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0일 묵상 본문 : 사도행전 9장 10절 - 22절 - 복음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며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주의 은혜와 사랑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서기에는 부족한 자이며 설 수 없는 죄인이요 부정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죄와 허물로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오직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나아갑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게 해 주시고 주의 음성을 따라 살아가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새 영과 마음을 주시고 주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따라 생명의 길을 가게 하옵소서.
어제는 시찰모임을 하면서 복음 없이 살아가는 인생의 연약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자기주장의지로 원하는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땅의 것에 마음을 두고 살지 않게 하시고 주를 바라보며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살면 늘 마음에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긍휼히 여겨 주시고 복음을 알고 주님 앞에 서기를 힘쓰는 인생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와 진리로 인도해 주시기를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본문 해설
사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다메섹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고 주님은 환상 중에 그를 부르시게 된다.
주님의 부름에 응답한 아나니아에게 주님은 일어나 직가라는 거리의 유다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사울이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신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되는 것을 환상 중에 보았음을 가르쳐 주신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해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게 해를 끼친 사람이었고 이곳에서도 성도들을 결박할 권한을 받고 왔음을 말한다.
이는 아나니아가 사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가라는 주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아나니아의 대답에 주님은 가라고 명령하시고 사울은 자기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택한 그릇임을 선언하신다.
그리고 사울이 예수의 이름을 위해 고난 받는 삶이 될 것을 그에게 보일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에 아나니아는 일어나 사울이 있는 곳에 가서 그에게 안수하였고 사울에게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님이 자기를 보내서 사울이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심을 선언하게 된다.
그러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고 일어나 세례를 받았으며 음식을 먹기 시작하여 강건함을 회복하게 된다.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을 머물러 있었는데 그때 즉시 각 회당에 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자 듣는 사람들은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였고 그가 다메섹에 온 것도 그들을 대제사장에게 끌고 가려고 했는데 바뀐 모습을 보며 놀라게 된다.
그러자 사울은 더욱 힘을 얻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상황을 맞게 된다.
나의 묵상
사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울이 눈을 뜨게 만들고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하시기 위한 일을 시작하신다.
그것은 다메섹에 살고 있었던 신실한 성도였던 아나니아를 부르시고 그가 사울에게 안수하도록 만드시는 것이었으며 안수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하나님의 손길은 먼저 된 성도가 나중 된 성도를 세우고 이끌어 주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심을 보여준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자를 위해 기꺼이 섬기고 연약한 모습을 담당하는 것이 바른 태도임을 권면했었다.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15:1,2)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고 그가 행한 일들이 있었기에 사울을 믿지 못하여 주의 명령에 대해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님은 아나니아의 망설임을 책망하지 않으셨지만 그에 질문에 대답하는 것보다 주께서 행하실 일과 계획을 알려줌으로써 그의 선입견을 버리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신다.
인간의 걱정과 두려움, 제한적인 지식을 가지고 주의 계획을 판단하지 말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성도가 가진 삶의 태도임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욥도 자신의 의로움을 하나님 앞에서 주장하며 자신의 고난에 대해 묻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대답하신다.
이는 인생의 한계와 무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며 사람의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자신의 무지함과 교만함을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따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마음을 두고 기도하는 자가 된다.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1~5)
가끔씩 복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사람들이 복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해 아는 것처럼 복음에 연합되어 살고 있냐고 질문하면 당당하게 대답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이런 사람들의 태도는 욥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다가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을 고백하게 된 것처럼 무지함을 드러내는 모습이며 하나님 앞에서 교만함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복음은 단순히 공생애 가운데 일어난 사건을 아는 것으로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의 성취를 아는 것이며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며 사는 모습이다.
그래서 복음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가 행하신 메시아적 행위이며 그것은 창세전부터 선포된 언약의 성취이고 종말에 또한 성취될 언약의 핵심이다.
이것을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복음의 신비는 성도가 평생을 통해 깨달아야 할 진리이고 영원히 찬양하며 노래해야 할 제목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 복음에 연합되어 복음의 능력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알고자 하는 것이 삶의 목표요 목적이 되었음을 고백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0~12)
성도가 복음에 연합되어 살아가는 삶은 성령께서 그 눈에서 비늘을 벗기듯 무지함을 벗겨 주셔야 가능한 것이며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를 따라 평생을 살아가며 영생을 얻고 누리도록 힘쓰며 살아가야 한다.
지금도 세상의 지혜로는 복음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세상의 석학도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많고 알려고 하는 자들도 없음을 본다.
복음을 알고 깨닫는 삶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의 결과이며 바른 복음의 선포를 통해 나타나는 변화의 모습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복음을 알고 선포하며 증거 하는 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요 능력이며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인지 다시 한 번 감사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하신다.
사울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복음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그는 회심 이후에 곧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 하며 자기를 아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가둠으로써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던 사람이 자신의 의로움을 버리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하며 기꺼이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구약의 말씀을 통해 더 확실하게 깨닫고 증거 하기 위해 아라비아로 들어가 복음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은 것에서 머물지 않고 복음의 신비를 더 알고자 힘쓰며 그것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창세전부터 시작된 약속의 성취가 구약의 말씀 속에서 드러나고 신약의 사도들에 의해 증거 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고백하게 만든다.
그 복음을 오늘도 믿음으로 선포하고 증거 하며 나의 삶, 그리고 지체들의 삶에서 선한 열매를 맺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복음을 깨달은 사울은 그 즉시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며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사울은 자기부인을 하게 되며 기꺼이 고난의 자리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자신의 의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게 만들며 기꺼이 고난과 핍박을 수용하고 그 가운데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힘을 얻게 만듭니다.
주의 복음을 아는 자로 살게 하시고 복음에 합당한 고난과 핍박을 수용할 수 있게 하옵소서.
땅의 것에 매인 자로 살지 않게 하시고 주의 은혜에 매인 자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세상의 것을 얻을수록 교만해지고 주와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그때마다 주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주와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증거 하며 사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주의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진리를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얻도록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