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시대 넘어서기
김호림
기호일보 2024.09.13
흔히 금융기관 등 서비스업체에 대표 전화로 문의나 상담할 때, 안내원에게 친절한 말을 사용해달라는 부탁 말이 나온다. 이는 우리가 거친 말이나 분노가 쉽게 표출되는 사회에 속해 있음을 자인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조절되지 않는 분노나 순간적 감정폭발은 곧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21년 발생한 범죄 중 19.1%가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가장 높은 범죄 동기 비율을 차지했다. 그만큼 우리가 우발적 범죄 피해에 노출될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이런 범죄의 동기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상황에서 사회적 불만과 스트레스가 누적된 분노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 자기 존재에 대한 모멸감이 수치심으로 발동해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철학자 니체(Nietzsche)는 이런 현상을 약자가 강자에 대해 품는 시기심(ressentiment)이라 했다. 이런 시기심은 자신에 대해 냉소적이고 자포자기적인 태도로 변해, 곧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지게 돼 자신의 약점 극복의 노력 없이 상대를 질투·비난하고, 행운이나 바라는 노예도덕을 만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사실 이 같은 시기심은 창세기부터 나온다. 동생 아벨의 제물은 받아들여지고 자기의 제물은 거부당한 시기와 질투의 분노가 카인의 ‘형제 살해’ 동기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잠언’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하였고, 또 다른 지혜서에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분노는 개인의 차원에서 나오는 것만이 아니다. 공동체와 지역사회의 이기적인 집단적 분노로 표출될 수도 있고, 정치와 관련돼 극단적인 갈등을 초래할 수 있으며, 국가 사이에도 분출돼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이와는 다른, 신(神)의 거룩한 분노, 불의와 부정에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운동’ 등인 긍정적인 공적 분노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개인 차원에서의 ‘분노 조절 장치’인 ‘절제의 미덕’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절제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 다스려야 하는 대상은 대체로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큰 능력과 더 높은 가치를 가지려는 보통 사람의 욕구’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였던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는 절제의 미덕을 고양하기 위해 ‘적은 것으로 살아가기’를 소개했다.
"적은 것으로 살아 가는 기술은 살아가는 방법, 곧 지혜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함부로 비판하지 말 것,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 것, 상황이 제공해 주는 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것, 사회 계층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을 비통한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 것, 시도해 봤다는 자긍심을 갖기 전에 자신의 취향과 운명에 따라서 착실히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것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같이 살아가는 기술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 아주 능란한 솜씨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노예도덕’에서 벗어나 ‘주인 도덕’의 입장에서 당당하게 상대의 우수성과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라는 니체의 생각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젊은이들에게 절제의 미덕이란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 풍조에 보조를 맞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 돼 자신의 길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무모하게 일을 추진 하는 것일까?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꿔야 한단 말인가?"라는 지혜의 글을 남긴 현자도 있다.
따라서 건전한 시민으로서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개인·공동체·사회·국가 차원에서 절제의 미덕이 높임을 받을 수 있는 인성교육의 학습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곧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