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갤러리에서 열렸던 방명주의 『마리오네트』전(2004년)을 보면서 작가의 두 가지 관심사를 엿볼 수 있었다. 하나는 ‘판테온’ 연작에서 보여진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었고, 또 하나는 ‘판타스마’ 연작에서 일부 보여졌던 투명하고 연약한 자연적 물체에 대한 관심이었다. 전자는 거대한 대형마트의 쇼핑카트나 중앙냉방을 조절하는 대형건물의 냉각탑을 근접 촬영한 것이었고, 후자는 주로 미역이나 천사채, 콩깍지와 같이 미시적이고 생태적인 물질을 알약과 같은 인공적 이미지와 함께 다룬 것이었다. 이후 갤러리 쌈지에서 열렸던 『부뚜막꽃』전(2005년)에서는 밥알의 질감과 투명도, 형태 등에 몰입함으로써 작가의 관심이 자연적 물체에 더욱 집중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판테온’ 연작에서 확연하게 읽혀졌던 구조적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 연유하고 있는 것일까? 갤러리 쌈지의 전시를 보면서 못내 궁금했던 점이었다. 그만큼 이전의 ‘판테온’ 연작에서 보여졌던 인공적 시스템에 대한 그의 관심은 ‘판타스마’ 연작이나 ‘부뚜막꽃’에 나타난 자연물에 대한 관심과 동일한 밀도와 무게중심을 갖춘 것으로 보였었기 때문이다. 이번 브레인 팩토리의『스토리지』전(2006년)은 내심 품고 있던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방명주가 지속적으로 안고 있던 인공물과 자연물이라는 두 가지 문맥은 ‘냉장고’라는 주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 인터페이스를 구성하고 있다.
‘스토리지’는 현대문명의 필수품인 냉장고의 기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그 크기가 부의 척도가 될 만큼 냉장고는 현대사회가 낳은 하나의 물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가정집들을 방문하여 작가가 포착한 냉장고들의 안쪽에는 마트에서 구입한 각종 가공식품, 장기보존을 위해 냉동시킨 음식물, 밀폐용기에 담긴 반찬 및 과일 등 소비사회의 삶의 패턴들을 반영하는 물건들로 가득 차있다. 물건들이 보관되고 저장되며 정렬된 방식은 자르고 분류하고 위치시키는 구조적 시스템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능에 따라 분류되는 서랍들, 규격화된 칸 안에서 일정한 질서로 놓여진 음식들은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생활과도 같이 거대한 자본 시스템에 의해서 조작된 일상을 느끼게 한다. 이 작업들에서 냉장고의 시스템이 보여주는 차갑고 균질한 상태는 ‘판테온’ 연작들에서 드러났던 것과 같은 기계적인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방명주의 시선은 가공적이고 기계적인 냉장고의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그 내부에 놓여진 물질들에 좀더 밀착되고 있다. 냉장고 내부의 질서나 체계를 채집하는 유형학적인 태도를 넘어서, 그 안에 놓여진 자연물들의 존재상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적 구조 안에 놓여진 자연물들의 위치를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방명주는 객관적인 관점으로 찍은 냉장고 내부 풍경의 일부분을 다시 확대하여 인화한다. 객관적 표면으로부터 개별적인 물질로 향하는 그 시선의 이동은 마치 시스템의 표면으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속으로 진입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시선이 다가가는 곳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과일의 싱싱한 표면, 플라스틱 패키지 안에 담긴 숨쉬는 듯한 김치, 진공 유리병 안에 꽉 채워진 저장식품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 일종의 생태적 반동을 보여주고 있다. 에로틱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물컹하고 부드러우며 즙이 많은 음식물들이 밀폐된 냉장고 안에 놓여진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적 존재에 가해지는 제도적 억압과 통제에 대한 환유이다. 이와 같은 근작들의 맥락에서 바라보자면, ‘부뚜막꽃’에 나타났던 밥알들의 이미지는 그 감각적인 물성, 형태, 다량성, 사회적 함의를 통해서 생산과 생식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원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방명주의 작업은 결국 감각적이고 생태적인 존재가 그것을 통제하는 외적 장치와 만나서 조작되며 변형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상의 표면 안쪽에 도사리는 제도적 억압과 자연적 삶 사이의 긴장상태야말로 방명주의 작업이 천착하고 있는 지점이다. 부분 확대된 냉장고 안의 몇몇 음식물들은 싱싱하게 보존되기 위해 냉장고에 들어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관리당하는 존재로서 감옥에 갇힌 운명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마지막 생기를 품어내고 있는 듯 절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자연적인 부패를 통제하는 현대적인 위생학, 노화를 지연시키는 각종 첨단기술들. 그의 작업이 전유하고 있는 일상적 공간들은 이러한 현대문명의 관리체계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자연적 삶을 대변한다. 피임약이나 콘돔과 같은 소재가 그의 전작들에서 등장했던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방명주의 작업이 콩, 밥알처럼 주로 일상과 관계있는 음식물이면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씨앗이기도 한 물질들을 종종 다루어왔다는 점과, 대부분 부엌, 마트와도 같이 여성의 성역할과 연관된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방명주의 근작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상적 공간을 둘러싼 시스템이 자연적 힘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 특별히 여성이 가진 생식적인 에너지를 통제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그의 작업이 어떻게 진화되어 나갈지에 대해 적지 않은 단서들을 남겨주고 있다. 글 / 이은주(브레인 팩토리 큐레이터) |
방명주 (房明珠 ? Bang, Myung-joo) 2002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 전공 졸업 1996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졸업 1989 이화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과 입학 개인전 2006 스토리지 Storage, 브레인 팩토리, 서울 2005 부뚜막꽃 Rice in Blossom, 갤러리 쌈지, 서울 2004 마리오네트 Marionette, 금산갤러리, 서울 2003 트릭 Trick, 갤러리 아티누스, 서울 그룹/기획전 2006 『Camera Work』展,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6 『P & P』展, 갤러리 잔다리, 서울 2006 『Stillness』展, 갤러리 룩스, 서울 2005 『共. 通. 感._한중일 작가』展, 서울옥션스페이스, 서울 2005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05 『레인보우샤베트』展,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2005 『서울청년미술제_포트폴리오 2005』展,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4 『Red Heaven』展, 창동미술스튜디오, 서울 2004 『신체와 의식』展, 갤러리 라메르, 서울 2004 사비나미술관 겨울기획 『작업실 리포트』展, 사비나미술관, 서울 2003 『Charity : 선물』展, 쌈지스페이스 (아름다운재단 공동기획), 서울 2003 『사물과 상상』展, 갤러리 룩스, 서울 2003 한국여성사진가협회 기획 『분홍神』展,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3 동덕여대 미술학부 큐레이터전공 졸업기획 『Trick』展,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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