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과 난 골든게이트 공원의 스톤헨지에 앉아
오션 비치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우리 둘 모두 어제 이후 식사는 고사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남은 것은 생리대 2개와 입고 있는 옷 한벌, 벨라도나 한 뭉치뿐이었다.
난 심한 좌절감과 그저께 먹은 너무 많은 양의 벨라도나-먹는 하얀 꽃잎으로
환각과 더불어 심한 갈증을 유발한다- 때문에
어떻게 되어도 그만이라는
심정이었다.
캣은 공원 옆 식품점에서 물을 훔쳐 오겠다며 일어섰다.
스톤헨지는 공원 내에 의자 높이의 돌이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는 곳으로-마치
영국의 스톤헨지처럼- 샌프란시스코 히피들에겐 일종의 성지 같은 장소이다.
우린 종종 모두 스톤헨지에 둘러앉아 마이키의 스틸팬과 북을 가지고
연주를 하며 마리와나를 피웠다.
공원의 한 모퉁이에 경찰서가 인접해 있지만 경찰들은 히피들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히피들 정도는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사건들도 산더미 같이 많기 때문에
공원에서 대놓고 약을 팔거나 난동을 부리지 않는 한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우린 모두 8명 정도의 그룹으로 함께 오션비치에 가서 1달 정도 약을 팔아
목돈을 마련할 작정이었다. 그 돈으로 두달 후에 열리는 일주일짜리 그레이트풀 데드의 공연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개자식' 데이즈는 오션비치 근처에 사는 자신의
건축가 친구가 집과 밴 그리고 엄청난 양의 씨드-엘에스디-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에게 모든 일정을 맡기라며 큰소리를 쳤다. 게다가 녀석은 그 건축가 친구와 그레이트풀 데드의 제리 가르시아가 절친한 사이임을 암시하며 우리를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다. 녀석은 13살과 15살짜리 여자아이들과 늘 함께 붙어 다녔는데-데이즈는 큰 키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백인 미남이었다- 우린 모두 그 아이들이 19살과 20살인줄로만 알았다.
정말 그렇게 보였다.
데이즈는 우리들 중 가장 지독하게 약을 팔았다.
게다가 남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나이든 히피들을 돕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쟈사이아의 묵인 하에 빼돌리고 있었다.
헐렁한 70년대풍 나일론 셔츠에 스리랑카산 나염천들을 다리에 칭칭 감고 다니던
데이즈는 우리들과는 달리 그레이트풀 데드나 도어즈가 아닌 큐어나 뉴오더 또는
스트라빈스키를 듣고 다녔다.
몇몇 친구들은 그런 녀석을 두고 프레피 출신 티가 난다며 비웃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않아 보였다.
데이즈는 언젠가 자신은 정말 쿨한 삶을 살 것이라며
조심스레 자신의 계획들을 털어놓았다.
계획들을 듣고 나니 데이즈가 우리와 함께 있는 진짜 이유조차
쿨한 그의 인생을 위한 하나의 과정과 장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기저기서 '쿨'을 얘기하는 것은 더 이상 쿨 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쿨
혹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정말 쿨 한 '쿨'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쿨 해지기란 다른 어느 도시에서보다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쿨 해질 수 없는 곳에서 쿨을 쫓는다는 건
미식거리는 여피냄새만 풍기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쟈사이아는 언젠가 쿨 같은 것들은 모조리 갈매기들 아니면
경찰들한테나 던져 주라며
담요를 뒤집어 쓰고 돌아누웠다.
우리 모두 그런 쟈사이아가 정말 쿨 하다고 생각했다.
캣이 물과 옥수수 깡통을 몇 개 내려놓았다.
좀 먹어 지니. 아무도 안 왔었어?
캣은 아직 우리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캣은 그룹 안에 있던 여자들 중 가장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여러 악기를 연주할 줄 알았고 모두와 원만한 사이였다. 특히 그룹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쟈사이아와 최근 들어 연인관계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착오가 생긴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쟈사이아는 언제나 새로운 약물을 만들어 우리에게 선보였다. 우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그것들을 시험해 보곤 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선 거의 말하는 법이 없었다. 마흔을 넘겼다는 것과
한때 주지사가 다니는 이발소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는 점을 빼고는 사실 그룹 내의 누구도 그의 과거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들에 자연스레 묻어나는 깊은 지혜의 향기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편안한 미소 등은 그를 우리의 지도자로 만들 수밖에 없게 하고 있었다.
쟈사이아는 전에도 이런 식으로 그룹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잘라내곤 했다.
물론 우린 그의 판단과 지도력을 믿었고 그의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리고 이제 쟈사이아는 16개월이나 함께 지낸 나를 버렸다. 그의 연인과 함께.
난 그가 내게 깊은 신뢰와 일종의 존경심까지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픽업트럭을 빌려 사막으로 달릴 때도
덤불에 불을 붙여 코요테를 쫓을 때도
마이키가 쇼크로 앰뷸런스 안에서 숨을 거둘 때도
모두와 함께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부를 때도
선인장을 잘라 피요테를 만들어 먹을 때도
하리 크리쉬나 사원의 음식을 훔칠 때도
버클리에서 열린 스티븐 호킹의 강의를 숨어 들을 때도
일본관광객들에게 히피들의 세계를 체험시켜주겠다고 말하며
스톤헨지로 데려가 잔디 위에서 함께 묵고는 백오십달러씩 챙길 때도
고아에서 티벳에 이르는 삼년짜리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우린 함께였다.
그리고 이제 쟈사이아는 나를 버렸다.
내가 도둑질에 재능이 있다며 좋아하던,
내가 방울뱀의 야성을 가지고 있다고 경계하던,
내가 동양 여자에게선 보기 드문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신기해하던,
내가 노인같이 운전을 한다며 놀리던,
내가 순수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영혼을 가졌다고 부러워하던,
내게 한국에선 어떤 종교가 가장 대중적이냐고 묻던
내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눈물의 가치를 알아야한다고 가르치던
바로 그 쟈사이아가
말 한마디 없이
나를 버렸다.
캣은 나에게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난 멍하니 손에 든 물병만 바라보고 있었다.
데이즈와 13살 15살이 나타났다.
버려진 사람이 세명 더 있었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우리 앞에 서있던 데이즈는
갑자기 오른 손에
들고 있던 가죽가방으로 캣의 얼굴을 후려치더니
온 몸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캣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맞고만 있었다.
말릴 기운도 의지도 없다.
많고 많은 지루한 사연들.
미친 듯이 얼굴을 밟아대던 데이즈는 결국 캣이 정신을 잃고서야
때리기를 멈추었다.
난 멍하니 손에 든 물병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앉은 13살이 스피드를 꺼내며 같이 하겠느냐 물었다.
나와 데이즈 그리고 데이즈의 두 소녀는 녀석이 가방 가득 가지고 있던
엄청난 양을 모조리 흡입해 버리고도 모자라 내가 가지고 있던
벨라도나까지 다 먹어 버렸다.
뇌가 몇 번은 터져 버린 것만 같았다.
데이즈는 이런 건 처음이라며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녀석은 쟈사이아가 뭔가 엄청난 것을 만들었다느니
우린 이제 큰 부자가 될 것이라느니 하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쓰러졌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틀 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여기저기 걸어다니기만 했다.
지나치는 사람들 모두 커다란 풍선을 얼굴에 쓰고 있었다.
난 아스팔트 위에 앉아 히죽거리며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구멍이 도로 한복판에 뚫려 버렸다.
난 가까스로 구멍에서 기어 나왔다.
옷을 벗어 오줌을 말리고 있자 구멍 옆으로 작은 싹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양복을 입은 중국인 남자가 느린 화면으로 내게 말했다.
"이것 보세요. 괜찮아요?"
그 남자에게 나의 오른 손바닥을 보여주자 갑자기 벌새가 되어
길다란 궤적을 남기며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난 어느새 거대한 나무로 자라버린 싹들을 뿌리 채 뽑아 버렸다.
갑자기 내 오른 팔이 사마귀의 앞다리로 변해 버렸다.
차 한 대가 내 어깨를 스치듯이 지나가 버렸다.
'그래 이건 분명 음모야.'
분명 경찰의 음모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쟈사이아는 이렇게 나를 버릴 리가 없다. 캣과 데이즈도 분명 경찰이다.
분명 내 티셔츠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으리라 믿으며 스톤헨지로 돌아가 모두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가로등과 소화전들이 내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내 코 안에도 도청장치가 되어 있는 듯 했다. 난 코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도청장치를 꺼내려 했지만 너무 깊은 곳에 있었다. 거리를 메운 모든 자동차들이 경찰차였다.
난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하고 좁은 골목들을 찾아 숨어들었다.
스톤헨지엔 데이즈와 소녀들이 누워 있었다.
데이즈는 나를 보자 과도하게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대체 어디 있었느냐고 물었다.
갑자기 데이즈의 눈이 여섯 개로 늘어났다.
이 자식 역시 경찰이었구나.
데이즈는 걱정하고 있었다며 음식은 먹었냐고 물었다.
난 말을 하려 했으나 혀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녀석은 큰일이라며 빨리 물을 먹어야한다고 말했다. 소녀들이 물을 가져왔다.
분명히 독이 들었을 것 같았다.
입에 대는 즉시 혀와 입술이 타 들어가며 죽어 버리는 그런 독이 들었을 것만 같았다.
소녀들은 천둥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어서 물을 마시라고 재촉했다.
소녀들이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내 눈에선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무들 사이로 꼬리 부분만 제외하고는 털이 모조리 뽑혀버린 커다란 공작새 한 마리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뛰어 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소녀들은 내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잔디들이 뾰족하게 날을 세우더니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난 얼굴을 가리고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공원 외곽도로엔 앰뷸런스들이 늘어 서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난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조금씩 앰뷸런스로 다가갔다.
앰뷸런스가 2대였다가 8대가 되었고 다시 1대가 되었다.
난 내 왼쪽 어깨 내부에서부터 울려나오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여자 목소리를 들었다.
"자 지니. 너의 침대야. 이제 그만 가서 쉬어도 되. 이제 그만 쉬어도 되."
하얀 옷을 입은 흑인 남자가 내게 다가오더니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지축을 울리는 듯한 저음의 베이스 드럼 소리와 낭랑한 실로폰 소리가
내 콧구멍을 통해 들리기 시작했다.
난 아니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청나게 큰 전구들이 펑펑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정한 속도로 터지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부축해 일으키며 코에 대고 말했다.
"넌 너 너 다른 넌 다 너너너 어 너 언 다른 른 사람들 다른 른 넌 다르 사람들이 사람들이 다른 너한테 한테 한테 들이 른 넌 보여 한테 넌 다른 보여주 사람들이 려 람들 넌 고 하는 것만 너한테테테 테 테 테 테 다 른 사람들이 이 이 다른 보며 려고 하는 너 보며 며 며 넌 살고 있는 것 것 다른 사 람들 들 테 한테 같아..."
넌 다른 사람들이 네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만 보며 살고 있는 것 같아.
바로 그 시간 중국은 샌디애고와 시애틀을 폭격했고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난 전속력으로 병원을 향해 달리던 아이스크림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쟈사이아는 몇일 전 완성한 v1이란 약물 샘플을 가지고 홀로 방콕행 비행기 일등석에 앉아 있었다.
2001년 9월 27일 목요일 저녁 8시 30분
홍대 앞 쌈지스페이스 '바람'
_'별'의 연주와 시낭송.
_첫 ep겸 소책자 '너와 나의 20세기' 그리고 '2' 판매.
'별'
가네샤_시타르, 오카리나, 클래식 기타, 타블라
조월_전기기타, 프로그래밍, 어쿠스틱 기타
별_프로그래밍, 아날로그 건반, 전기기타, 목소리, 영상
허유_사진, 영상
연주예정곡명
00_무반주첼로곡(J.S.BACH)
01_푸른전구빛
02_별
03_영원이 시간을 관통하는 그 순간 나를 보지 말아요
04_69!69!69!
05_빛
06_너와 나의 20세기
07_진정한 후렌치후라이의 시대는갔는가
08_2
09_비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