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오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엔 경정공원 본부석에 있는 관람장에서 따뜻한 차를 K여사와 한잔씩 나누었다.
오늘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풍은 덜할테지만 내주, 그 다음 주보다 온화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차를 사이에 두고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언니는 수술 받고 괜찮았어요?'
그 말을 듣고, 아치, 이분이 갑상선 정밀 검사를 받았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몇 주 지났는 데 그동안 결과를 물어보지 못했다.
나의 언니가 예전에 갑상선 수술을 받았는데, 목에 흉터가 전혀 없다는 말을 언젠가 한 적이 있었다.
'언니는 암은 아니었고요. 수술은 받았어요. 20여년 전인데... 내 기억에 암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 그리곤 그때서야 물었다,
'참, 결과는 어떻게 나왔어요?'
'A 병원으로 가게되었어요. 검사받은 병원에서 연계해줘서.'
'언제요?'
'2주 후에...'
'나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 잘 알지. 그래도 혼자 남겨질 남편 생각하면 속이 아파. 뭘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그건 그녀가 남편에 대한 애정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디.
'별 말씀을 다하시네. 뭘 그런 생각을 하세요. 골골하다 100년 산다는데. 그게 진리에요.'
'나야,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 유방암 수술을 받을 때도 그런 생각했고... 근데 남편 생각하면 속이 터져. 화가 나고.'
'다투셨어요?'
'지난 주에 안산 다녀온 날, 기분 좋게 집에 들어갔는데... 점심 먹으라고 준비해 놓은 거 그냥 그대로 있는 거야. 너무 화가 나서....'
가부장적인 그녀의 남편은 부인이 늘 집에 있으며 시중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라고... 그녀는 여러 번 이야기를 했다. 그런 남편과 40년 넘게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어려움은 언제나 그녀의 병으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된 H가 말을 거들었다,
'아저씨는 언젠가 크게 후회하실 거야.'
'그런 소리하지말아요,' 나는 말했다, '그건 선생님이 남편보다 일찍 줄을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하는 거잖아요.'
누가 얼마나 더 오래 살고 못살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라고 맺어진 관계가 너무 큰 아픔을 준다면, 그런 관계는 지속해야하나? 어리석은 질문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