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죄 등 거래수단으로 가상화폐 주로 사용
거래내역 알기 어렵게 하는 '코인믹싱' 기승
미국선 주요업체 제재.. 한국은 아직
마약·성착취 범죄 등에 쓰이는 불법 거래 수단으로 가상화폐가 지목되고 있다. 돈 흐름을 쫓기 어려운 가상화폐 특성에 돈 세탁 수단으로 거래자 실명을 감출 수 있는 ‘코인 믹싱’(crypto mixing) 수법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인 믹싱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뚜렷한 법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7일 가상화폐 업계에 따르면 미국 등 해외 수사당국은 ‘코인 믹서기’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인 믹싱은 믹서기로 코인을 갈아버리듯이 개별 코인에 달린 ‘꼬리표’를 제거하는 역할을 맡는다. 예컨대 갑이 을에게 10비트코인을 직접 보낸다면 블록체인상에는 이 내역이 고스란히 남는다. 데이터상 코인을 주고받은 주체가 실명으로 표시되는 건 아니지만 특정 A지갑에서 B지갑으로의 자금 이동 경로는 명확히 남게 된다.
하지만 코인 믹서기를 통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코인 믹서는 10명에게서 각각 다른 액수의 코인을 받아 섞어버린 뒤 재분배해 10명에게 다시 코인을 송금한다. 이렇게 되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남는 기록은 각 10명(발송인)이 믹서기 지갑에 코인을 보냈다는 사실과 믹서기 지갑이 다른 10명(수취인)에게 코인을 보냈다는 사실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믹서기를 중간에 낀 갑과 을이 직접적으로 코인을 주고받았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 셈이다.
코인 믹싱은 본래 가상화폐의 순기능 중 하나인 탈중앙화를 더 적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마약 등 은밀한 거래를 원하는 이들은 이 기능을 돈세탁에 악용하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인애낼리시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전 세계적으로 불법 용도로 이용된 코인 믹싱 규모는 6억 달러(약 8613억원)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사법당국은 비트포그, 헬릭스 등 대형 코인 믹싱 업체 운영자를 체포하고 사업을 불법으로 규정해 단속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코인 믹싱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뚜렷한 법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정보보호대학원 강병훈 교수는 ‘불법 커뮤니티를 통한 비트코인 거래 추적 방법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불법거래를 위해 코인 믹싱을 수행한 경우에는 추적이 어려워지고 분석 정확성도 떨어지게 된다”면서 위험성을 예고했다.
다만 코인 믹서기를 통한 돈세탁이 수사기관 감시망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사당국이 갑과 을 사이 거래대금이 ‘10비트코인’이란 점을 알고 있다면 믹서기를 통해 ‘10비트코인’을 주고받은 이들을 골라내는 방식으로 거래자를 추려낼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거래 금액을 알지 못하면 불법 거래자와 거래 규모 등 범죄 단서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관계자는 “코인 믹서기는 사이버 범죄자나 독재정권의 디지털 돈세탁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특히 침략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 등 제재 대상 국가의 자금 확보 수단이 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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