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혼의 의사 신유가 2
다스칼로스는 제자들의 질문을
기다리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술에 들어가기 전에 올리는
기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 보았다.
“나는 기도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신유가에게 그것은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유도
하는 정신집중의 한 방법이 됩니다.
나에게는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하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시술에 들어가지요.
그러나 진리의 탐구자는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의 모든
생각은 절대자에 대한 끊임없는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도의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 바울이 /‘늘 기도하라’/
고 가르친 진정한 뜻입니다.
신유가로서 진리의 탐구자들은
자신의 행위와 생각과 느낌을 통해
서 끊임없이 기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만일 신과 일체가 되어 있
다면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진정한 기도는 말이 아닙니다.
말은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의미
하지 못합니다.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봉사하려는 각오와 행위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탐구자로서
매일 밤 몇 분식 앉아서
자아분석을 하기로 약속한다면
이것이 본질적으로
기도의 한 형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자아분석이
자학적인 쾌감이나 죄의식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진리의 탐구자가 죄의식을
느끼는 순간 그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게 됩니다.
많은 미신적인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피학대 쾌락적인 경향은 정신병
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자아분석을 통해서
그러한 경향을 잘 가려내어
뿌리 뽑을 수가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 그러한 환상
과 편견에 맞서 싸워야만 합니다.
우리가 현재인격으로서 그러한
인생의 조화로운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절망과 환상의 혼돈에 빠져 있는
고통스러운 이웃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신유가로서의 우리의 작업은
에테르 복체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심령-이지차원의
고통까지 덜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많은 신유가들은 자신이
하루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숫자
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에테르 생명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고갈되어 버릴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잘못입니다.
그들은 자기암시를 통해서
자신의 신유능력에 장애가 되는 염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사랑이 있다면,
많은 사람을 도와줄수록
여러분은 더욱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 앞에서 확언합니다.”
그는 이어서 투시능력자는
사람의 오라를 ‘보고’
어느 부위에 생명력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신유가는
적당한 집중을 통해서
환자의 에테르 복체상의
결핍이 나타나는 부위에 생명력을
공급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병이 아직은 육체의 차원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환자의 에테르 복체상에서
생명력의 결핍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신유가는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조만간 육체에 나타날
병까지 미리 예견하여
예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병이 몸에 나타나기 오래 전에
예비 환자의 오라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다스칼로스는
그를 만나기 위해 키프로스로 온
어느 수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거실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가 이야기를 멈추고
문 밖의 길가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더니
생각의 힘으로 그 고양이를 문간으로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머리를 갑작스럽게 움직이자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습니다.
내가 놀라면서 왜 불쌍한 동물을
함부로 죽이느냐고 항의하자
그는 그 고양이의 오라에서
위험한 전염병의 징조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놈을 죽임으로써
그는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를 특별히 감동시킨 것은
고양이의 오라에
숨겨져 있는 나쁜 잠재력을
발견하는 그의 능력이었습니다.
고양이의 몸에는
어떤 징조도 없었으니까요.
나는 그 수피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나는 다스칼로스에게,
그가 모든 경우에 대해서
그것이 치료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미리 예견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의 치료가 성공률이 높은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그는 환자의 카르마에 따라
병이 나을 것인지
아닌지를 미리 알 수 있으므로
나을 수 있는 경우에만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스칼로스가 손을 대어서
최소한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예를 기억하지 못한다.
예컨대
나는 카티나 부인의 경우에,
다스칼로스는
그녀가 그날 아침 당장
걸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다른 경우에는 그는,
이것은 희망이 없지만
아무튼 노력해 보겠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말하곤 했던 것이다.
정한 듯이 그의 예상은
어느 경우든 다 맞았다.
“신유의 모든 과정은
성령과의 협조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단지 우주 계획의
매개자가 될 뿐입니다.
성공은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탐구자들은
환자에게 손을 얹는 족족
병이 낫기를 기대하는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봉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가끔 자신도 놀랄 정도의
신유현상을 목격하기도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처 위에
그저 손을 얹기만 해도
그야말로 순식간에 치유과정이
촉진되어 낫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가장 단순한 치료도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낫지 않는 것보다는
낫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낫는 것이
절대자와 성령이 바라는
바이기 때문에
낫는 쪽이
더 용이하다는 말이지요.
낫지 않는다면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카르마의 응보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처음부터 카르마가 치유를
허락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치료에
임할 수는 없는가요?”
내가 좀 더 캐물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미리 설명했지만
병이 낫고 안 낫고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신유가로서 우리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언제나
자신의 에테르 에너지를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돕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만으로도
치유의 염체가 절로 만들어져서
환자의 오라에 남아 있게 됩니다.
그는 아무런 직접적인 효과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염체는 그의 오라에 남게 됩니다.
카르마의 응보는 미래의
어느 때인가에
극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그 염체가 활동하여 치유를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자가
여러분의 도움을 구해서 몇 번을
찾아오든 간에
절대로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병이 낫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똑같은 작업을 기꺼이
반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를 진실로 돕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그의 오라 위에 남아 있는
치유의 염체에 더욱 힘을 주는
에테르 에너지를 더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진정한 열망을 가진 신유가가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도움을 주는
일에 실패한 예는 없습니다.”
“회의론자들은,
신유란 환자가 신유자를
믿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며
낫는다는 것도 실은 강력한 자기암시,
혹은 최면의 결과라고 할 텐대요?
당신은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들의 말도 어느 정도는 옳습니다.
자기암시와 최면은 종종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됩니다.
우리의 건강상태는 결국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산물입니다.
나는 지금 25년 동안
소아마비로 고생해 온 한 경찰관을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는
공상에 빠지기를 좋아하는데
종종 그것이 그의 건강을 갉아 먹는
해로운 자기암시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매주 한 번씩 만나는 데
그는
내가 만들어놓은 것을
자신의 나쁜 성격으로 다 깨뜨려
버립니다.
나는 그에게
그의 태도가 자신의 에테르
생명력을 소진시켜 버려
병이 낫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는 의심이
그의 회복을 지체시키는
일종의 부정적인
자기암시로 작용하지요.”
“이 경우와 한 무식한 농부의
경우를 비교해 볼까요?
그는
어느 날 트랙터를 몰고 있는데
어떤 사악한 기운이 자기를
엄습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 부정적인
자기암시의 결과로
그는 마비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의사들은
그의 병을 복합 동맥경화증
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문제의 진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들은
병명을 지어내어 거기에다
책임을 떠맡겨 버리는 것이지요.
그는 3년 동안이나
휠체어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심리적으로
폐허상태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아이가 다섯이나 있었고,
그의 동생은 헐값에
트랙터를 가져가 버렸습니다.
농부는 울화가
폭발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자는 동안 잠재의식으로
나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의 얼굴을 보았고
꿈속의 한 목소리가
/ ‘스트로볼로스의 마법사’/ 가
고쳐줄 수 있을 테니
가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린 것이
새벽 1시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부인과 동생,
그리고 장남과 함께 왔습니다.
그는 계속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바로 당신이오!’
그는 마비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거요?’/
내가 대꾸했지요.
‘이 개망나니 같은 내 동생이
지난 3년 동안 나를 착취해 먹었소.
이 녀석은
나의 트랙터를 사용하면서
내게 겨우 빵부스러기만
조금 주고 있어요.
나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소.
전처럼 내 트랙터를
몰며 일하고 싶단 말이오.
나는 그를 부리고 싶지
그의 선심에
기대어 살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나을 거요.
난 나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바로 그거요.’
그는 정말 자신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과 기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신유가는
그런 좋은 기회가 지나가도록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말했지요.
‘아무렴요. 당신은 나을 겁니다.
어떻게 나을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습니까?
나는 알고 있지만 당신의 입으로
나에게 말해주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리로 오시오
당신의 왼손을 내 어깨에 얹고
다른 손은 내 겨드랑이에 끼고는
일어나라고 명령하시오.
그러면 나는 일어나겠소.’
나는 지체하지 않고 정확히
그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내가
/ ‘일어나서 걸으시오.’/
하고 말하자
그는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똑바로 몇 발짝
자기 동생에게로 걸어가더니
그를 보기 좋게 한 대 갈겼습니다.
/‘난 이제 걸을 수 있어.
이 개 같은 놈아!’/
그는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내일부터는
내가 트랙터를 몰 거야.’/
그는 나를 보고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내게서 뭘 원하시오?’
내가 말했습니다.
‘잘 들어요. 친구.
나는 오늘 밤
당신이 자기 전에 교회로 가서
성모와 그라스도상 앞에
촛불을 밝혀 놓기를 원해요.’
‘왜 그래야 한단 말이오?’
그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분들이
당신을 고쳐주었으니까요.’
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믿음이
인간을 초월한 그 어떤 것에
바탕을 두기를 바랐던 거지요.
내가 아니라 어떤
초월적인 대상 말입니다.
그편이
그의 잠재의식에 이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사실입니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트랙터를 몰았습니다.”
“복합 동맥경화증은
어찌 되었습니까?”
다스칼로스가
비꼬듯이 말을 맺었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의심하는 사람도 치료가 가능할까요?”
내가 질문했다.
“그렇습니다. 그의 잠재의식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그런 경우에 그 사람은
내가 그를 고쳐주려고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편이 낫지요.
그의 마음이 편안하고
수동적인 상태에 있다면
나는 성령이
그의 상처를 회복시킬 때
그의 육신에 미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치료 작업을 하는 동안
환자는 열이면 열
여러분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의심을 품습니다.
/‘가능한 일일까?’ / 하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반응이지요.
그들에게 그러한 의심을 가질
여유를 주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암암리에 작업을 해야만 할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신유의 에너지가 자신의 오라를
침투하지 못하도록
주위에 염체의 장벽을 둘러치고
있다고 다스칼로스는 말했다.
그는,
치료할 때에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부정적인 염체가
치료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일러주었다.
이와 반대로
협조적인 마음을 가진 보호자는
치료가가
시술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파동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시술자가 충분한 능력을
가졌을 때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만들어 낸 부정적인 염체를
중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환자가 스스로 자기암시를 하거나
시술자가 적당한 암시를 주어
환자가
잘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방법이다.
나는 전에 다스칼로스로부터
해변의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난
척추 장애자를 고쳐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스칼로스와 테오파니스가
바닷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휠체어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그에게 접근해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그를 확신시키는 데 성공하자
그 자리에서 치료를 시작해서
그를 휠체어에서 일어나게
할 수 있었다.
장애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는 걸어서 집으로 갔다.
다스칼로스는 이어서
유능한 신유가가 되려면
에테르 복체의
여러 가지 성질에 대해서
통찰해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지 않고는 성공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신유가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시술 중에 종종
신경질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무지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스칼로스는 ‘맹신’이
치료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리의 탐구자인
우리로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최근에 나를 찾아온
병아리 신유가인 한 영국 여성의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마침
심한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그 환자를 자기가
봐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좋습니다. 해보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하고
내가 허락했습니다.
환자의 손은 많이 부어있었고
손가락이 몹시 상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손을 신경질적으로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감과 믿음을
얻는 그녀 나름의 방법이었겠지요.
‘비키세요. 다스칼레.
악마를 떨어내어 버릴 테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환자의 손에서
악마를 /‘떨어내고’ /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성공했습니다.
환자가 떠난 다음에
그녀에게 어떻게 한 것인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악마를 쫓아냈어요.’ /
하고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실제로는
에테르 생명력의 운동성을 이용해서
기운을 환자에게로 보내주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 최면상태가 되었던 것이지요.
입을 벌린 채 지켜보고 있었던
환자도 아마 반 최면상태였을 겁니다.
/ ‘손을 왜 흔드셨는지요?’ /하고
내가 물어 보았습니다.
‘예. 그것은 악마를
던져 버리기 위해서였죠.’
‘어디다가요? 마룻바닥에?
아니면 벽에다?’
그녀는 병을 낫게 하긴 했지만
그 이유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탐구자로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의식이
완전히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치료도 훨씬
더 효과적이고 강력해지게 됩니다.
이야기한 것과
같은 신경질적인 방법은
신유현상을
일으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잠재의식 속에
불필요한 장애를
일으켜 놓을 우려가 있습니다.
유럽과 기타 다른 지역의
많은 신유가들이
에테르 복체의 기능과 성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맹목적인
신념만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그들이 제한적인 성과밖에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러진 척추를 고치려면
에테르의 여러 가지 성질에
대해서 숙지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인체해부학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도 나는 한 환자의
척추 이상을 봐 주었습니다.
두 자매(제자)가
곁에서 도와주었지요.”
그는 내가 목격했던 것과 비슷한
다른 사례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가 말한 두 자매가 확인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환자의 등뼈는 어긋나 있었고,
그는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신념만으로 치료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란
아마도 며칠 동안 통증을
없애주는 정도일 것입니다.
이런 병을
맹목적인 신념만 가지고
다룬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에테르의 생명력을
운용하는 방법과
척추의 구조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으면
등뼈를 제자리에
맞추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에테르의 복제성을 이용해서
환자의 몸 안에 두 개의
에테르 손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에테르의
감지하는 성질을 이용해서
에테르의 손가락 끝으로
척추이상을 만져보고 등뼈를
제자리에 맞추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네 개의 손이
작업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내 육신의 손과 환자의 몸 안에
있는 에테르 손 말입니다.”
에테르 에너지는 동시에 작용하는
네 가지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다스칼로스는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것은 감각, 운동, 복제,
창조의 성질이다.
운동의 성질이란
혈액순환, 심장의 박동, 허파의 운동,
사지운동,신진대사 등등의
운동을 가능케 하는 성질을 말하며
감각의 성질이란
감각 경험과 느낌, 정서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에테르의 성질을 의미한다.
복제의 성질은
이지계의 형상을 만드는 것,
즉 생각 자체, 그리고
텔레파시나 염력이동 현상, 그리고
유체이탈 등을 가능케 해준다.
그리고 창조적인 성질이란
육체를 이루거나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성질을 말한다.
에테르의 창조적 성질이 없다면
신유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고
다스칼로스가 말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당부한
에테르의 이 창조적인 성질에 관해서는
신경을 쓰지 말라고 일렀다.
그것은 성령이 직접적으로
감독하고 통제하는 성질이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에테르 에너지의 감각,
운동, 복제의 성질에 대해서
우선 숙달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이 성질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하고 살아 있는
시각형상을 만드는 것을
연습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신성한 염체를
만들어내는 순간
그것에는 저절로
로고스와
성령의 영역에 속한 것인
에테르의 창조적 성질이
충전될 것입니다.
앞으로 보름간 다음과 같은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눈을 감고 에테르의 눈으로
오른손에 테니스공만한 크기의
눈부시게 흰 빛을 내는 공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에테르의
복제성을 실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손안에서 느껴 보세요.
그것은 살아 진동하는 빛입니다.
이것이 에테르의
감지성을 숙달시키는 연습입니다.
여러분이 만든 것은
원격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생각-욕망의 염체입니다.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 광구를 그에게 보내어
그의 몸 전체를 감싸게 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에테르의
운동성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염체를 만드는 데 집
중할 수 있는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이 치료에서
발휘하는 가치도 더욱 커집니다.
성령은 자동적으로
이 광구를 창조의 에너지로 채워줍니다.”
다스칼로스는 이어서
에테르의 감지하는 성질을
숙지하는 일은
환자의 병을
먼 곳에서 알아내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사진을 들면
그의 자기장과 접촉하여
그의 파동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환자의 병을
진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스칼로스가 강의를 마쳤다,
방안의 사람들도
모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질문을 위해,
껐던 녹음기를 다시 틀었다.
나의 의문은 치료에서의
색채의 역활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색깔의
염체를 만들어서
환자에게 보내면
원격 치료가 가능하다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병에 따라
그에 적합한 색깔이 있을 것이다.
“색깔들이 그 자체로서
치료의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신유가가 그 색에
치료의 힘을 불어넣기 때문에
효력을 지니는 것입니까?”
하고 내가 질문했다.
“무엇보다도.
색깔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스칼로스가 분명히 대답했다.
“단지
우리에게 색채감을 느끼게 하는
에테르의 파동만 존재할 뿐이지요.
색깔은 또한 소리이며 빛이고,
운동이며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것들입니다.”
“예컨대 내가
이것을 빨간색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단지 눈이
이 주파수의 파동의 자극을 받아들여
뇌의 한 부분에 전달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 다음에
자아의식을 지닌 현재인격이
그 자극을
빨간색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와
동일한 파동을 발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정확히 빨강색의 느낌을 일으킵니다.
물질의 형성을 포함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동주파수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진동주파수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두뇌의 해당 중추가 결합해서
어떤 결과, 예컨대
평온하고 차분한 느낌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특정한 색깔에
다음과 같은 성질이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타적인 사랑의 감정과
백분홍 빛의 느낌을 주는 파동이
일치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만일
백분홍 빛의 색감을 지닌 파동이
왜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지를
물어온다면 나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대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덧붙여야겠군요.
어떤 사람을
평온하게 해줄 수 있는 색깔이
다른 사람에게는 반대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백분홍 빛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매우 신경질적인 사람을
백분홍
빛으로 칠해진 방안에 두면,
그는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아내가 침실에
그런 색을 칠했기 때문에
이혼할 뻔했던
부부의 경우를 기억합니다.
그 색이 왜
남편을 흥분시켰을까요?
나는 그가 전생에
자기에게 늘 향기로운
장미꽃을 주었던 소녀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백분홍 빛이
그의 잠재의식 속에 과거의 고통을
일깨워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 점을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파동의 종류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서
실제적인 효과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색깔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압니다.
환자에게 어떤 색깔을
투사해야 할지 확실치 않을 때는
간단히 흰 광구를 보내십시오.
그 광구가 환자의 몸 전체,
혹은 일부를 덮어 줍니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병을 다루고 있고
거기에 적절한 색깔을 알고 있다면
그때는 그 색깔을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빈혈증인 경우에는
백분홍 빛이나 오렌지 색깔을
마음속으로 방사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빨간색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빨간색은 초조와 혼동과
절망감을 일으키거든요.
또 고혈압인 사람에게
빨간색을 보내서도 안 됩니다.
검붉은 색은 특수한 경우에만
소량이 허용될 뿐입니다.
암의 경우에는
보라색 광구를 만들어
종양의 중심부에다 놓아둡니다.
종양이 사라진 다음에는
이 색깔의 염체를 반드시 떼 내어서
파괴해야만 합니다.
대충 어떤 치료에서든 가장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백색광이라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진동하는 백색광은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스칼로스는 강의를 마치면서
제자들에게
명상수행과 자아분석을 매일
체계적으로 해나가라고 당부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격으로부터
모든 이기심의 잔재를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다스칼로스가 틈만 나면
한결같이 되풀이하는 가르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