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탈超脫
은 종 일
“형님, 너무 외로워서 애 하나 데려다 키워야겠어요.”
모처럼 찾아온 그녀가 맏동서에게 던진 말이다.
“작은 집 조카 중에 양자를 들이면 안 되겠는가?”
돌아오는 대답은 그녀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결혼한 지 두 달이 채 되기 전에 징집되어 간 신랑이 달포 만에 유해로 돌아왔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달랑 한 장의 전사 통지서와 함께. 그녀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다가 그냥 뜨락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낙동강까지 쳐내려오고, 두만강까지 쳐 올라갔던 전선이 제자리를 잡아간다는 소문에도 치성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열일곱 살 새색시였다.
그녀는 한순간에 전부를 잃어버렸다. 홍상紅裳에다 웃음까지 잃었다. 시부모 모시는 막내며느리로서 조석도 짓고 농사일도 거들었지만 그건 삶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어차피 떠날 사람으로 치부하는 주위의 눈길이 더 힘들었다. 출가외인, 삼종지도를 익힌 그녀였지만 남편이고 자식이고 기댈 언덕이 없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울가망한 눈으로 허공의 길을 헤맨 나날이 이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비통한 십여 년을 견뎌오면서 일생일대의 결단을 굳혀왔던가. 스물일곱 살 청상靑孀이 집안 어른들 앞에서 수절선언守節宣言을 한 것이다. 법원에 사실혼을 확인해 달라는 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망자와 혼인신고를 하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수절선언에 이어서 독립선언을 하고 단신 분가를 하였다. 말이 분가이지 내용인즉 부산에서 참기름을 방문 판매하는 지인을 따라 다른 미망인들과 합숙 생활을 시작하는 생무지의 길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가가호호 참기름을 팔러 다녔다. 그 발품을 파는 생활이 몸은 고되어도 마음만은 편했다. 안면이 트이니 실적도 올랐다. 하루하루의 신산한 삶을 허리에 찬 전대纏帶와 함께 풀어가면서 그렇게 십수 년을 견디어 냈다. 돈을 모아서 대구 시가지 외곽의 허름한 땅에다 묻었다. 개발 시대에 도시가 외곽으로 뻗어나가면서 그 땅에다 거처할 집을 올렸다. 또 변두리에 땅을 샀다. 생활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였다. 하지만 못지않게 외로움의 크기도 점점 커갔다.
그녀 나이 마흔 살에 들던 해 봄날에 갓난애를 들여왔다. 여아였다. 언젠가 큰집 동서와의 의논은 논의가 아니라 사전 통보였던 모양이다. 들이기는 쉬웠지만 곧바로 출생신고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배우자가 이미 사망하였기에 호적법상 부계의 성을 취할 수 없었다. 일가친척과 평생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아닌가. 이름 석 자가 낙인烙印이 될 모계의 성씨로는 살아가게 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녀는 백방으로 궁리하다가 법에 호소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던가. 변호사를 잘 만났던가. 법에도 인정이 있었던가. 결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서 부계의 성씨로 입적하였다.
‘타성바지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일족의 모임에서 누군가에게 당하여 수태, 출산하였으니 성姓만 확실하고 이름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부계의 성을 확인해 달라.’는 확인 청구 소였다. 그래서 아버지 이름은 판결문에 따라 성姓만 확인되고 이름은 이하불상以下不詳이었다.
과정보다 결과는 그녀의 편이었다. 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대소가 아이들과 어울려 구김살 없이 자랐다. 커가면서 외동딸이라고 우대하거나 사정을 봐주지도 않았다. 경쟁력 있는 여성으로 기르고자 애쓴 그녀의 공덕으로 바르게 자랐다. 전공 분야 박사학위 과정까지 이수한 훌륭한 재원으로 성장하였다. 그녀 스스로 선택한 미망인의 생애에서 한 떨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것이다.
십여 년 전이다. 지병이 급격히 나빠지셨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그녀 자신도 마지막 길인 것을 알았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맨 먼저 나를 찾았다.
“맏조카, 부탁한다. 내 없더라도 가스나 하나 있는 거 잘 돌보거라. 재산 남긴 것 모두 가스나 앞으로 넘겨주니 그리 알거라.”
“예, 너무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입는 것, 먹는 것조차 아껴서 모은 전 재산을 온전히 물려주고 떠나가는 숙모의 결곡한 한 생애 앞에 오롯이 머리를 숙였다.
열일곱 순정의 나이에 혼자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쉰다섯 해를 수절하신 분이다. 공자의 시간은 가고 젠더(gender)의 시간이 도래한 21세기까지 살아오면서 선택의 대가는 엄정하였을 것이다. 얼마나 곱씹으셨을까. 얼마나 허망하셨을까. 그 절개를, 그 한 많은 삶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고희를 넘긴 숙모는 당신의 장례까지 준비해 두셨다. 세상을 뜨기 전에 가끔 다니며 위로를 받았던 비슬산 용연사 주지 스님께 장례를 의탁해 놓으셨다. 유언대로 분골 떡밥을 해서 새 모이로 내놓으셨다. 신형 조장鳥葬이었다.
벚꽃 터널 지나 올라간 비슬산 자드락길에 까치 한 마리 날아와 탱자나무숲을 흔든다. 젖은 혀로 깍깍거리며 가시의 길에 봄을 열고 있다. 새가 되고 싶어 그 숲에서 조장으로 날아가신 숙모가 몸통 푸른 탱자나무에 까치로 돌아온 건 아닐까.
깍깍 깍깍 반가운 목소리다. 깍깍 깍깍 산길 앞장서 날고 있다. 겨울 견디고 털갈이 중인 고라니 한 마리, 저만치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부처님 미소가 초탈한 용연사 극락전에 이르니 까치도 산비둘기도 모두 너의 숙모라는 회색 절복 입은 보살들, 정갈한 우물가에 둘러앉아 산나물을 씻고 있다.
첫댓글 타 문학장르에서는 결코 흉내 낼 수가 없는 전쟁의 비참함과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 남으신 분들의 신산한 삶에 대한 애련함과 가슴 먹먹함과 위대한 사랑과 인간승리가 그대로 담긴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감동적인 작품 잘 읽었습니다. 저의 외숙모님도 그런 처지였는데 돌아가셨지요.
오래전에 이 작품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밖에서 보면 아름다운 이야기 이지만 안에서 보면 정말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