자신이 만든 법망에 걸려 구속되고,법을 집행하는 고위공무원들이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일이 얼마나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가.

또한 법을 준수하고,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세우고 지켜나가야 할 지도층 인사들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보도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지 않은가.얼마 전에도 뇌물사건으로 전·현직 국회의원,장관,공정거래위원회와 감사원의 고위직들,대기업 회장들은 물론 유명 교수,판사,변호사들이 구속되는 일이 있지 않았던가.

그 모든 분들이 정의를 외치고 모범적인 삶으로 주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던 분들이었으나 그러한 부르짖음과 삶이 거짓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안젤로와 너무나 닮았다.이런 점에서 ‘되는 되로’는 위선으로 가려져 있는 인간의 참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진실된 삶의 길을 제시해 주는 걸작이라 하겠다.

<이희원 서울산업대 영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