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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법원 3층에 있는 정의와 평등을 상징하는 여신상 / 조선일보 DB
이명박 정부 5년차 때인 2012년 1월 26일의 일이다. 사법연수원 41기 자치회는 “사법시험법이 폐지되면 서민의 법조인
진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입법의견서’를 법무부 장관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41기
사법연수생 가운데 사법시험 존치 입법에 찬성한 사람은 845명. 사법연수생들이 사시 폐지를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았다. 사법연수원 41기 자치회는 “일본은 예비시험을 통해 로스쿨을 다니지 않은 사람에게도 사법시험 응시 자격을
준다”면서 “미국의 다수 주에서도 통신강좌 이수자 등에게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법연
수원 41기 자치회는 로스쿨 제도와 관련, “입학전형 방식과 등록금이 높아 서민의 법조계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며 “꿈이
자포자기로 바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구조에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연수원 41기 자치회는 입법의견서를 제출한
직후 주요 일간신문에 사법시험 존치를 촉구하는 의견광고를 싣기도 했다. 2012년 6월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사법시험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잘못 들어선 길이라면 하루빨리 바른 길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3
년 전 제기된 사법시험 존치 주장은 일반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사회 일각에선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들의 ‘밥그릇
지키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보내기도 했다. 일반의 무관심과는 달리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은 ‘사법시험 폐지’ 문제를 심각한
사안으로 간주했다.
2013년 4월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당시 민주통합당)은 국회 내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변호사 예비시험제도 도입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박영선 의원은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변호사
예비시험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후 박영선 법제사법위원장은 2013년 12월까지 두 번의 토론회를 더 개최했다.
지
난 1월 12일 있었던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가 1년여 잠잠하던 ‘사법시험 존치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대한변협회장 선거에는
4명의 후보가 출마했는데, 이 중 1·2위를 한 하창우·소순무 후보가 모두 ‘사법시험 존치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창우·소순무
후보는 모두 64.4%를 득표해, 투표에 참여한 변호사들 중 다수가 사법시험 존치를 지지한 결과가 되었다. 사법시험 존치론에
반대한 박영수 후보(전 대검 중수부장)는 변호사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현행 사법시험 제도는 2016년 마지막
1차 시험, 2017년 2차와 3차 시험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후 변호사 자격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출신만이
변호사 시험을 통해 얻을 수 있게 된다. 현행법대로라면 2016년 사법시험이 마지막 시험이다.
하창우 대한변협 신임
회장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했다. 하 회장은 사법시험을 ‘희망의 사다리’라고 규정하고 경제적
약자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회장은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재차 사범시험 존치를 강조했다.
“부
득이 로스쿨 제도에 편입되지 못한 인재들도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사법시험은 존치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황금의 사다리를 끊을 수 없다. 농부의 아들도, 가난한 집 자식도 판·검사,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게 헌법이
말하는 평등이고 법에서 말하는 정의다.”
서울변호사협회는 산하 지회 중 회원 수가 많아 대한변협의 ‘주력 부대’로
불린다. 서울변호사회의 나승철 회장도 대표적 사법시험 존치론자로 통한다. 법조계에서는 하창우 회장은 나승철 회장과 호흡을 맞춰
사법시험 존치론이 어느 때보다 훨씬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이 ‘사법시험
존치론’을 거들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지난 1월 13일 페이스북에 “사시 유지를 주장하는 변협 회장이 당선돼 참 반갑다”며
“사시를 통해 법조인을 선발해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홍 지사는 1월 15일에도 “사시가 없었다면 고졸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겠느냐”며 “법조 특권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로스쿨 제도가 희망의 사다리를 허물어
버렸다”고도 했다.
홍 지사의 발언이 조선닷컴에 올라오자 ‘사법시험 존치’를 지지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 중 이윤석씨의 댓글이 가장 많은 찬성을 받으며 베스트에 선정되었다.
‘닥
치고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학원에서 배우든지 로스쿨에서 배우든지 과외, 독학을 하든지 그건 각자
여건과 판단에 따를 일이다. 법 공부는 책만 있으면 된다. 의대처럼 실습이 절대적인 게 아니다. 이런 원칙은 배제하고 돈 있는
자녀들이 쉽게 따는 트랙을 만들기 위한 세팅이 로스쿨이다.’
홍 지사가 사법시험 존치론에 힘을 보태는 이유가 있다.
홍 지사는 경남 창녕에서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고려대 법대를 나와 사시에 합격해 검사를 거쳐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표 등을 지냈다. 가정환경만 보면 홍 지사 자신이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홍 지사는 자신이 유년기와
청소년기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보냈는지를 수필집 ‘나 돌아가고 싶다’에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홍 지사는 정치를 하면서 줄곧
“부자에게 자유를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정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사법시험 존치론은 바로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정치’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법률안은 계속 발의되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은 2018년 이후에도 사범시험을 계속 시행하는 내용을 담은 변호사시험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고, 작년엔 같은 당
함진규 의원 등 10명이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로스쿨 도입 당시 여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내에도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기자는 박영선 의원과 전화통화를 통해 2013년 ‘변호사 예비시험제도 도입 필요한가’ 토론회를
연 배경을 들어보았다. 박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나는 대한민국 법조인 양성과정에서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늘 고민해왔다”면서 “정의로운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법조인 선발과정이 공정해야 하고, 공정의 핵심은
기회균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즉 기회균등이라는 차원에서 ‘변호사 예비시험제도 도입 필요한가’ 토론회를 열었다는 게 박
의원의 설명이다. 박 의원은 미국의 기회균등한 법조인 선발제도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로스쿨의
원조 격인 미국은 국민 중 로스쿨에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시험과 변호사시험을 통과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런 기회 제공을 통해 ‘미국은 기회 균등의 나라’ ‘희망의 통로를 열어주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사
법시험 존치와 변호사 예비시험 도입 둘 중 어느 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클까. 법률적으로는 사법시험 존치가 훨씬 간편하다. 변호사
예비시험을 도입하려면 변호사시험법의 대폭 개정이나 새로운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지만 사법시험 존치는 변호사시험법 부칙 제2조와
제4조 제1항을 삭제하고 사법시험법을 계속 시행하도록 하면 된다.
사법시험 존치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고비용, 실력 저하, 입학전형 과정의 불투명성 3가지다. 먼저 고비용 문제를 살펴보자. 2012년 로스쿨 등록 현황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 중 연간 등록금이 2000만원을 넘는 곳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6곳이었다. 평균 연간 등록금을
2000만원으로 계산하면 3년간 등록금만 6000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12만원. 또한 대학생 1명과 고등학교 1명을 둔 4인가족 표준생활비는 683만원이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자녀를 로스쿨에 보내 3년간 학비를 댈 수 있는 가정은 상류층에 국한된다.
하
창우 회장의 말처럼 농부의 자식이 서울에서 로스쿨을 통해 법조인이 되기란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이 낮아진다. 지방 학생의 경우
등록금, 하숙비, 용돈 등을 포함하면 1년에 최소 3000만원이 넘게 든다. 사법시험 존치론자들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지출하는
사설학원비는 연간 500만원 정도라고 주장한다. 2009~2012년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한 614명 중 특목고·자사고·강남3구
출신이 54.7%였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입학 전형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학력·경력·경험·자격증 등 외적 조건과 면접 점수 등을 주요 항목으로 해 적성평가 방식으로 합격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되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 로스쿨의 저소득층·사회적배려대상자 특별전형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저소득층·사회적배려대상자 특별전형 선발 규모는 123~125명이었다. 그런데 감사원 감사 결과
부유층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신분으로 위장하거나 자격미달자가 특별전형으로 합격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바로 이런 사실로
인해 입학전형 과정의 불투명성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법학전문대학원교수협의회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법시험 존치론’을 비판한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법학전문대학원교수협의회는 지난해 10월 공청회를 열었다. 경북대
로스쿨 김창록 교수는 “사법시험 존치론은 낡은 제도에 매달리는 퇴행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송오식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로스쿨 제도를 흔드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 기득권을 계속 누리자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로스쿨 제도의 원래 취지는 로스쿨을 졸업해 일정 기간 변호사 생활을 한 뒤에 판사로 임용해 종전의 사법시험 성적으로 바로
법관으로 임용하면서 나타나는 폐단을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요즘 로스쿨에 대해 행해지는 비판은 원래 설계도대로 가지 않고 변형 내지 변질되면서 나왔다. 원래대로 하면 변호사 시험은 자격시험으로 가야 하고, 판사와 검사는 변호사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로스쿨 교수 중에도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고려대 로스쿨 신호영 교수는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사법시험 존치론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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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시험 제도는 학력·응시기회·응시연령의 제한이 없는 제도다. 사법시험 제도 아래서는 주경야독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로스쿨-변호사시험 제도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 출신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다. 응시기회·응시연령 제한이 없다는 사법시험 제도의
장점은, 거꾸로 ‘고시 낭인(浪人)’을 양산해 로스쿨 제도 도입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고시 낭인’이라는 인적자원의 왜곡을
방지하자는 게 로스쿨 도입 이유의 하나였다. 실제로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한때 3만명에 달하던 서울 신림동의 ‘고시
낭인’이 급감했다. 그러나 사법시험 존치론자들은 ‘고시 낭인’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의지에 의한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로
스쿨 제도가 사회계층의 고착화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시간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는 양상이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양극화, 저출산,
저성장 등 사회구조적 변화로 인해 과거처럼 사회계층 이동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국민 대다수가 인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법시험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현재 사회 분위기는 ‘기회 균등’에 점점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