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隆熙2)년 경남통영에서 태어났으며 1922년(14세) 형 극작가 東郞 柳致眞이 다니던 동경 풍산중학교 입학, 1925년 4학년때 귀국 동래보고에 편입학, 1927년 연희전문 문과 입학, 1학년에서중퇴, 중학교 때 형 致眞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던 동인지<土聲>에 시를 발표, 일본의 아나키스트와 鄭芝溶의 작품에 감명 받으면서, 회람지<掃除夫>발간, 1930년대 부산과 통영을 오가며 동인지 <생리> 발간을 주도, 1931년 <문예월간>2호에 <靜寂>을 발표 문단 데뷔, 1939년 처녀시집으로 <청마 시집>을 출간, 1945년 광복직전 귀국, 1947년 제2시집 <생명의 書> 출간, 1950년대 6·25전쟁 釜山避難時 문총구국대 결성에 앞장섬, 보병3사단에 종군, 1960년대에는 교육계에 半生을 투신 안의중학교장, 경주고등학교교장, 경주여중고등학교교장, (경주후배들을 격려 사랑함) 대구여고등학교교장, 경남여고등학교교장, 부산남녀상업고등학교교장 (이 학교재직 시에 사망, 이로서 고향이 통영인 柳致煥 시인을 부산시민들은 향토시인으로 추모하고있음, 1967년 2월 13일 오후 9시 30분 별세, 예총 모임 참석을 마치고 귀가 길에 버스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부산대학교 응급실에 입원 중 별세,