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솔리니의 든든한 후원세력 교황청 한국 교회(개신교와 구교)가 북한 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것처럼 2차 대전 당시 무솔리니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카톨릭이었다. 2차 대전 당시 로마교황청의 행태를 보면 한국의 ‘정의구현사제단’이 떠오른다.
2. 지저분한 독재자 무솔리니 신성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무솔리니는 엄청난 겁쟁이였다. 그는 아내를 무서워했던 공처가였고, 밤이면 혼자서 아무데도 못가는 겁쟁이였다. 무솔리니는 또 지저분하기로 유명했는데, 목욕하는 것과 속옷 갈아입는 것, 그리고 면도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3. 히틀러와 손잡은 이유 무솔리니는 10대 때부터 여자는 성욕을 채우는 도구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여러 명의 여자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14명의 여성과 동시에 관계를 가졌던 적도 있다고 한다. <조재선著,《세계 역사를 뒤흔든 인물 오류사전》, 지원북클럽, 2003 인용) 1945년 4월25일 反파쇼 의용군(이탈리아 빨치산)에게 체포된 후 무솔리니는 총살형을 선고받았지만 그의 정부(情婦)인 클라라는 총살당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1945년 4월28일 총알이 무솔리니를 향해 발사되었을 때 클라라는 온몸을 던져 무솔리니를 감싸 안았다. 클라라가 죽고 난 뒤 무솔리니는 9발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마침내, 두 사람의 훼손된 시체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거꾸로 매달렸다. 군중들은 수 시간에 걸쳐 비웃음을 던지고 무솔리니의 시체에 침을 뱉었다. 그 다음 날 무솔리니의 시신은 프레다포에 있는 가족묘에 묻혔다. 위대한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박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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